창작글
용대의 야구이야기
본문
70년대 고교야구는 지금의 프로야구처럼 인기가 많았어요.
고 3 때인가요? 아무튼 전국고교야구 중앙대회에서 용대의 모교인
인천고와 경남고가 붙게 되었어요.
경남고에는 시속 150키로를 넘나드는 강속구의 피처 최동원선수가
기라성같이 버티고 있었지요....고교선수 치고는 초특급 대형 선수였어요.
그 선수 아버지의 열정은 대단했고 매스콤에도 연일 오르내리고..
투구 폼도 특이해 다리하나가 거의 허공을 내질렀지요.
대진표의 운이 나쁘게도 초반에 걸린 거예요.
수업 중에도 선생님들은 그 선수의 위력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특히 경남고 출신의 국사선생님은 더더욱 열을 올리시고..
그 선생님과 같은 고교선후배사이인 영어 선생님은 의연하신데요...
드디어 대회 날,
전교생이 동대문구장으로 응원을 갔어요.
인천에서 올라가는 전철 안은 인고 생으로 꽉 차고...
인천고의 응원석은 1루 쪽, 경남고는 3루 석.
양 학교의 응원전은 참 대단했지요. 선배님들도 많이 와 응원에 동참하시고...
출전가도 부르고 교가도 부르고요...
“위품도 당당하게 출전을 하는~ 천지를 뒤흔드는 인고 함성~~
나간다.~ 나간다.~ 인고 호랑이~ 와와와! 와와와! 와와와와와!
늠름한 기상 앞엔 거칠 것이 없어라.~~
V.I.C.T.O.R.Y! 인고 인고 빅토리 야!!!”
얼마나 불렀는지 지금도 하나 안 잊어 버렸네요. ㅎㅎㅎ
특유의 보디액션인 웃통들을 벗고 응원전을 펼치니 당시 말도 많았지요...
경기시작...
최동원 선수는 정말 대단하더군요.
안타하나 없이 완벽하게 던지는데 모두들 혀를 내둘렀지요.
인고 선수들이 주눅이 들어 중심타선에서조차 헛치기 일쑤였어요.
삼진 아웃이 무려 9개나 나오고...
근데 다행히도 내 친구인 투수 I선수도 덩달아 잘 던지는 거예요.
양 팀이 팽팽하게 노히트 노런으로 가고 있었어요.
그러면 정말 게임이 재미없잖아요. 점수도 나고 홈런도치고해야 재미있지요...
야구는 6회부터라고 누가 말했나요?
2아웃 상태에서 인고의 7번 타자인 동기인 K가 솔로 홈런을 쳐낸 거예요.
3, 4번도 못 때리는데 하위타선에서 홈런을요...믿기지 않더군요.
아무도 안타 없이 진행되다가 유일한 한방이 홈런으로 이어진 거지요.
원래 강속구에는 제대로만 배트를 갖다 대 휘두르면 넘어가게 되어있어요.
그걸 못해서 그렇지요...ㅎㅎㅎ
침묵에 잠겨있던 동대문구장이 “와!” 소리와 함께 발칵 뒤집어 졌지요.
지난 주일날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추신수가 솔로 홈런을 때리 듯 그
열기는 대단했지요.
결국 그 한 점이 결승점이 되었어요.
우리는 동대문구장이 떠나가도록 3루 석을 향해 이 노래를 불렀지요.
“잘 가세요~ 잘 가세요~~ 그 한마디였었네.~~~” 신나게 불렀지요.
근데 다 다음날 선린상고와의 2회전 3대 3 동점 9회말 2아웃 상태에서
한방을 맞았는데 그게 굿바이 홈런이었어요.
그날은 외야석에서 응원을 했는데 공이 큰 포물선을 그리며 우리 응원석에
뚝 떨어지는 순간 마무리투수 임창룡이가 결승일본전 때 10회 연장전 초
2아웃 상태에서 이치로에게 2타점 안타를 맞듯 와르르 무너지는 심정이란...
임창룡이가 싸인 실수라던데요? 맞나요? 실투 성... 1루도 비었는데...
잘했는데도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다시 옛날로 돌아가 그날 그걸로 경기는 끝났어요.
그 때 선린상고 응원단에서 노래를 불러 주더군요.
“잘 가세요~ 잘 가세요~~ 그 한마디였었네.~~~”
겸손을 배웠네요. 謙讓之德(겸양지덕)... 자만하지 않는...
인고 출전가
댓글목록 0
이기영님의 댓글
그날 김영삼 신민당 총재도 검은색 양복 입고 와서 손 흔들고 폼잡다 간 날인 것으로 기억하는데....맞죠? 일간 스포츠 1면에 [거목 경남고 쓰러지다!]가 칼라 톱기사였던 날~!!! 그날 부터 이기영이는 "인호봉" 선배님이 야구 선수 중에는 최고로 알고 있습니다~~~~!
어디가서 인"소리만 나와도 꼴까닥입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이기영후배,반갑습니다.경남고출신의 당시 김총재도요? 새로운 사실에 더욱 추억이 새롭습니다.정말 멋진 승부였지요.
이기영님의 댓글
1976년 제가 1학년 때입니다. 저는 최동원이라는 투수는 잘 모르고 인호봉 선배가 전국최강이라고 알고있었는데....역시 그날을 윤선배님께서 기록하신 것 같습니다.
아~! 동대문 구장에서 경남고하고 붙은 날은 대단한 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아, 그러면 고3시절 이야기이군요.호봉이는 아주 침작하니 컨트롤도 좋고 잘 던졌지요.책임감도 강했고..
윤인문님의 댓글
우리 고교시절 동대문구장으로 야구 응원가면 쌀쌀한 4월인데도 불구하고 지고 있으면 선배들이 웃통을 훌랑 벗겼지요..ㅎㅎ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 인문형님, 옷을 벗긴 선배님들의 명단을 적어내세요. ㅎㅎㅎ 단추도 풀어 영구없다 식의 응원도 하고 책가방도 두드리고... 참 신나는 응원전이었지요.
이기영님의 댓글
그날 부터는 공부 보다는 야구가 좋더라구요~! 사랑에 대한 미련 보다는 야구 우승이 더욱 애착이 갔습니다.
그후 친구들도 공부 잘하는 녀석보다는 야구 잘해서 신문에 가끔나오는 친구 이름(이승중)을 따라 사귀게 되었고...
이상호님의 댓글
최동원 선수 아버지 (최윤식씨)가 더 날랐었는데 그땐 군에 있을 때라 중계도 못보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