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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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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우 곤
친구들아, 그렇게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겨울이 물러가고 정녕 봄이 오고야 말았다. 서재 방에서 책을 읽다가 겨우내 굳게 닫혔던, 관악산이 보이는 창문을 살며시 열어 본다. 한결 부드러워진 시원한 바깥공기가 반갑기 그지없다. 그리고 마루에 드는 햇살도 여간 따사롭지 않다. 조만간 나뭇가지에서는 우후죽순처럼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릴 게다. 그리고 산과 들의 색깔도 여러 가지로 달라지며 봄이 온 것을 노래하리라.
거리에 나서니 봄맞이 가로수 전정(剪定) 공사가 한창이다. 그렇지 않아도 앙상하여 볼품이 없는 터였는데 삭은 나뭇가지마저 톱으로 뭉텅뭉텅 잘라져 나가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가슴이 쓰라리다. 하지만 어쩌랴. 아픈 만큼 성숙해지듯 미구에 풍성한 잎사귀들이 달릴 것을 생각하면 이는 괜한 나의 감상(感傷)에 지나지 않는다.
작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경제 한파로 우리네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금융 위기에다 기업의 도산이 속출하고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가슴이 미어지는 뉴스가 연일 끊이지 않는다. 이러매 만나는 사람마다 한결같이 한숨이 먼저 나오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어렵고 힘든 세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닌게아니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의 빚과 꽁꽁 얼어붙은 소비가 그렇다. 선뜻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엔간히 아프지 않으면 병원 출입을 삼가고 그냥 참고 견딘다 한다. 이렇듯 찢어질 듯이 나부끼는 깃발처럼 실물경제 위기가 피부로 와 닿으니 IMF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아우성이다. 과연 총체적인 난국이라 아니할 수 없다.
누구는 이를 두고 위기가 곧 기회라고 부추기는 이도 있다. 이유인즉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작금에 당면한 위기가 언젠가는 회복되리라 본 포석이다. 그 이유의 변으로 각국의 회복을 위한 강공 드라이브를 들고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나 아직까지는 그것을 대체적으로 섣불리 수긍하려 들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추락의 바닥이 어딘지 장담할 수 없어 회복의 시기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숨겨진 제2, 제3의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깊은 늪 속에 빠져있다고 조심스러운 신중론을 펼치기도 한다.
사노라면 모든 일이 제 뜻대로 된다면 여북 좋겠는가. 하지만 간혹 가다가 이와 같이 예상치 못한 불운이 찾아 들기도 한다. 일껏 한 일이 말짱 황이 될 때가 있고, 배배 꼬인 실타래처럼 세상일이 얽히고 설키어 가리사니를 잡을 수가 없을 때도 있다. 이러매 혼자 손톱여물을 물어뜯으며 애태우기도 하고, 나만 왜 뼈빠지게 고생하며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때로는 세상을 향하여 원망의 화살을 쏘아대거나 체념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극단적으로는 삶을 비관한 나머지 자살로서 소중한 생명을 버리기도 한다.
친구들아, 나는 이런 때일수록 가까운 산과 들로 혹은 냇가로 달려가기를 서슴지 않는다. 하다못해 실개천을 만날지라도 감지덕지로 여기며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보기도 한다. 그럴 때에 해결의 실마리를 좀체 찾을 수 없어 혼자서 끙끙 앓았던 난제가 쉽게 풀려지는 수도 있다. 자네들에게도 이런 방법을 권하고 싶다.
시련과 역경에 처하여 헐수할수없을 때는 어리석게 망설이지 않고 잠시 머리를 식히는 것도 지혜로운 삶의 비결이다. 가능하면 아귀다툼이 성행하고 악마구리 끓듯 하는 도시에서 가리산지리산 헤매지 말고 한번쯤 짬을 내어 내가 사는 과천에 들려보려무나. 빈손이어도 개의치 않으니 그저 홀가분하게 몸만 오너라. 그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처럼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자네들이 오면 관악산이나 청계산으로 나와 함께 올라가기도 하고, 양재천변이나 서울대공원을 발목이 시큰하도록 정답게 걸어도 보자. 그러면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서만 짊어지고 사는 듯한 생활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질 게다. 아니, 자신에게만 있다고 생각했던 세상 고민이나 걱정, 불안, 초조, 두려움이 훌훌 털어져 한결 새로워진 자신을 발견하는 쾌감을 맛볼 수 있으리라. 이때 정녕 남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의욕이 분수처럼 솟구칠 것이며 세상은 정녕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음을 능히 깨닫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노라면 내 입맛에 맞는 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놓아먹인 말처럼 교양과 인정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사물의 요체(要諦)가 아닌 군더더기에 지나치게 얽매여 시시콜콜 따지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속엔 알맹이가 없으면서 잘 아는 듯이 떠벌리기도 하고, 겉으로만 화려하게 치장하려는 이들도 심심찮게 본다. 또 세 사람만 우기면, 호랑이도 그릴 수 있다는 말처럼 본인이 없는 곳에서 근거 없는 것을 가지고 부주의한 혀의 놀림으로 애먼 사람을 곤경에 몰아넣는 경우도 있다. 특히, 어려운 경우를 당하거나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비겁하게 회피하려 들거나 교묘한 수작을 부려 아욕(我慾)을 채우기도 하고, 빈 껍데기와 다름없는 인기에 굶주리기도 한다. 긁어 모은 재물을 둥덩산 모양 쌓아 두고도 만족하지 않는 가련한 이가 어디 한둘이랴.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러나 자연에게는 그런 자들까지도 품에 안는 아량과 관대함이 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창피와 무안, 망신을 끼얹거나 비웃고 놀리는 교만과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즉, 거칠고 성난 목소리로 꾸짖거나 윽박지르지 않을 뿐더러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이 말하여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는 법도 없다. 더군다나 사람과 달리 많이 가졌다고 요란스럽게 뽐내거나 잘난 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을 대하고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찾아오는 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매력은 그저 있는 그대로 말없이 보여주는 것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지고 보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비결도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즉, 개구리가 멀리 뛰기 위해 몸을 움츠리는 것과 같이 때때로 분망한 중에도 한 발짝 비켜서서 자연을 대하며 마음의 여유로움을 되찾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게라고 말이다. 자연은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답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다라고 직설적으로 일러주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찾아온 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자연을 일컬어 인생에 있어서 위대한 스승이라거나 좋은 의사라고 하는 말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가령 오래도록 고조된 긴장으로 기진맥진하거나 심신이 잔뜩 우그러뜨려져 있을 때 주저하지 말라. 마음을 다잡아먹고 곧바로 자연의 품을 찾아보는 것처럼 좋은 게 없다. 이내 자연을 통하여 심오한 인생의 깨달음을 얻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피로가 누적된 심신이 맑고 시원한 공기로 이완(弛緩)되어 상쾌함과 자유로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맛보게 될 게다. 이것은 곧바로 평온함과 더불어 생활에 대한 원기마저 회복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처럼 효율적인 투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는 자연이라는 스승의 탁월한 가르침과 의사의 올바른 처방의 덕택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오늘 개학을 앞둔 대학생 딸이 아내와 함께 봄맞이 옷을 사러 백화점에 쇼핑을 간다고 나섰다. 봄은 여인들의 옷에서 느낄 수 있다는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린다. 아무러나 봄이 온다는 것은 숨통이 트일 만큼 반가운 일이다. 아니, 황새목처럼 그리운 이가 찾아오는 듯 가슴이 설레기조차 한 일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겠다.
친구들아, 현금의 세월이 가슴을 시리게 만들어도 그것에 연연해하지 말자. 참고 지내노라면 너울춤이라도 출 만큼 즐겁고 활기찬 세월도 오지 않겠는가. 인생 백 년에 고락이 상반(相半)이라고 했다. 언제까지 고생만 그림자처럼 줄기차게 붙어 다니랴. 때로는 우직하게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철석같이 믿으며 황소처럼 부지런히 살아가보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듯이 말이다.
앞서 얘기한 대로 마음이 울적하고 산란하거든 내 사는 과천에 들러라. 세상을 혼자서만 끙끙거리며 살려고 몸부림치지 말라. 인생은 남과 더불어 살려고 할 때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 아닌가. 자랑이랄 건 없지만 내 비록 들은 게 적고 아는 게 그리 많지 않을지라도 남의 말을 충실히 들어주는 끈기는 있다. 서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다 보면 뭔가 찾아지는 구석이 있을 게다. 혹시 알겠는가. 그간 세파에 시달려 잃어버린,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와 인자를 한 보따리씩 싸 들고 흐뭇하게 웃으며 돌아갈지도 말이다. 그러면 땟국이 줄줄 흐르던 생활에 윤기가 흐르고 한 뼘 이상 커진 자신을 발견하는 기틀이 마련되지 않겠는가.
만나는 사람마다 한결같이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어렵고 힘든 세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염세주의자처럼 인생은 불행과 고난에 찬 존재로서 이 세상에서는 행복을 차지할 수 없다는 비관론에 빠지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다. 이럴수록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맞닥뜨린 난관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헤쳐나갔으면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천금보다 더 소중한 건강을 잘 챙기자.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건강마저 잃고 아무것도 못한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것도 없지 않은가.
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두툼한 외투를 벗듯 이제 가슴을 활짝 열고 봄물결에 온몸을 맡겨보자. 아니, 세상은 능히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힘껏 소리치며 넓은 들판을 힘차게 달려가보자.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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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님의 댓글
봄바람치곤 다소 쌀쌀해서 몸을 움추리게 합니다. 그래도 봄의 문턱을 넘어서 중반으로 치닫다보면 또 그렇게 봄은 가겠지요. 3월도 이제 사흘밖에 남아있질 않습니다. 또 하나의 계절이 빠르게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이 참에 팔을 걷어 부치고 마음의 대청소를 한번 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