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밀양/아름다운 동행-1
본문
어릴 적 소풍날의 아이처럼 들뜬 기분으로 아침을 맞는다. 옆 지기는 길 떠나는 남편을 위해 따스한 미역국에 밥을 정성스레 내 놓는다. 손수 담근 포도주와 홍삼 다린 물을 배낭에 찔러 넣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곽샘, 같이 가고 싶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데 같이 갈까?” 그저 빙그레 웃으며 “너무 난당거리지 말고 잘 다녀오세요.” 동그란 눈이 오늘따라 더욱 귀엽다. 아침 6시 10분, 배낭을 들쳐 메고 택시를 잡는다. 의정부행 전철 안에 김작가와 전원이가 동행을 한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7시 10분이다. 서두르다보니 너무 일찍 온 것이다. 김작가가 사주는 따스한 커피를 마시며 한 숨을 돌린다. “드르륵” 진동으로 해 놓은 핸드폰이 울린다. “어데가?” 카리스마 두루빛의 전화다. 서울역은 정말 오랜만에 와 본다. 수년 전 아버지의 환갑을 대신해 온 가족이 경주를 갈 때 기차를 타보고는 아주 오래다. 더구나 KTX 는 난생 처음이다. 최회장을 비롯하여 서울에서 출발하는 친구들이 벌써 대합실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밀양에 동행하는 심교수부부와 최회장부부가 정겹고 부럽다. 김작가가 안 보여 궁금해 하는 친구들에게 살짝 정보를 준다. 지금 아래층 화장실에서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노라고... 출발 시간 7 시 55분이 다가오는데 병일이가 안 보여 큰일이다. 최회장과 두루빛이 긴장을 한다. 여기저기 핸드폰을 두드리고... “일단 빨리 타라.” 듬직한 최회장이 명령을 내린다. “까꿍!” 병일이가 기차 뒤에 숨었다 나왔는지 반갑게 맞이한다. 매번 집합장소의 혼돈으로 고생하는 친구다. 어릴 적 숨바꼭질을 아주 잘한 것 같다. 6호와 7호차로 나눠 탄 친구일행을 구름에 달 가듯이 열차는 밀양으로 달려간다. 여기저기 모두가 신기하다. 아침기차라 그런지 손님이 별로 없다. 양측 정상회담을 하듯 테이블이 달린 좌석에 마주보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눈다. 집사람의 정성이 담긴 포도주를 친구들과 한 순배 돌린다. 드디어 김작가의 강론이 시작할 무렵 예쁜 여승무원으로부터 목소리를 조금만 낮춰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죄송합니다. 제 친구가 KTX는 처음 이라...” 모기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던 김작가는 결국 화병이 생겨 기차 통로로 나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를 달려와 넘어지는 산 뒤통수에 대고 외친다. 자기부상열차의 우수성을 인정하다가도 대화의 조심성에 극찬을 접는다. 벌써 대전이다. 늘씬한 킹카이자 재담꾼 수원이가 탄다. “광중이는?” “천안에서 20분 먼저 다른 KTX를 탔데.” 잔잔한 미소의 교장선생님의 아들이자 충청도 양반이다. 목소리도 KTX에 어울리게 나긋나긋하다. 그 친구의 입담에 모두들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김작가가 여승무원에게 경고를 먹었다니까 “해미에서 무궁화 열차만 타던 애인데 걔가 무얼 알겠어?” 좌중은 모두 숨죽여 웃는다. 드디어 스르르 기차가 멈춰 선다. 벌써 밀양역이다. 그 누가 말했던가? Secret sunshine, 비밀의 햇살... 심교수의 처갓집 동네... 구수한 우리의 이장님 교헌이가 살고 있고... “어서와! 친구들.” 영남친구들이 나와 우리 일행을 반긴다. 루이스가든 지킴이 교석이, 수줍은 듯 잔잔한 미소의 윤수, 진해 지역사령관 해맑은 종량이, 전 날 그렇게도 많은 술을 마시고도 부산서 달려온 정성과 감동인 의리의 사나이 낙기, 요가로 달련된 고운 근주, 동그랗고 예쁜 두 눈의 마산에서 새벽같이 올라온 영원이, 분명 새벽에 일어나 정성스레 김밥을 말고 맛 나는 떡과 음료수를 제공하는 울산 큰 애기 한미의 매력 포인트 보조개가 생끗 웃는다. 밀양을 책임진 교헌이가 옆구리에 까만 손가방을 메고 리무진 버스를 빌려 등장한다. 등산복도 멋지게 새로 장만한 것 같다. 밀양 시내에 있는 낙동강변의 영남루를 먼저 안내한다. 작곡가 박시춘 선생의 생가도 알려주고... 낙동강을 바라보며 시조 한 수를 엉터리로 친구들에게 들려준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시루에 홀로앉아 드러사 자리를 보건데 가라리 네이어라~” 교헌이가 죽겠다고 한다.ㅎㅎㅎ 표충사로 향하는 길에 교헌이의 향토 사랑과 구수한 입담이 이어진다. “내가 굳이 누구라고 말은 안하는데..저 뭐냐. 대구에서 온 최모라는... 가끔 머리의 뚜껑이 열리는 친구인데 대충 산에서 음식을 먹여 그걸로 싸게 때우자고 그러데. 그라고 니들 밀양 오면 그냥 조용히 다녀가라. 니들이 연락하면 나가 안 나갈 수 없제.” 반어법을 구사하는 친구가 미쁘다. 드디어 재약산 산행, 집사람이 사준 두 개의 등산용 스틱을 친구들에게 자랑할 시간이다. 촌놈이 출세하여 고급의 노스페이스 스틱까지... 그것도 두 개씩이나... 길이등 사용법을 잘 몰라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뒤를 따르는 친구들의 눈을 찌를까 염려가 된다. 평창도사 형남이의 뒤를 따르다 심교수와 나는 등산로를 잃어 헤매고 있다. 자꾸 나가는 곳이 낭떠러지다. 평창도사가 구름을 타지 않으니 산행이 낯선가보다. “버섯을 따려고 가는 것은 아니지?” 폭포수가 보인다고 형남이가 소리를 지른다. 심교수와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 나뭇가지를 헤치며 발버둥을 친다. 그러다 미끄러지며 살짝 오른 발목을 접 지른다.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새로 산 스틱이 운다. 두 친구가 걱정할까봐 아픈 속내를 감춘다. 여기서 산행을 포기해야만 할 것 같다. To be.... |
댓글목록 0
차안수님의 댓글
역시 선배님의 글은 현장감이 가슴에 파악..... 눈앞에 산행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오실까? 기대합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차안수 후배, 나의 듬직한 후배의 모습이 그립네.이번 영전을 이자리를 빌려 축하하네.멋지네.더욱 정진하고 인고인의 기상을 잊지 마시게.
윤인문님의 댓글
난 절친한 친구들과 여행을 가본지가 꽤 오래된 듯 싶네..용혁후배는 아름다운 동행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엮었으리라 짐작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