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로마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본문
순간 눈이 떠졌다. 오늘은 딸아이와 로마관광을 마치면 나는 먼저 귀국길에 오르고 딸애는 로마의 한인 민박집에서 하루 더 묵고 영국으로 간다. 일주일이 금방 가버렸다. 습관처럼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리스 호텔 주변을 뛴다. 동네가 비교적 부촌인지 집들 마다 가꾼 정원이 아름답다. 소나무 숲길을 달린다. 이른 아침이라 인적이 드물다. 집배원의 오토바이가 아침을 깨운다. 파란 잔디에 물을 주는 스프링 쿨러가 “칙칙” 거리며 돌아간다. 로마의 아침이 아름답다. 모든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선다. 로마 시내로 출근하는 차량 물결의 꼬리에 물려 리무진은 더디 간다. 수요일 아침의 러시아워다. 잘 생긴 이태리남성들이 정장을 차려입고 오토바이로 출근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흰색 택시를 탄 금발의 이태리 젊은 여성과 눈이 마주친다. 라틴계라 검은 머리일 텐데 아마 염색을 했나보다. 생긋 웃어주는 미소에 나그네는 여행의 피로를 잠시 잊는다. 현지가이드가 다시 한 번 소매치기에 대해 경각심을 불어 넣는다. “징다로,징다리”로 불리는 세계에서 유명한 소매치기들. 요즘은 임산부들과 애들로 구성된 팀이 활개를 친단다. 다가와 지도를 얼굴에 갔다대며 길을 물으면 거의 소매치기란다. 사진을 찍을 때 가방을 절대 내려놓지 말 것이며 가방을 뒤로 메면 “이 가방은 당신 것입니다.”이고 옆으로 메면 “내 것도 네 것도 아니고” 손을 살짝 올려 앞으로 멜 때가 정상이란다. 최근에 루마니아인 들이 많이 들어와 얼마 전에는 해군 제독의 부인을 겁탈하고 살해한 사건으로 이태리가 발칵 뒤집혔단다. 너무 심각해하니 자기의 실수 하나를 풀어 놓는다. 가장 큰 실수가 손님을 관광지에 놓고 오는 것인데 한번은 75세의 할머니를 놓고 왔단다. 시간이 박해 분명 어느 단체의 총무에게 모두 다 왔냐고 몇 차례 물었더니 “아니 이 사람이 떼국 놈인가 사람을 못 믿어.” 하기에 믿고 출발했더니 그런 불상사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 할머니가 “호텔 이름을 알겠는가? 가이드 이름을 알겠는가?” 다행히 뒤 따른 다른 여행사의 가이드가 한국 사람처럼 보이니 자초지종을 말하고 그 가이드는 인상착의를 물어물어 연락을 취해와 다음날 아침 그 할머니를 만나는 순간 할머니는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더라는 것이다. 달래느라 어지간히 애를 먹었단다. 근데 문제는 그 할머니의 부군 되시는 할아버지는 그때 까지도 할머니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전혀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요.” 왜 그랬을까? 어느새 로마의 대전차 경기장에 다다른다. 약 17만 명을 수용하던 경기장은 둑이 상당부분 낮아져 있다. 장군들이 병사를 이끌고 나가 승리를 하였다는데 그것을 실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로마시민들을 위하여 전쟁터에서 가져온 전리품을 전시해 놓고 필요에 따라서는 경매를 붙였단다. 전투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마차들의 경주도 보여줬단다. 열광하는 당시 시민들의 환호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영화 “벤허”의 모델이 되었지만 실제로 여기서 촬영이 이뤄지지 못했다는데 유적지 보호를 위해 아주 잘한 일이다. 잠시 후 검은색 벤츠가 미끄러지듯 곁에 다가온다. 각기 60유로를 내니 이제부터 반나절을 이차와 같이 할 것이다. 일본인들이 4년 전부터 개발한 투어란다. 흰색 와이셔츠를 걸친 유쾌한 운전사와 농담을 주고받는다. “두유 노 더 무비 “쿠오바디스 도미네?” “야! 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시! 시!” 이태리어“시(Si)는 영어의 “예스”와 같다. “하우 어바웃 더 무비 글래디어터? 검투사. 얏! 으악!” 콩글리시다. 잠시 검투사 흉내를 내다 천장을 손등으로 긁는다. “하하하!” 멀쑥해지려 할 때 마음을 열고 웃어주는 그들이 여유롭다. 영화 속 마피아 단원이 되어 골목길을 누빈다. 벤츠차를 타고 처음 간 곳이 판테온 신전이다. 건축물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모든 신들의 신전”이라는 뜻의 판테온은 2세기경에 재건되어 오늘날까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으니 놀랍다. 미켈란젤로가 칭송할만하다. 하나로 된 큰 석주기둥을 당시 어떻게 깎아 세웠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것도 수십 개를. 43미터의 돔이 형성되었는데 지하에도 이와 똑같은 반구형이 존재하리라 믿고 있다는 것이다. 돔 상부 중앙에 채광을 위해 직경 9미터의 구멍이 나 있는데 비가와도 잘 들이치지 않는다니 내 기압의 원리를 잘 적용한 훌륭한 건축술이다. 그래도 바닥에 세 개의 빗물구멍이 작게 뚫려있다. 음베르토 1세의 무덤과 왼편 벽 아래에 건축가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다. 다신의 신전은 지금 성당으로 사용 중이다. 맞은편에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있다. 예로로부터 길가는 나그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해준다. 대부분의 큰 성당 앞에 설치되어 있단다. 두 번째 가는 곳이 트레비 분수다. 판테온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를 차로 이동한다. 주위 건물에 둘러싸여 자리한 곳에 놀랄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이 계단에 모여 앉아 휴식을 취한다. 물을 토해내는 분수를 뒤로하고 동전을 던져 넣으면 다시 로마를 방문하게 된다는 전설로 너무나 유명하다는데 그것도 한 개를 던졌을 때이고 두 개를 던지면 사랑이 이뤄지고 세 개를 던지면 깨진단다. 동전던지기가 위법이나 기념으로 돌아서 휙 던져본다. 하루 3500유로의 동전을 건져내어 불우 이웃을 위해 쓰인다니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도 든다. 바로크 양식의 건물에 왼쪽의 포세이돈은 “요동치는 바다”를 나타내고 오른 쪽의 포세이돈은 “고요의 바다”를 상징한단다. 사복경찰이 관광객을 상대로 불심검문을 한다. 세 번째로 간 곳이 스페인 광장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 에 나오는 주인공이 되어 천진난만하며 생기 있게 로마의 하루를 즐긴다. 남우 “그레고리 팩”도 되어본다. “애고!” 얼굴은 그런대로 되나 키가 안 된다. 트레비 분수 근처에 있는 미장원에서 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린 앤이 가장 먼저 간 곳이 스페인 계단이다. 세보니 137단인 계단위로 보이는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의 두 탑이 매우 인상적이다. 스페인 대사관이 바로 앞에 있다. 그래서 스페인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듯. 이태리 건국의 왕 빅토리아 임마누엘 2세 기념관을 거쳐 무솔리니가 연설했던 베네치아 궁전을 뒤로하고 베네치아의 남쪽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교회의 한 모퉁이에 있는 “진실의 입”에 손을 넣는다. 마음으로 지은 죄가 많다보니 손이 잘리거나 빠질까 두렵다. “아내를 진실로 사랑하는가?” 하고 “네”란 대답을 속으로 하며 손을 “진실의 입”에 넣었더니 멀쩡하다. 포로로마노를 간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격언과 함께 남아있는 위대한 역사유산 로마를 통해 유구한 전통과 역사가 유럽 아니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고대 로마의 생활 중심지인 포로로마노는 오랜 역사가 숨을 쉬는 곳이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작은 도시국가로 탄생하여 기원전 1세기까지 지중해 등 세계를 정복하여 대제국을 이룸을 다 알 것이다. 포로로마노는 공화정치, 재판, 상거래 등 시민생활의 중심지인 광장이었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바실리카, 신전, 개선문을 상상하며 걷는 재미는 쏠쏠하다. 특히 로마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티토우스황제의 개선문은 콜로세움을 들어가기 전에 우뚝 서있다. 기원전 8세기의 주거지등이 있는 팔라티노의 언덕은 시간이 없어 먼발치에서 바라만 본다. 충복 부루터스가 원로원에서 시이저를 암살해 불태웠다는 포로로마노 입구를 바라보니 귓전에 들리는 소리가 있다. “부루터스, 너마저....” 점심을 한인교포가 운영하는 집에서 맛있게 먹고 바티칸 시국으로 발길을 돌린다. 면적 44헥타에 약 천 명 정도인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다. 그러나 “바티칸을 제외하고 로마를 말할 수 없다.” 라는 말처럼 세계 8억의 신자수를 가진 카톨릭의 총본산인 산 피에트로 성당(Basilica San Pietro)을 우리는 흔히 성 베드로 성당으로 부른다. 독재자 무솔리니에 사사건건 개입하니 1920년 귀찮은 독재자는 라트라 궁에서 단판을 짓고 교황청은 따로 독립을 한 것이다. 성 베드로 성당은 16,17세기를 걸치며 미켈란젤로의 설계에 의해 재건되었다. 1400개의 방과 성 베드로 광장 양측에 반원형의 회랑과 도리아 식 원주 284개가 늘어서 있고 지붕에는 140명의 성인상이 줄지어 있다. 세계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유물의 37%를 소유하고 있다니 대단하다. 정면 입구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미켈란젤로의 대리석인 “피에타”가 유리상자안에 들어 있는데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보는 이를 감동시킨다. 신자인 본인은 더구나 말할 것도 없고. 좀 더 들어가면 중앙에 법왕의 제단이 있으며 그 밑에 성 베드로의 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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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님의 댓글
Rome was not built in a day...따님과 조은 시간 보내신 용혁님...재충전 만땅!!!...(^+^)
윤인문님의 댓글
확실히 내가 쓰는 기행문보다 용혁후배가 쓰는 기행문이 자세하고 표현이 뛰어나네..*^^*..정말 따님과 좋은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네 그려
윤용혁님의 댓글
홍규형님, 딸애와 추억거리를 하나 만들고 왔답니다.멋진 형님도 재충전하시고 즐거운 시간되세요.인문형님, 과찬이십니다.형님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군요.언제 소주라도 대접해 드려야하는데...건강하세요.
최병수(69회)님의 댓글
실제로 제가 로마 여행 하는 것 같네요... 윤용혁 후배님께 감사합니다~~!!...^_^...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영토분쟁을 해도 깨끗하게 끝을 냅니다.
100여년전에는 NICE(니스)성과 해변이 이탈리아 껏이었다네요..
지민구님의 댓글
가족과의 여행은 참 애틋한 기분이...사진으로만 보아도 로마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습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병수형님,두 나라의 국민성답게 영토문제도 아쌀하군요.프랑스에 다녀오신 멋진 형님,로마여행에 마음을 나눠주시어 감사합니다.민구후배, 가족여행의 추억을 되살려 주어 감사드린다네.다시한번 다녀오기를 기원하네.
안남헌님의 댓글
선배님 멋진여행 하셨네요... 트레비분수 뒤로돌아서 던져넣기도 쉽지않던데... 동전이 없어서 친구하고 한갠가씩만 던졌던 기억이... 그런데 또 언제나 가보려나!!!
윤용혁님의 댓글
남헌후배도 동전을 던졌구료.빌려서 던졌어도 반드시 로마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네.그렇기를 비네.좋은 날 되시게.
윤인문님의 댓글
나도 95년도에 동전을 던졌더니 2007년 12년만에 트레비 분수를 다시 찾게 되더라구요..ㅎㅎ
윤용혁님의 댓글
잘하셨어요.동전을 아끼시지 않고 인문형님은 약속을 이루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