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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투수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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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투수일 필요는 없다
아버님이 자전거를 타시다 다친 상처를 치료받으려고 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지루합니다. 그 지루한 시간 대기실에 놓인 잡지는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다가 도종환 시인이 쓴 몇 개의 글들 중에 ‘모두가 장미일 필요는 없다’는 제목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장미꽃은 화려하여 어디에서나 눈에 잘 띨 뿐 아니라 냄새도 향기로우니 누구나 좋아하는 꽃입니다. 꽃이라면 단연 장미이지요. 그런데 ‘모두가 장미일 필요는 없다’니 어인 일인가 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스스로 개성에 맞게 가꾸고 키우라는 말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장미꽃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다움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것을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요.
장미꽃 한 다발에 바친 안개꽃은 장미꽃다발을 더 탐스럽게 하고, 고추장이나 간장에 고추냉이를 풀어야 회 맛이 더 맛있어지는 것을 보면 ‘모두가 장미일 필요가 없다’는 말을 실감케 합니다.
야구는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운동이라 생각됩니다. 아홉 명이 한 팀이 되어 하는 운동이지요.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면서 이루어지는 경기는 보면 볼수록 게임에 빠져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수비할 때 자기 앞으로 오는 공을 잽싸게 받아 민첩하게 아웃시키는 유연한 동작을 보면 수비하는 선수들이 멋있게 보입니다. 또 투수가 강속구나 유인구를 던지며 타자들을 삼진으로 물러나게 하려는 것을 컷하며, 자신이 치기 좋은 볼을 끈질기게 기다리다가 적당한 볼이라 생각될 때 어깨에 힘을 빼고 허리를 가볍게 돌리며 후려치는 순간 펜스 밖으로 날리는 것을 보면 마음이 후련하여져서 타격을 잘 하는 선수에게 이끌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들 하지요. 투수 한사람의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반증이지요. 잘 던지는 투수가 나왔을 때는 공을 맞추기가 수월치 않습니다. 잘 던지는 투수 한 사람으로 해서 시합을 이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각 팀에서는 선수를 뽑을 때는 우선적으로 투수를 지명하고 다음으로 팀에 필요한 포지션의 선수를 뽑지요.
그러니까 야구를 하려는 선수들은 대부분 투수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해서 모두가 명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아니듯 투수가 되고 싶다고 모두가 훌륭한 투수가 되는 것이 아니지요. 강건한 어깨에 다양한 구질을 구사하는 능력을 가져야하고 재빠른 두뇌 회전도 아울러 투수에게는 필요합니다.
투수에게 필요한 이런 조건들은 부단한 연습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 선천적으로 타고 난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렇다고 투수가 제일이라 하여 가야금에 소질이 있는 어린이를 피아노에 매달리게 하지 않는 것처럼 타격에 소질이 있는 선수를 굳이 투수로 키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82년도에 있었던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떠올려 봅니다.
8회 말까지 우리는 일본에게 지고 있었지요. 아마 1:2였을 겁니다. 주자는 3루, 타자는 그날의 히로인 김재박 선수(현 LG감독). 모두들 스퀴즈를 예상하고 있었지요. 일본 선수와 감독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들은 전진 수비를 하였고 투수는 공을 치지 못하도록 높이 뺐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어우홍 감독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라운드의 여우’는 요란한 사인을 보고 높게 들어오는 공을 개구리 점프하듯 배트에 공을 대었습니다. 3루 주자 홈인, 관중은 득점에 환호하고 환상적이 번트플레이에 환호하고 운동장은 한동안 들끓었지요. 분명 그때의 사인은 스퀴즈 사인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가끔 각본에 없는 연기로 관중들은 더욱 재미를 느끼지만 감독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하는 행위는 영화나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야구에서도 허락되지 않는 행위이지요. 분명 지탄받아 마땅한 플레이였지요.
그러나 이 게임에서만은 예외였을 겁니다. 바로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는 격언에 해당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사인을 잘못 읽은 선수가 승리의 주역이 되었으니까요. 김재박 선수의 황홀한 개구리 번트는 한대화 선수의 스리런 홈런을 탄생시킨 징검다리의 역할이 되어 그날을 승리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선동렬(현 삼성감독)투수도 잘 던졌고 홈런을 친 한대화 선수도 훌륭했지만, 지시를 따르지 못한 김재박 선수가 그날 단연 빛났던 것은 비록 사인을 잘못보아 높게 들어오는 공을 개구리 점프하듯 갖다 댄 것은 하여간 야구의 본능처럼 여겨집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3루 주자를 불러들여 동점으로 만드는 것이 정석처럼 구사되는 것이고, 어지간한 관중들은 이러한 작전을 알고 있으니까 김재박 선수도 감독의 사인을 유심히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른손으로 가슴을 만져야 번트인데 왼손으로 가슴을 만졌으니 분명 번트는 아니었을 텐데 그것을 번트로 보고 악착같이 그 높은 볼에 배트를 대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이 아름답습니다.
외야에 떨어지는 공을 다이빙하며 잡아내는 진기에 가까운 플레이나, 강하게 흐르는 공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잡아내는 유격수의 플레이를 보거나, 홈인하는 상대 선수의 길목을 막고 터치아웃 시키는 포수를 보면 박수가 저절로 나옵니다.
다양한 구질로 타자를 요리하며 포호하는 투수가 그라운드의 장미라면, 그 포호하는 투수를 더욱 포호하게 만들며, 마음의 진정이 필요할 때 차분하게 투수를 순치하여 리드하는 포수는 안개꽃입니다. 장미꽃다발에 바친 안개꽃이 장미를 돋보이게 하는 것처럼 투수를 리드하는 포수는 투수를 빛나게 합니다.
또 내야의 안정된 수비는 투수를 안정시키고 외야의 선수들이 담장 넘어가는 볼을 잡아낼 때 투수는 모든 선수를 믿고 마음 놓고 자신 있게 공을 던지겠지요. 내야를 지키는 선수들이 백합이나 함박꽃 또는 라일락이라면 외야의 선수들은 들꽃인 산수유나 진달래와 들국화에 비교한다면 어떨까요. 잘 조화된 내야는 정원의 꽃이요, 야생마 같은 외야 선수는 들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모두가 장미일 필요는 없’듯이 모두가 투수일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꽃을 얼마나 튼실하게 피울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 가꾼 자기모습의 미추(美醜)일 따름이지 꽃의 종류가 문제될 리 없겠지요.
모든 꽃은 아름다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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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수님의 댓글
그시절 "대륙간컵세계야구대회"라 했단가.. 현장에 저도 있었는데
자유중국 응원단이 한국을 응원하는 북소리가 엄청나게 컸던 기억이 있습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저도 그 게임을 기억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조화를 이루고 필요한 부품이 되어 열심히 살아가는 범인이고자 합니다.
崔秉秀(69回)님의 댓글
호박꽃도 꽃입니다~~~
평범하게.. 보통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 쉬운 일이 아니지요...
오윤제님의 댓글
물로 호박꽃도 꽃이지요. 할미꽃도 아름다운 꽃이듯.....
윤인문님의 댓글
장미꽃에는 가시가 있습니다. 즐기면서 봐야지 꺾기는 힘들지요.
이환성(70회)님의 댓글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맨유에 호나우도가 11명이면 우승 못합니다..이런 기사 본적 있습니다
오윤제님의 댓글
박지성이 없는 맨유 앙꼬 없는 찐빵인가요?
이연종님의 댓글
어느경기든지 후보선수가 꼭 있는것도 이런 이유겠지요 지금의 주전선수도 처음엔 후보로 출발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