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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정산 뻐꾸기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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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를 마친 다음 주 용대는 동생을 데리고 버찌를 따라 덕정산으로 올라갔다. 경험상 모내기를 마칠 쯤 버찌들이 익기 때문이다. 손에 막걸리를 담았던 주전자를 들고 풀숲을 헤치며 선대의 조상님들이 묻힌 묘소가 큰 봉분을 이룬 은행낭골을 거쳐 산에 올랐다. 작년에 봐 두었던 벚나무에 버찌가 많이 달렸기를 학수고대하며 칡덩굴을 헤치고 뱀을 두려워하며 가까스로 다가갔건만 벚나무에 버찌는 발그레 수줍어 “아직 절 데려가지 마세요.” 애원하듯 바람에 흔들리며 손사래를 쳤다. 속상하다. 동생도 마찬가지... 농짝친구가 놀자는 것도 뿌리치고 왔건만... 덩그러니 주전자를 든 손이 부끄럽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벚나무 위를 살피니 까만 버찌가 듬성듬성 달려있다. 날쌘 동생의 엉덩이를 밑에서 받치며 벚나무로 오르도록 낑낑 힘을 썼다. 그러나 동생은 번번이 미끄러져 울상이었다. 급기야 무등 태워 벚나무 아래가지를 겨우 잡는 가 싶더니 벚나무 가지가 찢어지는 바람에 동생은 칡덩굴로 떨어지고 말았다. 덩굴에 얼굴을 긁히고 땀에 얼룩져 버찌를 두 번 따먹다가는 사람하나 잡을 판이었다. 그래도 성격 좋은 동생은 씩 웃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겨우 벚나무에 올라 버찌 몇 알을 손에 쥐고 조심스레 내려왔다. 한 알을 주기에 입에 물었다. 톡 터지며 달콤함이 사르르 입가를 적셨다. 동생도 전리품 하나를 챙기듯 입에 물었다. 아까 떨어지며 어디에 부딪쳤는지 동생의 이마가 벌겋다. 땀으로 범벅된 동생의 얼굴은 산골소년의 모습 그대로이나 오늘따라 가관이었다. 남은 버찌의 처리가 문제였다. 분명 주전자를 들고 버찌를 따라 간다고 동네친구들에게 광고한 터라 빈 주전자를 들고 내려가면 손가락질 받을 것이 빤하기에 용대와 동생은 그 아까운 버찌를 입술에 쳐 발랐다. 버찌를 많이 따 먹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덕정산 뻐꾸기가 요란스레 선창을 하자 산비둘기도 합창을 하듯 따라 울었다. “뻐꾹! 뻐꾹!” “구구 구국!” 빈주전자를 덜렁이며 산길을 내려오는데 유난히 한곳의 땅울림이 달랐다. “쿵쿵” 분명히 땅속이 비어있었다. 당시 동네에는 덕정산 어딘가에 분명 금으로 된 바둑판이 묻혀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기에 내심 큰 기대를 걸고 용대와 동생은 버찌 따위에 별 신경을 안 쓰기로 하고 장소를 돌로 잘 표시하고 달려 내려와 삽과 곡괭이를 들고 다시 산으로 향해 달려갔다. 어머니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니들 또 어디 가냐?” 물으셨다. “어머이, 조금만 기다리세요. 우리 곧 부자가 됩니다.” “애들이 뭔 뚱딴지같은 소릴 하는지 모르겠네.” 산을 오르며 그 장소를 못 찾을까 내심 걱정되었으나 그 보다도 남들이 알까 더욱 조심스러웠다. 찾았다. 돌로 표시한 장소를. 먼저 삽으로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겉흙을 걷어내니 숯으로 덮은 층이 나타났다. “웬 숯이지?” 옛 무덤의 방식인지 모르겠다. 계속해서 파 내려갔다. 걱정하나가 생겼다. 이것이 만약에 고분이라면 “혹시 그 무시무시한 해골이 나타나면 어쩌지? 그리고 밤마다 꿈에 나타나면?” “설마?” 동생이 터진 바짓가랑이를 펄럭이며 되물었다. 동네 영재라는 분은 옛 고분을 도굴하다 죄를 받아 그 집안에 밤마다 귀신이 나타나 패가망신하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근데 이곳은 평평한 산길인데 뭐.” 그것도 잠시 금 바둑판을 캐낼 생각에 두려움도 물러갔다. 한참을 파내려갔다. 한 키 정도를 판 것 같다. 허리가 끓어지는 것 같다. 곡괭이도 휘둘렀다. 평소 밭에서 무 구덩이를 파던 실력과 칡뿌리를 캐던 경험을 살려 무작정 파내려갔다. “쨍!” “우지끈!” 앗 곡괭이 자루가 부러졌다. 아주 큰 바위돌이 나타났다. 분명 이 밑에는 금 바둑판이 있을 텐데... “제기랄! 하필 이때 곡괭이 자루가 부러진담.” 사방은 어둑어둑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도저히 그 큰 돌을 들어낼 재간이 없다. 포기할 시간이 돌아왔다. 산속의 어둠은 더욱 일찍이 찾아왔고 부엉이 울음소리가 소름을 끼치게 했다. 멀리 여우의 울음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캥캥” “형, 나 무서워 미치겠어.” “조금만 기다려봐. 우리 부자가 될 수 있어.” “형, 가자!” “에이, 바보” “형이 더 바보다.” “너 맞을래?” "형, 저기 뭐가 시커먼 것이 웅크리고 있어." "뭐야?" 화들짝 놀란 둘은 뒤도 안 돌아보고 내 달렸다. 넘어지고 나뒹굴며 정신없이 산을 단숨에 허겁지겁 내려왔다. 영식이네 사랑방 불빛이 더 없이 반갑다. 곡괭이 자루는 목이 부러져 숨을 거두었다. 모두가 허허로운 밤이었다. 동생은 다음날 아침 요에 오줌을 지려 어머니에게 매를 맞았다. 형 때문에 헛것을 쫓다가 그리된 옛 일이다. 둘은 교훈하나를 깊이 새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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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님의 댓글
어려서부터 부귀영화를 꿈꾸고 있었군요..형제는 용감하였습니다..ㅎㅎ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 인문형님, 동생과 두살 터울인데 자연과 벗하며 장난도 심했지요. 사실 금바둑판은 허무맹랑한 소리인데 순진한 두 아이는 철석같이 믿고 무모한 짓을 하였지요. 땅에서는 1원도 안나왔어요. 교훈이 되었지요.
acehouse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