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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부부싸움 좀 합시다-부부싸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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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3)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진 우 곤
친밀감을 다지고 따뜻한 정을 나누는 부부 동반의 모임에서 이따금 꼴사나운 경우를 접할 때가 있다. 다름아닌 한창 흥이 무르익어갈 때 눈치도 없이 배우자의 단점을 들춰내거나 아픈 곳을 찌르며 공공연하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이들의 모습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 앞에 분위기는 이상한 기류를 타게 된다. 더군다나 그것을 곁에서 바라보는 사람들 또한 어색하거나 난처한 입장에서 처하지 않을 수 없다. 빠른 수습을 위해 서로 대강 해 두라고 말하며 달래게 된다. 그러나 이미 깨뜨려진 흥을 되돌리기엔 글렀다고 판단하며 결코 오래 앉아 있을 염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배우자에게 미덥지 못한 구석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집 밖으로 나와서까지 까발린다는 것은 사뭇 예의에 어긋난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그건 평소에 단둘이 대화를 통해서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그럼에도 공개적으로 핀잔이나 망신을 주는 것은 제 밑 들어 남에게 보이는 것이요, 제 얼굴에 침 뱉기와 무엇이 다르랴. 그 부부는 틀림없이 모임이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아내나 남편에게 그 자리에서 그것을 꼭 말해야 직성이 풀리더냐고 호되게 따지고 들며 급기야 부부싸움으로까지 몰고 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나는 그런 모임에서는 아내가 동석했다는 것을 항상 유념하고 될 수 있으면 말을 아끼고 조심스러워하는 편이다. 아내와 관련된 얘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다만 누군가가 우리 부부 사이가 어떠하냐고 물어오면 슬쩍 이날 이때까지 아내의 내조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있었겠느냐고 그의 공을 간간이 끼워 넣어 줄 때가 있다. 아내는 나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드는지 집에 돌아올 때는 고마워요, 당신 하며 기쁨이 듬뿍 담긴 시선을 내게 보내곤 한다.
성경 구절에도 나오듯이 남의 눈 속의 티만 보지 말고, 자기 눈 속의 대들보를 보라는 말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한 가지 이상의 결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떠벌리는 것처럼 못나고 어리석은 짓도 없다. 특히, 부부 동반의 모임 같은 경우는 모름지기 금기시해야 할 사항이다. 그것을 망각하고 경거망동한 언행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기나긴 세월을 두고 고락을 함께하며 살아가야 할 부부끼리라면 더 말해 무엇 하랴.
성인군자가 아닌 나 역시 이제껏 살아오면서 간간이 아내와 다투곤 한다. 20년 동안이나 살을 맞대고 살아왔다고는 해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의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바로 그 짝이 부부 사이가 아닌가 싶다. 금슬이 아무리 좋아도 부부도 사람인지라 사소한 것을 두고도 잘잘못을 가리며 어린애들처럼 싸움이 안 일어날 수가 없다. 나중에 알고 보면 싸움의 빌미는 서로의 견해와 가치관의 차이에 있었던 것으로 귀착됨을 번연히 알면서도 왜 그때 참지 못하였던가 하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웃게 된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최선의 방법으로 싸움을 종결시킬 것인가를 모색하는 게 더없이 중요하다. 이왕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설령 주워 담지는 못해도 상대방에게 섣부른 깊은 상처를 남길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이리하여 나는 웬만하면 싸움에 말려들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고집이 좀 센 편인 아내의 강경한 자세 앞에선 일단 소낙비는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무작정 집을 나서는 수법을 쓰는데 이제까지는 그런 대로 잘 먹혀왔다. 가장 감당키 어려운 때는 평행선을 달리듯 의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경우이거나 전혀 얼토당토않은 넘겨짚기로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 경우이다.
이때는 나도 모르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기도 한다. 남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 옳다고 내세울 때처럼 야속한 것도 없다. 이에 나는 왜 그는 쉽게 풀릴 일을 실이 배배 꼬이듯 어렵게 만들어 가려고 하는가 하고 기막혀 하며 소득 없는 싸움에 휘말려 괜한 시간 낭비만 하는 꼴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 때마다 앞서 밝힌 대로 일단 집을 나서고 본다. 그리고는 언제 내게 걸려올 지도 모를 아내의 전화를 받지 않기 위해 휴대폰을 일부러 꺼버린 뒤 발길이 닿는 대로 하염없이 걸어 다닌다.
그 편이 훨씬 낫다. 시간이 흐르면 불유쾌했던 감정이 점차 안정을 되찾게 된다. 사실 별볼일 없는 나 하나만 믿고 시집을 와서 애면글면 고생해 온 아내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터무니없는 고집과 억지 주장을 앞세우며 나를 윽박지른 것에 대해선 여간 얄밉지 않다. 이후부터 고민과 갈등에 빠져든다. 즉, 그를 용서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서 많은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것이다.
하여 때로는 휴대폰을 다시 켜고 대충 이런 식으로 능청스럽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서로 화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당신을 사랑하는 남편’이라고. 될 수 있는 한 내가 잘못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실토하는 것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피해간다. 그것만은 알량한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휴대폰을 꺼버리고 마음을 다스린다.
장시간의 도보로 발목이 시큰거리고 발바닥에 열이 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서서히 집에 대한 그리움이 스멀스멀 괴어오는 것이다. 즉, 들어갈 궁리를 챙기기 시작한다. 물론 분노가 극에 달하여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을 때는 이따금 혼자서 외박한 뒤 들어가는 적도 있다. 남편의 자리가 비어있을 때의 허전함과 남편의 소중함을 당신도 느껴보라는 얄팍하다 못해 교묘한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 어디 있으니 안심하고 자라며 자상하게 연락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사람이 가벼워 보인다고 핀잔을 듣게 되든가 병 주고 약 주느냐고 되받아 침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서서도 어깨를 당당히 편다. 그리고 짐짓 선생이 학생을 나무라듯 ‘불쾌한 감정을 언제까지 끌고 가겠느냐, 이만하면 족하지 않느냐,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사느냐, 오늘 덜컥 죽을지 내일 고꾸라질지도 모르는 판국에.’하고 일갈대성 한다. 마치 세상 이치를 다 아는 것처럼 철학자다운 자세를 견지하며 선수를 치는 것이니 다소 적반하장의 수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면 아내는 어안이 벙벙해하면서도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듯 ‘아니, 휴대폰은 멋으로 갖고 다니느냐, 도통 전화를 받지 않으니 기름에 성냥불을 던지듯 화가 더 치민다.’고 하며 혹시 무슨 사고를 치지 않았을까 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 발이 동동거려지고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곤 한단다. 그리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태산 같은 걱정이 앞서고 두려움과 불안이 겹겹이 쌓인다며 제발 다음부터는 집 밖을 나가더라도 휴대폰은 반드시 켜놓으라고 다짐을 주는 것이다. 이는 바로 화해하자는 제스처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서 집 안에서 싸움의 결말을 볼 것이지 왜 걸핏하면 밖으로만 혼자 내빼느냐고 따지고 든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변명의 여지가 있다. 즉, 내가 집 밖을 나서지 않으면 문제의 해결은커녕 오히려 더 일을 복잡하게 끌고 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아예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고생이 되더라도 나서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박하면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그 맛에 산다니까 하고 중얼거린다.
이것이 내가 부부싸움의 경험을 통하여 얻게 된 삶의 교훈이다. 혹자는 끝장을 보는 것을 슬그머니 피하려는 비겁한 술수라고 나무라겠지만 그것은 내가 살아가기 위한, 혹은 가정의 화합을 일궈내기 위한 일종의 고육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 맞붙어 싸워봤자 시간 낭비, 체력 소모밖에 더 있겠는가. 따라서 내 입장에서는 부부싸움에 관한 한 지는 것이 곧 이기는 법이라는 것을 아직까지는 고수하고 싶다. 어리석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우리는 시원찮은(?) 부부싸움을 하고도 대미의 장식만큼은 화합의 차원에서 외식을 거의 빼놓지 않는 편이다. 한때 아이들에게 외식하러 나가자 하면 그들은 엄마, 아빠 오늘도 싸웠느냐고 반문해올 정도였다. 아내와 나의 상용수법을 몇 차례 본 그들인지라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정말 아무 일이 없어도 이와 같이 넘겨짚기까지 하니 때로는 아내와 나는 서로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마주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부부싸움 뒤의 아내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설령 아이들이 없는 사이에 싸웠다 해도 아내는 싸우긴 왜 싸워, 정말 아이들 앞에서는 사랑싸움도 못하겠다며 내 품으로 냉큼 다가서며 봐라, 우린 이렇게 찰떡궁합처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지독하게 사랑하는 사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팔짱을 껴오곤 한다. 고단수랄 것은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식 앞에 될 수 있으면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는가 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 부부가 서로 닮는다고 했듯이 아내도 점차 내가 가진 성향과 태도에 물들여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부는 조약돌처럼 되어야 하는 가슴에 새겨둘 만한 것이다. 모나고 거친 돌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물살에 씻긴 끝에 조약돌이 되듯이 이해와 신뢰, 그리고 존경이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어찌 되겠는가. 서로간에 싸움이 일어나거나 증오밖에 남는 게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부부싸움을 하되 그것은 보다 나은 사랑을 발견하기 위한 건전한 싸움이어야 한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게 아니라 너도 옳고 너도 옳다고 사심 없이 인정하는 무승부가 진정한 부부싸움이 아닐까. 그게 정 싫다면 내가 졌다고 일찌감치 두 손을 번쩍 드는 것도 한 방편이 될 게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의 상사라고 했듯이.
(2006년 11월)
댓글목록 0
gratenaxarObe님의 댓글
Greetings to everyone !! You www.inkoin.com always actually.
Just in a theme. It is better, than to write the report about ,really. Bye!So long!
李聖鉉님의 댓글
부부싸움은 할수록 좋다.!?
李聖鉉님의 댓글
위 영어는 칭찬같애요.감사합니다. Thank you!! --요부분이 잘해석안되지만-->than to write the report about
안태문님의 댓글
부부란 한글로는 동등한 사이지만, 남자와 여자가 어찌 같을까요... 아무리 같으려해도 같을 수 없겠지요. 왜냐하면 같은 것은 없으니까요. 믿음이라는 잣대로 알고도 모른척 할때도 있어야 가화만사성이 될 수 있겠지요. 상대방을 배려해 주는 마음..
안에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 밖에서는 이기는 것이 이기는 것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애처가 진작가에게 많이 배워야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