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바람개비
본문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머니는 마당에서 도리깨로 콩깍지를 더미로 엎어놓고 두드리고 계셨다. 토닥토닥 볼기를 맞아 콩들이 이리저리 날뛰었다. “어머이, 학교 다녀왔습니다.” “응. 그래. 어서 와라.” 일손이 부족하신 어머니는 반색을 하셨다. 풍차의 날개처럼 두 개의 날이 달린 바람개비가 콩더미 앞에 서서 어느 놈인가 하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일어날 일에 대해 아무 책임이 없다 듯이 시커먼 톱니 두 개가 이를 악물고 말이 없다. 도리깨질을 마치신 어머니는 키에 주섬주섬 콩을 퍼 담으시고 땅바닥에 커다란 멍석을 깔아 놓으셨다. “애야, 바람개비 좀 돌려라.” 용대는 책가방을 대충 안마당 툇돌위에 던져놓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두 손을 모아 바람개비의 손잡이를 힘차게 돌렸다. “푸르릉 푸르릉” 양철을 구부려 만든 바람개비는 휘파람을 불며 바람을 일으켜 허공을 가볍게 휘 저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 앞에다 대고 두팔을 흔들며 키질을 하셨다. “우두두둑” 콩깍지는 바람에 날아가고 동그란 콩들은 서로 머리를 부딪쳐가며 멍석에 수북이 내려앉았다. 어머니가 앞에 서서 키질을 할 때마다 많은 콩들이 멍석에 모여들었다. 수건을 두르신 어머니의 머리에 날아가던 콩깍지가 붙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배가 부른 사마귀가 어슬렁어슬렁 능청스럽다. 한 무리의 고추잠자리가 군무를 이뤄 곡예비행에 나섰다. 어머니가 키질을 잠시 멈추고 콩에서 작은 돌을 골라내시니 사방이 잠시 숨죽여 고요하였다. 용대는 슬슬 심심해 지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움직이는 놀이동산이라는 별명을 가진 용대는 뭔가 장난거리를 찾아 나섰다. 볏짚 몇 개를 뽑아와 맞물고 돌아가는 바람개비의 톱니에 대고 밀어 넣었다. 꾸불꾸불 굴곡을 이루며 찍혀 나오는 모습이 신기해 몇 번이고 반복해 놀았다. 그러나 그것도 지루해지자 이번에는 바람개비를 몇 번 돌리다 순간 힘을 주어 갑자기 멈추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면서 지푸라기를 손끝으로 잡고 톱니바퀴까지 가장 가까이 접근해 멈추는 무모한 장난을 시작했다. “드르르” 그 순간 오른 손 검지가 톱니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으악!” 순식간의 일이었다. 손톱을 포함 검지의 첫마디까지 톱니에 짓이겨 졌다. 어머니가 놀라 달려왔고 손가락에서는 붉은 피가 솟구쳤다. “어머이! 어머이! 나 죽어요.” 고통을 못 이겨 용대는 울음을 터트렸다. 진강산이 떠나갈 듯 요란하게 울어댔다. 급한 나머지 어머니는 당신의 앞치마 단을 찢어 단단히 동여 매셨다. 그래도 피가 새 뚝뚝 멍석에 떨어졌다. 손가락하단을 검정고무줄로 칭칭 감고 나서야 겨우 지혈이 되었다. 아름다워야 할 가을 오후가 피로 얼룩지고 있었다. 당시 산골동네에서 병원을 가려 면은 읍내로 가야하는데 마침 학교 앞 조그만 약방을 운영하는 김 씨 아저씨가 군 시절 위생병 출신이라 웬만한 외상정도는 잘도 치료를 해 주셨다. 학교에서 퇴근하지 않으신 아버지께로 달려가 아버지와 그 약방에를 가니 약방 아저씨는 마취도 없이 살점이 덜렁거리는 검지를 실밥을 꿰듯 잘도 꿰매 주셨다. 두 번의 고통을 맞보는 순간이었다. 두려움에 떠는 용대의 두 팔을 아버지가 장단지로 꾹 누르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용대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고 약방아저씨의 이마에도 진땀이 송송 돋아나있다. 지금도 그 꿰맨 상처는 옛일을 알리 듯 훈장처럼 오른쪽 검지에 남아있다. 큰일 날 뻔하였다. 신작로를 걸어 산길로 접어드니 어미를 부르는 송아지의 울음소리가 용대를 닮아 부끄럽다. 가마솥에 저녁밥을 지으시던 어머니가 한 말씀을 빼놓지 않으셨다. “너는 어째 귀에다 콩을 집어넣어 빠지지 않아 놀래질 않나 아무튼 도자가 해자 되는구나?” 어머니의 가을걷이를 도우려다 큰 사고를 친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이셨다. 용대는 할 말을 잠시 잃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치료한 손가락이 쑥쑥 거려 아픈데 옆집의 시갑이가 놀러와 한마디를 거들었다. “형, 오른쪽 검지를 다치면 군대 안간데.” 이 마당에 이건 또 무슨 고얀 소리인가? “시갑아! 너 집에 안 갈래?” 그렇게 가을 저녁은 속절없이 깊어만 갔다.
지금 내 고향 강화에는 어머니가 아니 계시다. 상처를 부여잡고 위로해 주시던 어머니의 품안이 새삼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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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님의 댓글
문집 원고 모집이 시작되니 용혁후배도 옥고를 올려놓기 시작했군..나도 빨리 문집에 올릴 작품 구상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작년처럼 인천여고, 인일여고, 제고, 동산 홈피에 원고 청탁 게시 부탁드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