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어머니가 하우스 방을 차리시다.
본문
시골에서 사시다 자식들의 강권으로 누님의 아파트 바로 옆 동으로 이사 오신 어머니는 토요일을 기다리신다. 하루 세끼 식사를 위해 누님의 방문을 제외하고는 자식들은 맞벌이로 모두 바쁘다는 핑계로 주중 찾는 이 거의 없는 외딴 섬 조그만 아파트에 이를 모를 새가 날아와 지저귀며 어머니를 위로한다. 어머니의 유일한 하루일과는 어머니 생일잔치 때 찍은 비디오와 아버지의 44년 10개월을 마지막으로 학교정년퇴임식에서 촬영한 비디오 그리고 아버지의 칠순잔치와 팔순잔치에서 동네 분들이 많이 나오는 비디오를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고 보시니 벌써 몇 번째 보셨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빛바랜 앨범을 수북이 쌓아 놓고 들추시고 계실 것이다. 어머니에게 까만 추억만이 하얗게 점점이 쏟아져 내린다. 아침부터 까치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당번인 자식들이 찾아온다고 까치는 아파트 3층과 맞단 나무에 앉아 호들갑을 떤다. 어머니는 매주 토요일이면 본의 아닌 하우스 방을 차리신다. 아버지와 누님과 매부 셋이서 사군자를 치신다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가다 서다를 반복하신다. 3,5,7,9 금전이 오간다. 그러나 승자는 언제나 어머니이시다. 이것은 이미 계획된 시나리오로 고스톱에서 딴 돈을 무조건 어머니의 손에 쥐어 드리니 어머니는 아버지가 돈을 잃어도 마냥 즐거우시다. 제로섬게임인데도 어머니는 당신의 수중에 얼마의 푼돈이 늘 들어오니 주말을 기다리시는 것이다. 어쩌다 안부전화를 드리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떠있다. “둘째구나? 나 오늘 돈 벌었다. 매부가 돈 따서 줬어.” “하하하! 잘하셨어요. 어머니.” “아버지 바꿔줄까?” “애, 나다. 네 어머이는 누나, 매부가 내 돈을 따서 줬는데도 좋다고 한다.” 일제당시에 배운 “이 찌니 산 시 고 육구 시찌 하찌 규 즈”를 손가락으로 꼽으시며 셈에 밝으시던 분이 약간의 신경변성 치매로 바로전의 일을 기억 못하시나 옛일은 그래도 잊어버리시지 않고 말씀하신다. 그 옛날 산골동네에 보따리 옷장사가 와 외상으로 사실 때 장부 없이도 외상값이 얼마인지를 정확히 기억하시고 사리분별이 확실하셨던 어머니가 못 쓸 병으로 분별력을 잃어가고 계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치매가 아주 약하게 오시어 어린 아이처럼 순한 모습을 보이시고 주일이면 성당나들이를 하시니 그 또한 감사해야하지 않겠는가? 용대의 고등학교 시절 겨울밤이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마을 사랑방의 도리짓고땡 노름에 행여 아들이 노름꾼으로 전락될까봐 노심초사 찾아오시어 들창문을 발로 차시고 크게 나무라시던 어머니가 이제는 다 부질없는 일인 양 당신의 아파트에 매부와 누님을 불러들여 하우스 방을 차리셨다. 사람이 그리우신 것이다. “어머이, 몇 퍼센트를 제게 떼어 주지 않으시면 경찰에 신고합니다.” “동네 여러분! 우리 어머이가 그리고 전직교장사모님이 하우스 방을 차리셨어요.” “큰일 났어요. 큰일!” 어머니는 그저 빙그레 웃으신다. 해맑은 아이 같다. 틀니마저 맞지 않아 잇몸으로 식사를 하시니 몸은 쇠잔해 지시고 거동마저 불편하신 어머니... 자식위해 한평생 몸을 바치신 인생 뒤안길의 가엾은 어머니... 조실부모하고 세상물정 모르시며 그저 귀엽게만 자라신 막내이자 선생님이신 아버지에게 시집와 그 많은 농사일을 도맡아 고생만 하시던 어머니... 당신이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자식들에게만은 손에 흙을 묻히고 살지 않게 하겠노라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며 남보다 유난히 향학열을 불태우시던 어머니에게 이런 식의 하우스 방이라면 얼마든지 좋다. 김춘광님의 “검사와 여선생”이 아니더라도 내 어찌 어머니를 고발하겠는가? 어머니를 위해 매주 벌려주는 아버지와 누님, 그리고 매부의 배려가 따스하다. 베란다의 꽃들도 정겹다. 귀여운 참새도 놀러와 조잘거린다. 돈은 아이나 노인이나 마다할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동양화에 서툰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매번 돈을 잃어 주실 것이고 그럴 때 마다 어머니의 호주머니는 조금씩 배를 불려갈 것이다.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괘도 토요일이면 어머니는 마냥 기쁘시다. 어머니가 “잼잼, 곤지곤지”를 따라하시고 아버지가 내 주시는 산수문제도 잘 푸시어 더 이상 신경변성 치매가 진행되지 않도록 바랄뿐이다. 그리고 오래도록 저희 자식들 곁에 머물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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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님의 댓글
어머니가 하우스를 차렸다기에 뭔가했더니 효도하는거구먼...효자 용혁후배를 보니 내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 잘 지내시지요?
듬직한 형님이 계시기에 홈피는 늘 단단해지지요. 형님께서 효자라 일컬으시니 부끄럽습니다. 좋은 시간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