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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작 - 호떡을 파는 새댁
본문
그간에 바빠서 얼굴도 제대로 디밀지 못했군요.
이제는 열심히 참석할 것을 약속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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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우 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한때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새댁의 티를 갓 벗은 듯한 여인이 저녁이면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부근의 노상에서 호떡을 구워 팔았다. 이따금 왜소한 체격의 남편이 찾아와 잠깐 동안 그의 일을 거들어주다 가곤 했다. 말인즉슨 거들어준다고는 하나 그저 마지못해 하는 양으로 내게 비춰졌다. 왜냐하면 남편이 하는 일이라곤 지극히 단순했기 때문이다. 즉, 여인이 호떡을 봉투에 담아 손님에게 건네면 그가 하는 일이라곤 단지 돈을 받거나 거스름돈을 내주는 게 전부였다.
더구나 비록 호떡 장사일망정 그것도 명색이 장사인데 그는 손님이 오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라든지 안녕히 가세요 라는 인사조차 없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일체 말이 없을 뿐더러 상대방의 시선조차 거북한지 연신 고개를 밑으로 떨구는 게 일이었다. 그러다가 여인이 이젠 집으로 들어가라고 하면 마치 그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훌쩍 사라지는 게 아닌가. 따라서 장사는 하나에서 열까지 여인이 혼자서 거의 다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곳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재작년 추운 겨울날 저녁이었다. 퇴근하는 길이었는데 그곳에서 좀체 보기 힘들던 호떡을 파는 곳이 보이는 게 아닌가. 이에 나는 마치 물 본 기러기요 꽃 본 나비처럼 흔희작약하며 발걸음을 그리로 향했다. 왜냐하면 본시 나는 어린 시절부터 호떡을 꽤나 좋아해왔기 때문이다. 오십을 넘어선 지금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닌 게 아니라 길거리를 가다가도 호떡을 파는 곳이 눈에 띄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않듯이 스스럼없이 들르기가 일쑤다. 따라서 목이 좋은 그곳에 순대나 떡볶이를 파는 곳은 있어도 호떡을 파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게 여간 서운하지 않은 터였다.
거기에 들어서니 앞서 밝힌 대로 새댁 - 편의상 새댁으로 지칭하고자 한다 - 이 혼자서 호떡을 굽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손님은 얼추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명뿐이었다.
내가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이봐요, 새댁. 시간이 너무 걸린다. 장사하러 나온 지 얼마 안 되는가 보네. 또, 내 물건이 좋아야 판다고 하는데 저렇게 크기가 고르지 않고 모양도 들쭉날쭉하면 어떻게 해?”
옆에 서있는 아주머니가 새댁에게 하는 말로서 조금은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 말에 새댁의 얼굴은 붉어졌으나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제 할 일만 해나갔다.
나는 새댁이 호떡을 굽는 모습을 묵연히 지켜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반죽을 떼어서 구워지는 호떡의 크기가 일정치 않았다. 어느 것은 턱 없이 크고 어느 것은 턱 없이 작은 게 아닌가. 아마 반죽을 일정하게 떼어 내는 것에 익숙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러매 작은 것에는 반죽을 조금 더 떼어 붙이니 둘레가 들쭉날쭉하여서 영 볼품이 없기도 했다. 의외로 큰 것엔 아예 손을 대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따라서 열에 일곱이나 여덟은 제 모양을 갖추지 못했다. 차라리 그냥 두는 편이 훨씬 더 나을성싶었다.
게다가 손으로 뗀 반죽을 공처럼 둥글게 하여 굽는 판에 놓고 손잡이가 달린 둥근 알루미늄 판을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힘의 강약도 일정치 않았다. 어떤 것은 두껍고 어떤 것은 너무 얇았다. 두꺼운 것은 익는 데 시간이 걸리고, 너무 얇은 것은 속에 든 설탕이 녹은 게 밖으로 비어져 나오기도 했다. 하여 거기에 반죽을 더 떼어 때우니 자연 굽는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고 보니 참을성이 많은 나라도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코허리가 시큰거림을 어쩌지 못했다. 왜냐하면 카바이드 불빛 속에 드러난, 얼굴이 곱상한 새댁의 이마에 맺힌 구슬 같은 땀방울 때문이었다. 내 옆에 서있는 아주머니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던 새댁. 그가 벙어리가 아닌 다음에야 왜 그랬는지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사실 나름대로 애를 쓰고는 있다 하나 마음먹은 대로 호떡이 잘 구워지지 않으니 오죽 속이 답답하고 부글부글 끓겠는가. 그런 터에 타박에 가까운 말을 던지니 그에 맞서 대꾸할 기분조차 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남의 돈을 버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음을 몸으로 느끼며 속으로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이윽고 내 옆에 서있던 아주머니가 호떡을 담은 봉투를 받아 들었다. 그러나 마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산다는 듯 3,000원을 건네는 손놀림이 다소 거칠어 보였다. 그래도 떠날 때는 자신이 너무했다 싶었던지 많이 팔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되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미안해요. 얼마 치를 드릴까요?”
듣고 보니 시원한 사과 맛과 같은 목소리였다.
“2,000원어치만 주세요.”
“빨리 구어 드릴 게요.”
이미 나는 그의 솜씨를 익히 보아온 터라,
“괜찮아요, 천천히 구워요.”
하고 그를 되도록 안심시키려 부드럽게 말했다.
바깥 날씨는 여간 매섭지 않았다. 저녁이 되니 더 그랬다.
나는 새댁의 호떡을 굽는 양을 지켜보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외모를 보건대 그는 이렇게 한데서 뭇시선이나 받으며 험한 일을 할 여인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새도 나무를 가려 앉듯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봉급으로 편하게 살림을 하거나 이보다 훨씬 더 고급스럽고 세련된 일을 해야 적합할 여인으로 보였다.
젊으나 젊은 새댁이다. 남편이 실직했거나 사업 실패라도 했단 말인가. 대체 무슨 곡절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선뜻 물어본다는 것도 실례가 된다. 다만 먼지가 일고 찬바람이 들이치는 곳에서 솜씨도 없는 호떡을 구워 파는 그가 여간 애처롭지 않았다. 물론 살길이 막막하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온 것이라면 달리 할 말이 없다. 직업에 무슨 귀천이 있으랴.
집에 돌아오자 아내에게 따끈한 호떡이 들어있는 종이 봉투를 내밀었다. 아내가 접시를 가져오더니 호떡을 꺼내 담으며,
“아니, 호떡이 왜 이리 못 생겼어요? 크기도 들쭉날쭉.”
하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닌가.
결국 아내도 내가 사온 호떡의 크기와 모양을 꼬집는다.
이에 나는 움찔하며,
“새댁이 장사하러 나온 지 얼마 안 되나 봐. 한 아주머니도 당신처럼 똑같이 말하더군. 하긴 세상일이란 게 첫술에 배부른 게 어디 있겠어? 이력이 붙으면 호떡 굽는 솜씨도 차차 나아지겠지. 그리고 참, 자태를 보건대 호떡이나 구워 팔 새댁은 아닌 것 같던데…….”
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 이후 대여섯 차례 그곳에 들러 호떡을 샀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새댁의 호떡 굽는 솜씨는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크기도 모양도. 은근히 내 마음도 흐뭇하기 짝없었다. 자주 그 새댁의 솜씨를 입에 올리자 아내로부터 혹시 그를 좋아하는 게 아니냐는 농담을 듣곤 했다. 하지만 아내도 오고 가다 그 새댁을 보았던지 그 이후로는 그런 말을 일체 입에 담지 않았다.
두 달 정도가 지났을까. 퇴근 길에 모처럼 호떡을 사려고 그 곳에 들렀으나 리어카도 새댁도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이에 내 발걸음은 흡사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 허전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새댁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 빈자리 때문일까 불붙듯 일어나는 처연(悽然)한 심사를 가눌 수가 없었다. 연약한 몸으로 잠시라도 앉아서 쉴 틈도 없이 꼬박 서서 해야 하는 중노동 같은 일에 시달리느라 병이라도 난 걸까, 아니면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가, 혹은 다른 곳으로 가서 호떡을 굽는 것은 아닐까 하고 별의별 생각이 다 일어났다. 결국 더 좋은 일로 이런 장사를 걷어치운 것이겠지 하고 위안을 삼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그들 부부는 금석 같은 사랑을 다짐하고 힘차게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잠시, 어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뭇사람 앞에 선뜻 내키지 않으면서도 장사하러 나섰을 것이다. 하고 많은 일 중에 찬바람이 불고 먼지가 이는 거리에서 호떡을 구어 판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비록 두 달 정도라고는 해도 심중엔 세파를 헤쳐 나간다는 게 그리 만만치 않음을 새삼 느꼈으리라 짐작이 간다. 잠시 동안의 고생이지만 후일 살아가면서 이때 경험한 것은 하나의 양약(良藥)이 될 것이다. 하긴 초년 고생은 돈을 주고라도 사서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처가에 대사(大事)가 있어 강릉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원주를 조금 지나서 ‘문막 휴게소’에 들렀다. 아내가 요기를 하자며 호떡을 사왔다. 3개가 2,000원어치란다. 비싼 턱이다. 게다가 크기조차 의외로 작다. 다만 둘레만이 흡사 기계로 국수를 뽑은 듯 한결같이 빈틈없는 곱고 부드러운 곡선이다. 이렇고 보면 지금의 세상은 호떡 하나에도 자로 잰 듯 그 돈 값어치에 해당하는 크기와 모양을 요구하는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마치 알맹이라곤 거의 없고 기교만 부린 작품을 대하듯 씁쓸하기 짝없었다. 그래서 일까 사온 호떡의 맛도 썩 제 맛이 나지 않았다.
다시 운전대를 잡으니 문득 호떡을 팔던 새댁의 모습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비록 서툰 솜씨일망정 세상 사람들이 요구하는 취향에 부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호떡다운 호떡을 구워내려고 가늘디 가는 손목을 놀리던 새댁이었다. 때로는 솜씨가 없다고 손님에게 면박을 당하여 얼굴에 홍조를 띠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나는 그의 솜씨로 일궈낸 호떡다운 호떡을 구경하진 못했지만 그 어느 것보다도 정이 듬뿍 든 것 같았던 호떡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크기도 크기거니와 들쭉날쭉한 모양의 호떡을 구워 팔던 새댁. 그는 어느 하늘 아래서 살아가고 있을까. 운전하는 내내 그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어리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2008년 4월)
댓글목록 0
윤인문님의 댓글
진작가! 오래간만이여..바빴나보이..정말 호떡파는 새댁은 어디로 갔을까?
李聖鉉님의 댓글
고교시절 인고앞에 호떡파는 아저씨가 생각나네요.많이 줄서서 기다리는데도"금방되니 기다리라"말이 아직도 생생한데...
설탕을 듬뿍넣어 흘리는 설탕물을 주체하기가 어려운게 특징이었지요.지금쯤 거부가 되어있음이 확실할 것입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얼굴이 곱상한 새댁의 이마에 맺힌 구슬 같은 땀방울 때문이었다. ==> 저도 홈피에 처음 글올릴 때 땀방울이 솔솔..
이동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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