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용대네 모내는 날
본문
“이 녀석들이 정말! 어 일어나지 못해!” 용대는 졸린 눈을 비비고, 엉덩이를 방안 천장을 향해 뻗친 동생은 대가리를 이불에 틀어박은 채 몸을 배배 꼰다. “아휴, 졸려 죽겠네.” 어제 딱지치기를 친구들과 늦게까지 하여 피곤하고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이라 더 자고 싶은데 새벽같이 일어나신 어머니의 성화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 오늘은 용대네 논 모내기를 하는 날이다. 다른 집에서 일꾼들을 데려가기 전에 얼른 달려가 “진지 잡숫게 오시래요.”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손을 뺏기기 쉽다. 이웃집들은 품앗이로 하지만 용대네는 아버지가 학교에 근무하시는 관계로 그럴 수도 없고 아버지가 쉬시는 일요일을 골라잡아 모를 내는 것이다. 어제는 영식이네가 모를 냈고 오늘은 종구네랑 겹쳐 서둘러야한다. 새벽이라 막음대미의 반달이 지난밤이 아쉬운 듯 턱 괘고 앉아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동생과 용대는 이집 저집 대문을 두드린다. “누구냐?” “아버지가 진지 잡숫게 오시래요.” “알았다.” 대답이 시원찮은 분은 집에 와서 즉시 아버지에게 보고해야한다. 아버지의 체면을 위해 와 주는 동네분도 계시니까... 장리쌀을 빌려먹은 태식이네는 만사 제치고 와야 한다. 어머니에게 밉보이면 올가을 장리쌀 빌릴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한다. 바소쿠리를 단 지게를 멘 일꾼들이 들이닥치면 부엌의 어머니는 국자로 국을 푸고 흰 쌀밥을 밥그릇에 꾹꾹 눌러 옮겨 담는다. 일꾼들에게 잡곡밥을 줘서는 안 되는 당시의 불문율이다. 부지깽이도 무척이나 바쁘다. 일찍이 어머니가 못자리를 하여 모판을 가꾼 논에 일부 일꾼들이 들어가 두 손을 놀리며 모를 쪄 낸다. 짚으로 돌돌 말아 비닐이 달린 바소쿠리에 잔뜩 지고가 군데군데 쓰레질한 논에 던져 놓는다. 여자들은 수건에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무릎까지 스타킹을 찬 완전무장의 여 전사들이다. 짓궂은 남정네들의 농담과 장난을 즐겨가며 늘어서서 모심기를 한다. 여기에 모쟁이가 나서야하는데 용대와 동생이다. “야! 모 떨어졌어.” “여기도!” 정말 바쁘다. 쑥쑥 빠지는 논바닥을 맨발로 휘저으며 모를 가까이 듬성듬성 던져놓는다. 잘못 던져 흙탕물이라도 튀면 한바탕 잔소리를 들어야한다. “앗! 따가!” 용대의 종아리에서 붉은 피가 흐른다. 시커먼 거머리가 용대의 피를 빨고 있다. 손바닥으로 때려도 소용없다. 더더구나 미끄덩거려 잡아 뗄 수도. 빨판을 살갗에 가져간 그놈은 정말 끈질기고 징그럽다. 허둥지둥 논두렁으로 나와 마른 흙을 한 움큼 뿌려 비벼 뗀다. 발바닥이 따갑다. 뭔가 꼼지락 거린다. 논에 사는 참게다. 특히 넉가래 밭을 팔아 산 새 논은 자갈이 많아 조심해야한다. 길게 늘인 못줄은 아무나 잡는 것이 아니다. 연장자나 모심기에 노련하고 입심 좋은 분의 차지다. “어이! 넘어가고.” “저 경태어머이는 왜 저리도 꾸물거릴꺄? 나 참?” “조반 안 먹었시꺄?” 여럿이 박자를 잘 맞춰야한다. 빨간 헝겊이 삼십 센티 간격으로 메진 못줄을 양쪽에서 내리면 척척 모를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꽂아야 하며 너무 깊이도 너무 살짝 심어도 안 된다. 경태어머니가 또 늦으니 못줄을 세게 튕긴다. 경태어머니의 눈에 흙탕물이 튄다. 순간 두터운 입술이 쑤욱 튀어나온다. “제기랄! 누군 처음부터 잘했시꺄? 꽤나 그러네. 참.” 삐졌다. 모심기에도 개인적 역량차이가 크다. 보다 못해 일 잘하는 승수아저씨가 몇 코를 대신 심어준다. 삐진 것도 잠시, 새참이 나온다는 소리에 허리를 펴고 일제히 그쪽을 모두 응시한다. 어머니는 똬리 줄을 입에 물고 머리에 인 함지박의 실린 무게로 자라목을 겨우 견디며 손에는 명숙이네서 산 막걸리를 큰 주전자에 담아들고 종종걸음을 옮기신다. “자 몇 줄 더 심고.” 모두 다 둥그렇게 둘러앉는다. 막걸리 주전자의 뚜껑을 열고 휘휘 저어 한 사발씩 마신다. 한나절의 피로를 마신다. 목젖이 위아래로 깔딱이며 포도청을 넘어 꼴깍거리는 소리가 정겹다. 국에 밥을 말아 뚝딱 해치고는 일꾼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담배 한 대씩 입에 문다. 벌써 술에 거나한 분은 타령하나를 길게 뽑는다. 허물없는 이웃이다. 배를 불룩이며 지게 그늘에 누워 잠을 청하던 영남이네 아버지는 날아든 파리가 귀찮은 듯 두 팔을 휘젓는다. “자 다시 시작합시다.” 어느덧 너른 논바닥에 뾰족한 귀를 세운 모들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맞은 편 논둑으로 일제히 달려가면 모쟁이 하던 용대도 허리를 곱게 편다. 일꾼들도 일제히 허리를 편다. 저 멀리 산마을이 평화롭다. 그러나 아직도 경태네 어머니는 몸빼바지에 펑퍼짐한 엉덩이를 하늘로 뻗치고 있다. 다음에는 부르라 가지 말아야겠다. 쓰레질할 때 소의 뒷발질에 놀란 맹꽁이가 다시 운다. “꽈드득 꽈드득” 어릴 적 모내기 풍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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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제님의 댓글
어릴 때의 정경이 살아납니다. 모심기도 그때보다 사뭇 빨라졌어요. 5월 초에 애기봉을 들렀는데 그때 벌써 모를 심고 있어서 두어 마지기 될가하여 300평 쯤 되냐여 물어보았더니 600평이라하데요. 감각도 이제는 허물어져 갑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윤제형님, 어릴 적 생각이 나시지요? 모를 쪄 듬성듬성 쓰레질한 논에 던지던 풍경...그리운 풍경이랍니다.즐거운 주말되세요.
박영웅님의 댓글
옛날에 스타킹 신고 잠시 모내기 도와주던 기억뿐....그래도 정겨운 풍경입니다!!!
도시보다는 시골에 고향이 있던 분들이 추억이 더 많은 것 같네요..좋은글 감사합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박영웅선배님, 선배님도 모내기를 도와주신 적이 있으시군요. 지금은 이양기가 있어 쉽지만 당시로써는 많은 인력이 필요한 원시적인 방법으로 모를 냈지요.추억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崔秉秀(69回)님의 댓글
옛날에 35년전.. 모내기에 가서 모쟁이 노릇하다가 힘들어 기권,
못줄 담당으로... 이것도 허리 무지 아프더구만...
일은 잘못해도 못밥은 젤로 맛있게 먹었지요.ㅋㅋ...
윤인문님의 댓글
이제는 그런 모내기 장면을 볼 수 없네요..고등학교때 석남동 사는 친구네 논에 가서 내생전 처음 모를 낸적이 있었지요..모내고 나니 내가 심은 모가 둥둥 떠다니는 걸 보고 일한만 못하다고 친구부친에게 혼나던 생각이 나네요..그리고 중간에 먹는 새참과 막걸리 왜그리 맛있었는지 그 시절로 다시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