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어릴 적 강화에는 해풍의 영향으로 눈이 참 많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대문을 열려면 눈이 쌓여 꼼짝을 하질 않아
몇 번을 흔들어야 겨우 열렸다.
겨울 내내 파릇파릇한 잎사귀를 뽐내는 소철나무에도 눈꽃이
피었다. 집 옆 성당의 지붕과 초가지붕도 두툼한 목화솜이불을
뒤집어쓰고도 추워 오들오들 떠는 것 같다.
텃밭의 고랑은 흔적도 없고 허벅지까지 눈이 차올랐다.
누렁이는 덩달아 신이 나있다.
밤새 바람이 불어 두렁이 있는 곳에는 눈이 쌓여 어린 애 키
높이로 언덕을 이루고 있다.
그러면 삽을 들고 가 토굴을 파 가마니를 깔고 에스키모 인이라
우기며 그 속에 한참을 들어가 있다 나오곤 하였다.
눈이 그치며 해가 나자 설원은 온통 수정을 반짝이며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장독대에 소복이 쌓여 있는 눈을 뭉쳐 입에 털어 넣었다.
맛은 없지만 솜사탕처럼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동생보다 눈 사람을 크게 굴려야 하는데 고민이 하나있다.
겨우내 모아두었다가 밭에 부어놓은 오줌통 옆을 굴리면 되는데
지저분한 생각에 갈등이다.
그래도 어쩌랴. 손을 접고 발로다 냅다 밀치며 그곳을 통과하니 눈사람은
제법 살집을 크게 키웠다.
아까부터 뜰 안 사철나무에 살이 오동통하게 오른 참새들의
숨바꼭질로 부산하다.
포록 푸드덕 날개 짓에 사철나무는 안고 있던 눈덩이를 그만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고 귀여운 녀석들을 생포하고 싶었다.
그러나 워낙 눈치들이 빨라 자기들끼리 속삭이며 경계심이
많아 산채로 잡는 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놈들이 다른 데로 날아가기 전에 잽싸게 몸을 움직였다.
맷돌을 돌릴 때 쓰던 맥방석을 어머니 몰래 꺼내 봄 못자리에
썼던 뾰족한 나무 꼬챙이에 새끼줄을 매어 눈을 살짝 거두고
덫을 놓았다.
볍씨를 한 움큼 광에서 가져와 덫을 놓은 맥방석 안에 솔솔
뿌려놓았다.
새끼줄을 미닫이 문틈에 괘고 이제부터 안방에서 참새와 지루한
시간싸움이다.
어머니는 부엌일을 마치고 들어오시다 웅크리고 침을 꼴깍이는
순간에 소리를 버럭 내 지르신다.
“얘! 뭐하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참새가 널 잡아라.”
“에그. 이눔아!!!”
결정적인 순간에 어머니가 또 훼방을 놓으셨다.
“찬바람 들어와 구들장 다 식는다.” “이눔아!”
그 소리에 놀란 참새들이 다시 파드득 날아 나뭇가지에 앉는다.
손도 시리고 다리에 쥐가 났다.
그때 포록하며 한 마리의 참새가 덫 근처에 내려앉았다.
이윽고 또 한 마리가 날아왔다.
“제발 덫 안으로만 들어 가줘라. 응?”
손에 잡고 있던 새끼줄을 힘껏 당겼다. “우당탕탕!”
새끼줄에 걸려 미닫이문이 떨어져 나자빠지며 엉덩방아를
크게 찌었다. 꼬리뼈가 금이 갔나보다. 너무 아팠다.
오두방정을 떨며 아픔을 참으려 펄쩍펄쩍 뛰었다.
“내 이놈들을 기필코 잡으리라.” 굳게 다짐을 하였다.
그럴수록 번번이 실패를 하고 말았다.
이제 다리에 쥐가 나 감각도 없다.
그 순간 한 무리의 참새가 사주 경계를 하며 맥방석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기듯 새끼줄을 잡아챘다.
잡았다. 네 마리다.
맨발로 뛰어나가 풀썩 코를 박고 있는 맥방석을 보며
흥분의 도가니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막상 손을 넣어 잡으려니 무서웠다.
조심스레 덫을 들어 올리니 푸드덕하며 한 마리가 도망을 쳤다.
연이어 두 마리가 또 날아올랐다.
“이런! 이제 한 마리뿐이 안 남았네.”
산채로 잡는 것을 포기하고 손바닥으로 맥방석을 두드려
남은 참새 한 마리를 잠시 기절시키려했는데 조심스레 열어보니
가엾게도 참새 한 마리는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개구리를 때려잡은 이후 처음으로 살생을 한 것이다.
담 너머로 이 광경을 지켜보시던 이웃집 고주망태 아저씨가
입맛을 다시며 “얘, 그거 나줘라. 술 안주하게.”
할 수 없이 담 너머로 그 불쌍한 참새를 넘겨주고 말았다.
초가지붕에 달려있던 고드름이 딱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지붕의 흰 눈이 눈발을 날리며 참새의 초혼을 부른다.
“참새야, 이를 어쩌니? 정말 미안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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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열님의 댓글
옛날에 참새 잡던 기억이,,,,겨울되면 할것두 참 많았는데,,,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오늘 눈이 오면 출판기념회 행사에 지장이 생기는데...참석률이 저조할까봐..
윤용혁님의 댓글
동열형, 인일 호문누님께서 형님의 안부를 물어 오는 전화를 오늘 아침 시애틀에서
축하 이멜을 보냈다며 전화 하셨어요. 특히 형이 안치환의 꽃 보다 사람이 더 아름다워.
테이프의 고마움을 잊지 않으시고 늘 들으신다는군요. 77회 안동인 꽃집에서 화환도 보내려는데 전자결재가 안되어 글만 보낸다고 하셨어요.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 넘 수고 많으셨어요. 부리나케 달려가려는데 먹고사는 처방전이 문제군요.
끝나는데로 바람을 타고 갑니다. 다시한번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이따 뵙죠.
崔秉秀(69回)님의 댓글
강화 하일리 출신... 약사출신... mbc전속...경인간에 가장 인기가 좋은 시인 - 윤용혁님은 `인사동`의 부회장님... 뭐니 뭐니 해도 인사동 출신... 인천고 76회 출신이라는 게 제일 자랑스러울 겁니다. 윤용혁님 홧~ 팅!!!
윤용혁님의 댓글
병수형님,어제 약주도 못 올려 드리고 저녁 늦은 약속이 있어 조금 일찍 들어왔어요.
형님, 그럼요. 인사동 인고 76회가 제일 자랑스렀습니다. 즐거운 주말 기쁜 성탄이 되세요. 늘 다정다감하신 우리의 형님.
오윤제님의 댓글
참새잡는 제일 좋은 방법은 낱가리에 몸을 숨기고 손을 적당히 오무리고 있다가 참새가 앉아 있으면 냉큼 잡는 거지요. 거기서 즉석 불고기 아는 사람만 알아요.
차안수님의 댓글
어제 제가 가고 난후에 오셨군요. 모처럼 뵐수 있었는데 아쉽군요...다음에 꼭 뵙도록 하겠습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 윤제형님의 방법이 아주 독특하고 유용하겠어요.어제 미처 인사를 못드려 죄송합니다.즐거운 주말 되세요.
윤용혁님의 댓글
안수 후배님, 왔었군요. 다음에 인사하죠. 잘 지내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