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부엉이 우는 밤
본문
고향 살미골은 진강산과 덕정산이 둘러쳐진 산골마을이라 겨울이면 땅거미가 일찍 찾아왔다. 저녁을 일찌감치 물린 어머니는 화롯불을 인두로 꾹꾹 눌러 긴긴밤 방안추위를 대비하셨다. 땔감을 아끼려 인천으로 유학 간 형을 제외하고 우리 모두는 안방에서 잠을 자야만했다. 어머니는 아직 안 주무시고 우리의 내복을 벗겨 수퉁니 사냥에 나섰다. 어머니 덕에 양지바른 곳에 오래 머물러도 되고 온몸을 긁적거리는 일도 당분간 덜할 것이다. 등잔불이 가물거려 눈이 피로하실 텐데도 숨은 그놈들을 잘도 찾아내시어 소탕을 하셨다. 폭발음이 경쾌하게 들릴 때면 동생과 같이 그림자놀이를 하였다. 중지와 약지를 엄지에 맞대고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펼쳐 진돗개도 만들고 양손을 겹쳐 두 엄지를 세우며 새끼손가락을 까닥이니 영락없는 개 짖는 형상이었다. “왈왈” 거리기도하고 멍멍이 소리도 냈다. 날아가는 새도 만들고 팔을 비틀어 고니도 만들었다. “빨리 자라!” 하시는 어머니의 성화에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뜰 안의 밤바람 소리는 윙윙거리며 장독대를 감돌고 문풍지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달달거렸다. 멀리 욕골산 부엉이 소리가 오늘따라 크게 들렸다. “어머이! 어머이!” “이게 무슨 소리야?” “큰애 목소리 아니꺄?” 잠결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대문가에서 들리는 소리다. 형이 왔다. 인천으로 유학을 가 자취하던 형이 겨울방학이 되어 책가방을 배불려 고향집을 찾은 것이다. 아버지는 성냥불을 그어 등잔불을 밝히고 어머니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대문으로 내달리셨다. “아버지, 저 왔어요?” “그래 오느라 수고 많았다. 저녁은 먹었냐?” “아뇨.” “와! 형 왔다.” 어머니는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시어 국을 다시 끓였다. 자던 이불을 둘둘 말아 윗목으로 밀치고 밥을 먹는 형 주위에 우리 모두는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어머니가 형의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얼마나 밥해먹느라 고생했냐?” 하고 물으셨다. “고생은요? 뭐.” 형은 연신 싱글거리며 고향집에 온 것이 그렇게 좋은가보다. 언제나 봐도 듬직하고 잘 생긴 형이다. 공부를 안 하고 잘 놀아서인지 지난 여름방학 때 보다 신수가 더 훤해진 것 같다. 그래도 동생은 큰형이 좋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다. 형이 먹다 남긴 고기반찬을 노리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늘 풀만 먹이다 형이 오면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러 고기반찬을 만들어 내시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디 성적표 내놔봐라.” 묵묵히 형의 식사가 마치기를 기다리셨던 아버지의 엄명이 떨어졌다. “이게 뭐냐? 이게. 응? 네 어미는 널 위해 논밭을 헤매는데... 이래가지고 어디 자식 낳아 키우겠냐? 이놈아! 스케이트 사달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냐?" 형은 잘 안쓰던 아버지께 보낸 편지에서 이번 겨울에 스케이트를 사달라고 간청을 하였나보다. "한때 인중 전교 21등까지 하던 놈이 어찌하여 맨 날 뒤에서만 노냐?“ “누굴 닮아서 그런지?” 쯧쯧 혀를 차시며 어머니를 힐끗 쳐다 보셨다. 어머니는 애꿎은 우릴 보고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이놈들아! 니덜두 그래. 허구 한 날 가방은 내팽개치고 놀기만 하다 네 형 짝 난다. 알았냐? 엉뚱한데로 불똥이 튀고 있었다. 큰애야, 어 가서 닦고 자자. 밤이 늦었다.“ 얼굴이 빨개진 형은 멋쩍은 듯 우릴 보고 씩 웃었다. 다음날 아침, 눈이 하얗게 내렸다. 형은 이불을 봉당마루에 펼치고 유도를 가르쳐 주었다. 말이 유도지 레슬링의 고생잡기와 같았다. 팔을 꺾으면 바닥을 두드리며 “고생! 고생!” 소리쳤다. 반짝 햇빛이 나자 군용담요를 들고나가 굴뚝 뒤에다 텐트를 쳐 주었다. 비록 형의 성적이 뒷전에서 놀아도 이때만큼은 이 세상의 어떤 형들보다도 자랑스럽고 좋았다. 성탄이 목전으로 다가오자 밤마다 집 옆 성당에서는 성탄 전야제에서 발표할 주일학교누나들의 노랫소리가 요란하였다. 성당 뒷전에 앉은 짓궂은 형과 형의 친구들은 손전등을 노래하는 누나들의 얼굴에 비추며 낄낄 거리다 주일학교 선생님들에게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면 손전등을 들고 참새 잡이에 나섰다. 초가지붕의 처마 밑을 환하게 비추면 구멍속의 참새가 눈이 부셔 꼼짝을 못할 때 손을 내밀어 잽싸게 잡는 방식이었다. 동네형의 목마를 탄 육촌형이 구멍 속에 손을 넣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나뒹굴었다. 구멍 속에는 참새가 아니라 쥐가 들어있다 꽉 잡은 육촌형의 손가락을 물어버린 것이다. 금방 피가 뚝뚝 떨어졌다. 참새고기는 고사하고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곯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육촌형은 쥐에게 물려 그 아까운 피를 흘리고 있었다. 형은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이웃마을의 누구는 능구렁이를 꺼낸 적이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건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믿거나 말거나 겨울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손전등의 불빛도 깜빡깜빡 졸고 있다. 부엉이의 울음소리도 이제 멈추었다. |
댓글목록 0
윤인문(74회)님의 댓글
그 참새들 잡아 어떻게 먹었는지 궁금하군..ㅎㅎ
오윤제님의 댓글
털 뽑아 배갈라서 소금 조금 뿌려서 사랑방 화로에서 구어 먹었을걸?
윤용혁님의 댓글
윤제형님, 인문형님, 언제 날 잡아 후레쉬들고 참새잡이 갈까요?ㅎㅎㅎ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요즘 초가집들이 있어야지 후레쉬들고 참새 잡으러 가지..ㅎㅎ
오윤제님의 댓글
그러게 말이유. 참새도 없고
윤용혁님의 댓글
윤제형님, 인문형님, 군용 구부러진 후레쉬 잘 알고 계시죠? 그것들고 민속촌으로
가야할까봐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