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뻥튀기장사
본문
찬바람이 불어와 문풍지를 때려 울릴 때면 살미골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장사가 있었다. 지난 여름철에 왔던 아이스께끼 장사는 분명 아니었다. 자전거에 시커먼 쇳덩이를 힘겹게 매달고 산골마을을 찾은 뻥튀기장사였다. 동네 한복판 양지바른 돌담 밑에 뻥튀기아저씨가 자리를 잡으면 아이들은 자루에 강냉이를 들쳐 매고 너나없이 달려왔다. 가을 내내 말려 두었던 옥수수를 남보다 먼저 튀기려고 숨 가쁘게 뛰어 온 것이다. 논농사라도 짓는 집 아이는 쌀을 튀기라 왔다. 가을철 탈곡을 마치고 나면 벼 알이 섞인 짚북데기를 태울 때 톡톡 소리를 내며 하얀 꽃을 피우던 괴꼴이 참으로 신기했는데 뻥튀기는 몇 배로 키워내니 신통했다. 또래보다 나이가 좀 많은 절름발이 시운이는 뻥튀기장사 옆에서 열심히 풍무질을 하며 호감을 사고 있었다. 그러면 그날 자기네 것은 공짜로 튀기게 되고 뻥튀기를 튀기는 순서를 정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졌다. 한껏 목에 힘주고 “어이! 농짝, 야! 줄 좀 서라.” 실세가 따로 없었다. 순서가 바뀌면 곧장 싸움으로 번지는데 누가 먼저 왔는지를 척척 알아채고 깡통에 강냉이를 부으면 뻥튀기장사는 사카린을 살짝 탔다. “아주머이, 어서 오시겨.” 인사성도 발랐다. “이리 주시겨.” 자기가 주인 같았다. 키가 유난히 작은 애도 튀겨서 크게 만들어 주겠다는 끔찍한 농담도 하고 처녀에게는 사랑도 튀겨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뻥튀기장사의 손톱과 옷소매는 그간의 이력을 말해주듯 때가 절어 반질반질하였다. 머리는 생전 안 감았는지 푸석하고 지푸라기가 걸쳐 있다. 얼굴은 누렇게 떴다. 삶의 고단한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그래도 “뻥이요!” 하고 소리칠 때는 그 소리가 사뭇 우렁찼다. “사르르” 뻥튀기장사를 닮아 새까만 기계는 관솔 등 얇게 쪼갠 장작의 화력에 힘입어 주둥이를 굳게 다문 채 정신없이 돌아갔다. 시운이의 풍무질도 더욱 빨라지고 아이들 가슴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왜냐면 뻥 소리도 무섭지만 뻥튀기가 터져 나올 자루에 아이들은 검정고무신짝을 벗어 놓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뻥튀기를 할 시간이 되었다. 불을 빼고 시커먼 주둥이에 큰 자루를 덧씌우자마자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지축을 흔들었고 하얀 연기가 뽀얗게 퍼져 올랐다. 구수한 냄새와 함께 아이들의 신발짝이 이리 저리 날아갔다. 자루에서 탈출한 꽃이 된 일부 강냉이도 튀었다. 그런데 유독 한아이의 신발이 높이 날아 그만 꺼낼 수 없이 삭은 초가지붕에 콕 박혔다. 큰일이 났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동네에서 아주 사납기로 유명한 아주머니인데 마침 옆에서 그 광경을 쳐다보다 어이없어 하더니 남은 신발짝으로 사정없이 그 애를 패기 시작했다. 찰싹찰싹 살을 감도는 매질은 한동안 계속 되었다. 나무의 참새들도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을 죽였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진강산자락에 메아리쳤다. 우리 집은 어머니의 배려로 그날 쌀을 튀겼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강냉이가 없어 쌀을 튀기게 된 것이다. 동생이 한 자루를 들고 “어머이! 어머이!” 부르며 집으로 달려오니 어머니는 우리에게 일렀다. 산에 가서 등걸을 해오라신다. 쌀강정을 만들어 주시려나보다. 동생 손에 도끼자루가 쥐어 지고 지게를 들쳐 멘 체 욕골산으로 향했다. 발로 툭 차도 쑥쑥 뽑히는 등걸이 나뒹굴었다. 한 짐을 해 내려오니 어머니는 벌써 조청을 만드실 준비를 마치고 계셨다. 아궁이에 불은 이글거리고 방바닥은 아주 뜨겁다. 어머니는 밤새 엿을 고셨다. 그런데 잠시 눈을 붙이신 어머니가 깊은 잠에 빠져드시는 바람에 조청이 그만 새카맣게 다타버렸다. 가마솥에는 숯 검둥이가 흉물스럽게 몰골을 드러냈다. 어머니는 몹시 안타까워하시고 서운해 하셨다. 그래도 어머니는 다음날 가마솥을 수세미로 긁어내시고 조청을 다시 만들어 밥상을 펼쳐 눅진눅진한 쌀강정을 만드셨다. 그 결과 겨우내 어머니의 끈끈한 정을 먹을 수 있었다. 그 옛날 뻥튀기장사는 어디로 갔나? 그리운 것은 어느새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댓글목록 0
윤인문님의 댓글
나도 그 옛날 뻥튀기 사진 한장더..ㅎㅎ<img src="http://www.inkoin.com/enjoy/img_upload/pung.jpg">
윤인문님의 댓글
강냉이보다 누룽지 뻥튀기도 맛있었는데..
윤용혁님의 댓글
역시 인문형은 자료의 대가이시군요. 정겨운 사진을 이리 빨리 구해주시구요.
누룽지 뻔튀기도 먹고 싶군요.
인문형님, 한해 보내주신 배려와 은혜를 감사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봉원대님의 댓글
관교동 순복음교회 옆에가면 뻥아저씨가 계시는데,,,, 전 개인적으로 가래떡 뻥이 젤 맛있드라구요........"아 목동아!! 노래 굳이고요....
오윤제님의 댓글
간혹 뻥아저씨는 보이던데 고물 엿장사는 정말 사라졌나봐요.
윤인문님의 댓글
그 옛날 펑튀기 사진 두번째<img src="http://www.inkoin.com/enjoy/img_upload/pung2.b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