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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핸드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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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강화 산골의 각 집에 전화가 들어오기까지는 긴 세월과 우여곡절이 담겨 있었다. 통나무로 된 전봇대가 세워지고 비닐이 싸인 까만 전화선이 논둑과 밭두렁을 따라 길게 쳐졌다. 전봇대가 설 한 치의 땅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농부들도 있었다. 내가 처음 본 전화기는 자석식 전화기로 손잡이를 잡고 냅다 힘차게 돌리면 시골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아리따운 목소리의 여자 교환수가 나왔다. 개중에는 무뚝뚝하고 성질머리 더러운 여자 교환수도 있었지만 밤잠을 못 이룬 시골총각들은 이장네 아들친구의 집에서 놀다 늦은 밤에 특별한 용건도 없으면서 쉬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교환수와 인생 상담을 한다며 농담을 주고받다가 정이 들어 결혼에 골인하는 운 좋은 사나이도 있었다. 이장네 집에만 전화기가 있다 보니 가끔은 도시에 나가있는 자식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걸걸한 이장님의 안내방송이 확성기를 통해 조용한 산골마을을 깨웠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아아! 카악! 저기 거시기 뭐냐. 에 문자 어무니! 문자 어무니! 전화가 왔시다. 어 오시겨.” 밭에서 김을 매던 문자 어머니는 호미자루를 내동이 치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숨이 턱에 차도록 헐떡이며 달려갔건만 이미 전화기에서는 말이 없다. “여보시요! 여보시세요! 문자냐? 애! 니 애미다.” 이장님 말이 없시다. 왜 그러이꺄?” “나도 모르겠시다.” 돈 벌러 도시에 나가있는 딸이 수화기를 들고 어머니를 기다리다 전화 요금이 많이 나올까 두려워 통화도 못한 채 끊어 버린 것이다. 어느 날 부릉부릉하는 소리와 함께 “끼익”하며 오토바이 한 대가 급히 마당으로 들어섰다. 전보였다. “부친사망 급 경래.” 발신지는 해남이고 수신인은 형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안성의 조그만 시골학교로 교장 초임발령이 나 주말에만 집에 오셨다가 일요일 오후에 어머니가 싸주시는 밑반찬을 들고 가신지 얼마 안 되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다니...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형도 울고 누나도 울고 어머니는 거의 실성하다시피하며 땅바닥을 구르고 계셨다. 이장네로 달려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 다리가 후들 거렸다. 아버지의 안위를 묻고자 자석식 전화기를 돌려 교환을 찾아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단다. 미칠 것 같다. 한 시간이 하루 같다. 정말 시간이 안 갔다. 그러나 끝내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를 어쩐담. 점점 상황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기다리다 못해 형은 황급히 시외버스를 타고 안성으로 달려갔다. 사택에서 저녁 준비를 하시던 아버지는 형의 갑작스런 방문에 놀라 “아니 너 웬일이냐?” “아부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요?” “야! 이놈아, 여기 멀쩡히 살아있는데 내가 왜 죽어?” 형은 아버지를 붙들고 “아부지! 아부지!” 하며 목 놓아 울었다. 가슴을 쓸어 내렸다. 당시 전보도 교환수를 통해 수기로 받았는데 실수로 형의 이름과 해남에서 시집 온 딸의 사위 이름이 엇비슷하여 대충 형의 이름으로 전보를 쳤던 것이다. 정말 어이없고 황당한 사건이었다. 당장 우체국장이 달려와 사과를 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니 청색전화기를 부천 집에 놓았다. 돈이 있는 집은 마음대로 이사할 때 가져갈 수 있는 백색전화기를 가지고 자랑을 할 때였다. 청색전화기도 형의 통제 하에 놓이니 전화는 자기 자신이 제일 많이 쓰면서 매월 전화 요금이 나올 때면 난리법석을 떨고 다이얼의 한 번호 부분을 자물쇠로 일일이 잠그다 귀찮은지 며칠이 지나면 해제가 되곤 하였다. 전화기에도 전화요금을 아끼려는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있었다. 요즘 초등학생도 들고 다니는 수많은 핸드폰을 보면 정말 격세지감이다. 아날로그를 고집하던 나도 최근에 핸드폰을 가진 적이 딱 한번 있다. 원래 뭐에 구속되기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그간 핸드폰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급기야 친구들은 얼마나 살기 궁하면 여태껏 핸드폰하나 장만 못했냐며 놀려댔다. 동문회 선배들과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마련하였는데 말만 그랬지 막상 핸드폰을 사니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매일 문자는 어느 회사 노조원이 썼던 전화번호를 다시 땄는지 “투쟁하라.” “어디로 모여라.” 어쩌다 걸려오는 전화는 “누구 아니냐.”는 잘못된 것이었다. 서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닙니다.”를 반복해야만 했다. 급기야 새벽에 곤하게 자는데 핸드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깜짝 놀라 받으니 낯선 여인의 목소리가 느끼하게 흘러나왔다. “자기야 나야. 잤어.” “누구신데요?” “누구 씨 핸드폰 아니에요?” “이런 젠장!” 집사람에게 오해를 사기 충분한 잘못 걸려온 전화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배드민턴을 치고 생맥주집을 찾았다가 어디서 잃어 버렸는지 감감 무소식이다. 주인이 사랑하지 않으니 사물인 그놈도 옛 주인을 그리다 가출했거나 날아가 버렸나보다. 이것이 바로 짧게 쓴 나의 핸드폰 역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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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님의 댓글
휴대전화의 전자파가 우리 혈액 속의 면역세포 DNA를 손상시킨다는 연구결과가..그리고 휴대폰의 전자파는 뇌종양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되도록 이어폰을 사용하고 왼손보다 오른손이 전자파 피해로부터 안전하므로 오른손으로 통화하는 것이 좋다 하네요.
윤인문님의 댓글
용혁후배! 그 옛날 전화가 이게 진짜지..ㅎㅎ<img src="http://www.inkoin.com/enjoy/img_upload/phone.jpg">
윤용혁님의 댓글
맞아요. 인문형 자료가 정확해요. 역시 자료의 대가이신 형님이십니다. 핸펌을 장만하려는데 멈칫해지네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듬직한 우리형님.
지민구님의 댓글
휴대폰 안 쓰시는 분이 참 부럽습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 민구후배,부럽기까지야. 단지 효용성에 의문을 가졌다네. 언젠가 가져야겠지요.
잘 지내시게 후배님.
張宰學(90회)님의 댓글
핸드폰은 되도록이면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서 다니심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