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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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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이 되기가 무섭게 강화 고향의 날씨는 춥고 영하로 떨어졌어요. 그 전에도 학교에서는 조개탄 난로를 피워 주었지만 방학이 되니 더 추웠어요. 세수를 하고 문고리를 만지면 척척 손가락이 달라붙더군요. 또 집에만 있으려니 심심해 몸이 근질근질하였죠. 방안 아랫목에는 아침에 어머니가 놋그릇에 퍼 담은 하얀 쌀밥이 옹기종기 담요를 뒤집어쓰고 재잘거리듯 따끈한 열기로 얼은 손과 발을 녹여 주었죠. 발을 잘못 놀려 걷어차 아버지 드실 밥그릇의 뚜껑이 열리는 것 외에는 하루 종일 이놈들이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었지요. 가끔은 밀주가 되려는 농주가 항아리에 담겨 솔솔 술 냄새를 풍기며 이불을 돌돌 말고 자리를 함께 하였죠. 아까부터 문풍지 떠는 소리에 가린 “친구야, 놀자!” 부르는 소리가 대문자락에서 계속해서 들렸어요. 냉편 골짜기로 달려갔지요. 여자애 남자애 할 것 없이 동네 아이들은 다 모였더군요. 산을 타고 흘러내리던 조그만 계곡물이 얼어 언덕을 이루고 있었어요. 청솔가지를 꺾어 타는 아이, 비닐포대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아이, 맨몸으로 타는 아이 모두는 신이나 있었어요. 옷이 젖고 양말이 축축해지면 누가 피웠는지 화톳불이 나불거리며 손짓을 하기에 달려가 발을 내밀었더니 뜨끈뜨끈 하더군요. “이런!” 양말이 크게 구멍이 났군요. 나일론 재질이라 이미 온기를 느꼈다면 십중팔구는 열기에 양말이 크게 뻥 뚫린 것이지요. 여자애들의 뺨은 빨간 사과를 쪼개 붙였는지 발그레 상기되었군요. 다음날 물을 잠겨 둔 논으로 썰매를 어깨에 들쳐 메고 동생과 같이 갔어요. 투명하게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가을에 일용한 양식을 인간에게 선사하고 낫에 잘려 창백한 벼 그루터기만 일렬로 행진하더군요. 가끔 봄이 언제 오려 나 창문을 내다보던 무당개구리가 숨을 참고 짜증을 부리며 아이들의 방문에 귀찮다는 듯 똑똑 머리로 얼음장을 두드렸지요. 굵은 철사를 구부려 만든 썰매에 두발을 뻗기도 하고 양반다리도 하고 무릎을 꿇기도 하다 그것도 힘들면 뒷간에 앉은 자세를 취해가며 씽씽 내 달렸지요. 아무도 가지 않은 빙판은 곧 꺼질 듯 우지끈 이를 갈았어요. 곰보가 되어버린 얼음판은 전진하기가 참 힘들었죠. 연신 썰매 꼬챙이를 얼음바닥에 찔러댔죠.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는 얼음판이 정말 고마웠어요. 가끔은 팽이치기를 하며 놀았어요. 밤나무를 깎아 만든 팽이에 예쁜 색칠을 하고 헝겊을 찢어 팽이채에 물을 적셔 “철석!” 팽이의 엉덩이를 때리면 팽그르르 참 잘 돌았어요. 겨울 방학이 끝나갈 무렵 드디어 형이 스케이트를 놓고 인천으로 다시 유학길을 떠났어요. 형이 있을 때는 스케이트 날도 잘 못 만지게 하였어요. 무진장 애지중지 하였죠. 기름칠도 하고 가보처럼 생각을 하더군요. 형이 저보다 발이 크니 스케이트 구두에 헝겊이나 솜을 얼기설기 집어 놓고 끈을 당기니 그런대로 일어설 수가 있었죠.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전진하려다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답니다. 스케이트를 날로 타는 것이 아니라 옆면 구두로 허둥지둥 타고 있었지요. 만약에 형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난리가 났겠죠? 절름발이도 아주 중증의 뇌성마비처럼 얼음을 지쳤죠. 썰매를 타다 지켜보던 동생은 한심한 듯 말을 잊고 있더군요. 작대기 꼬챙이로 타는 외발 썰매가 비웃듯 쌩하고 지나가니 스케이트를 벗어 던지고 조그만 산골 마을을 쳐다보면 초가집들이 점점 작아지며 귀여웠어요. 전교 소집일 날 건평리 벌판에는 학교에서 주최하는 썰매대회가 열렸어요. 그간 닦은 실력을 발휘하려 물론 출전하였지요. 운동회 날 쓰고 남은 딱총의 화약이 선생님의 “준비!” 소리와 거의 동시에 “땅!” 하고 귓전을 울렸어요. 처음에는 잘 달렸어요. 그런데 왼쪽의 썰매 꼬챙이에 문제가 발생하였어요. 못이 구부러져 꼬챙이 하나가 얼음을 지치지 못해 썰매가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자꾸 빙글빙글 제자리서 돌았어요. 응원하던 반 친구들은 물매미가 된 친구를 아주 안타깝게 여기며 혀를 차더군요. 울상이 된 모습을 하늘은 알고 있었나 봐요. 위로를 하려는지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어요. 집에 돌아와 손을 호호 불며 눈사람 만들기를 기점으로 눈 성을 양편에 튼튼하게 쌓았어요. 정말 튼튼한 성이었어요. 분명 반대편의 성은 동생이 쌓았죠. 눈싸움이 시작 되었어요. 아무리 던져도 양쪽은 피해가 전무했어요. 드디어 성에서 나와 삽을 들고 돌격 앞으로 했죠. 삽을 목격한 동생은 아연실색하더니 “나 안 해!” 소리치며 어머니에게 일러바치려고 달려가는 동생의 등짝에 눈뭉치를 강제로 넣어 주었더니 차가워 펄쩍펄쩍 뛰어 올랐답니다. “어머이! 어머이! 항구아버이가 나빠요!” 당시 제 별명이 항구아버이였어요. 같은 항렬의 용자돌림에 소 장사를 하던 동네 어른이 저랑 이름이 비슷해 동생이 약 오를 때면 부르고 도망치던 별명이었어요. 그러나 둘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따스한 안방 아랫목에 발을 담그고 휴전을 선언하였답니다. 꼼지락 거리는 동생의 발가락이 아주 간지럽더군요. 겨울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내야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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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제님의 댓글
아직도 강화 어디에는 꽁꽁 언 넓은 논이 있을 듯 그러나 요즈음 아이들 설매를 탈까요 지금 사라진 어릴 때 풍경 그립습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윤제형님, 요즘아이들은 컴퓨터에 빠져서 썰매의 추억을 모를 것 같군요. 형님, 어릴 때가 그립지요. 저도 그립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