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1960년대 힘들었던 우리의 초등학교 시절
본문
1960년대 힘들었던 시절
출처 : 들꽃사랑의 집 http://blog.naver.com/tiger6107.do
서울시내 초등학교 입학식. 코흘리게가 아니면 아이도 아니었던 그 때,
가슴의 손수건은 "학년표시"이기도 했다.
2학년들은 코를 흘려도 가슴에 손수건을 달지 않았다.
1964-03-06조선일보 DB
설탕이 귀하던 시절 일반 소비자들은 지정된 판매소에서 한정된 양만을 구입할 수 있었다.
재고가 바닥이 난 설탕 진열장 위에 품절 표지판을 올려 놓았다.1963-06-08 조선일보 DB
한남대교(제3한강교)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한남동에서 강남 신사동을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나룻배였다. 한강다리는 새 문명의 도래이기도 했다.1962-09-13조선일보 DB
명절이면 객지의 청년들도 마을 어르신들도 "콩쿨대회" 폼 한번 잡는 소박한 꿈들이 있었다.
"땡-" 소쿠리(참가상) 갖고 가세요.(강화도) 1966-02-21 조선일보 DB
겨울 방학이 끝나고 천막 학교에도 간만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시끌하다.
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새학기를 시작한다.(봉천동) 1966-03-02
얼어붙은 한강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썰매는 재산목록 1호였다.1961-12-25 조선일보 DB
자동 생산 설비를 갖추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삼강하드".
고무 봉지에 얼음과 소금을 넣어 냉장시켰지만 녹기 전에 팔아치워야 하는
하드 장사 아저씨들의 목청은 높아만 갔다.1963-03-20 조선일보
불을 떼서 밥도 하고 난방도 하다 보면 굴뚝이 막힐 때가 있었다.
꽹가리를 청소도구와 함께 메고 다니며 "뚫어~"를 외치는 소리는
오래 전에 우리 동네에서 사라졌다. 1963-12-23 조선일보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그 시절에도 더운 여름철이 되면 바캉스를 떠났습니다.
1962년 7월의 부산 해운대 앞바다입니다. 2명이서 물놀이를 하는 게 재미있어 보입니다.
1960년대 총선때 금호극장 앞 천막투표소 점경
서울 피겨스케이팅협회가 주최하고, 조선일보사 후원인 제1회 서울시 남녀종별
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가 서울운동장 특설링크에서 개막되었다.
1961-02-04 조선일보 DB
당시 유행하덩 림보춤을 추는 여학생들
여자 고등학교의 학도호국당 행사
60년도 중반 경북 월성군 하강초등학교에서, 미국으로 부터 원조받은 옥수수죽을
배급하는 사진입니다.학생들의 양은 도시락에 선생님이 떠 주는 장면입니다.
1968년, 1969년 경의 국민학교 고적대 경연대회
1960년대 국내에서 인기를 누리며 발간되었던 대중잡지들
댓글목록 0
이환성(70회)님의 댓글
1960년대 힘들었던 우리의 초등학교 시절===>우리의 국민학교 시절
이준달(90회)님의 댓글
차장===>>> 일명 또순이 라고 했지요/// 삥땅친다고 홀딱 검사도 했다고 들었는데... 지금 그랬다가는 인권침해니 하며 큰일 나겠지요??? 홍규선배님..환성선배님..성현선배님..인문선배님이 계실까 눈 부릎뜨고 찿아봤네요..ㅎㅎㅎ
이동열님의 댓글
생각나면 날수록 그리운 시절,,,
이진호님의 댓글
이제는 세월의 깊이만큼~~ 눈가에 잔주름이 서서히 늘어나는 40대의 시작...그때 그시절 소중한 추억이 아련히 생각나네요 ㅎㅎㅎ...
전재수님의 댓글
항상 피곤에 찌들어서 문고리 잡고 졸고있는 안내양 누님들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