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꼬꼬댁
본문
“꼬꼬댁 꼬꼬...” “용대야, 빨리 나가 봐라!” 어머니가 채근을 하신다. 오늘도 용대네 암탉이 외도하여 담장하나 사이인 용태네 안마당에 가 알을 낳은 것이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닭장 안에 볏짚으로 보금자리를 잘 만들어 우대해도 용대네 닭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 매번 옆집에 가 알을 낳고 있다. 알을 찾아오는 일은 용대에게 여간 부담이 아니다. 그 집 아주머니가 사납기 그지없고 동네에서 그 아주머니가 앉았던 자리에서는 풀도 안 난다고 소문난 터라 알을 회수하기란 마른 논에 물대기만큼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한다. 그 보다도 용대보다 두 살이 많은 똥독할머니라는 별명을 가진 그 집 딸이 막무가내로 자기네 닭이 낳았다고 우기면 현장에서 용대네 닭이 포착되지 않으면 꼼작 없이 당할 때가 있다. 아니 잽싸게 알을 훔쳐 옮겨 놓기에 더욱 난처하다. 그 집 딸이 똥독할머니가 된 이유가 있다. 깜깜한 여름 밤 동네 형들과 떼 숨길락 할 때 뒷간에 숨었는데 남자아이들이 술래를 찾기 위해 “박 서방, 에헴!”하며 지게 작대기로 꾹꾹 찔러도 웃음을 참느라 혀를 깨물어가며 용케 그것을 요리조리 피하다 그만 발이 미끄러지면서 똥독에 빠져 독이 온몸에 올라 피부병으로 한동안 고생하였기에 그리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사박스럽고 영악하다. 그런데 오늘따라 고분고분 계란을 성큼 건네준다. “애, 받아” 참 신기하다. 무슨 일일까? 피부병으로 고생할 때 돌팔이 간호사 어머니가 주사를 엉덩이에 잘 놓아줘 가려움증이 가라앉으니 고마움에 그런 것일까? “맞다. 이제 생각났다. 그러면 그렇지.” 지난번에 인구네 보리밭에서 아랫집 상구랑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입이 무거운 용대가 비밀을 잘 지켜주니 고마워서 그런 것 같다. 용대는 오자마자 문제의 암탉을 붙잡아 혼내주려고 쫒아 가는데 사나운 수탉이 눈알을 부라리며 달려든다. 전에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명숙이네 수탉에게 뒷머리를 쪼인 두려움으로 용대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그러다 저녁이 되어 홰에 오르려는 그 암탉을 잡아 복창을 들어 얹으며 다짐을 한다. “너 내일도 그 집 가서 알을 낳으면 죽는다. 알았지?” 암탉은 꼭 틀어잡은 날개쪽지가 아픈지 깩깩 죽는 소리를 낸다. 용대는 그제 서야 분이 풀린 듯 닭장에 암탉을 툭 내 던진다. “닭대가리. 바보 멍청이.”
마당 앞 감나무에 감꽃이 하얗게 피었다. 자세히 보니 햇병아리 털색을 닮아 달보드레한 꽃잎을 털어 입에 넣으면 먹을거리가 많지 않은 용대의 입안은 즐겁다. 며칠 후면 갈색을 띠며 땅에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다음날 이른 아침 비바람이 불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감나무 밑으로 달려간다. 잠도 없는 똥독할머니는 언제 왔는지 꼴풀에 감꽃을 잔뜩 껴 놓고 의기양양하다. 매번 경쟁자다. 용대도 질세라 많이 주어 실에 꿰어 목에 건다. 간간이 하나씩 곶감 빼 먹듯 입에 문다. 달작 지근한 맛이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꼬꼬댁 꼬꼬” 바보 멍청이 닭이 또 용태네 담장너머에서 울음을 터트린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더욱 속상해하신다. 쥐를 잡으라고 읍장에서 사온 고양이가 본분을 망각한 한 채 안방 아랫목에서 배를 깔고 태업을 벌이다 윗집 수놈 고양이랑 눈이 맞아 가출하더니 급기야 암탉까지 말썽을 부린다. 계란 한 꾸러미가 되면 강화읍 장날에 내다팔아야 하는데 모이는 주는 대로 잘 받아 쪼아 먹으면서 이적행위를 한 것이다. 기회를 주었건만. 어머니는 결국 중대한 결심을 내리신다. 그렇게 경고를 여러 번 받고도 머리가 나쁜 용대네 암탉은 타의든 아니든 생을 포기하고 그날 저녁 뜰 안에서 어머니의 서툰 닭잡기에 최후를 맞는다. 부엌의 아궁이는 입을 벌려 바쁘고 굴뚝의 연기는 요란하다. 보리밭에서 연애질하고 나오던 똥독할머니 머리카락처럼 흐트러져 하늘로 향하지도 못하고 저녁연기는 초가지붕을 감싼다. 폭 삶아진 닭고기는 용대네 저녁상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이 얼마 만에 먹어보는 진주 성찬인가? 배신자의 최후보답이다. 모두가 말이 없다. 닭고기는 게 눈 감추듯 사라진지 이미 오래... 노랗게 기름이 동동 뜬 닭고기 국물에 용대는 밥 한 그릇을 말아 뚝딱 해치운다. 말장으로 된 돼지우리의 용대네 가정의 일등공신 새끼 돼지들이 주둥이를 하늘로 뻗어 “꿀꿀” 불협화음의 나팔을 연신 불어댄다. 닭 울음소리는 멈췄다. |
댓글목록 0
박영웅님의 댓글
재미있게 잘 보고갑니다..농촌에서 살아보지를 못해서 실감은 못해도 정경은 머리에 그려지네요...나도 나이를 더 먹으면 전원생활을 하는게 꿈입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박영웅 선배님, 재미있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원생활을 그리시는 멋진 선배님, 자연과 더불어 좋은 꿈을 이루어 가시기를 바랍니다.즐거운 주말되시구요.
윤인문님의 댓글
시골의 토종닭..좋지요..그런데 요즘은 시골도 그놈의 조류독감 때문에 전전긍긍 대고 있으니...용혁후배 내가 인사동 회장 연임되는 바람에 임원진도 자동으로 연임되었네,,올해도 부회장 역할을 잘해주길 바라네..
오윤제님의 댓글
왜 옆지에 가서 낳노 줄을 줄도 모르고 아마 멋있는 수탉이 있었나 보군.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늘 보필을 제대로 못해드려서 죄송해요.마음으로나마 멋진 형님의 후원자가 되렵니다.연임을 축하드립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오윤제 선배님,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ㅎㅎㅎ 그 수탉이 절 쪼려는 것으로 보아 분명 그리된 것 같습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