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醴泉(예천) 野翁亭(야옹정) 퍼온글
본문
소재지 :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제곡리 437
경북유형문화재 제230호
[野翁亭(야옹정) 전경]
1566년에 건립된 정자인 이 건물은
조선 중종 때 학자로 義興縣監(의흥현감)을 역임한
野翁(야옹) 권의(1475∼1558)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내려와
향약을 제정하고 사회교화에 힘쓴 덕을 기리며, 그의 학덕을 받들기 위해
아들 權審言(권심언)이 명종 21년(1566)에 세운 정자이다.
[野翁亭(야옹정)]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일부는 박공지붕의 홑처마로 되었다.
[醴泉野翁亭(예천야옹정) 팻말]
어렸을 때부터 행동거지가 반듯하고 효성과 우애가 뛰어나셨으며,
16살 때 부친상을 당하여 상례를 치렀는데
한결같이 朱子家禮(주자가례)의 법도를 따랐다 하신다.
[野翁亭(야옹정) 2]
왼쪽에 6칸 대청마루가 있고 오른쪽에는 온돌방이 놓였으며,
오른쪽 앞면 1칸에 돌출한 마루가 마련되어 있다.
[野翁亭(야옹정) 3]
대청 앞면으로 폭이 넓은 툇마루를 설치하고 난간을 돌려
건물 전면을 樓閣式(누각식)으로 꾸몄다.
[대청으로 들어가는 문]
야옹 권의선생의 詩(시) 한 수 소개합니다.
山庭細雨碧絲絲(산정세우벽사)
산정에 나리는 비 실실이 푸르르고
正是愁腸欲斷時(정시수장욕단시)
진정 나의 근심 창장을 에이는 듯
魂去故園身獨立(혼거고원신독입)
혼이야 고향가 있으나 몸이야 이곳에 있네
落花何事又紛飛(낙화하사우분비)
낙화야 무슨 일로 또다시 날아가니
[대청 안 천장]
야옹 형님의 시에 동생(중허 권벌 선생의 화답시)
勳嶪無成빈慾絲(훈업무성빈욕사)
훈업은 이룸 없고 수염은 희끗희끗
晴窓端坐暗傷時(청창단좌암상시)
개는 창가 꿀어 앉아 상한 마음 삭여본다
何當化作扶搖翼(하당화작부요익)
이내몸은 어느때 이 대붕 날에 달아 질까
浩浩長天學奮飛(호호장천학구비)
넓고 넓은 저 하늘을 마음 놓고 날고 싶다.
벼슬에는 뜻이 없고 당신의 호에서처럼 기묘사화 이후
야옹으로 생활을 보내셨다.
학문의 깊이와 시의 경지는 당신의 실제 충정공과의
시축에서 보듯이 당대의 최고의 문장이셨다.
[대청 안 천장 2]
대들보 위의 花盤(화반)이나 臺工(대공)도 古式(고식)의
초각으로 꾸며져 있다.
[대청 마루에 나 있는 구멍(孔)]
대청마루 널판에 인위적인 구멍(孔)이 군데 군데 나있었다.
무언가 쓰임새가 있어서 낸 것 같은데...
예전에 한번 들었던 기억도 있지만 가물가물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大廳(대청)]
大廳(대청) 앞 기둥 위에는 一出目(1출목)의 翼工(익공)이
結構(결구)되었는데, 그 세부는 조선 초기 주심포식에서 볼 수 있는
草刻(초각)으로 꾸며져 있고, 대들보 위의 花盤(화반)이나
臺工(대공)도 옛날 방식의 초각으로 꾸며져 있다.
[野翁亭(야옹정) 4]
대청 앞의 돌출한 마루를 덮기 위해 주심포식의 헛첨차 위에
일출목을 두어 서까래를 길게 뽑은 수법이나 대청 상부 架構(가구)의
건실한 구성과 고졸한 형태의 파련대공, 창문 등은 흔치 않은 예이라한다.
사진속의 사람은 야옹정 굳게 잠긴 문을 열어주셔서 안까지
둘러볼 수 있게 해주신 분이시다.
성함을 적어두지 않아서...잊어버려 너무 죄송하다.
[대청 화반]
건물 뒷면은 일부 改造(개조) 되었으나 조선 중기 이전
建築樣式(건축양식)의 세부를 간직한 점에서 중요시되는 건물이라한다.
[활주상단 화반]
가까이엔 보존되어 내려오는 고택들이 있었다.
다시 정리하여 고택을 올려보겠습니다.
도심속에서 북적이며 살다가 가끔씩 이렇게 길을 나셔서
우리의 향기를 맡아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나들이길이 되었다.
[사진. 글 / 草阿(초아) 박태선(안내판과 인터넷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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