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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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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
지난해 가을 정식이가 대부도 심부름을 다녀와서 카메라에 담은 대부도 정경을 컴퓨터에 옮겨 포샾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남아 시골의 가을 풍경을 여기저기 찍어 담은 사진 중에서 눈에 띠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까치밥, 감나무에 열린 감을 따고 남긴 연시 하나 이것을 까치밥이라 하지 않던가. 더군다나 그 까치밥에 까치가 감을 먹고 있으니 정말로 까치밥이 되었다.
어릴 때 살던 곳에는 감나무가 흔한 것은 아니지만 뒤뜰이 조금 넓은 집에는 감나무 한두 그루 있어서 그것을 은근히 부러워하였던 기억이 있다. 감꽃이 피었다가 떨어지면 나무 밑에서 떨어진 꽃을 주워 먹었고, 조금 자라다 떨어진 어린 감을 주어 침을 담거나, 시렁에 놓아두면 시큼하게 익은 것을 달게 먹던 시절이었다. 또래의 친구가 그 감나무의 주인이라면 자기네 것이라고 줍지도 못하게 단속하며 으스대던 추억의 장면도 떠오른다. 다행히 우리 큰집에도 감나무가 있었으니 고약한 친구들의 심술을 덜 당했을 것은 틀림없다.
꽃잎이 지자마자 콩알만 할 때 떨어지고, 조금 자라서 푸른 기운이 가시기도 전에 떨어지고, 붉은 기운이 들어 떨어지다 남은 감들은 짖어가는 가을날에 햇빛을 받아 적당히 익어간다. 붉게 익은 감은 잎이 떨어지면 더욱 붉은 모습으로 스러져가는 가을을 밝게 비추는 것이다. 초가지붕 위로 솟은 감나무에 빨간 감들이 회색으로 변해 버린 초가지붕과 어울려 멋진 풍경을 자아내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 같아 좋았다.
딱딱한 감은 서서히 물렁물렁해진다. 연시가 되어 버리면 따다가 터져 버리므로 연시가 되기 전 간수하기 좋게 적당히 익으면 감을 딸 준비를 한다. 긴 장대에 둥글게 만든 철사를 고정하고 그물막이나 헌 치마 자락을 달아 잠자리채 같이 만들어 하나 둘 낮은 곳에 열린 것부터 딴다. 높은 곳에 열린 감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따야 하는데 큰집에는 딸만 여덟이라 감 따는 것은 언제나 내 차지였다.
수십 년 자란 감나무는 고목이 되어 밑 둥은 패어 구멍이 훤하였다. 그래도 감은 많이 열리는 축에 속했다. 날 다람쥐처럼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다니며 샅샅이 딴다하지만 그래도 따지 못할 감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감나무는 나무가 단단하지 못하여 자칫 부러지기 쉽기 때문에 조심하여야 한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눈에 보이는 감을 따려고 조금씩 올라가노라면 안방에서 유심히 보고 있던 할머니는 창문을 열고 “얘야, 까치 먹게 내버려 둬” 하신다. 할머님 말씀을 듣고 감나무에서 내려오면서도 아쉬움을 남겼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하면 까치밥을 남겨 두라는 말은 바로 손자인 나를 위한 말이었을 터인데 당시에는 까치도 없는데 무슨 까치밥인가 이상하게 여겼던 어린 시절이다.
시골의 정취가 감나무 까치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겨 놓은 것들은 감자 밭에도 있고, 고구마 밭에도 있으며 땅콩 밭에도 있었다. 주인이 캐지 못하여 남겨진 열매이지만 수확한 이후에는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지 않으니 누구라도 캐어 갈 수가 있었다. 남의 밭이라도 내 밭같이 밟아 보며 남겨진 씨알을 건지면서 남겨 놓음에 고마워했다. 이러한 이삭줍기는 한여름 김장배추를 파종하기 위하여 잠시 뜸을 들이는 참외밭에도 있었다. 원두막을 지어놓고 밤 낯으로 지키던 아저씨는 배추씨를 뿌릴 무렵이 되면 마지막으로 참외를 따고 철수한다. 자라나고 있는 참외는 따지 않아서 그사이 자라난 것도 있지만 주인 눈에 띠지 않아 건수하지 못한 것이 더러 있어서 한 바퀴 돌다보면 의외의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비록 익지 않아 쓰거나 오이 맛 같은 참외들이지만 배부르게 먹을 수 있던 기억 중에서 자라지 못하고 익어버린 봉트라지의 맛은 기가 막혔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을 알아서 일까, 최대로 시간을 농축하여 익혀진 참외는 비바람 맞고 햇빛 받아 자라난 제철의 참외보다 생김새도 우습고 빛깔도 초라하지만 담긴 맛은 그 어느 빛깔 좋은 것보다 달았다. 참외를 심는 농가도 별로 없고 감나무도 은연중에 사라져 버린 요즈음, 그 때의 모습이 내 아들 정식이가 담아온 한 장의 사진을 보니 곧바로 그 시절이 떠오른다.
까치밥 그 아름다운 풍경이 가끔 지하철을 타게 되면 보게 된다.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자리가 없을 때에 생각 없이 서있노라면 나에게도 양보하는 젊은이들이 있어 조금은 곤혹스러운 때가 있다. 내가 벌써 이렇게 되었나하는 자괴감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굳이 사양하지만 부득불 양보하는 터에는 못이기는 척 앉아 주는 것이 예의이려니 하고 앉으면서도 조금은 계면스러웠다.
차라리 조금은 뻔뻔스럽게 경로석에 앉아 있다가 어른들이나 노약자들이 올라오면 재빨리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이다. 아직은 덥석 앉기엔 불편하여 이따금 이용하게 되는 경로석. 이 경로석이야말로 전철의 까치밥이 아닌가. 약한 자를 위하여 남겨놓는다는 것, 누가 보아도 아름답고 멋있는 제도이다. 경로사상이 사라져 가는 요즈음 비어있는 경로석을 보면 저물어가는 가을 감나무에 달려 있는 까치밥처럼 달콤한 입맛을 돋우는 청량제가 되어준다.
댓글목록 0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시집살이중이라..이따 집가서 ..
李聖鉉님의 댓글
評:까치밥과 경로석의 연결은 기막힌 아이디어 같습니다.(감히 評을...죄송)원효대사던가요.설총을 만나는 마지막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며칠을 고만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원효대사"마당을 쓸어보아라"깨끗이 쓸어 댄 설총을 보구 원효대사"잘 못 쓸었다"며 다시 나뭇잎을 몇개 흩으러 놓은 장면. 어릴적 향수를=>
李聖鉉님의 댓글
=>불러일으키네요. 감나무 위에서 눈가리고 숨박꼭질도 한 추억이 그립네요.워낙 자주 올라가 눈감고도 가지를 다 파악할 정도이니...........
李聖鉉님의 댓글
워낙 오자가 많아서 다시 썻습니다.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오래간만에 윤제형님의 글을 보니 반갑습니다. 자주 글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李桓成님의 댓글
까치밥과 경로석의 연결은 기막힌 아이디어 == > 나도그 대목에 동감..어린시절의 동화가 없는 저는 오늘도 대리운전주제에..글하나 올리고 꼴을 보입니다..
신명철님의 댓글
감이 주렁주렁달린 모습을 보면서 환호성을 지르던 어린시절이 있었습니다.<br>
전 아직 어린나이지만....<br>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br>
윤제형님 정겨운글 고맙습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환호성을 지르던 ===> 환성을 지르던...비명의 반대말==>환성 유사말 환상/환장
崔秉秀(69回)님의 댓글
벌써부터 경로석??.. ㅜㅜ...그건 넘 일러서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