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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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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우 곤
언제부턴가 위쪽의 좌우 어금니와 아래쪽의 우측 어금니가 찬물을 마시면 이만저만 시린 게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마치 송곳으로 잇몸을 찌르는 듯한,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통증이 수시로 찾아왔다. 또 잇몸이 부어 음식물을 제대로 씹을 수가 없었다. 하여 대충대충 씹어서 목구멍으로 넘기곤 했다. 더더욱 참기 어려운 것은 밤에 잠을 잘 때였다.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에 중간중간 몇 번씩이나 깨어나곤 했다.
피곤해서 그런가 하고 약국에서 사온 약을 며칠 동안 복용해도 별로 나아지는 구석이 없었다. 아내는 아무래도 풍치일 것 같다며 속히 치과에 가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잠시라도 짬을 내어 치과에 갈 수 없을 만큼 바쁜 직장 일도 그렇거니와 에이, 이러다가 때가 되면 차차 나아지겠지 하고 버틸 대로 버텨보았다. 하지만 허사였다.
지난 밤에도 치통으로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했다. 결국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내를 대동하고 부랴부랴 치과로 달려갔다. 치료를 목적으로는 치과에 참으로 오랜 만에 찾아가는 것이었다. 분명코 의사로부터 치아 관리를 잘못한 것에 대해 질책을 받으리라 생각하니 마치 도살장에라도 끌려가는 듯 기분이 썩 좋지 않아 돌아가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고, 괜히 가슴마저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마침내 치과에 도착하여 간호원의 안내를 받아 진료실에 들어갔다. 입안을 촬영한 뒤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리노라니 30대 중반의 젊은 의사가 나타났다. 그는 촬영한 사진을 살피더니 염증이 심하다고 하며 아내가 예견한 대로 풍치에서 온 것이라고 단정을 내렸다. 그리고 흔들리는 치아가 몇 개 있으나 현재로서는 잇몸의 건강이 전체적으로 부실하기 때문에 당장 급한 염증 치료부터 하고 나서 결과를 본 뒤 발치 여부를 결정하자고 덧붙였다. 따라서 염증 치료에 게을리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 후 치석 제거를 위한 스케일링과 더불어 잇몸 염증 치료에 들어갔다. 이따금 치료 도중에 전해지는, 뼈를 깎는 듯한 통증에 몸이 반사적으로 꿈틀거렸다. 이에 체면 불구하고 소리라도 내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 나이에 체신머리 없이 그럴 수도 없는 게 참으로 고역이었다.
나는 통증을 잊기 위해 억지로 이제까지 살아온 나날들을 떠올렸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세월 속에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그와 부부의 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이십 개 성상이 되었다. 서로 엉뚱한 곳에 한눈 팔지 않고 부지런히도 살아왔다. 질기게 따라다니는 가난을 떨쳐내려 애면글면 얼마나 애를 썼던가. 그저 코 앞에 닥쳐있는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느라 숱한 세월을 앞만 보고 달려온 것만 같다.
사노라면 희비의 교차가 없을 수 없다. 물론 내 노력에 의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둔 적도 없는 게 아니나 때로는 다시 올 수 없는 천금 같은 좋은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련도 있었다. 남들보다 앞서고 싶은 욕심이 불일 듯 일어나고 내 자식들에게만큼은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으려는 어버이로서의 책임감으로 어깨가 짓눌릴 때마다 언제까지 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야 하느냐고 남몰래 돌아서서 가슴을 쓸어 내리곤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때로는 최선을 다하고도 결과가 신통치 않을 때 왜 나만 지지리도 못났느냐고 걸핏하면 세상을 향해 원망과 분노의 화살을 쏘아대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패배를 자인하지 않으려는 비겁한 몸부림이요 저항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아니, 그것은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요 내가 나답지 못한 부끄러운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30대 후반에 접어들자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내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즉,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미 흘러간 물이지 않은가. 그것은 삶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은 데서 오는 준비 소홀과 강인한 투지 부족에서 기인한 자업자득이다. 단단한 땅에 물이 고이듯 지금보다 더한 고통도 참아내지 않는다면 어찌 맛 좋고 향기로운 열매를 딸 수 있겠는가. 다시 일어서라.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그리하여 문학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것은 내가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작가의 길은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길이었으나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하다 보니 사실상 제대로 준비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간에 덧없이 흘려 보낸 세월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이만저만 시리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꼭꼭 씹어 삼키지 못한, 그저 시늉만 내고 대충 변죽만 울린 세월이나 진배없었다.
직장 생활하는 틈틈이 문학을 하겠다는 것으로 진로를 바꾸자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게 아닌가. 바로 그것이었다. 분명히 승부를 겨룰 만한 것임을 알게 되자 하루하루가 소중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부터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나만의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드넓은 세상을 내 안으로 품음으로써 한 뼘 이상 나를 키우고 싶은 욕구가 들 불처럼 일어나는 게 아닌가. 물론 세상일이 순풍에 돛을 단 듯 잘 나간다면 더 좋을 게 없겠지만 갖은 역경에 처해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의 불굴의 용기와 투지를 더욱 높이 사려는 마음이 생긴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그 이후 본격적인 문학과 인연을 맺으면서 고생 끝에 내가 원하는 작품이 한 편 한 편 써질 때마다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더군다나 어떤 환경에 놓이든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하여 길을 내자면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고 숱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걷어내야만 된다는 것과 나를 키우기 위해선 낯선 것에 친숙해지는 법을 배우려 전력 투구하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것이기에 큰 재산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이후 어느 활동이든 미력하나마 내 힘이 닿는 한 무조건 손들고 나섰다. 그것은 내 이마에 흐르는 땀과 눈물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세파를 이겨나가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차츰 여러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체하지 않기 위해서 세월을 꼭꼭 씹어 삼키려 애를 썼다. 단 하루를 살아도 진정 내가 나답게 살고 싶었다. 이로 인하여 '절벽이 보이면 희망은 있다.'는 또 다른 내 좌우명을 얻게 된 것이다.
공을 들였으나 결과가 신통치 않아도 예전처럼 그것에 얽매여 쉽게 실의에 빠지거나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목표가 분명하니 또 도전하면 되지 않느냐는 뚝심과 배짱이 절로 생기는 것이었다. 바로 그것이 내 생활의 밑거름이 되었고, 내 이름 석 자를 떳떳이 내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는 어깨를 당당히 펴고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어엿하게 내 의견을 내놓거나 주장을 펼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스케일링 및 잇몸 치료가 1시간 정도 걸려서야 끝났다. 마취가 가시지 않은 터라 입안은 차가운 바람이나 얼음덩어리를 머금은 듯 얼얼했다. 아니, 누구로부터 뺨이라도 흠씬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의사는 앞으로도 잇몸 치료를 대여섯 번 가량 해야 한다고 하며 처방전을 써주었다.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스멀스멀 괴는 울적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하지만 잘된 일이다. 내가 치과에 오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오지 않았다면 계속 고통에 시달리며 지내지 않겠는가. 잇몸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기적으로 치석을 제거해야만 한다는 것과 그것을 게을리하게 되면 주변의 치아에도 영향을 주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빚어낼 수 있음을 알게 된 것도 망외(望外)의 소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집에 돌아와 2시간 정도 지나니 마취가 풀렸다. 허기를 메우려 밥을 대했으나 제대로 씹을 수가 없었다. 이 아픈데 콩밥을 먹는 격이고 보니 아내가 나름대로 정성 들여서 만든 반찬도 그림의 떡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정성을 무시할 수 없어 통증을 참아가며 겨우 밥그릇을 비웠다. 맛도 모른 채 먹은 밥이라 그런지 정말 밥을 먹기나 했는가 하고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이는 꼭꼭 씹어먹지 않은 당연한 결과일 게다. 종종 경험한 바지만 꼭꼭 씹지 않고 급히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이요, 소화불량으로 시달리게 된다. 세상일도 마찬가지다. 준비 없이 허겁지겁 세월을 보내다가는 낭패를 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우리네 인생살이도 체하지 않기 위해서 저마다 주어진 세월을 꼭꼭 씹어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건강을 위해서도 음식뿐만 아니라 남은 세월까지도 꼭꼭 씹어서 먹는 생활에 길들여져야겠다. 기쁨이나 슬픔, 사랑이나 행복까지도 말이다. ‘음미되지 않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도 있듯이.
오늘은 며칠 전 예약된 대로 치과에 가는 날이다.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가볍다. 하긴 치료 받는 게 조금은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을 이기고 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을 왜 마다 하겠는가.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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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님의 댓글
인간 오복중에 하나 "이복" 나두 아직 풍치는 아니지만 주위에 풍치인 사람들 얘기를 들어오면 유비무환이라는 성어가 생각나게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