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새옹지마
작성자 : 윤용혁
작성일 : 2007.11.05 16:01
조회수 : 1,220
본문
동생에게 등산장비를 꾸려 먼저 서울로 올려 보낸 형은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래도 홀가분한 몸으로 사랑하던 여인을 다시 설악동에서 만나니 동생이 제대로 집을 찾아가던 말든 관심 밖이었다. 얼마나 좋으랴. 거북스럽던 동생을 떼어 놨으니 둘만의 오붓한 시간으로 설악산의 여름밤은 초록의 향연으로 행복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여인의 사촌오빠들은 형의 뻔질난 출입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저 자식 저거 뭐야! 어디서 굴러온 놈이야!” 서서히 둘만의 만남을 질투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방해공작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밤이면 힘차게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사랑을 속삭였다. 등산을 온 다른 대학생과 팀을 이루어 텐트에서 숙식하며 대청봉을 다녀오다 비선대에서 손목시계를 벗어 놓고 세수를 하는데 형의 시계가 주르르 물속으로 미끄러졌다. 큰일이다. 본인이 지닌 보물 1호다. 그리고 어떻게 마련한 시계인데 이대로 수장시킬 수는 없었다. 폭포를 이루는 곳에 들어가 아무리 뒤져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고심하던 차 마침 아이스케키를 파는 젊은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 시계를 찾아만 준다면 이 아이스케키 한통을 다 사주겠노라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그 젊은이는 동네로 내려가 수경을 가져와 물질하며 서너 시간을 뒤졌다. 급물살에 떠내려갔는지 도대체 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잔뜩 물을 먹어가며 물속을 뒤지던 젊은이는 지쳐 포기하고 말았다. “아저씨, 못 찾겠시요. 어라! 아이스케키가 다 녹았네!” 그 더운 여름날 산속이라도 수 시간 방치해 놓은 얼음과자는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다 녹아내려 시뻘건 물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저씨, 아이스케키값 물어 주시래요!” “이봐요! 젊은이, 손목시계를 찾았어야 돈을 주지요!” 한참 실랑이를 벌이던 청년은 형의 뻔뻔함과 뱃장에 혀를 내 두르고 “에이, 재수 옴 붙었네! 이런 양반 첨 봤드래요. 에 퉤! 잘 먹고 잘 살드래요!” 하며 산길을 힘없이 터덜터덜 내려갔다. 하루 장사를 망친 것이다. 녹은 아이스케키 물은 주인의 심정을 말하듯 침을 질질 흘리며 산길을 이리저리 수놓았다. 형의 주머니 사정도 실은 그 많은 아이스케키를 다 사줄 돈은 없었다. 급한 김에 말을 해 놓고 찾으려 했건만 모두가 수포로 돌아갔다. 설악산을 떠나는 마지막 밤, 형은 조그만 자수정을 사 그 여인에게 슬며시 건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군에 입대 합니다. 이 돌이 반짝 빛을 발할 때면 내 그대와 함께 있음을 말하는 것이오.“ 정말 웃기는 신파조의 억양이다. 여행지에서 하루 늦게 돌아온 형은 사촌동생과 해병대를 자원하였다. 그러나 자원일 하루차로 그해 마지막 기수로 입대 할 수 없었다. 몹시 안타까워했다. 왜냐면 복학날짜를 맞춰 가는 것인데 한 한기를 펀펀히 놀게 되었으니 아주 속상해했다. 그해 겨울, 형이 입대하려했던 해병기수의 상당수가 해상훈련을 마치고 귀환하다 배가 전복하여 대부분의 장병들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아주 슬픈 일이었다.형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내가 만약 저 자리에 있었다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그 아름다웠던 여인이 형을 살렸는지 모르겠다. 인간사 새옹지마라. 세상일은 그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을 일지감치 깨달았던 것이다. |
댓글목록 0
윤인문님의 댓글
인간사 새옹지마라..많이 느끼는 얘기지만 긍정적이고 잘됐을 경우엔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부정적이고 잘못됐을 경우는 이 성어 쓰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
李聖鉉님의 댓글
~~~달래려고 하는 말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 상당히 어렵겠죠. 먼저간 수병들을 생각하면 쓰기가 어려운 성어이죠.
35년전의 뼈 아픈 사건이었죠. 그분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성현형님,
깊은 뜻을 헤아리려 애써 봅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조한용님의 댓글
윤약사 오랜만에 댓글을 올렸는데 답변이 없어 고만 할까?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 한용형님 오셨군요? 일요일 고려산에서 뵙지요. 부모님을 먼저 고향집에 내려드리고 바로 달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