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어느 소녀를 그리며
본문
어릴 적 소년은 미지의 소녀나 서울에 사는 여자애들을 동경하고 그리워하였다. 구질구질하게 누런 코나 흘리고 머리에 이가 득실거리는 시골의 여자애들 보다는 하얀 피부에 생글거리는 그런 애들을 좋아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처지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데도 아무튼 말할 수 없는 그 무언가에 이끌려 동화나라의 공주를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러던 촌놈이 인천으로 유학을 와 해외펜팔이라는 것을 난생처음 해 보았다. 반 친구 중 깜상이라는 별명의 친구는 유별났다. 미국 미네소타 주에 사는 한 여학생과 사진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신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금발의 파란 눈과 오뚝한 코에 야구 모자를 눌러쓴 사진 속 긴 머리 소녀는 깜상친구를 향해 늘 방긋 웃고 있었다. 참 예쁘고 아름다웠다. 솔직히 말해서 부러웠다. 어느 날 학교 내 매점에서 엿치기를 일부러 져 주고 넌지시 그녀의 친구라도 소개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시샘이 많은 깜상친구는 요청을 거절했고 대신 방법하나를 알려 주었다. 서울 종로에 가서 사백 원을 내면 펜팔주소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날로 가서 오하이오 주에 사는 미국 여학생 하나를 소개 받았다. 뛸 듯이 기뻤다. 하라는 영어 공부는 안하고 펜팔 책도 구해서 원안을 조금 변경하여 영문 편지를 썼다. “Dear Elaine,"을 시작으로 영어사전을 수십 번 뒤척이며 진땀을 흘렸고 가까스로 두서없는 편지가 완성되었다. 일 년치 영어사전 찾기를 그날 다해 버렸으니 그렇게만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영문과에 수석합격하였으리라. 구사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무진장 신경을 썼다. 몽땅 용돈을 털어 우체국에 가 그 즉시 부쳤다. “내 편지를 받으면 과연 답장이 올까?” “그녀는 어떻게 생겼을까?” “금발일까?” “백인일까?” “흑인여자이면 어쩌지?” 온갖 생각으로 저녁에 잠도 안 왔다. “국제 편지요!” 드디어 왔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녀로부터 사진과 함께 편지가 날라왔다. 편지지에서는 알 수 없는 야릇한 향기가 흘렀다. Dear my Yoon! 형이라도 볼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 아니 그녀의 체취가 느껴져 더욱 심장이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하였다. 자세를 약간 모로 튼 긴 머리 소녀가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컬러사진이었다. 둘사이에 어렵사리 편지가 오갔다. 문득 그녀가 보고 싶어 당시 영문법 문장에 많이 인용되던 "If I were a bird, I would fly to you!"를 편지답장에 적어 보냈다. 그러자 얼마 후 날아온 그녀의 편지지는 물론 글씨체도 온통 정열의 빨간색으로 뒤덮인 사랑의 연서였다. 그러면서 나의 사진도 빨리 보내줄 것을 간절히 요청했다. 큰일 났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은 흑백의 증명사진뿐이다. 그것도 죄수처럼 빡빡 깎은 머리의 촌스럽고 이상하게 눈 한 짝이 찌그러지게 나온 조그만 사진인 것이다. 창피해서 도저히 보낼 수가 없었다. 사진첩을 이리저리 뒤지니 유일하게 잘 나온 사진이라고는 젖살이 오동통하게 오른 막내 외삼촌이 찍어준 돌이 갓 지난 완전 나체의 사진뿐이었다. 하필 그때 완전히 벗겨 찍었는지 원망스러웠다. 그렇다고 그걸 보낼 수는 더더욱 없지 않은가? 고민 끝에 동생의 사진을 보냈다. 빨간 봉투와 함께. 동생은 난리를 쳤지만 어쩌랴. 형이 하는 일인데. 그러나 그 후론 답장이 없었다. 동생의 개구쟁이 시절 떼를 쓰며 봉당마루바닥을 이마로 쿵쿵 찧다 보고 실망을 하였나보다. 심술궂게 나온 동생의 흑백사진이 영 마음에 걸렸다. 편지내용중에 영어로 쓰기가 힘들다는 내용과 그 여자의 남동생사진을 보고 강아지 같다고 말한 것이 오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연락이 두절되었다. 주머니 사정도 문제가 되었다. 사진관에 가서 사진찍을 돈이 없다. 아니 그건 지나친 사치라고 여기던 집안 분위기에 눌려 엄두도 못 냈다. 그리고 사진을 바꿔치기한 양심의 문제가 더욱 컸다. 솔직하지도 못했다. 정말 부끄러웠다. 당시 염치없는 아이들이 미국이 잘 사는 나라니까 부모님이 아프다는 핑계로 달러를 보내달라고 구걸하다 국제적 망신을 당하는 일이 있으니 펜팔초기에 조심하라는 주의사항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같은 경우에는 뭐라고 설명해야하는가? 컬러사진을 찍을 돈도 없고 국제 우편요금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학창시절의 궁핍함을 그 여자 친구는 알기나 했을까?
사십대 중년으로 변해있을 미국의 여인이 만약 언젠가 한국을 방문한다면 당시의 결례에 용서를 구하고 한국인의 따스한 정서를 전해주고 싶다. 한국고유의 김치와 맛있는 불고기를 곁들여 말이다. Elaine, So sorry! |
댓글목록 0
오윤제님의 댓글
영어 실력이 딸려서 엄두도 못낸 일을 하였네요. 정말 고이 간직할 추억입니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윤용혁님의 댓글
윤제형님, 인터넷의 위력으로 다시 만날 수가 있을까요? ㅎㅎㅎ
형님 말씀대로 고이 간직하고픈 아름다운 추억이랍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이동열님의 댓글
그녀 사진두 그녀 동생 사진일지 몰러유,,,ㅋㅋㅋ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ㅎㅎ 역시 동열형의 재치, 그렇다면 제가 위안이 되겠죠?
오윤제님의 댓글
무슨 말씀을 서양 사람들 솔직한 것 소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알잕수.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대단한 혁 아우님의 걸작에 찬사를 그리고 박수 갈채를 함께 재미 있는 글 늘 고맙소
윤용혁님의 댓글
윤제형님, 그들은 옛스, 노우가 분명하고 솔직한 것 맛습니다.
형님의 수인선에 추억을 되살려 주셔서 감사드려요.
즐거운 주말 되시구요.
윤용혁님의 댓글
재준형님, 감사드립니다. 늘 격려와 사랑 잊지않으렵니다. 형님이 계시기에 글 쓰는
제가 존재하게 되었답니다. 건강하시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윤인문님의 댓글
펜팔.. 그때는 웬만한 정성가지곤 힘든 얘기였지요
윤용혁님의 댓글
형님, 맞아요. 시간도 많이 뺏기고요. 7일날 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