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길섶 메뚜기는 가을볕에
갈색군복을 갈아입고 이리저리 날자 들판은 온통 노란
물감을 풀어 머리채를 뒤흔들었지요.
수수는 겸손을 가장한 듯 고개 숙이고 허수아비는
제 몫을 다하여 상거지로 전락하였죠.
어머니는 가을수확에 눈코 뜰새 없어 언제나 집에 없었고
옥수수 대는 빈 둥지만 남아 비스듬히 누워 잠들자
보꾹에는 치아가 똑 고른 옥수수가 옷을 홀랑 벗은 채
누런 조와 손잡고 매달려 있었답니다.
논에서 볏단을 건져 내려면 농부들은 막걸리의
힘을 곧잘 빌렸어요.
지게에 볏단을 삼, 사십 개씩 쌓고 끄응 힘주어
일어서기만 한다면 어깨에 리듬을 타고 달구지까지
달려와 경쟁적으로 짐을 풀었죠.
집으로 향하던 한 바리의 볏단이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날이면 난리가 났죠.
벼를 탈곡하고 남은 검불을 태우다보면 채 거두지
못한 나락이 탁탁 소리를 내며 하얀 꽃을 피웠죠.
잽싸게 그 놈을 건지려면 보통일이 아니었어요.
가을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어머니가 일터에서
돌아오시면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초가집 굴뚝은 하늘을 향해 연신 흰머리를 풀었죠.
어쩌다 절구통에 절구가 허공에 주먹질 하는 날은
콩고물에 나뒹구는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인절미가 어린 나의 입안을 행복하게 해 주었답니다.
가을은 그렇게 깊어만 갔지요.
가을을 노래함
시/윤 용 혁
여름이 호들갑을 떨다
떠난 자리 따가운 햇살에
등 떠밀려 초록군복 벗고
위장복 갈아입은 풀벌레,
뚜르르 나팔 부니
앙칼진 채꾼의 소몰이 소리
보꾹에 주렁주렁 옥수수,
가을 길목을 목도리 하던 샛노란 조,
메주를 놀리니 시무룩하다
동바에 목 졸려
지게장단 춤추다
허리춤 풀고 뒹굴던 볏단,
윙윙 탈곡기 빗질에
황금을 수북이 멍석에 깔다
검불에 박 서방 담배 불 옮기자
톡톡 하얀 꽃 피고 지는 괴꼴은
모락모락 가을자락을 태우고
그 내음에 먹지 않아도 배부른 농심
처마 밑 저승사자 거미, 포승줄 풀자
레이더 번뜩이던 빨간 고추잠자리
잠시 말뚝을 부여잡고 기도할 때
한 아이 빙빙 코앞 노략질에
헛간 귀뚜라미 가을을 목청껏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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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0
오윤제님의 댓글
벌써 가을인가요. 혁이 귀뚜라미되어 열심히 노래 부르는군요. 그러다가 목청 쉬어요.
윤용혁님의 댓글
윤제형님, 그간 안녕하셨어요? 형님, 벌써 가을의 전령사가 전통을 들고 창밖을 기웃 거리는군요. 제가 귀뚜라미 된 사실을 형님은 익히 알고 계셨군요. 행복하세요.
윤인문(74회)님의 댓글
한창 더위가 물러간지 엊그제인데 벌써 만추의 계절을 느끼게 하는군요...참 술안주로 고소한 튀긴메뚜기 먹은지 오래됐네요..ㅎㅎㅎ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 인문형님, 언제 튀긴 메투기안주로 맥주를 대접할까 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바쁘시죠? 만추의 계절이 성큼 다가 오는군요.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김종득님의 댓글
용혁 형님! 자전거로 단련된 체력한번 테스트 해 보시지요 이번산행에 참석하시여 주옥같은 시도 한번 난송해 주시구요
이기호 67님의 댓글
그림과 노래와 용혁아우의 수려한 글, 너무 잘 어울리네! Bravissi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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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성(70회)님의 댓글
한동안 자리 비운 저는 이젠 든든합니다..용혁/인문/윤제/철주(70)..신방 부탁합니다..저 어렵게 낸 딱따구리찜질방 보람부동산에 내놨습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김종득후배님, 기억해 주셔서 고맙소이다. 기회가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이기호 선배님,속초도 서서히 가을을 맞으려 분주해 지겠지요? 언제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윤용혁님의 댓글
환성형님, 그간 안녕하셨죠? 원대복귀하세요. 보람부동산에 딱다구리를.....성공을 빌어왔는데요. 좋은 결과가 있겠죠.
조한용님의 댓글
윤약사 우승축하연에 다녀왔네, 약업인동문회 소식도 자주 올려주시게 , 이제 총무일도
마니해야지, 보이지 않는 회원을 찾아서,,,,,,,,
윤용혁님의 댓글
우리의 호프 약업인 동문회 회장님이 오셨군요? 네 그리 하겠습니다. 총무일은 갑자기 맡은 일이라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요. 한용형님!!! 형님과 의논하며 찬찬히 진행하겠습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