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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배님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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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배님의 전화
여느 때처럼 사무실에 들어온 시간은 아홉시가 채 안된 시간에 컴퓨터를 켜서 동창회 카페를 열어본다. 가장 먼저 보는 흔적이 요즈음에는 아홉시가 넘어야 졸린 눈을 힘들게 뜨면서 껌벅거린다.
내가 처음 들어 올 때는 새벽 이맘때쯤에는 어김없이 열렸을 뿐 아니라 하루가 지나기가 무섭게 자정에도 반짝이는 경우가 있어서 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이 상당하다는 것을 느꼈었는데 요즈음은 보통 아홉시가 지나서야 불이 켜진다.
가을로 접어들었으니 오늘은 아마 활짝 열려있겠거니 들어가 봤지만 아직 열릴 기미가 전혀 없다. 나가기가 뭣하여 자유게시판에 들어서니 그곳은 벌써 반짝거리는 불빛으로 손짓을 하며 나를 부른다.
무심코 들어간 곳은 선배의 부탁을 어떻게 처리 하였으면 좋은가요 라는 내용으로 답답한 마음에 대단한 용기를 내어 젊은 후배가 애타게 호소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이십년 전에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 전화 받았던 그 선배의 전화임을 직감하면서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 선배님 아직까지 어린 후배들에게 전화를 하고 있으니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안타까움도 있었다.
구십회라 하였으니 서른 중반의 또래, 내 나이도 그 맘 때쯤이었을 것이다.
직장을 옮기고 나서 얼마 안 된 어느 여름날 오후 한통의 전화가 왔다.
“네. 00과 오윤제입니다.”
“후배님, 00회 000입니다.”
마침 우리 회사에 선배가 없을까 하고 은근히 마음속으로만 찾고 있었는데 선배가 있어 전화까지 걸어주다니 이런 친절이 어디 있겠나 싶어 자세를 고치고 조금은 긴장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나 00일보의 00으로 근무하는데 주간지 일 년분만 구독하여 주시면 임원 승진에 도움이 되기에 염치없이 부탁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주간지를 억지로 구독하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선배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일 년치를 구독하였던 일이 기억났다.
부록으로 발간하는 간행물이 나올라치면 먼저 전화를 해서 후배에게만 특별히 보내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친절히 대해주는 공치사도 은근히 하였다.
일 년의 기간이 지나서 그 주간지를 해지하여 구독을 중단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또 그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000입니다. 00일보로 옮겼어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0000를 보아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나는 지금 구독하고 있으니 끝난 다음에 선배님께 구독하겠노라고 은근한 거절을 하였는데 지금 이십년이 다된 시절에도 후배들에게 똑같은 부탁을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는 말이다.
같은 값이면 선후배를 통하여 구독하는 것이 나쁠 리는 없겠지만 강요처럼 느낄 때는 부담이 가기도하거니와 어떤 묘한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부탁하는 사람이야 직업이 직업이니만치 알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이용하여 영업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생면부지의 선후배가 일방적인 전화로 영업행위를 할 때는 너나없이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도 이십년 가까이 유통업을 하면서 동창은 물론 선후배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사람 중의 하나이지만 생판 모르는 선후배에게 부탁하기란 어려울 뿐 아니라 상당히 신경도 쓰인다.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며 거북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상사에게 불이익은 당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생기고 동료 간에 갈등은 생기지 않을 것인가도 살펴봐야 한다. 나의 입장에서는 구걸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도 같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만일 내가 어떤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를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끈이 있거나 비빌 언덕이 있으면 찾아가 악착같이 붙잡고 늘어졌을 것이다.
일의 성격이 다르고 또 나의 일이라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래도 나는 조금은 체면을 차릴 수 있는 여유가 있다 할 것이다.
이글을 읽고 아침에 나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았다.
“아직도 그 분 예전과 다름없이 하고 있군요. 예전에 일 년치 월간잡지 구독 경험 있습니다. 필요하면 구독하고 불필요하면 거절하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더니 다음의 댓글들도 줄줄이 자기가 경험한 일들을 달아 놓았다.
나의 첫 댓글이 잘 못 쓴 것인지 그분을 옹호하는 글귀가 하나도 없다.
책을 팔아야 할 입장에서 동문들에게 팔려하는 것이야 문제될 것은 없을 텐데 다 경계하고 마음을 닫는 자세는 무엇일까. 아마 믿음이 가지 않으니까 그럴 것이다. 한번쯤 방문이라도 해서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전화로만 부탁하였으니 의심만 부풀린 꼴이 되었다.
세기도 바뀐 지 어언 칠년, 칠년이 긴 게 아니라 바뀐 세기라는 단어가 엄청난 것이다.
지금은 이십일 세기이니 이십일 세기에 맞게 영업도 변하야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알게 모르게 변하여 있는 세상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선배님이라고 모르시겠나.
나이 들면 체면치레도 줄어든다는데 그래서 하는 부탁은 아닐 것이고 이제까지 살아온 수단이 그럴진대 어찌 하란 말인가.
자세한 전화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들어줄 수 있는 처지에 있다면 한번쯤 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일이다.
아니면 영업의 방법을 바꿔 보는 것도 좋겠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소유한 젊은 여성을 직원으로 채용하여 전화를 걸게 하 여 “00회 000과 함께 일하는 이효리입니다.”라고 인사를 한 다음 영업의 전후사정을 말한다면 전화 받는 이에게 한결 부드럽고 편한함을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물론 영업의 효과가 어찌 될지는 모르겠으나 상대에게 주는 경계심이나 거부감은 없앨 수 있으니 좋고 본인은 본인대로 타 부류의 사람들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영업을 한다면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만도 하다고 생각되는데 정말 이런 방법은 어떨지.
잊고 있던 그 옛날의 일이 잠간 스쳐가기에 나의 느낌을 적어보았다.
댓글목록 0
박철주님의 댓글
민감한 부분인것 같습니다.전 이렇습니다.부탁하는 요구가 그 사람의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라면,누구인지 몰라도 인고인이라면 보지않고도 최대한 도와주려고 할것입니다.그러나 윗 글 내용중의 요구정도라면,중용을 택할것입니다.어차피 인간은 神도 아니요,동물도 아닌 중간(中間)이 아니겠습니까? (계속)
박철주님의 댓글
중간의 입장에서, 보통의 요구되는 일이라면,저도 선배님의 끝 말씀처럼,상대방의 환경에 주의하면서 좋은 방법으로 접근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그것이 중간 되는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예의라고 봅니다. 주제넘은 말을 드린것 같아 죄송합니다. 초 가을 깊은 밤중에...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요 몇일동안 윤제형님이 말씀하신 이 내용이 우리 동문사이에 이슈가 되고 있군요..동창회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의제 제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윤제님의 댓글
선후배 사이에 부탁하는 것 들어주고 싶은 마음 인지상정이지요. 보던 것이 있으면 바꿔서라도 그러나 자신에게 필요없다면 그것은 강요로 느낄 것입니다.
이준달님의 댓글
죄송합니다....제 의견때문에 선배님들께서 많이 신경들 쓰시는것같고 걱정시켜드린것 같아여... 저는 단지 인고인을 사칭하는 사례가 잇어서 그런분이 계신가 하고 상담한것인데...제가 조금 경솔한것같고 선배님들께 누를 끼친것같아 죄송합니다...
오윤제님의 댓글
경솔한 것 없어요. 도울 것은 돕고 따질 것은 따지자는 것이지
이환성(70회)님의 댓글
한동안 신변방 자리 비운 저는 이젠 든든합니다..용혁/인문/윤제/철주(70)..신방 부탁합니다..저 어렵게 낸 딱따구리찜질방 보람부동산에 내놨습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철주님은 쇠(鐵:쇠철)주님...담주 명함나오면 방문할께..난 애그후라이가 젤 맛난 반찬..
윤용혁님의 댓글
최근에 저도 부탁받고 월간지 구독신청을 하였답니다. 부담은 되지만 인고라는 한마디가
거절하기가 쉽지 않군요. 자연스러움이 결여되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좋은 글 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