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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예정작 - 빛나는 조연
본문
빛나는 조연(助演)<?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진 우 곤
‘너 자신을 알라’, ‘배부른 돼지보다는 고뇌하는 인간이 되겠다’는 명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세계 4대 성인의 한 사람이라는 반열에 오른 소크라테스(B.C 470~399년). 반면에 수다쟁이인 데다 심술도 더덕더덕 붙은 전형적인 악처라고 알려져 있는, 그의 아내 크산티페.
나는 크산티페에 대하여 ‘전형적인 악처’ 운운에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그녀를 그렇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나 싶다. 과연 그녀에게 천성적으로 그런 면이 있었을까. 아니면 돈 한푼 벌어들이지 않는 남편과 세 아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극심한 생활고의 영향에 기인한 것인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으나 이에 대하여 나름대로 밝혀보고 싶다.
여기서 잠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그의 아내 크산티페에게 남편 구실을 제대로 했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사명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크라테스는 추측하기로는 40대 이후부터 허구한날 길거리로 나갔다고 한다. 그가 즐겨 하는 것이라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얘기를 나누며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피력하거나 가르치는 일이었다. 즉, 하나의 교육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세인(世人)들은 그런 그를 두고 한낱 제 밥벌이도 못하는 백수건달 내지 한술 더 떠서 무위도식하는 자로 입방아를 찧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일이란 게 생계 유지, 즉 돈벌이나 밥벌이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편향적인 시각이나 뿌리깊은 고정관념, 즉 소위 세평(世評)이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즉, 소크라테스가 행했던 일(철학) 같은 것은 물질숭배와 실리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지금 세상에 와서는 점점 더 무시와 냉대를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이 조금도 생계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올바른 대접이나 환영을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따라서 그 재능이 직업과 연관되지 않으면 극단적으로 생활 무능력자로 낙인을 찍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면 그런 경향이 다분히 깔리게 되는 것이다. 즉, 탁월한 재능이야 인정한다. 그러나 그게 먹고 살 수 있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자는 아니할 말로 밥이나 축내는 기생충과 같은 자라고 매도하는 것이니 이것처럼 무서운 이중적인 사회적 잣대도 없다.
하지만 나는 소크라테스가 결코 생활력이 없는 남편이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어쩌면 그에게는 인간이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가에 대한 규명 - 천직(天職) – 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것이었을 게다. 비록 돈이나 밥이 나오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그가 스스로 행했을 뿐이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돈을 벌어들여야만 능력이 있는 남편으로 분류하는 냉혹한 사회적 잣대의 희생양이 될지라도 그런 것을 감수하고라도 그는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려고 시도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게 돈벌이 수단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그것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장 크리스토프’ 라는 소설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인 <로망∙롤랑(1866 ~1944년)>의 다음과 같은 말은 참으로 공감이 간다.
“예술은 직업이어서는 안 되며 천직(天職)이어야 할 것이다. 그 천직은 다만 학자와 예술가가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자기의 평안과 행복을 희생함으로써만 인정되고 또 증명되는 것이다.”
이는 학자와 예술가가 예술이라는 천직을 수행함에 있어 어떻게 처신해야 함을 지적한 말이다. 즉, 학자와 예술가가 자신의 천직(天職)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그는 한낱 장사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 일례로 러시아의 문호였던 <도스토예프스키>는 한때 빚에 시달린 나머지 시간에 쫓기며 성급하게 작품들을 써서 종종 발표하곤 했다. 그 바람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지 못했다고 후회한 적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일부의 작품은 혹평까지 받기도 했다.
따라서 <로망∙롤랑>의 말을 토대로 한다면 예술의 범주에 들지는 않지만 소크라테스도 자신의 행위, 즉 철학을 천직(天職)으로 여기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기의 평안과 행복을 희생했으리라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왜 그라고 남들처럼 구복(口腹)과 영달의 삶을 원하지 않았겠는가. 범부(凡夫)들처럼 등 따습고 배부른 삶을 위해 돈벌이에 나서는 일을 말이다. 즉, 그도 인간이기에 가정을 돌보며 지아비로서 아내를 위하고, 어버이로서 자식을 사랑하며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야 남 못지않게 간절했을 게다.
하지만 그에게는 보다 중요하고 절실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세상을 바로 이끌기 위해서 철학을 하는 일이었다. 그의 그러한 노력 혹은 희생이 있었기에 철학이 더 한층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고 토대를 구축하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장구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의 철학이 숱하게 연구의 대상이 되고 그의 명언이 인구에 회자하는 것은 정녕 무위도식만으로 얻어진 것일까. 그것은 결코 아니다. 모름지기 자신의 철학을 그의 천직으로 삼아 스스로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며 얻은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그가 세계 4대 성인(聖人)으로 추앙 받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이렇고 보면 그의 철학이 갖고 있는 무한한 정신적 가치를 어찌 자로 잰 듯이 물질적인 가치로 신속 정확하게 환산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귀신같이 빠르고 정확한 컴퓨터라도 그것을 계산해내지 못하겠다며 지레 겁을 먹고 두 손을 들고 말 것이다. 대체적으로 그는 돈은 못 벌어들였지만 가정에 불충실하거나 법을 준수하기에 게을렀다고 하는 기록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기록을 통하여 그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것은 다행이다.
-- 그는 가정에 대한 관심, 또는 공적 업무에의 관여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청렴, 결백, 공정, 겸허의 전형인 동시에 진정한 인간애에 넘쳤고 항상 명랑하였으며, 평시와 전시를 가리지 않고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고 단호히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주장, 본질, 성격의 온갖 것에 있어서 그리스인이요, 아테네 인이었다. --
이러함에도 그를 가정을 돌보지 않는 자, 실업자 혹은 무위도식하는 자였다고 매도하는 것은 다시 한번 고려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는 엄연한 생활에 충실한 자였으며, 성실한 국민의 한 사람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가 있다.
반면에 그의 아내인 크산티페로서는 집에 돈 한푼 가져오지 않는 남편이 얼마나 야속하고 얄미웠을까. 생활고로 인한 불평과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가정 생활이 원만하지 않았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와 관련하여 이미 잘 알려진 일화들이 몇 가지가 있다. 그 일화들을 통해 크산티페의 면모를 대강 엿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언젠가 소크라테스가 집으로 돌아올 때였다.
그런데 그가 집 앞에 닿자마자 크산티페의 심한 잔소리가 퍼부어졌다. 더욱 가관인 것은 명색이 남편인 소크라테스의 머리 위로 한 초롱의 구정물을 끼얹어지는 게 아닌가. 그것도 이웃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와 같은 개망신을 톡톡히 당하고도 화를 전혀 내지 않은 채 ‘천둥이 친 다음에는 큰비가 내리는 법이지.’ 라고 태연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또 크산티페는 바가지 긁는 것도 어지간했던지 어떤 사람이 소크라테스에게 그 줄기찬 잔소리를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이에 그는,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소리도 자주 들어 귀에 익으면 괴로울 거야 없지.’ 하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종종 어째서 그런 못된 여자를 아내로 삼고 한 지붕 밑에서 사느냐는 질문에 이르러선,
“마술(馬術)에 뛰어나려면 난폭한 말을 골라서 타야 하네. 즉, 그 말을 능숙하게 다를 줄 알게 되면 그 어떤 말이라고 쉽게 탈 수 있지. 내가 그 여자에게서 받는 괴로움도 참고 견디어낸다면 천하에 다루기 어려운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넘기는 게 아닌가.
위의 일화들을 종합해 보면 크산티페가 난폭한 말로 비유될 만큼 성질이 못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잔소리가 많음을 소크라테스는 천둥과 물레방아 소리로 비유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고 보면 그가 아내에게 적잖은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말하고 있다. 즉, 아무리 아내가 악하게 굴고 못된 짓을 해도 능히 그것을 참고 견뎌내겠다고 말이다. 그래야 천하에 다루기 어려운 사람은 없을 게라고. 이러한 결연한 의지는 아마도 소크라테스가 내심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그의 아내를 통하여 더 깊이 있는 철학적인 무엇인가를 얻고 싶은 의도가 깔려있었지 않나 싶다.
만일 그렇다면 그런 빌미를 제공한 그녀를 두고 ‘전형적인 악처’ 운운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보아야 옳겠다. 사실 궁핍한 살림만 하는 크산티페로서는 남편이 천직으로 여기고 몰두하는 철학에 장한 일을 한다고 박수를 칠 만큼 어찌 관심이 가겠는가. 아마도 고원(高遠)하고 형이상학적인 세계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이었을 것이다. 아니, 일체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까닭인즉 내 코가 석 자라고 당장 입에 풀칠하는 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았기 때문이다. 자연적으로 부부간에 대화를 나누어본다고 해야 몇 발자국 못 가서 얘기의 초점을 잃어버리고 물과 기름처럼 헛돌지 않았을까.
이에 크산티페는 불같이 화가 났을 것은 불은 보듯 뻔하다. 그로서는 돈이나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 철학, 즉 자신마저 이해가 닿지 않는 것에 매달리고 있는 남편에게 어찌 불평과 불만이 없을 수 있겠는가. 시부모에게서 상속 받은 약간의 유산을 빌미로 가난에 쪼들려 고생하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서글픈 현실을 대비시키며 그것도 좋지만 제발 정신 좀 차리고 돈을 벌 궁리를 하라고 언성을 높이며 으름장을 놓았을 것은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이다.
그게 보통 사람들의 가정 생활이다. 크산티페라고 해서 여타 주부들과 무엇이 다르랴. 생활에 쪼들리게 되면 아무리 착한 주부라도 그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은 뻔하지 않은가. 그것은 지금의 우리네 삶에 있어서도 수시로 경험하는 바다. 단지 죄라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가난일 뿐이다. 따라서 그가 천성적으로 악한 여자는 아니었을 것으로 헤아려진다. 만일 그런 남편과는 단 하루도 살기 싫을 만큼 밉다면 당장 이혼이라도 하지 않았겠는가. 소크라테스가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던 것을 보면 그래도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이런 신세타령도 했을 게다. 없는 살림에 식구들 뒤치다꺼리에 뼈빠지게 고생하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한탄과 세상에 흔해빠진 남자들 중에 하필이면 왜 자신만 건실하지 못한 남편을 만나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고 말이다. 또 아무리 떠들어도 마이동풍처럼 자신의 하소연이 먹히지 않을 때마다 더욱 속에서 불이 나고 화가 치밀어 수다스러워지는 것은 살림을 맡은 주부에게는 늘 따르기 마련이다.
이것을 두고 주변 사람들이 크산티페가 성질이 못되고 수다쟁이에다 바가지를 긁는 게 심했다고 함부로 평한다는 것은 몰인정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모자라 2,500년 동안 ‘전형적인 악처’라고 폄하(貶下)하고 벗을 수 없는 천형(天刑)과 같은 굴레를 씌우는 것은 제 똥 구린 줄 모르는 몰염치한 어불성설이요, 침소봉대(針小棒大)와 다를 바 없다. 이것은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된 일이다. 좋은 이웃이라면 그런 것을 두고 방정스러이 입 소문을 낼 것이 아니라 아량 있게 눈감아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왜냐하면 지금의 우리네 삶이라고 해서 그 당시에 살았던 그들과 오십 보 백 보로 별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은 진실 게임이어야 한다. 나는 그녀에게 오히려 인간적인 친밀감을 느낀다. 크산티페는 성실과 진실을 무기로 삼고 인생을 살다간 여자가 아닌가 싶다. 울화통이 터지면 남편에게 자신의 할 말을 숨김 없이 다하는 태도에서 오히려 박수를 보내고 싶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하고 분명히 선을 그을 줄 아는 맺고 끊는 게 확실한 강단(剛斷)이 있는 여자다. 그가 남편을 닦아세우고 몰아붙인 것도 실은 가난에 허덕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와 같은 미덥지 못한 언행이 표출되었을 뿐, 진실로 남편이 미워서가 아니었을 게다. 즉, 비록 돈 한푼 벌어들이지 않는 남편에게 화풀이는 해댈지언정 그녀의 본심은 정작 지아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깔려 있었지 않았나 싶다. 철학을 하는 소크라테스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크산티페의 그러한 매력이 소크라테스의 구미를 당기게 하지 않았나 싶다. 소크라테스도 남들이 자신의 아내를 두고 뭐라고 하든 그는 직선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우회적이지만 그래도 데리고 살만 하다는 뜻을 넌지시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서 크산티페에 의하여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더욱 탄력을 받아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 게 아닐까.
이렇고 보면 크산티페가 이웃들이 보는 앞에서 한 초롱의 구정물을 소크라테스의 머리 위에 끼얹은 일화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단순하게 돈 한푼 벌어오지 않은 남편이 야속하고 미워서만은 아닐 게라고 말이다. 즉, 그러한 배경에는 크산티페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려있었던 것으로 헤아려진다.
앞서 언급한 대로 철학과 현실은 생판 다르다는 것이 생활의 고달픔을 알아 달라고 떼를 쓰는 측면도 있었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즉, 그 이면에는 자신으로선 이해가 닿든 안 닿든 남편의 철학이 언젠가는 호된 철퇴를 맞지 않겠느냐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었던 게 아닐까. 일종의 신변 위험을 알리는 경고라고 보아야 옳겠다.
아닌 게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듯 소크라테스는 B.C 399년에 멜레토스, 아니토스, 리콘 3인에 의하여 ‘청년을 부패시키고, 국가가 믿는 제신을 믿지 않는 자’라는 이유로 고소를 당한 뒤, 재판은 501인의 배심재판관들이 투표에 의해 행해졌는데 361대 140표로 사형언도를 받고 ‘악법도 법이다.’라며 의연히 독배를 마시지 않았던가.
미련하고 어리석으나 부지런한 여자와는 평생을 함께 살 수 있을지언정 사치가 심하고 허영심이 많으며 게으르고 말로만 한몫 하는 여자와는 단 하루도 함께 살 수 없다. 크산티페가 사치가 심하고 허영심이 많다든지 게으른 면은 보이지 않는다. 뿐더러 수다쟁이인데다 심술이 고약하고 바가지 긁는 것이 심했다고는 하나 그것은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는 여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니 그것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크산티페의 인격에 흠집을 내거나 못된 측면으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하려는 것은 도시 이해가 닿지 않는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이런 말이 있다.
<賢婦令夫貴 惡婦令夫賤>
풀이하면 ‘어진 아내는 지아비로 하여금 귀한 사람이 되게 하고, 악한 아내는 지아비로 하여금 천한 사람이 되게 한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고대 그리스 철학사에서 유명할 뿐더러 세계 4대 성인의 반열에까지 오르고, 그의 철학이 2,500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도 인구에 회자하며 먹히고 있는 것은 크산티페가 ‘전형적인 악처’라기보다 ‘어진 아내’라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싶다.
짚신도 짝이 있다면 소크라테스와 그의 처 크산티페야말로 부부로서는 명콤비가 아닐까. 사실 따지고 보면 소크라테스가 철학자로서 유명해진 것도 그 이면에는 악역(惡役) - 과연 악역일까? - 의 역할을 잘 소화해 낸 크산티페의 빛나는 조연이 없었더라면 가능했겠는가.
지금의 세상은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인지 이혼율이 날고 증가하고 있다. 시련과 역경이 닥치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진지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원수지 듯 남남으로 갈라서는 것을 능사로 삼으니 한심스럽기 짝없다. 결혼하면서 맺었던 백년가약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경조부박(輕佻浮薄)한 세태.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흉금을 울려주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처 크산티페 사이에 얽힌 일화를 떠올리며 위로를 삼는다.
그러고 보니 무엇 하나 온전히 가지지 못한 내게 시집와서 고생을 낙으로 삼으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아내가 여간 고맙지 않다. 순탄치 않은 세월의 여러 구비를 돌며 미운 정과 고운 정 함께 나누며 살아온 지도 벌써 23년이나 되었다.
그는 아무리 어려운 일에 부닥쳐도 겁내지 않고 슬기롭게 헤쳐 나갔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 흐름을 읽어내는 눈이 밝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나는 버스 떠난 뒤에 손을 흔들 만큼 민첩하지도 못하다. 오히려 처세술도 그에게 배우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다. 이렇듯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그가 가졌으니 나는 복덩이를 안고 사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내는 자신이 공을 세우고도 항상 내 덕분이라고 한다. 어쩌면 현재의 내가 있기까지는 그의 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에 풀이 마르고 시들지라도 그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고픈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는 요즈음이다. 아니 다음 세상에 태어나도 아내와 결혼하여 그에게 못해 준 것을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어쩌면 소크라테스도 나와 같은 심정으로 크산티페와 함께 한세상을 살아갔던 게 아닐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옥에 티처럼 여겨지는 다음과 같은 소크라테스의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고개만 갸우뚱거려진다.
‘어쨌든 결혼을 하여라. 양처(良妻)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악처(惡妻)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뼈 있는 한마디 같은데 소크라테스가 철학자가 된 것은 과연 크산티페가 악처였기 때문일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08년 6월)
댓글목록 0
윤인문님의 댓글
IMF이후에 이혼한 부부가 많았다고 하던데 남편으로서 경제능력이 없으면 천대 받을 수 밖에..소크라테스는 이혼을 생각 안해봤을까?
윤인문님의 댓글
우리 동기 진작가 얘기가 좀 어렵나요? 댓글이 안붙네요..
이환성(70회)님의 댓글
한술 더 터서 ==> 한술 더 떠(?)서
발표 예정이라서..
진우곤님의 댓글
이환성 선배님의 꼼꼼한 지적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윤인문 동문님, 이 글은 소크라테스와 크산티페를 예로 들어 지금의 우리사회의 치사한 변화(탁월한 재능보다는 생계 능력을 우선시)를 꼬집어 보고자 한 것일세.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혼만은 안하리라 보네. 빛나는 조연 역할을 하는 크산티페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