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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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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창회
분기에 한번쯤 우리는 반창회를 한다.
예전에도 가끔 모여 술잔을 기우리며 환담을 나누곤 하다가 흐지부지 중단되었는데 작년부터 다시 모여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졸업 당시에는 오십 여명 되었는데 연락이 되는 친구들은 고작 삼십여 명이다.
그중에서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나오지 못하는 친구들도 생겨서 모임에 참여하는 친구들은 이십여 명이 채 안되게 나오지만 오늘은 새로운 얼굴로 누가 나올까 하는 기대감에 두근거리는 마음은 젊은 시절 누구의 소개를 받고 다방에서 낯모를 여인을 기다리는 마음이라도 되는 듯 마음이 떨린다.
전에 모였을 때는 강화에 살던 정구가 오랜만에 얼굴을 보이며 지금까지 못 나온 것에 대한 미안함에 특별히 듬뿍 내는 푸짐한 마음을 보이고 병용이는 부산에서 우리의 모임을 위하여 업무를 서둘러 끝내고 고속열차를 타고 조금 늧은 시간에 찾아 왔다.
졸업 후 처음 만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이름만 입에서 맴돌 뿐 잊혀져가는 얼굴 중에 한명인 영렬이도 참석하였다.
인천에서 살았다지만 흐른 세월이 너무나 아득하여 주안역 주변의 지리를 모를 것이라 짐작하고 마중을 나가 기다리면서도 내가 기다리고 있는 이 자리를 비켜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고 그 보다 더 걱정되었던 것은 혹시 서로 몰라 볼까하는 것이었는데 삼십년이 지난 세월에도 서로를 알아보며 반갑게 손을 잡았다.
지난 구월 초에는 왕근네 집 온수로 자리를 옮겨 모임을 가졌다.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은 평일에 모이기로는 조금은 이른 시간 그래도 시간이 되니 하나둘 모여 열여섯 명을 채운다.
갑자기 회사의 급한 일이 생긴 낙초와 공헌이가 나오지 못함을 미리 알려주고 병서는 야간 강의가 있어 못 온다고 한다. 병관이도 치과에 미리 예약한 관계로 못 나온다 하였다. 병수는 프랑스에 간다고 하였으니 못 나올 테고 일호 또한 사정이 있는가 보다. 일이 우선이니 못 나오는 심정 어련하랴.
처음으로 참석하는 광일이가 일찍 온수역에 내려서 기다리고 있다기에 개찰구를 나오면서 주변을 돌아본다. 이곳을 보아도 보이지 않고 저곳을 보아도 보이질 않는다..
경인로 방향으로 내려서 기다리라 하였지만 이쪽 방면으로 다녀본 경험이 없으니 반대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저쪽에서 건너오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지나온 날의 이야기를 하며 오 분 걸이의 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앞에 종만이가 구부정하게 걸어간다. 허리를 다쳐 가까스로 참석한다며 힘든 표정을 짓는다.
그 옛날 철봉대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하면서 소차나 대차를 자유롭게 구사하던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건강을 한번 잃으면 다시 그때를 유지하기가 어려운건지 몇 번을 만나도 그 모습이다.
작정한 시간이 되니 열여섯 명, 얼추 올 사람은 다 온 모양이다.
오늘은 오성이가 기분 좋게 음식 값을 지불한다.
몇 해 전에 잃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무던히 애를 쓰더니 거의 회복하였는지 지리산 종주를 함께 한 적이 있는데 그 정도라면 어디를 못 가랴.
천왕봉을 목전에 두고 비가 온다는 사이렌 소리에 내려와서는 애꿎은 막걸리만 퍼먹던 기억이 오성이를 보면 생각난다.
친구란 처음 만났던 시절로 돌아가는가 보다.
초등학교 친구는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고등학교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고교 3학년, 다 모이니 3학년시절로 돌아가 있다.
자연스럽게 옛날로 돌아가 고삼의 더벅머리 모습으로 자리에 앉는다.
그 옛날 자리싸움은 사라지고 오는 순서대로 앉는다.
그 시절 새 학기 첫날은 번호를 정하는 날이기도 하다.
일번은 언제나 그 친구, 나머지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뒤 번호를 가지려고 깨끔 발을 하고서 줄을 서는 모습이 선하다. 성옥이가 팔자 바지를 입고 저 뒤에서 있다.
그는 나보다 작으면 작았지 크지 않았는데 십 번쯤 되어 있었고 영길이는 열심히 공부하려함인지 앞자리로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사 번, 크기로는 아마 십 번쯤의 키가 되었을 텐데 밀림에서 영역 다투는 동물들 모양 서로 뒤로 가려는 힘의 법칙이 작용하였는지 또 다시 앞줄로 밀려있다.
조금이라도 뒤에 서려는 것은 그 당시에 서열을 결정하는 것이었으리라.
학기 초에 홍철이는 담임에게 무슨 불경이라도 저질렀는지 일주일인가 한 달을 청소 당번으로 수고하니 우리는 편해서 좋고 놀려서 즐겁다.
신학기의 어수선한 시간은 봄과 같이 어느 틈엔가 재빨리 지나가고 초겨울을 맞이한다.
그 때의 학교생활의 전부였던 예비고사, 우리는 예비고사를 치룬 후 무슨 해방이나 된 것같이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했다.
4반과의 시합이었을 것이다. 일진일퇴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치다가 우리 진영으로 넘어온 공을 차는 일호. 발길질한 공은 방향을 바꾸지도 못한 채 오히려 가속을 내어 우리 골문을 향해 보기 좋게 넣고 말았으니 모두들 어이없어 하였다.
일호에게 면박을 주며 두고두고 입에 오르던 그날의 일들을 나는 생각나는데 당사자 일호는 기억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언제라도 일호가 큰소리치는 일이 있으면 이 사건을 슬쩍 언급한다면 꼬리를 내릴 텐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는지 나에게만은 큰소리치는 일이 없으니 터뜨릴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만나서 학창시절로 돌아가 유쾌한 과거의 이야기나 현재 사는 이야기와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를 나누는 짤막한 시간은 누가 뭐래도 즐겁다.
정기적인 만남이 진행되니 우리의 모임에도 이름이 필요할 것 같아 잠시 생각할 것도 없이 3학년 3반의 모임이니 삼삼회라 지어 보았다.
사전을 찾아보니 삼삼하다는 말은 “사물이나 사람의 생김새나 됨됨이가 마음에 끌리며 그럴듯하다.”와 “잊히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듯 또렷하다.”라고 쓰여 있다. 우리의 모이는 취지와 뜻에 흡사하여 모인 자리에서 말하였더니 반대하는 친구들이 없어 삼삼한 삼삼회가 이렇게 탄생하였다.
어떤 모임이라도 적고 많음의 차이는 있지만 회비를 내니 모이는 공금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도 몇 번을 만나고 나니 백만 원이 넘었다.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지만 많으므로 해서 꼭 좋은 것만이 아님을 나는 안다.
돈을 모으는 목적이 뚜렷하면 몰라도 친목을 도모하고 우정을 나누는 자리에 지나치게 많은 돈은 모임이 깨지는 빌미가 되는 것을 종종 보아 왔다.
어느 선배님은 사십년간 스무 명 남짓 지금까지 잘 유지해 왔었는데 요즈음 모인 자금을 분배하여 각자 갖자는 의견에 상당히 분개하셨다.
사십년의 우정을 돈 백만 원에 깨뜨리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이냐는 것이다.
맞는 말씀이시다.
그러나 사람들 나름대로 각자의 사정이 다르니 어이하리. 어떤 사람은 백만 원이 큰 액수가 안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큰돈이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인데 나누자는 친구들을 나무랄 수만 없을 것이다.
우리 삼삼회도 세월이 지나 거금이 모이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란 보장이 없는 것이니 돈으로 생기는 오해와 분란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회비의 용도를 정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그 돈으로 함께 멋있는 여행을 떠나 학창시절의 추억을 더듬는 것도 좋을 것이고 모교 후배들을 위한 장학 기금으로 희사하는 것도 좋으리라.
언제인가 다음에 만나는 날 모두 모두의 삼삼한 의견을 들어 삼삼하게 사용할 일을 생각하니 내 마음 삼삼해 진다.
삼삼한 모임 오래오래 삼삼하게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다음 모이는 날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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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淳根님의 댓글
71회 3학년6반도 일년에 두번 1월,8월 마지막주 토요일 반창회를 합니다. 그 모임에선 모두들 그 시절로 돌아갑니다. 71회가 석바위 첫회 졸업생입니다.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어제 체육대회에서 인사동 후배들과 69회 선배님 천막에가서 전어구이, 삼겹살, 갈비 등등 맛있게 먹었습니다. 후배들 하는 말 " 69회 선배님들은 참 특이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인물들도 많구요..학교 다닐때도 특별하셨나요?" 저도 그 답을 모르겠네요..ㅎㅎㅎ..언제 윤제형님께서 한 말씀해 주셔야 할 듯..*^
오윤제님의 댓글
뭐 69회라고 특별한 것 있나요? 놀기 좋아 놀다보니 선후배보다 나은 것이 없어 머릿수로 대항하자는 것이지요.
차안수님의 댓글
반창회를 하시다니 부럽습니다. 그동안 친하던 친구들도 요즘은 소식이 뜸하니....
윤휘철님의 댓글
그냥 평범한 일상도 윤제에게는 좋은 글쓰기의 소재가 되는군 자네의 그능력이 부러우이
다음 모임은 11월8일로 정해졌네 미국에서 광호가 온다니 모두 함께해야지
오윤제님의 댓글
그 친구 정말 오랜 만이군. 만나면 내 얼굴 모른다 할까봐 겁이나네
윤용혁님의 댓글
반창회를 통해 잠시 잊었던 고교친구들의 일상을 훈훈하게 그려 주시는 윤제형님의 필력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친구들과의 해후가 아주 즐거우셨군요. 저도 괜시리 즐거워 집니다.
dlghkstjd(님의 댓글
윤인문/윤휘철/윤용혁=blood family...오윤제=side famaly
崔秉秀(69回)님의 댓글
반창회 출석부에 이름 올린 명단이 몇 명인가요?? 광호가 다시 한번 나타나는 군요. 이번엔 얼굴 꼭 좀 봐야지...
오윤제님의 댓글
이십명 되지 지그재그로 나오니 여태 이십며을 채우지 못했네. 아마 11월에는 만월이 되겠군. 문자 많이 많이 때리게. 나 문자 칠 수 없으니 미안하나 어절 수 있나 자네가 도와줘야지. 유명한 독일 작가가 웬일이야, 우리는 삼삼 훼밀리지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삼삼회면 3반 문과일텐데..어찌 원자력을 전공하셨을까? dlghkstjd=환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