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어머니와 쓰는 일기
본문
산새들이 지저귀던 54년의 정든 산골마을을 떠나 그토록 서먹해
하시던 도시생활을 어머니는 누님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기력도
회복하시고 다행히 잘 적응하고 계시다.
논밭으로 헤매시던 어머니의 억센 손이 오랜 세월 앞에 근력의
소실로 어제 성당에서 넘어질까 잡은 손은 보드랍다 못해 힘없이
바르르 떠는 아기 손 같다.
내 어린 시절,
벼 씨 담그기를 시작하여 못자리를 내고 가래 드렁을 맨 다음
날이 가물어 아귀다툼이 되는 논에 물대기는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가까스로 일꾼들을 모아 정해진 날에 모를 내려면 졸졸졸
흐르는 개울의 바닥을 파 내려가며 밤새 물을 대었다.
그러나 이것도 위에서 누가 틀어막으면 허사였다.
한 밤중 곤하게 자는 나를 흔들어 깨우신 어머니는 “애, 어서 일어나라!
가자!“
깜깜한 그믐밤, 물 대는 전쟁터로 이끌고 가시더니 삽으로 개울을 가로막은
보를 하나씩 터 내려가셨다.
한참을 터 내려가시는데 어머니에게 증손자뻘 되는 젊은이가 보를 지키며
막무가내로 양보를 안 해 주고 있었다.
“이봐! 젊은이, 자네 네 논에는 물이 벙벙해. 너무 그러지 말게.”하시며
삽으로 푹 보 드렁을 과감히 가르셨다.
쏴하며 흐르는 물소리가 그날따라 그렇게 정답게 들릴 수가 없었다.
“애야, 이곳을 꽉 지키고 있어라. 언제 저 놈이 와서 틀어막을 줄
모르니까 말이다. “
“네! 어머니.” 졸린 눈을 비비며 문제의 보 옆에 웅크리고 앉았다.
건너편 매당지에서 캥캥거리며 들리는 여우의 울음소리는 나의 담력을
시험하고 있었다.
둥구네 개울둑에서 귀신을 봤다는 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용내천 시냇가를 따라 내려가신 어머니의 모습은 밤이 깊도록 보이지
않고 아까 그 청년이 다시 나타났다.
“할머이, 그만 물을 대시겨!”
나는 숨죽여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할머이!, 언제까지 대실꺼이꺄? “
칠흑같이 어두운 밤,
나를 어머니로 착각하고 어머니의 성격을 잘 아는 그는 한참이나 계속해서
혼자 중얼거리더니 지친 듯 결국 자리를 뜨고 말았다.
논에 물이 빙판을 이루듯 흥건해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어머니는 나타나셨다.
이미 동쪽하늘에는 희끗하게 먼동이 터 오고 있었다.
어머니의 그런 극성스러움이 없었다면 올해 논농사를 포기할 뻔 했다.
잠시도 쉴 틈 없이 논밭을 오가며 정성스레 논에 요소비료를 뿌리고 서툰
글씨로 누런 비료포대 종이에 “소다”라고 써 물꼬에 붙여 놨는데 얌체 같은
아래 집 논에서 물을 터가 아주 속상해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무더운 여름날,
혼자 수천 평의 논김을 매고 호리돌이라는 맹독성의 농약을 뿌리시다 잠시
정신을 잃으시어 논바닥에 그만 쓰러지셨다.
잘 자라는 벼를 빨갛게 물들여 타 죽이는 도열병에 어머니의 목숨마저
담보로 큰일 날 일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겨우 집으로 돌아 오셨다.
당시 유행하던 흰빛잎마름병, 잎집무늬마름병, 각종 바이러스병과 이화명충,
벼멸구, 매미충류 등이 중요한 벼의 병 ·해충으로 벼의 생육과 수확량의
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고 있었다는데 이에 억세고 부지런한
어머니는 분말가루를 들고 논에 들어가 갑갑하다고 마스크 없이 농약을 치시다
당신의 기관지를 거의 다 버리셨다.
이약 저 약을 다 써보다 안 듣자 누가 그랬는지 민간요법으로 땅벌집이 해소천식에
좋다는 말씀을 듣고 그것을 구해 한 솥을 끓여 한꺼번에 많이 드시다 오히려 숨을
더 헐떡거리시니 까맣게 타 들어가는 어머니의 얼굴과 쾡 한 두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눈물이 야윈 볼을 타고 흘렀다.
지금도 어머니의 그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어제 성당에서 조용한 미사 중 옆자리 노구의 어머니가 내는 심한 기침소리를
들었다.
당신의 몸을 보살피지 않고 오직 자식들을 떳떳이 키워 고생시키지 않겠노라는
일념의 부산물이 계속해서 어머니를 괴롭히고 있다.
오늘따라 집안에서 입던 평상복에 미사 보를 쓰시고 영성체를 하러 나갈 때
비틀거리며 다른 줄로 자꾸 가시려는 어머니가 더 이상 이제 부끄럽지가 않다.
어릴 때 새까맣게 탄 어머니를 선생님들이 볼까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아니 그 누구의 어머니보다 소중하고 자랑스럽다.
이대로도 좋으니 그저 자식들 곁에만 오래오래 머물러 주세요.
사랑하는 어머니!
댓글목록 0
윤인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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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님의 댓글
어머니, 당신은 제게 행복을 주셨습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
전 신에게 기도를 드립니다.
항상 당신에게 축복을 내리게 해달라고
매일 밤낮으로 말예요.
나의 어머니! 이제 전 장성했습니다.
그리고 제 주관대로 살아갈 수 있답니다.
이젠 당신께서 제게 주신 것들을
당신께 드리고 싶습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 비가 오는군요. 잘 지내시죠? 뭐니뭐니해도 내집이 제일 편하고 좋군요.
다양성의 이웃을 보았답니다. 안티도 있고 반기는 좋은 이웃도 있구요.
저희집 사랑채는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예의를 갖춘 손님이라면 언제나 정중하게 맞아야겠지요.
좋은 시간 되세요.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용혁후배! 타학교 동문 홈피가서 섭섭치 않은 부분이 있나 보구료..인고인의 너그러운 배려의 미덕이 그 쪽에선 통하지 않았을 런지도..항상 우리는 용혁후배가 말한대로 언제나 정중하게 손님을 맞이하도록 노력해보세..
이기호 67님의 댓글
용혁후배의 글, 잘 읽었읍니다. 눈물이 찔끔! 화제를 돌려서, 강화 사투리 넘 웃긴다! 할머이, 그만 물대시겨! 언제까지 대실 꺼이꺄? ㅋㅋ
윤용혁님의 댓글
이기호 선배님,
장마와 무더위에 그간 안녕하셨어요?
제 글을 마음으로 읽어 주시는 선배님이 계시기에 어머니에 대한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강화사투리가 다양하답니다. "빵 있시갸? 어디 가시꺄? 성님!" 등등 주로 의문문에서는 꺄자로 많이 끝납니다. 선배님, 즐거운 저녁되세요.
김태희(101)님의 댓글
자식들 뒷바라지 하시다가 맹독농약 후유증 얻어 천식으로 고생하신다니...<br>
좀 더 일찍 자녀들 곁으로 모셨으면 좋았을 걸...안타깝네요. (야단 치고 싶음)<br>
아들애가 어릴때부터 천식으로 고생을 해서 남의 심한기침소리만 들어도 제 맘이 찢어집니다.잘 해 드리세요.
오윤제님의 댓글
어제도 비가 왔는데 논에 물 대려 어머님과 함께 한밤을 지내신 않았겠지요?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인데 언젠가는 추수(?)때 보내면 않되나요? 우리의 잘됨이 어머니의 극성스런 정성을 보고 갑니다.
지민구님의 댓글
요즘 강화 자주 가게 되는 데...선배님 글 읽으면서 강화에 가면 괜히 맘이 짠~~합니다...어머님하고 같이 영성체 한게 언제인지 가물거리네요...
윤용혁님의 댓글
김태희님, 무지의 소치로 그 결과가 평생 어머니의 호흡기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고사로 이제와 자식곁에 모심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천식의 고통은 아는 사람만이 알겠지요. 무더위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윤용혁님의 댓글
오윤제 선배님, 추수가 주는 의미가 크군요. 지극정성의 어머니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희들이 없었겠지요. 건필하세요.선배님.
윤용혁님의 댓글
민구후배가 제 고향 강화에 자주 가시는군요? 어머니와 영성체를 그리는 후배님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 헤아려 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안남헌(82회)님의 댓글
제가 살던 창후리는 수로가 잘되어있어 물걱정을 않했지만, 웃동네인 이강리는 초등시절 학교에서 자원봉사로 호미를 들고 말뚝모를 심으러 나갔었지요.
안남헌(82회)님의 댓글
기침에는 제주도에서 나는 백련초가 아주 효험이 있다던데요.
윤용혁님의 댓글
남헌후배 고맙네.백련초도 알려주고... 이강리가 어머니의 친정이자 나의 외가일세.
강화 후배님, 언제나 건강하고 잘 지내시구료.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세월앞엔 장사 없나봅니다..저희엄니도 2달전 잘못 주저 앉으시더니 기력이..애틋한 용혁가족 보기 너무 좋습니다..울엄니도 강화의 마녀급였는데
윤용혁님의 댓글
환성형님, 강화에 힘드신 발걸을을 옮기시던 어머니께서 기력을 잃고 계시는군요.
마음이 아픕니다. 세월의 흐름이 무상하군요. 어머니의 건강을 빌어 봅니다.
이인선님의 댓글
강화후배
오랜만이에요.
하도 안와서 기다리다가 지쳐서 대신 왔어요.
우리 친구가 후배님 글을 또 읽고 싶다고 이야기할때 동감이었고...
우리들은 참 미안하게 생각해요.
형님이랑 들어와서 더 재미있어지고 있었는데
참 아쉽구만요.
어머님 이야기 참 감동을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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