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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동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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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동 길
파라다이스 호텔에 갈일이 생겼다.
그런 모임에 나 같은 사람도 불러주니 영광이라 생각하며 어떻게 그곳을 갈 것인가 생각해 본다.
홍예문을 지나서 맥아더장군동상을 둘러보고 공원 하늘을 나르던 비둘기들도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고 그때에 청춘을 구가하던 나무들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석정루에 올라 인천항이며 월미도의 변한 풍경을 보고 싶기도 하여 집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답동에 내리니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아 먼저 한 계획을 지우고 그냥 가까운 신포동 길로 지나가게 되었다.
옛 키네마 극장과 동방극장의 사잇길로 접어든 시각은 반시간의 여유가 있으므로 이 길로 천천히 가더라도 시간은 넉넉하였다.
저녁으로 접어드는 신포동 골목길은 한산하다.
명동이나 충무로에 비하여 분명 그때에도 조금은 떨어지는 거리었지만 그래도 신포동은 분명 인천 패션의 중심가였고 그 거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곳은 인천의 문화가 숨 쉬던 거리가 아니었던가.
키네마, 동방극장은 물론 애관극장과 인영극장이 있어 영화광은 아닐지라도 학창시절 그곳에 한두 번 들러본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단체로 관람을 하였을 때는 마음껏 웃었을 테지만 친구들과 몰래 들어와서 킥킥거리다가 훈육선생님께 걸렸더라면 치도곤을 맞았을 것이다.
다행히 저 앞에서 무슨 먹이라도 찾듯이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먼저 보았다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키지 않도록 허리를 숙여 살금살금 자리를 떠나 도망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양키시장에서 장만한 쌍마표 청바지 입고 자랑삼아 자유공원을 나다녔을 친구들은 신포동 어느 골목에서 자장면 한 그릇 시켜 먹던 추억도 남아있을 것이다.
홍예문을 지나서 시민회관 지나노라면 문득 싸구려 영화표 구해 비오는 영화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시민회관이 주안으로 이사하더니 다시 관교로 와서 멋있게 단장을 하고 이름까지 문예회관으로 변신하였다.
또 키네마와 동방극장이 사라지고 시청까지 이사한 신포동 일대는 활력을 잃은 지 오래되고 보니 지나가는 내 발걸음도 흥이 나질 않는다.
댓집 걸러 문 닫은 상점들의 창문은 먼지가 찌들어 있고 신문지는 너절하게 문 안으로 가득 쌓여 있었다.
한적한 거리에서 아주머니들이 침상에 앉아 부채를 부치며 환담을 한다. 몇 발자국 지나니 나이 드신 할머니도 같은 모습이시다.
한 참 바쁠 이 시간에 밖에 나와 이야기할 여유가 있을까.
아마 왜 이다지 손님이 없을까 걱정하는 소리인 것 같아 나 또한 걱정된다.
지나는 차량도 없고 스치는 사람도 없으니 배고픈 사람도 없는 것이다.
패션을 감상할 사람들은 학교 따라 주안으로 송도로 연수동으로 이사 갔으니 그 때의 패션 솜씨로는 이사 간 사람들을 다시 부르기란 역부족이리라.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섭섭해 할 시간에 그들은 다른 무엇을 궁리했어야 마땅하였다.
왕국이 천년만년이라도 가는 것인 줄 알고 그 모습 그대로이니 외면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허름한 일본식 집을 얼굴만 살짝 화장을 한다고 현대식 건물이 되는 것이 아니니 내가 보기에도 딱했다.
시청 자리이던 중구청이나마 시대를 알아서 인지 깨끗이 단장을 하고 멋있게 서 있었다.
신포동을 지나 북성동에 들어서니 이웃이라도 거리의 풍경이 사뭇 다르다.
마치 일본 구경을 마치고 중국을 여행을 하는 듯하다.
조계라는 것을 몰랐을 때는 다 같은 자유공원이요, 인천인 것을 이렇게 표시하여 경계를 나누니 신포동은 일본의 어느 작은 도시의 골목을 지나는 것 같고 북성동은 중국의 이름 모를 도시에서 배회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중국 조계에는 <우리의 화두는 중국>이라는 듯 커다랗게 페루를 세우고 떠나간 사람을 부르지만 떠나간 사람들은 요지부동인 것을 어이하리.
길 따라 벽에 그려놓은 중국의 역사와 야사의 영웅호걸들이 어둠이 깃드는 거리에서 법석이는 것 같아 머리가 요란하다.
도원결의하는 유비, 관우, 장비가 있고 조조가 있으며 손권이 저녁노을에 한가로이 독득한 자신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곳에 조조의 시 한귀라도 새겨 놓았더라면 한 시대를 평정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엿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긴다.
길옆에는 잘 차려진 상점이 있다. 울긋불긋한 상품들은 눈길을 끈다.
한번 눈으로만 돌아보아도 다 알만한 상품들은 가득한데 그 상품 누가 살까.
대한민국을 여행 온 미국사람이 중국 상품 살 리 없고 일본 사람 굳이 여기에서 살 리 없으니 그것을 살 사람들은 인천을 여행 온 국내 관광객일 텐데 우리 인천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 많다고 듣지 못하였으니 아마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여행에 바빠 못 챙긴 선물 이곳에서 구입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골목길은 어느덧 비탈길로 접어든다.
이곳을 내려가면 바로 파라다이스 호텔이다.
호텔 길은 에쿠스도 올라오고 오피러스도 오른다. 물론 체어먼도 오른다.
문득 정은이가 얼마 전에 사다준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집 <인연>에 수록된 가든파티가 생각난다.
영국 대사관에서 엘리자베스 여왕 생일 축하 가든파티에 초대받고 케이크 한 조각 들고 선생님은 돌아가는 길이다.
즐비하게 세워둔 자동차 틈으로 비집고 나오는 선생님에게 수위가 티켓을 보여 달란다.
좀 어리둥절하여 쳐다보면서 웃음을 주었다는 장면을 떠올리며 천천히 오르는 고급 승용차를 뒤 따르며 나도 말없이 웃었다.
댓글목록 0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저는 가끔 황량해버린 신포동길을 걷습니다..차이나서 짜장/만두도 먹고 따님의 피천득 인연인지 형님글엔 언제나 친근감 묻어납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인천의 골목길을 걸으시며 잔잔히 골목길을 스켓치해 주셨군요.늘 푸근함이 묻어나는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윤인문님의 댓글
저도 신포시장에서 야채치킨 러시안 호프집하는 친구집을 가끔 갈 때마다 느끼는건데 그 옛날 신포동의 영화를 어디로 갔는지..많은 아쉬움이 남는답니다. 언제 우리 인사동 신포동에서 번개한번 치시지요?
이상동님의 댓글
키네마그장 동방극장 진짜루 새록 새록 피어남니다. 키네마극장하구 울집하구는 붙어있었는뎅...외환은행이 들어서고 그곳 주차장이 울집이었거든요ㅋㅋ 그사잇길에 유래일식 한국총포사 답동성당앞 삼미제과 화신면옥 시장입구 대동강집 경동사거리에 당시에 퍼모스트라는 아이스크림가게두 첨 생겼었구요..캬~ 그리워라ㅋ
오윤제님의 댓글
키네마 극장서 단체영화관람하고 나오는데 컴컴한 밤이더군요. 밤중에 잠간 길을 잃고 헤메이던 일도 기억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