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문학기행의 매력과 그 여파로 다음해 여름휴가는 영국의 캠브리지와
옥스퍼드대 출신들이 이민 와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사이좋게 산다는 맑고
깨끗한 대자연의 뉴질랜드 남북 섬을 관광하기로 하고 집사람과 딸아이를
데리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먼저 뉴질랜드의 수도 북 섬 오클랜드에 잠시 내려앉더니 우리를
어느새 남 섬의 크라이스트처치에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
영국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고풍스런 교회를 중심으로 사방이 탁 트인
방사형의 도로가 퍽이나 인상적이다.
겨울이라 쌀쌀한데 딸아이와 동갑내기인 아들과 같이 온 집은 짐이 프랑스로
잘못 가 갈아입을 옷이 없는 아버지와 아들이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다.
그 짐이 다시 돌아오려면 이삼일은 족히 걸린다니 그간 감기에 걸릴까 심히
걱정스럽다.
그 집 아버지가 프랑스로 출장을 갔었는데 여행 가방에 그 라벨을 그대로
붙여 놓아 수하물 팀에서 착각을 일으켜 짐이 엉뚱한 데로 가는 사고가 난
것이란다.
여행첫날, 호텔에서 잠을 청하는데 고막을 찢을 듯 고음의 화재경보기가
크게 울린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호텔직원들이 문을 두드리며 빨리 대피
하라고 영어로 황급히 말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값비싼 캠코더와 현금지갑을 챙겨 호텔 프런트에
나서니 일본인들은 이미 내복차림과 팬티바람으로 담요를 머리에 뒤집어
쓴 채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관광객들은 모두가 짐이라는 짐은 다 챙겨 제일 늦게 프런트에
나타났다.
실제상황이라면 한국인들은 불에 다 타 죽었을 것이다.
한국처럼 민방공훈련도 아니고 무슨 일인가하고 잠시 기다리니 소방대원들이
중무장을 하고 호텔 2층으로 올라가며 “하이!” 하며 빙그레 웃어 주는 여유를
보였다.
확인 후 화재는 아니고 비상벨이 오작동 되었다며 상황해지를 알렸다.
여행의 흥분과 설렘인지 새벽에 일찍 잠이 깨어 뒤척이는데 또 어제 저녁 때와
같이 요란스럽게 비상벨이 삐이익 거리며 귀청을 때린다.
“화이어! 화이어!” 호텔종업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아침공기를 뒤 흔들어
놓고 있었다.
집사람과 딸아이를 깨워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그래도 돈 가방과
캠코더를 챙겨 나가니 독일과 일본인 관광객들은 대부분 전라의 상태인데
유독 우리들만 여행 가방에 챙길 것은 다 챙겨 제일 늦게 피신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2층에서 화재경보기가 요란하게 울렸으나 다행히 화재는
아니었다.
어제 저녁과 달리 사람들의 입에서 곧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 외국인은 가운데 손가락을 곧추세우고 “x 세컨드 플로어!”라며 거친
욕설을 퍼부어도 소방대원들은 묵묵히 원칙대로 자기의 임무를 다했다.
알고 보니 한국인 관광객 중에 한 젊은 친구가 호텔2층 화장실에서
줄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예민한 센서가 화재로 인식하고 경보기를 연신
울려 댄 것이다.
참으로 화가 났지만 어글리 코리안이 어딘들 있기 마련이기에 별 수 없이
넘어갔다.
겨울철 퀸스타운에서 바위에 부딪칠 듯 계곡물을 달리는 쾌속보트의
스릴로 그간의 불편함과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졌다.
밀 포드 사운드로 가는 길의 설경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그만이었다.
시상이 저절로 떠올랐다.
밀 포드 사운드로 가는 길,
그러나 다음이 잘 이어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침에 먹은 베이컨이 짜
물이 자꾸 생각나 그렇다.
맑은 공기, 수려한 자연환경,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뤄 사는 그곳,
양떼들이 노니는 겨울 목장, 피오르드랜드의 침식해안 유람, 빙하, 헬기로
오른 만년설이 뒤덮고 있는 서든 알프스의 최고봉 마운틴 쿡 산의 설경은
태초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모 재벌 총수가 가이드에게 “이 산에서 오줌 눈 사람이 있는가?”
묻고는 없다하니 배짱 좋게 길게 갈지자를 그려 놓았다는 설산 최고봉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 이후로 가이드는 습지대 하이킹 코스에서 미심쩍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용변을 함부로 볼까봐 노심초사 하던 중 묘안을 짜냈는데, 현지인에게 들키면
무조건 “스미마셍” 하며 빙그레 웃으라고 일렀다.
얄미운 일본인들에게 전가를 시킨다하나 그래서는 안 될 일이라 생각했다.
이제 관광의 에티켓을 잘 지킬 줄 아는 문화국민을 꿈꾸어 보았다.
이동 중 잠시 지루해 하면 가이드가 앞에 나서 퀴즈를 낸다.
우리 몸에 세 단어로 된 지자로 끝나는 말 다섯 개를 맞춰보라는 것이다.
허벅지, 장딴지, 젖꼭지, 모가지...
“배떼지? 아니요. 코딱지? 땡.”
우리일행 중에는 내과의사와 이비인후과 의사 부부, 그리고 약사인 나도
있으나 그 하나를 결국 못 맞추고 있었다.
머리에 쥐가 나도록 생각했는데 결국은 비전문가인 우리 딸아이가 맞췄다.
정답은 기관지였다. 그러나 상품은 없었다.
오랜 빙하현상이 만들어 놓은 수정처럼 맑은 와나카 호수, 귀에 익은 마오리족의
연가가 귀에 농익다.
“와카레 와레 와나~ 나 요기~~” 그 다음은 생각이 잘 나질 않는다.
북 섬의 공원은 영국의 하이드파크를 그대로 모방한 듯 자연 친화적으로
잘 가꿔져 있어 고니와 오리, 그리고 온갖 새들이 인간과 하나 되어
정답게 노닐고 있다.
계란이 썩은 듯 유황냄새를 품기는 로토루아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며
갓 결혼한 신혼부부 팀과 야외 온천욕을 하고 폴로네시안 민속촌에서
저녁과 함께 마오리족의 전통 민속공연을 보던 중 우리의 민요 아리랑을
그 공연 팀이 부르는데 발음이 정확치 않아 아리랑이 심히 왜곡되고
있었다.
한국인을 찾기에 용기를 낸 나는 무대에 나가 마이크를 잡고 독일인,
일본인, 영국인, 중국인, 인도인, 미국인 관광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 보란 듯이 우리의 민요 아리랑을 춤까지 추어 가며 구성지게 부르니
휘파람과 박수소리가 요란하였다.
돌아오는 날 한반도 상공에는 물을 잔뜩 먹은 먹구름과 난기류로 인한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하고 불안하게 계속 선회를 하고 있었다.
결국 비행기는 김해공항으로 회항지시를 받고 그곳 활주로에 착륙하는데
심하게 요동을 쳤다.
“우두두둑”
그런데 신혼부부 중 신랑이 쓰고 있던 안경의 한쪽 알이 갑자기 빠져
기내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얼굴을 쳐다보니 웃음뿐이 안 나왔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눈알이 빠졌다. 실제상황이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관제탑 나와라!“
생전 골프채를 잡아 보지도 못했던 나보고 관광은 대충하고 골프를 치자던 그
유머러스한 젊은 친구가 또 한바탕 우리를 웃기고 있었다.
그 친구, 어디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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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제님의 댓글
누구는 우주, 누구는 뉴질... 에라 나는 주말에 양구스탄질란드나 갈란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메이데이가 뭔말이지? 노동절 아닌가...
윤용혁님의 댓글
오윤제 형님, 양구에 가시는군요? 좋은 시간 되세요.
환성형, 메이데이 메이데이. SOS 잘 아시면서 그러죠? 다 알아요. ㅎㅎㅎㅎ
이기석님의 댓글
오클랜드, 로투루아, 크라이스트처치, 퀸스타운, 밀포드사운드,,,,,아흐!! 가고싶네요...진짜루
윤용혁님의 댓글
기석후배님, 짬을 내 다녀오시게. 여행은 추억을 먹고 산다오.
차안수님의 댓글
마오리족과 만나면 코끼리 비비고....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 안수 후배 맞아요. 그들의 정겨운 인사법, 즐거운 주말 되시게.
윤인문님의 댓글
일주일을 쉬었다가 몰아서 꼬리를 달려고 하니 바쁘네요..ㅎㅎ..용혁후배는 학교 다닐때 민방공 훈련을 열심히 한듯..거 어느 학교요? ㅋㅋ
윤용혁님의 댓글
인천고입니다. 잘 지내시죠?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