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선무당
작성자 : 윤용혁
작성일 : 2007.11.01 09:37
조회수 :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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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일요일 북한산을 등반하였다. 구파발역을 내려 시내버스를 타려니 10월의 마지막 단풍을 만끽하려는 듯 줄이 나라배로 섰다. 등산의 붐이 분 것은 사실이다. 울긋불긋 단풍만큼이나 각지에서 몰려든 등산객들은 순례자처럼 산을 향해 줄줄이 오른다. 산은 꾸역꾸역 사람을 먹고 일부는 아래로 쏟는다. 계곡의 단풍을 쥐어짜면 줄줄 빨간 물, 노란 물을 금방이라도 토해 놓을 것 같다. 인산인해를 이룬 산은 여기저기서 교통체증이다. 여기에 나 또한 합류한 중생이다. 맑은 시냇물을 타고 흐르는 목탁소리, 등산화에 짓눌려 비명을 지르는 가랑잎, 계곡물에 손을 씻으며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나무의 머리채를 뒤 흔들며 내는 바람소리, 산은 정적을 깨고 부산하다. 죽순처럼 우뚝 솟은 인수봉을 바라보니 학창시절 후배들과 북한산을 오르다 일어난 일로 미소 짓는다. 아니 지금은 웃을 수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단지 나 혼자 등산화를 신었다는 그리고 군에 갔다 왔다는 이유로 등반대장이 되었다. 대부분 운동화에 쫄래쫄래 산을 따라나선 남녀후배들은 선배만을 철석같이 믿고 모두가 즐겁다. 산행에 기본수칙도 모르던 나는 단지 옛날에 설악산에 다녀온 것과 그리고 몇 년 전 사귀던 여자 친구랑 딱한 번 북한산을 오른 것이 다 인데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한 등반대장처럼 허드레를 떠니 남이 알까 우습다. 눈여겨둔 여학생 후배가 있던 차라 더욱 잘난 척을 하였다. 누가 보면 진짜 산악인 같다. 그런데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고 올랐던 코스로 내려가지를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고 엉뚱한 하산 길을 택해 내려 가다보니 아래는 낭떠러지로 길이 뚝 끊기었다. 아무리 기억을 해도 전에 내려왔던 길이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등반대장으로서 결단을 내려야하는데 어떤 후배는 옆길로 가자, 어떤 후배는 왔던 길로 되돌아가자 의견이 분분하였다. 분명 이 길이었는데 웬 벼랑에 칡넝쿨만 남아 다리를 붙드는지 모르겠다. 어렴풋이 어디서 주워들은 기억이 났다.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산등성이로 올라라” 하는 말이었다. 워낙 하산시간도 늦은 터에 길을 수정하니 이미 주위는 땅거미가 지고 길이 하나도 안 보였다. 큰일이다. 랜턴을 가진 것도 아니고 오직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앞사람 엉덩이에 코를 박거나 네발달린 짐승처럼 뒤로 내려오는 남학생 후배도 있었다. 여자 후배들은 바위에 부딪치고 나무에 긁힐 때 마다 비명을 지르더니 급기야 울음을 터트렸다. 이십 여명이 떼를 지어 나 뒹굴고 넘어지고 찢기며 하산하는 길이란 아주 가관이었다. 아니 죽을 맛이었다. 수십 미터짜리 구렁이들 같다. 만약에 한명이라도 발을 헛디뎌 벼랑으로 굴러 떨어진다면 어쩌란 말인가? 여기저기서 등반대장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말이 대장이지 나도 무릎을 돌에 쪄 걸을 수가 없고 얼굴은 긁히고 옷은 찢어져 품위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기도를 했다. “하느님, 살려주세요. 다음부터 성당에도 열심히 나갈게요. 제발 한명도 다치지 않고 길을 내려가게 해 주세요.“ 기적처럼 불빛이 보였다. 가까스로 평지에 들어선 것이다. 살았다. 다행히 크게 다친 후배들은 없다. 여학생들은 울음을 멈췄고 눈 여겨둔 여자 후배는 아까부터 말이 없다. 무척 실망했으리라. 난들 어쩌란 말인가? 단지 나이가 좀 많다는 이유로 등반대장이 된 나는 에고 그날 떡 됐다. 그렇다. 한 집단도 그렇고 더구나 나라의 지도자란 지혜와 바른 길로 인도 할 수 있는 덕목과 비전을 충분히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한 사람이 잘못된 길을 선택한다면 이처럼 모두가 불행해 지기 때문이다. 잘 판단할 문제이다. 그날 이후로 난 이미지 회복을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야만 했다. 호주머니도 털어야 했고 겸손도 배웠다. 그날 후배들아, 정말 미안해. |
댓글목록 0
崔秉秀(69回)님의 댓글
북한산을 우습게 보셨군요... 무지 힘든 코스로 하산하느라 고생 마니 하였네요.. 2년전에 의상봉코스로 갔다가 죽음의 길로 들어선 줄로 알았습니다..ㅋㅋ.. 4시간반 동안 네발로 기어 다니다가 가까스로 하산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젠 북한산성입구 <-> 대남문코스로만 다닙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병수형님도 저 처럼 혼나셨군요?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정말 가볍게 보아서는 큰일 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어요. 병수형님, 지난 생신 축하드려요. 늘 건강하시구요.
윤인문님의 댓글
용혁후배..아직도 등산하는가?..싸이클, 배드민턴, 테니스, 그리고..등등등..체력이 놀라울 따름이오..*^^*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 주특기가 없어 이것저것 기웃거리니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어요. 그래도 즐겁습니다.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