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애마와 작별
본문
저는 어려서부터 차에 관심이 많았답니다. 어쩌다 다니는 버스의 뒤꽁무니에서 뿜어대는 시커먼 연기를 흠뻑 뒤집어쓰고 친구들과 소리 지르며 그 뒤를 쫒아갔지요. 그 냄새가 뭐가 그리 좋은 지 기름 냄새를 킁킁 들이키며 달려갔지요. 통나무를 잘라 구루마라는 네 바퀴 달린 놀이기구를 만드는데 저의 집에는 큰 톱 같은 연장이 없어 무진장 애를 먹었지요. 가까스로 완성하여 꼬마 애들을 태워 삐걱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나무자동차 구루마에 저 자신도 아주 즐거워했지요. 어떤 때는 수수깡을 잘라 앞부분을 구부려 땅에 질질 끌며 누구도 알 수 없는 무수한 그림을 길게 그렸고 자동차의 뿡뿡 소리를 입으로 내며 무작정 어디론가 내달렸지요. 어린이의 상상으로 미국도 가보고 영국도 가고 아프리카에도 갔지요. 하늘을 날고 물속도 다니는 자동차를 꿈꾸어 보았답니다. 결혼 후 제가 처음 마이카시대에 구입한 차가 “르망”이었어요. 장롱 속 운전면허증이라 집사람을 학교에 출근시킨다고 처음 차를 몰고 나갔는데 언덕에서 시동이 자꾸 꺼지며 뒤로 밀리는 거예요. 뒤 따르던 차들 놀라 뒤로 내 빼고 제 등짝에서는 땀이 줄줄 흐르더군요. 해가 쨍쨍 내리쬐는 아침의 출근길, 윈도우 브러시를 제가 잘못 건드려 마구 춤추더군요. 임신으로 배가 남산만한 조수석에 앉은 처가 그 와중에 묻더군요. “제는 왜 혼자 좋다고 신나서 춤추지?” 경황이 없는 저는 “자동이라 그래.” 라고 진땀을 빼며 답을 했지요. 선생인 집사람을 겨우 늦지 않게 학교에 내려주고 큰 도로에 난생처음 차를 몰고 진입하려는데 쌩쌩 달려오는 차들이 너무 무서워 수동변속기인 차의 엔진을 자꾸 꺼트렸지요.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시선에 차라리 차를 버리고 도망치고 싶더군요. 그 마저도 약국 앞에 잘 세워 놓았는데 술 취한 운전자가 트럭으로 문짝을 크게 뻥 뚫어 놓고 뺑소니를 쳤어요. 잡았죠. 제가 누굽니까? 목격자의 진술로 조용히 잘 처리하였죠. 자동차의 왕 헨리포드 씨네 차도 십년간 타 보던 중 이런 일도 있었어요. 외식으로 저녁 때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러 가는데 뒤에서 무소차량이 꽝하고 들이 받는 거예요. 정신을 차리고 내려서 운전자에게 다가가니 저 보고 큐 브레이크를 잡았다고 오히려 목청을 높이더군요. 심지어 사람이 죽지 않았는데 뭘 그러냐는 것이에요. 아주 무례 한 이더군요. 또 한 번은 좌회전을 하는데 멀쩡히 서 있던 무소차가 후진하며 제 운전석을 밀고 들어오는 거예요. 우지직하며 시커먼 물체가 얼굴을 덮는 순간 이렇게도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소차량과는 두 번씩이나 충돌하는 아주 악연이었지요. 튼튼한 지프 차량만 고집하던 중 드디어 삼년 전 꿈에 그리던 독일 장인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BMW서브형 차를 갖게 되었어요.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이 기분이 좋았어요. 드라이빙의 기쁨, 가랑가랑 질주하고자하는 야성적 본능, 정말 차는 좋더군요. 그런데 대를 물려도 좋다는 차를 부모님을 모시고 속초에 다녀온 것을 마지막으로 작별을 고하고 말았어요. 속초의 리조트 옆 주차장에 하룻밤 맡겼던 제 차와 딸아이의 차중에 그만 새로 산 빨간색 딸아이의 차 조수석 두 문짝을 누군가 고의로 파손하고 도망을 쳤더군요. 아주 황당한 사건이었어요. 제차까지 그랬다면 어떠했겠어요. 차는 소모품이라지만 막상 차가 찌그러졌을 때는 기분이 영 안 좋더군요. 집에 돌아 온 후 관리하기 힘들다는 핑계로 제 차를 팔았어요. 그리고 과감히 자전거로 바꾸었지요. 헬멧도 사고 고글안경을 끼니 그럴 듯 하더군요. 마음을 비우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비움의 철학과 느림의 미학 속에 앞만 보고 달리던 제 자신을 돌이켜 보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 되더군요. 자전거로 약 40분 걸리는 출퇴근을 하면서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공원의 풍경과 물론 오늘아침처럼 예기치 않은 작달비로 어릴 적에나 먹어 본 빗물이 입으로 흘러 들어오고 옷은 흠뻑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행복하답니다. 여러분, 저처럼 조금만 뒤를 보세요. 그 무엇인가 보인답니다. 빠른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더군요. 핸드폰도 없이 당분간 아날로그로 살아가렵니다. |
댓글목록 0
윤인문님의 댓글
오늘 용혁후배의 글을 보니 溫故知新이라는 성어가 생각나는군요..자전거로 건강도 지키고 핸드폰의 노예도 안되고..참 좋습니다.
윤인문님의 댓글
그리고 음주운전 걱정이 없고..기름값도 안들고 대리운전비도 쓸일이 없네요..ㅋㅋ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 제 마음을 읽고 계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일석이조가 되는 것 같습니다.허나 비오는 오늘같은 날은 처량하기 그지 없군요. ㅎㅎㅎ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어요. 비에 흠뻑 젖었지요. 감사합니다. 인문형.
차안수님의 댓글
대단한 결심이십니다. 핸드폰은 없이 살아도 될것 같은데 체중초과로 자전거는 맞는게 없어요..알아보았더니 85Kg이 제한무게라더군요.
오윤제님의 댓글
채우는 것도 행복이지만 비우는 것 또한 행복입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안수 후배님, 특수제작을 의뢰하지요.
그 보다도 속보가 건강과 체중유지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건강한 날 되시게.
윤용혁님의 댓글
윤제형님,휴가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비우면 비울 수록 마음이 편해지는군요. 감사합니다.
안남헌(82회)님의 댓글
베엠베X5... 꿈속의 찬데...^^ 자전거 출퇴근! 한겨울 걱정하며 실천을 못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 남헌후배, 타이거 마스크를 쓰면 가능할 것 같아요.
언제나 듬직한 나의 후배, 건강하시게.
이동열님의 댓글
옷이 화려해,,,ㅎ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썬글라스는 꽤 비싼것 같어..ㅋ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 동열형, 인문형, 맞습니다. 잘 지내시죠? 준결승전이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