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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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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요
뮤지컬 관람 티켓이 있으니 함께 하지 않겠느냐는 친구의 전화가 왔다.
나는 그 전화를 술 한 잔 하지 않겠냐는 소리로 듣고 일찌감치 아내에게 뮤지컬을 감상하겠노라며 다섯 시 쯤에서 집을 나섰다.
특별한 친구의 호출 이외에는 만나는 것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아내라서 친구들과 술이라도 함께하려면 눈치가 보이는 처지이니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자리를 뜨려는 것이기도 하다.
일찍 나온 김에 사우나에 들러 몸을 풀고 문예회관에 도착한 시간은 아직도 약속 시간은 한 시간 가량 남아 있었다.
그 남은 시간을 그곳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전시회나 국화전시회든가 서예전시회를 볼 요량으로 일찍 떠난 것이지만 전시실에 들어서니 공교롭게도 전시실은 대대적인 수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한 바퀴 빙 돌아 전시장을 빠져 나오는데 다행히 소전시실 문이 빼끔 열려있는 것이 눈에 띠었다.
들여다보니 어느 단체에서 사진전을 개최하고자 분주하게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진들의 대부분은 벽에 설치되어 있고 작가인지 일꾼인지는 모르지만 천정에 철사 줄을 매달고 나머지 몇 작품을 분주하게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관람하여도 될 듯싶어 조심스럽게 전시물을 감상하였다.
어디에서 찍은 것인지는 몰라도 사진들은 모두 구름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각양각색의 구름을 담은 사진들이 수십 점 넘게 벽에 걸려 있었다.
노을에 물든 검붉은 구름도 있고 새벽에 떠오르는 맑고 고운 햇살에 비친 주홍으로 물든 구름도 있었다.
중천 하늘에 떠있는 흰 구름은 군데군데 터져서 파란 하늘을 슬쩍 보이고 같은 중천의 구름이라지만 먹구름이 되어 회오리바람처럼 감아올려 커다란 눈을 껌벅 거리는 모습을 한 사진과 가느다란 꼬리를 늘어뜨려 흔드는 모양의 사진도 눈에 띄었다.
산을 둘러 봉우리만 살짝 보이게 한 구름 사진이 있고 전체가 구름으로만 이루어진 것도 있으며 푸른 산 아래 두둥실 떠있는 뭉게구름도 있었다.
구름도 결이 있어서 순하게 보이는 것이 있고 억세게 사납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웃는 것이 있으며 우는 것도 있다. 환호하는 구름도 있고 怒한 구름이 있다.
구름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사진을 거는 사람을 보니 그들이 怒한 구름 같아 슬며시 전시실을 빠져 나갔다.
문예회관 앞뜰에는 뮤지컬을 보러 오는 사람들과 한가로이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복잡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두리번거리는 사람과 사람들의 눈에 잘 띠지 않은 곳에 앉아 무언가 속삭이는 젊은 쌍들이 있어 조금이나마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문예회관 입구 한가운데 모인 중년의 여인들이 나름대로 모양을 내고 담소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그 중에 나도 끼어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 사람들에 둘려 있는 아이스크림 장수를 보았다.
사십을 조금 넘었을까한 아주머니는 긴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점심때에도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곳을 당도할 때에 한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떠나가고 지금 막 초등학생이 솜사탕을 사면서 오백 원을 내밀고 있었다.
반대편에 서있는 삼십대 초반의 여인이 그 학생에게 아이스크림을 먹겠느냐고 물으니 “네”하고 존댓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모녀관계이거나 이모나 고모 또는 자매지간이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네”하고 대답하는 말 뿐 아니라 그들의 떨어진 거리가 그렇게 내 눈에 비쳐지는 것이다.
아마 어떤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사이라 짐작을 하면서 아주머니에게 얼마인가를 물으니 천원이란다.
사우나를 하고 나온 몸이라 갈증도 나고 어릴 때 먹던 기억도 있어 돈을 내고 기다린다.
한동안 기다리는데도 퍼줄 생각을 안 하기에 재촉하여 하나 받아서 입에 넣어 혀로 살살 녹여 먹으면서 그곳을 떠났다.
아이스크림은 예전에 먹던 맛이 아니다. 단맛은 간데없고 그저 밋밋하고 미지근한 맛일 따름이다. 어릴 때 맛있게 먹던 주전부리들이 지금에 와서 먹으면 그 때에 달고 맛나던 것이 시큼털털하니 우리네 입맛도 알게 모르게 많이 변해졌나 보다.
야외 공연장에서 드럼소리가 들리기에 천천히 자리를 옮겨 스탠드에 앉아 무대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을 하나둘 둘러보았다.
바이올린주자 하나에 드럼주자는 세 명인가 네 명이나 되었다.
젊은이들이 드럼을 늘어놓고 열심히 두드리는 틈 사이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여성도 정열적으로 손을 움직인다.
드럼을 두드리는 모습과 바이올린을 켜는 신명난 손 시위에 따라 울리는 소리는 이제 서서히 고조되어 가고 있었다.
무료의 관람객이지만 하나둘 입장을 하면서 자리가 점점 채워진다.
열정의 소리에 몸을 맞기고 마음을 맞기며 잠시 그 분위기에 스며들려 할 때에 조금 전 아이스크림을 판 아주머니가 달려오며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두드리고 켜는 소리에 파묻혀 아주머니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아 말하는 쪽으로 귀를 돌려 들으니 아이스크림 값을 내라는 말이었다.
나는 드렸지 않느냐고 말하였지만 아주머니는 부득불 아니 받았다 하니 서로의 언성만 높아만 갔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보이며 전철 요금 천원에 아이스크림 천원, 여기 삼천 원 남아 있다며 나의 마음을 보였지만 그녀의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불협화음의 장단은 얼마를 계속하다가 아주머니는 “됐어요.”하며 크게 소리를 지르고 돌아간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화가 나기도하였지만 어쩐 일인지 한편으로는 서글퍼지기도 하였다.
흥은 이미 깨어져서 드럼이 절정에 달하여 둥둥거려도 바이올린이 감미로운 선율을 타고 내 귀를 때려도 감흥은 간데없고 텅 빈 머리가 되어 어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를 따져 보며 다시 씁쓸한 기분으로 문예극장으로 옮겼다.
극장에 들어가서도 아주머니의 분한 말투가 떠올라 뮤지컬의 내용이 무언가 알 수도 없고 머리에 맴 도는 것은 “됐어요.”하며 내뱄고 돌아가던 아이스크림 아주머니의 화난 얼굴만 어른거린다.
내가 또 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것은 돈을 주고 안 받은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이미 네가 옳고 내가 그른 상황이나 그 반대 상황으로 바뀌어 버린 상태라고 생각하니 그 순간에는 밀리면 죽는 것으로 여기는 철 모자라는 어린 생각으로 가득하니 조금 뒤로 물러서는 어른스러움이 내 머리에 들어올 틈이 없었다.
1부 공연이 끝나 휴식을 갖는 시간에 우리는 극장을 나왔다. 꽉 찼던 자리가 듬성듬성 비워져 흉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래도 노래하는 배우나 연출을 한 사람들이 끝가지 관람하지 않고 나간 사람들에게 아무리 기분이 나쁘다고 “됐어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둘이는 천연스럽게 자리를 빠져나와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선다.
적당한 곳을 찾아 들어선다.
또 술을 마시면서 주고받은 이야기는 토막토막 끊겨 그때에 무얼 나누었는지 오늘이 지난 내일은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는 모습은 언제나 이런 모양을 하여야만 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면서
숨 가쁘게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댓글목록 0
이환성(70회)님의 댓글
특별한 친구의 호출 ===> 환쇠를 포함한 인사동!
윤용혁님의 댓글
문화의 향기에 취하시다가도 금새 속세의 도전에 분위기를 망치셨군요.
배려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그분을 위해 형님이 마음을 툭 터세요.
세상사 둥글하게 돌아가지요. 잔잔한 생활문 잘 보았습니다.
이연종님의 댓글
난감하구만! 천원의문제가아닌데~ ,대개 이런일은 머리속에 오래남게되있거든 하지만 어쩌겠냐, 빨리 머리속에서 지워라...^^*ㅎㅎㅎ
오윤제(69회)님의 댓글
그러게 술 마시는거죠
윤인문님의 댓글
윤제형님과 술좌석을 같이하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