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가룟 유다
본문
늦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시덥잖은 정치판만큼이나.
어제는 모처럼 바람을 쐬고자 제부도에 갔다 왔습니다.
오고 가는 데 있어서 교통 체증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기
야 했지만 모처럼만의 나들이에 식구들이 좋아하는 모습
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확 트인 바다. 시원한 바람. 우리네 정치판도 그렇게 돌아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룟 유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진 우 곤
요즈음처럼 정치에 대한 혐오감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는 일도 없다. 여러 정치인들이 연루된 각종 비리와 뇌물 수수 사건이 수시로 터져 나와 국민들로 하여금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게 한다. 더군다나 계속적인 경제 불황으로 허덕이는 서민의 고통은 안중에 없는 듯 그저 당리당략에만 골몰하여 이전투구 식 정쟁만 일삼으니 도대체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인지 모르겠다.
잘못을 범하고도 누구 하나 솔직하게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은 채 발뺌하거나 뻔뻔스럽게 상대방을 뒤집어씌우기까지 하니 해도 너무하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염두에 두지 않는, 흡사 콩나물이 썩는 것 같은 냄새를 풍기는 정치 일색(一色)에 속이 뒤집히고 답답함을 금할 길 없다. 이런 돼먹지 않은 정치를 하라고 국민이 혈세를 바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 타령인 한심한 작태에 진저리가 난다.
이것을 볼 때마다 부쩍 기독교 경전인 신약성경에 나오는 가룟 시몬의 아들인 ‘가룟 유다’라는 인물이 떠오른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였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항상 끄트머리에 소개되고 있다. 이는 아마도 공관 복음인 4복음서와 사도행전 곳곳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로 그의 소위가 너무도 괘씸하여 후일 성경 기자(記者)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였지 않나 싶다.
당시 그는 돈 궤 즉 회계와 재정을 맡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발탁한 것을 보건대 가룟 유다는 그 방면에 탁월한 수완과 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간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는 돈에 대하여 상당히 욕심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것 때문에 비참한 말로를 겪게 되었지만.
그는 예수의 제자로 있으면서도 재물에 대한 욕심을 뿌리치지 못해 사탄의 유혹을 받게 된다. 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로 이 땅에 왔던 예수 그리스도를 은 30냥에 원수들의 손에 팔아 넘기고 말았다. 그 돈의 가치는 구약 시대에 있어서 기껏해야 노예 하나를 살 정도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노예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제대로 사람 대접을 못 받는 멸시의 대상이었음을 감안하면 가룟 유다의 처사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두고두고 씻을 수 없는 가장 큰 오점을 남겼다 아니할 수 없다.
그가 예수를 적대자들에게 파는 장면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시몬의 아들인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책을 의논하매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누가복음 22:3 – 6>
이와 같이 그는 예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 ……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치 못하고 ……” 처럼 “말씀은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財利)의 유혹과 기타 탐심(貪心)이 들어와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최후의 만찬인 성만찬 날 밤, 예수가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자 하여 자신을 원수들에게 팔 제자가 있다고 제자들 앞에서 공언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뻔뻔스럽게도 자신이냐고 물으며 시치미를 떼었다. 이에 진작부터 가룟 유다가 마귀임을 알고 있었던 예수는 “네가 말하였도다.”하고 대답하였다.
결국 유월절 양 잡는 날의 깊은 밤에 가룟 유다는 예수의 은신처를 몰라 붙잡지 못하고 애가 타던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의 하속들을 이끌고 예수 앞에 나타나 그를 넘겨주게 된다. 마치 조선의 의적이라 불리는 ‘임꺽정’의 3년 동안의 도적 활동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 막을 내리게 한 그의 책사였던 ‘서림’이라는 인물처럼 말이다.
성자 예수도 가룟 유다가 등을 돌린 것에 대해 심히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 같다. ‘마가복음’ 14장 21절엔 “인자는 자기에게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더라.”고 적혀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리하여 성자 예수를 원수들의 갖은 모욕과 조롱, 그리고 핍박 속에 몰아넣은 계기가 되고 말았다. 마침내 예수는 신성모독죄라는 죄명을 뒤집어쓴 채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몸 찢기고 피 흘리며 죽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가룟 유다는 배신자의 전형으로 낙인이 찍혀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지탄을 받고 있다.
겉으로는 예수의 제자로 행세하는 위인이면서 속으로는 파멸과 불의, 탐욕을 획책하는 이중 인격자요 위선자였던 것이니 구밀복검(口蜜腹劍)이 따로 없다. 즉, 예수의 제자라는 경건의 모양은 갖추었으되 마음은 사리사욕에 눈이 먼 사탄과 같은 존재라 아니할 수 없다.
그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상반된 견해가 있다. ‘마태복음’ 27장 3절에서 8절까지 보면 그는 뒤늦게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예수를 판 돈을 전부 돈 궤에 넣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시위를 떠난 화살이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나 진배없었다.
반면에 의사인 ‘누가’가 지은 ‘사도행전’엔 그의 비참한 말로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되어 본 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시편에 기록되었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케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
그가 죽은 후에 ‘맛디아’라는 사람이 새로 천거되어 열 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이 된다. 이로 보건대 가룟 유다는 명색만 예수의 제자였을 뿐 돈에 상당히 욕심이 많았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는 욕심이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결국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게 된 것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임을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요, 진정한 영적 깨달음이 없었던 게 아닐까. 즉, 어두운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본분을 잊어버린 채 말이다. 후일 예수가 한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적인 왕이 되었을 때를 예상하고 요즈음 말하는 국무총리나 장관 자리 하나라도 차지할까 하는 야심으로 그를 따랐던 것 같다.
갈수록 은 30냥에 성자 예수를 판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이 금세 들통날 거짓말을 하여 온 나라가 들썩거릴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생명도 이것으로 끝날 게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않았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몰아세우고 싶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오히려 그런 자들이 좀처럼 정죄 되지 않은 채 오히려 거들먹거리고 있으니 울화가 치민다.
어디 그뿐이랴. 아무리 큰 사건이나 사고가 터져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임시미봉책을 남발하는 정부가 그렇고, 가격을 제멋대로 매기거나 불량 식품을 눈속임하여 내놓고 선량한 소비자를 우롱하여 골탕을 먹이고 상도덕을 문란케 하는 악덕 기업인들의 횡포가 그렇다. 그저 선량하고 멀쩡한 사람마저 바보로 만드는 풍토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이 모두가 신의를 저버리고 사리사욕에만 눈이 벌개져 날뛰고 있는 형국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배신과 속임수가 판을 치고 각종 부패가 메두사처럼 좀체 뿌리가 뽑히지 않은 채 독버섯처럼 구석구석에 자라나고 있다. 이러매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을 정도다. 황무지와 같은 세상에 우리는 대체 그 무엇으로 위안을 삼고 살아가야 하는가.
오늘도 TV 뉴스 첫머리는 가룟 유다와 같은 지조 없는 개들이 민의(民意)는 뒷전인 채 여기서 컹컹, 저기서 컹컹 요란하게 짖어대는 모습을 화면에 가득 채우고 있다. 언제까지 그런 장면을 보아야만 하는가. 게다가 호가호위(狐假虎威)처럼 쥐꼬리만한 권력을 등에 업고 천방지축 꼭두각시 노릇 하는 짓 좀 그만했으면 싶다. 아, 언제 우리에게 희망찬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지 그저 암담하기만 하다.
(2003.10)
댓글목록 0
오윤제님의 댓글
오를날에 있는 부조리 옛날에도 있었으니 어찌하것소. 그 놈의 부조리 내일은 사라질까?
윤용혁님의 댓글
지조와 의리도 없는 정치판에 식상한지 오래지요. 이합집산의 현 주소를 가롯유다를
통해 잘 꼬집어 주셨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윤인문님의 댓글
우리나라 정치판을 보면 꼭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줏대없이 자주 갈아타는 사람들..이런 사람들 빨리들 없어져야하는데..아니 그런 사람들은 찍어주지 말아 도태시켜야 하는건 아닌지...
李淳根님의 댓글
아 글씨 그 犬같은 姻姦들이 지 잘난다고 서로 짖어대고 있구만요. 便뭍은 놈이 겨뭍은 놈 흉보는 꼴이란. 암튼 그 곳에 가면 便냄가 좋은 냄새로 느끼게하는 기막힌 마녀의 하수인으로 변하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