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사과 두 조각
본문
훈훈한 미담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이웃간의 정이 사라지고 저마다 제 욕심만 채우려 혈안입니다. 나만 좋고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들이 점점 팽배해 가고 있습니다.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는 말에 인색합니다. 잘못을 범하고도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화를 벌컥 냅니다. 남이야 죽든지 살든지 내 알 바 아니라고 합니다. 토마스 카알라일의 말대로 진실과 성실이 통용되지 않는 "영웅 부재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처에서 음산한 바람이 불고, 짙게 낀 안개는 한 치 앞조차 내다볼 수 없습니다. 정다운 이웃이 그립습니다. 서로 돕고 돕는 그런 이웃들 말입니다. 그 이웃이 바로 당신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사과 두 조각<?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진 우 곤
토요일이라 오전에 인근의 도서관에 들렸다. 책을 좀 읽거나 자료를 조사해보고자 함이었다.
점심때가 다가오자 배가 출출하여 밖으로 나가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그냥 구내 매점으로 가서 빵과 우유를 샀다. 자리에 앉고 싶었으나 사람들로 붐벼 빈 자리가 쉽게 나지 않았다. 하여 어정쩡한 자세로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용케 빈 자리가 하나 생기는 게 아닌가. 그리로 가 앉으니 한 스무 살 가량 된 아가씨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게 되었다.
그녀는 식사를 방금 끝낸 듯했다. 빈 도시락과 반찬 통을 챙겨 보자기에 싸고 있었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사과를 한 개 꺼내서 그것을 과도로 깎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와 마주보기가 뭣하여 몸을 비스듬히 돌려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 우유를 마시며 빵을 먹었다.
그런데 잠시 후였다.
“저, 이 거, 맛 좀 보세요.”
상냥한 목소리가 들리기에 고개를 돌렸다. 예의 그 아가씨였다. 사과 두 조각을 이쑤시개로 찍어 두 손으로 내게 얌전히 권하고 있는 게 아닌가.
냉큼 받자니 멋쩍어 괜찮다고 했으나 굳이 권하는 바람에 고맙다고 하며 받아 들었다. 시원한 맛이 그만이었다. 나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그녀도 겸손히 목례를 하며 자리를 떴다.
사실 그 아가씨와 나는 전혀 면식이 없는 사이였다. 그럼에도 내게 사과 두 조각을 스스럼없이 건넨 아가씨. 어쩌면 저 혼자 먹기가 미안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사과 두 조각 이상의 흐뭇함을 맛보았다. 아가씨는 틀림없이 훌륭한 부모 밑에서 올바른 가정 교육을 받고 자랐으리라고 헤아리면서.
불현듯 처가가 있을 뿐더러 직장 때문에 10년 가까이 몸담았던 곳이기도 한 강릉에서 살 때의 일이 생각난다. 10여 년 전에 고인이 되셨지만 생전에 인정이 두텁기가 남달랐던 장인어른에 대한 기억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특히, 집에 찾아오는 손님에 대해선 늘 성심 성의껏 대접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분이셨다. 혹 그 분의 부재중에 손님이 방문하고 간 뒤에라도 반드시 식구들에게 어떻게 대접했느냐고 꼼꼼히 챙기실 정도였다. 가령 대접을 소홀하게 했다고 느껴지면 사람이 사는 게 이래선 안 된다고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 이따금 아내와 함께 놀러 가서 그런 경우를 더러 본 적이 있는데, 사위인 내가 옆에 있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그래서인지 처남들도 인정이 많아 서로 내 것, 네 것 따지지 않고 도우며 오순도순 살았다. 내가 결혼한 지도 17년이 넘었지만 형제간에 잡음 하나 없이 의좋게 지낸다 하니 여간 부럽지 않다. 이는 아마도 장인어른이 생전에 쌓은 후덕(厚德)의 영향일 게다.
이따금 평생토록 뼈빠지게 고생하여 번 돈을 장학 재단에 쾌히 기탁하는 노인들을 볼 때가 있다. 대부분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불우한 학생들을 위해 써 달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것을 접할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인심이 날로 사나워져 훈훈한 미담이 드문 세상에 사실 그런 용단을 내리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남을 돕는다는 게 대단한 용기와 결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반면에 어떤 집안은 한낱 재산을 가지고 동기간에 원수처럼 다툰다니 여간 입맛이 쓰지 않다. 심지어 평생토록 등을 돌리고 살겠다는 듯 법정소송까지 불사하는 경우도 있다니 과연 그 놈의 재산이 피를 함께 나눈 형제간의 우애보다 더 소중하단 말인가. 그것은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성경에도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했다. 참다운 부자의 자세란 어떠해야 함을 잘 나타낸 말이다. 이는 모름지기 재물이란 좋은 일에 써야 빛이 나고 그것을 하느님이 기쁘게 받아들이신다는 의미가 아닐까.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속담이 후세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회자(膾炙)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 재물이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법이다. 따라서 가진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즉, 재물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재물을 자기만을 위해 쓰겠다면 그것은 저 혼자 잘 입고 잘 먹고 잘 살자는 이기적인 욕심과 무엇이 다르랴. 그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재물이란 자신의 과도한 욕심을 덜고 진정한 마음으로 나보다 못한 이를 먼저 생각하고 서로 나누어 씀에 가치를 더하는 것이니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베푼다면 하늘에서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지 않겠는가. 이게 바로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모습이요, 하늘조차 감동시키는 일일 게다.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원화소복(遠禍召福)의 지름길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메시지를 갖고 인간 세계에 내려온 것이나 온 인류의 죄와 허물을 사하려고 십자가 위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던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복음도 따지고 보면 하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넉넉히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흥하고, 그것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말은 고금의 진리라 아니할 수 없다.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삶의 본질이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 흐름은 과거와는 사뭇 바뀌었다. 갈수록 남이야 죽든지 살든지 나만 좋고 편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이는 오로지 자기 것만 챙기려 발버둥치는, 귀중중한 각다귀판이나 다름없다. 이웃간에도 사람 사는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으로 빤히 쳐다보면서도 인사조차 없이 그냥 지나쳐가기 일쑤다. 이는 나 이외에는 서로 못 믿는 세상이 되어 버려서이기도 하거니와 알면 귀찮아진다는 식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웃간에도 담이 점점 높아지니 흡사 고도에 뚝 떨어진 듯 외로움이 더해간다.
이래서 일까 도서관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사과 두 조각을 내게 겸손히 건네주던 아가씨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좀체 사라지지 않았다. 훈훈한 미담이 그리운 시절에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녀의 행위가 내게는 백사장에서 금싸라기를 주운 듯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것을 아내에게 들려준다면 과연 그는 어떤 표정으로 나를 대할까. 혹시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너스레를 떤다고 핀잔이나 주지 않을지 모르겠다.
(2006년)
댓글목록 0
윤인문님의 댓글
요즘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포근한 인정이 그리운 시대가 된거 같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사고가 팽배한 우리 사회..서로 돕고 이해하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겠습니다.
김태희(101)님의 댓글
<embed s src="http://jk133.x-y.net/link/Turtles.wmv" width=490 height=390 enablecontextmenu="0" loop="1"><br>Turtles - Happy Together
김태희(101)님의 댓글
아주 작은 것의 감동이 천하를 얻은 듯 배부른 경우 많지요.<br>
남에게 그런 감동 주려고 노력하며 살지만 "원수를 사랑하라!! " 이건 힘들더군요.<br>
죽음 문앞에 서야 사람 된다더니..ㅎㅎ 그렇지만, 오늘도 Happy Together !!!<br>
보고 그냥 가시는 분들,, 저하고 원수됩니다. ㅋㅋ
오윤제님의 댓글
사과 한 조각의 맛이 진수성찬에 초대받여 맛보는 그 무엇보다 맛있었음 느끼게 하는군요.
윤용혁님의 댓글
사과 두조각이 던져주는 의미가 크군요. 작지만 경우에 따라서 감동을 주는군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작은 배려를 생각해 봅니다.
늘 선배님의 좋은 글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답니다.
행복한 시간 되세요.
**님의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