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스쳐가는 구름이 되어
본문
스쳐가는 구름이 되어
친한 친구에게 한 낯에 전화가 왔다. 저녁에 한잔 나누자는 기대를 가지고 듣고 있는데 지리산에 가지 않겠냐 한다. 더구나 맨몸으로도 좋으니 시간 있으면 동행하라 한다.
나는 오늘과 내일의 일과를 재빨리 계산한 후 흔쾌히 동의하였다.
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시작하여 일찍 오늘의 일을 끝내고 약속 장소에 나가니 출발하기 10분전이 되었다. 차만 타면 되는 적당한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주말이라지만 금요일이고 이른 시간이라서 도로가 붐비리라곤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휴가철이라 그런지 천안을 빠져나가기도 힘들었다.
천안을 지나니 도로는 금방 한적해졌다. 달리고 달려서 도착한 마을은 함양의 문정리 문상마을. 동구에 자란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 우리가 묵을 집에 당도하였다. 반기어 맞이하는 늘씬한 한옥은 주위 산세와 잘 어울려 있다.
처음 왔을 때 적당한 이름 지어주리라 마음을 먹은 때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못 불러주고 있으니 내가 나를 생각해도 한심하다.
한심한 것은 인간. 뜰에 있는 석류는 붉게 익어가며 반긴다.
전에 한번 들렀다고 반긴다.
산수유는 노란 꽃잎이 져서 푸르고 배롱나무는 여름 더위에 붉게 피었다.
뒷밭에 자라난 감나무는 간격이 조밀하여 맺은 열매가 눈에 보이질 않는다.
억지로 찾아본 감은 씨알이 잘다. 언덕 뒤에 자란 대나무 내 키보다 대여섯 배는 되는 것이 손목 두께 정도의 둘레를 자랑한다.
자리를 잡으면 무성한 번식을 한다기에 잘라 버려야 한다면서도 아직까지 건재하고 있음은 시간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고 내 나름의 판단을 하지만 나는 그 대나무 숲이 마냥 좋았다.
이렇게 몇몇의 나무를 대면하고는 주위를 둘러본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산, 이름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산 속에 산이 있고 산 아래 산이 있다. 아직 이름이 없어 이름을 지어 불러주면 진정한 산이 되려나 하는 마음을 갖기도 전에 산들은 말한다. “나도 이름이 있다우.”
안개구름이 땅위로 피어나와 얼굴을 가린다. 산도 아름답지만 안개구름이 함께 있으니 더 아름답고 신비하다. 지리산의 주봉은 아닐지라도 천왕봉과 나란히 맨 끝에 있다하여 하봉이라 불린다는데 구름은 그 하봉 조차도 가리고 모습을 내어주지를 않았다.
잠시 숨을 돌리고 칠선계곡으로 간다. 칠선계곡의 일부를 장만한 주인은 청산별곡이라 구별하였지만 함께 부르는 칠선계곡이 나는 좋다.
칠선계곡에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던 하지 않던,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던 두지 않던 그 계곡에서 물이 흐르던 시절부터 그 곳은 칠선계곡이었으니 칠선계곡이라 부르자.
신선의 언어가 있고 선녀의 말이 따로 있다하지만 그 옛날 우리는 모두 같은 말을 썼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바로 아래로 흐르는 엄천강을 임천강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스치는 사람들은 그것이 그것이겠지만 그곳에 낳고 자란 사람들의 느낌은 사뭇 다른가 보다.
엄천으로 고쳐 달라하던 목소리는 수없이 메아리치지만 그 메아리 저 아래로 내려가면서 점점 작아지고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조선 초 삼봉과 태종이 臣의 나라와 王의 나라로 다투던 무시무시한 싸움도 알고 보면 그것이 그것이니 우리네 백성 가만히 구경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칠선계곡에 당도하니 벗어 놓은 옷들이 즐비하다.
좁은 계곡에는 벗어 놓은 옷보다 더 많은 선녀들이 빼곡히 목욕을 하고 있다.
이름이 칠선이니 정원은 일곱이었을 텐데 정원의 몇 배가 되어 버렸다면 벌써 칠선이라는 의미는 사라진 건 아닌가.
그래도 몸 닦고 마음 닦을 장소는 있는 것인지 친구는 나를 끌고 간다.
조용하고 은밀한 곳으로 끌고 간다. 그렇다고 먼 거리도 아닌 바로 이웃이다.
큰 바위로 앞을 가리고 위에도 지붕처럼 바위를 내렸다. 더구나 고요한 밤 우리의 벌거벗은 모습은 어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다. 몸을 닦고 마음을 닦으니 나도 신선.
주는 즉시 마시고 받는 족족 먹어도 취기가 없다. 다음날 눈을 뜨고도 머리는 개운하다.
상쾌한 아침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 우리는 대진고속도로를 구름처럼 스친다.
당도한 그곳은 통영. 가고파의 고장인가. 그 푸른 물결 눈에 보인다.
여기도 이웃과 마찰은 있는 듯 가고파는 마산이란다.
그러려니 하고 해금강을 돌아 상륙한 외도.
꽃의 천국에 웬 비보이와 비걸이 있고 빈 화살로 시위하는 병사가 있는가.
그들은 언제나 머리를 땅에 박고 발을 하늘로 올릴 것이고 활을 당긴 병사는 아킬레스의 발목을 쏜 파리스나 된 듯이 힘 주워 무엇을 겨냥하지만 화살이 없으니 무얼 맞힐 것인가.
그런 조각들이 왜 필요하여 이곳에 놓여있는지 나는 모른다. 내 눈이 보지 못하고 내 머리에 미치지 못한 의미 있는 그 무엇이 있기에 그곳에 그들은 있는 것이리라.
우리는 또 스쳐가는 구름이 되어 칠선계곡에 다시 찾았다.
도착할 즈음 알장거리는 승용차가 있었다.
그 차가 알장거리는 만큼 우리는 차 안에서 그 차를 모는 사람에게 주절거렸다.
알고 보니 그들은 우리가 부른 창원의 친구들이었으니 세상에서 누굴 욕하랴. 반갑게 악수하고 나누는 술은 끝이 없다. 그러나 오늘은 웬일일까 술이 받지 않는다.
함께 있지만 함께 나누지 못하는 술잔을 대하니 미안하기만하다.
그렇게 하루를 지내고 다음날은 뱀사골을 들렸다.
시장한 기운에 친구가 자주 찾는다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을 때 눈에 띠는 詩가 있다.
이원규 시인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라는 시가 벽에 걸려 있어 읽어본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 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은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중략)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면 제발 오지마시라
생의 한 시절을 지리산에서 보내면서 이원규 시인은 “온 몸으로 밀고 나가는 시”를 지으며 전국을 걸어 다니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면서 꽃이 북상하면 올라가고 단풍이 남하하면 내려오기를 육년 동안 지리산에서 기거하였다하니 시인이 밟지 않은 길이 어디이런가.
지리산을 오르고 내리는 길이 백여 길이 있다 하던데 그 길이 많다한들 세석의 철쭉, 피아골의 단풍이며 연하봉의 고사목인들 보지 못했을까.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오라하고 견딜만하면 제발 오지 마시라는 부탁은 시인의 변덕인가.
뱀사골에서 지리산의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여 우리는 길을 떠난다.
구름이 스치는 곳은 정령치.
다들 재라고 한 가닥 하는데 너는 왜 치라 하는가.
나에게 묻지 마라, 치면 어떻고 재면 어떠냐 하는 대답에 얼굴만 붉어졌다. 붉어진 얼굴을 식힐 겸 잠시 바람을 쏘이려 다닌 사이에 일행이 보이질 않는다. 두리번거리며 휴게소 쪽을 바라보니 그곳에 일행들이 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달려갔더니 일행은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 않고 마애석불이 있다는 안내 표시가 있어 그곳으로 줄달음하여 가보지만 그 가는 길에서도 보이질 않는다.
길은 협소하여 마주치기라도 하면 비키기도 힘든 산길 나는 내쳐 바쁜 걸음으로 내달렸다.
이윽고 나타난 마애석불. 열둘의 불상을 새겼다는데 나의 눈에는 불상 하나만이 보인다.
애써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으니 설명하려 그려놓은 그림을 사진에 담고 재빨리 돌아섰다.
돌아온 길에 마주한 일행은 얼굴빛이 다르다.
나는 마애불상의 천년 숨소리를 들은 영겁을 마주하고 방금 나온 몸 일행은 그저 육십을 바라보는 인간들이다.
내가 걱정해야 할 일들을 오히려 그들이 했다.
얼마나 걱정을 했으면 UFO가 모시고 갔지 않았을까 걱정하였다는 소리를 들으니 공연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정령치에서 내려와 우리는 고단한 심신을 칠선계곡의 맑은 공기와 물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밤을 맞이한다.
고단한 몸은 늧은 아침에도 일어날 줄 모른다. 칠선계곡의 해는 시간을 모르는 듯 아직 보이질 않으니 우리의 몸도 기척이 없다.
아침의 느릿한 행동은 저녁을 빨리 맞이하려는 지리산 사람들을 이미 닮아있음인지 오늘은 서두름이 전혀 없다.
느긋하게 출발한 귀환 길은 오도재를 넘고 있다.
道와 道를 넘거나 郡과 郡을 건너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 넘던 지리산제일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나는 내 발자국을 주고 지리산의 맑은 공기를 취한다. 손해가 없는 물물 교환인 것이다.
마주 보이는 저편은 줄줄이 이어진 산줄기들이 허공에서 높낮이가 뚜렷하다
전망대에 오르니 천왕봉이 훤하다. 하봉 중봉을 거느리고 늘씬한 모습을 드러냈다. 천왕봉을 보기란 여간 힘든 일이라며 이십일을 머물고 있는 동안 오늘 처음 대한다면서 우리 곁을 떠난다. 나는 카메라로 천왕봉이 구름 위로 솟아 있는 모습을 이곳저곳 담는다.
내 보기에는 하봉이나 중봉이나 천왕봉이나 높이가 비슷하였다. 설명판을 보니 백여 미터의 차이라니 내 눈을 무어라 나무랄 수는 없는 것이다.
線으로 이어진 산세는 올라가다 떨어지고 다시 올라가서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그 곡선 아래로 안개구름은 하얗게 피어오른다. 무시무시하게 분부시게 피어오른다.
또 다시 우리도 구름이 되어 내달린 곳, 그곳은 지리산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을 정여창의 생가에 도착했다. 행랑채에 머슴이라도 있었다면 대문 앞에서 이리 오너라 하고 젊잖게 불러보련만 그 말 한마디 못 불러 보는 게 조금은 아쉽고 서운하였다. 수려한 한옥 크지도 않고 그래서 화려하지 않은 그곳에서 정여창의 채취를 읽는다.
바로 어제 국토 순례를 한 일행이 다녀갔나 보다.
유인촌이 보수와 보전의 중요성을 방명록에 남겼다.
그 밑에 방명록을 기재하면 그들과 일행으로 생각될까 그만두었다.
이제 상림을 둘러본다.
常林인 줄 알았더니 上林이란다. 그러면 저 밑에 下林도 있을 텐데.
울창한 숲 그 주위로 물이 흐른다. 홍수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런 森林을 조성한 최치원의 뜻만 새기고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그 옛날 치산치수가 정치의 모든 것이면 오늘날도 그것은 변치 않았을 텐데 유학한 해운의 신지식은 배척당하고 오늘 여기에 상림만 남아 있다.
울창한 숲 천년을 가꾸어온 정성을 감사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지금 해운의 지위에 해당하는 사람은 상림의 일부를 운동장으로 할애하였다.
사는 동안 이 사람 중요한 것 있고 저 사람 중요한 것 있을 테지만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슬며시 옛 대학자에게 상림에서 물어본다.
댓글목록 0
윤인문님의 댓글
윤제형님! 더운 날..글로 한층 시원함을 가져다 주시네요
최병수님의 댓글
오호!! 윤제님 글이 아주 실감나네요.. 다시 한번 더 가 보는 기분이 드네.. 상림의 연꽃들은 아주 좋던 데, 글구, 우습고 한심한 이야기 - 옛날 상림의 한 가운데를 운동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냈다구 하네..ㅋㅋ..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지리산자락 칠선계곡가엔 우리회초李 선배님계신곳인데..담 가시면 환쇠아우 아냐고 물어주세요..그럼 바베큐 자연山멧돼지..
오윤제님의 댓글
내 가보니 회초리는 몽둥이로 자랐답니다. 멧돼지 지난 폭우에 날리고 칠선계곡의 송사리 한마리 함께 뜯었어요. 일미더군요.
윤용혁님의 댓글
윤제형님,늘 좋은 글로 무더위를 잊게 등짝을 등목시켜 주시는군요.
주말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