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곰지사장
본문
두메산골 갈대밭에 등짐지든
강화 도련님 강화 도련님
도련님 어쩌다가 이 고생을 하시나요?
음~ 말도 마라 사람 팔자
두고 봐야 아느니라.
두고 봐야 아느니라.
음지에도 해가 뜨고 때가 오면
꽃도 피듯이 꽃도 피듯이
도련님 운수 좋아 나라님이 되셨구나.
음~ 얼싸 좋다 좋고 좋고 말고
상감마마 되셨구나.
상감마마 되셨구나.
“여기는 대한민국 서울 최초의 상업 방송인 문화방송입니다.
HLKV 문화방송은 900 킬로사이클, 출력 10㎾로 하루 13시간씩
방송해드리겠습니다.” 라고 시작하던 시절인 60년대 초
“강화도령”이라는 연속극시리즈의 주제가를 박재란 가수가
불렀던 노래이다.
안방에서 아버지와 같이 자던 우리는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쏴 소리와 함께 들리는 새벽방송인 “미국에 소리”를 듣고 나면
아리따운 목소리로 연속극 주제가를 부르는 그녀를 따라
아버지의 선창으로 강화도령 노래를 다 같이 불렀다.
어린동생은 어찌나 말이 굳은지 노래가사 중 “말도마라”를 늘
“말뚝까라”로 부르는 바람에 이불속 우리의 웃음거리가 되곤 하였다.
동생이 속상해 하자 아버지는 한마디 거드셨다.
“막내야, 네 둘째형은 너만 할 때 눈뜨자마자 고구마를 찾았단다.
그런데 고구마를 ‘곰지’라고 불렀고 사촌누나들이 너 이다음에
뭐 될래? 하고 물으면 꼭 ‘곰지사장’된다고 그랬단다.“
그러면 “아부지! 제가 언제 그랬어요?” 하고 발로 이불을 풀썩이며
따져 물었다.
겨울철 먹을거리가 없던 시절,
방안 윗목 한편에는 가을에 거둔 고구마가 볏가마니 속에 가득 차
검버섯을 피며 가쁜 숨을 몰아쉬자 아버지가 그중 서너 개를 꺼내
칼로 날고구마를 깎아주실 때의 일인가보다.
빈속에 날고구마를 먹으면 신물이 올라와 속이 불편해도 달보드레한
그 맛을 잊지 못해 “곰지! 곰지!” 하였나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곰지보다 동생의 젖먹이 시절,
새벽이면 어머니가 주발에 담긴 무언가를 먹이려 무척이나 애를 쓰셨다.
알고 보니 그것은 뽀얗고 고소한 맛의 어머니 젖이었다.
동생에게 물리고 남은 것을 당신의 두 손으로 정성스레 짜 종지그릇에
옮겨 머리맡에 놓았던 것이다.
당신이 아파 초유를 못 먹여 키운 것이 늘 마음에 걸리셨던지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어머니는 진저리치며 자꾸 도망가려는 어린 곰지사장을 붙들고
그것을 강제로 먹이셨다.
“어머이! 애기도 아닌데 왜?” 하며 발버둥 쳐도 어머니는 다리하나로 지그시
몸통을 누르고 입에 재갈을 물려 사약을 먹이 듯 입에 털어 넣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것은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랫목에는 술독이 담요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어머니가 밀주를 담그셨다.
보글보글 농주가 익어가는 냄새가 온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얼마 전 동네에 술 감시가 갑자기 나온다고 해 옆집에서는 술독을 급히 옮기다
문턱에 걸려 깨뜨려 난리가 난적이 있다.
어머니는 감시와 감수라는 말에 아주 예민해 하셨다.
산에서 청솔가지를 꺾어 와도 산림감수에 걸리면 벌금이 어마어마했고
밀주단속은 더욱 무서웠다.
탕 탕 탕!
총소리가 한적한 산골마을에 울려 퍼졌다.
담을 넘어 덕정산 자락으로 죽을힘을 다해 내 뛰는 동네 형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아버지가 그렇게 아끼던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몰래 훔쳤던 그가
다른 마을에서 큰일을 저질러 형사들이 급습하여 체포하려는데 워낙 잽싸게
도망치는 바람에 공포탄을 쏘며 뒤를 쫓고 있었다.
산안개가 자욱하던 산골마을의 평화는 삽시간에 깨졌다.
푸드덕 날던 산새들도 숨을 죽이고 마을 사람들도 사립문만 살짝 열고 밖의
동태를 가만히 살폈다.
산골짜기에 자리한 마을이라 가끔 도시에 사는 부자사람들이 엽총과 사냥개를
가지고 와 뻥뻥 터트리는 소리는 들었어도 권총소리는 아주 금속성의 날카롭고
살기가 들어 있어 모두가 오금이 저렸다.
숨을 헐떡거리던 다부진 몸매에 스포츠머리를 한 형사는 다 잡은 범인을 놓친
것에 대하여 약이 오른 지 뒤를 따르던 어린 곰지사장에게 “애, 저리가!” 하며
공연한 신경질을 부렸다.
그러나 토굴을 파고 몇 날을 숨어살던 동네형도 결국에는 붙잡히고 말았다.
팔을 뒤로 꺾인 채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모습을 어린 곰지사장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달게 받게 된다는 사실을 순수한 눈의 창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시간이 흘러 비록 고구마 사장은 되지 못했어도 사촌누님들이 어릴 적 불러주었던
곰지사장이 오늘날 왜 다시 그리 그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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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광익님의 댓글
한달에 한번 근무하는 토요일 아침..... 창밖의 화창한 날씨가 괜스레 짜증스러울 만치 심통이 발작하려는 시간에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쳐 용혁이의 재미있는 글을 읽고 스르르 마음이 풀렸네. 해서, 골프장 생각 말고 열쒸미 일하기로 했지. Thank you for a good writing.
윤용혁님의 댓글
광익아, 잘 지내는구나. 반갑다. 골프의 삼매경에서 당번인 토요일이 심기를 건드려도
열심히 일하는 친구의 모습 좋구나. 캐나다의 친구, 즐거운 시간 되시게.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새벽방송인 “미국에 소리”==> 어디계신가요..용혁님은 내보기에 강화신동였을듯..박재란곡 지금 들으면 나도 따라부를수 있을듯..ㅋㅋ
윤용혁님의 댓글
환성형님, 형님은 분명 아시는 노래일꺼에요.잘 부르실 꺼구요. 형님, 무더위에 잘 지내시죠? 언제나 건강하세요.
이창열(78회)님의 댓글
윤선배님 주사약에 대해 문의 후 구입 할려고 하는데 연락처 좀 부탁드립니다. 제 연락처는 011-225-7102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