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딱지의 교훈
작성자 : 윤용혁
작성일 : 2007.10.04 11:11
조회수 : 1,230
본문
동생과 나는 두 살 터울이다. 학교 앞 경애네 구멍가게에서 코 묻은 돈을 주고 열심히 딱지를 모았으며 또래친구들과 딱지치기도 하고 양지바른 돌담아래서 홀짝을 통한 따먹기로 그 수량을 급속도로 늘려갔다. 거기에는 태극기, 대통령도 있고 보물도 있으며 별 네 개, 원수도 있었다. 동생과 나는 낮 동안에 친구들에게서 딴 딱지를 어머니 쓰시던 실패의 무명실을 끊어 백장씩 묶어 서랍에 넣을 때는 저금통에 돈이 많이 들어 있는 듯 기분이 좋았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온 경대서랍에도 넣고 잘 때 손이 닿는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들면 딱지를 타고 날아오르는 꿈도 꾸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저분한 딱지가 영 마음에 안 드시는지 그리고 딱지치기로 인해 손톱에 때가 많이 끼고 공부를 등한 시 하는 것에 불만이 많으셨다. 결국 아궁이에 불 질러 태워 버리겠다는 최후통첩에 동생과 나는 급히 숨길 곳을 찾아야만 했다. 딱지에 그려진 육군소장은 대장보다 낮아 맞대결 시 졌고 보물은 모든 것과 맞먹었다. 동생과 둘이 합작하여 또래 친구들의 딱지를 거의 따 평정을 하였다. 이제 우리에게 도전할 친구들은 더 이상 없다. 양 호주머니에 두툼하게 넣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나의 어깨는 거만하게 으쓱하다. 그러던 어느 날, 윗말에 사는 나에게 아저씨뻘 되는 인천으로 유학 간 큰형과 동갑인 득수라는 분이 있었다. 나와 여섯 살 차가 나는데 조금은 모자라 고자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로부터 딱지 따먹기 도전이 들어왔다. 더운 여름날 용판구덩이에서 옷 벗고 목욕할 때 슬쩍 그의 아랫도리를 훔쳐봤지만 특별히 별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는데도 산골동네에 그렇게 소문이 퍼졌으니 나도 그렇게 알 수밖에 없다. 선산 바로 밑에 사는 그의 집을 동생과 심호흡을 가다듬고 바지 주머니와 심지어 팬티 속에도 그간 열심히 모은 딱지를 불룩 채워 찾아가는데 영수네 수탉이 여러 마리의 암탉을 거느리고 모이를 먹다가 무섭게 째려보더니 쏜살같이 날아들어 동생의 뒷머리를 쪼았다. 일진이 좋지 않았다. 나도 아침에 날아가던 참새가 내 머리에 새똥을 뿌렸는데 뭔가 조짐이 이상하게 안 좋았다. 드디어 딱지 따먹기가 시작되었다. 형의 친구는 처음부터 보물로 공격해 왔다. “야! 보물, 보물, 또 보물!” 여기에는 별 넷도 원수도 소용없고 내가 가진 보물딱지를 들이 밀어야만 했다. “자 보물! 또 보물!” 네모난 딱지는 판돈처럼 수북이 쌓여가는 데 동생과 나의 딱지는 서서히 밑천이 들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나 보물딱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지 동생과 나는 두 손을 들고 “아!” 소리도 한번 못하고 일어서야만 했다. 여기저기 주머니를 다 뒤져도 딱지는커녕 먼지만 나왔다. 선산의 산비둘기 소리가 아까부터 요란하다. “구구! 구구!” 동생과 나를 비웃 듯 더욱 크게 울었다. 가슴이 저려왔다. 어떻게 모은 딱지를 단 한 번에 잃다니 눈물이 앞을 가렸고 형의 친구는 매정하게도 단 한 장도 개평으로 주지 않았다. 그간 손톱에 새까맣게 때를 키우며 애써 모은 딱지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돌아오는 길, 동생과 나는 다리가 풀려 한참을 길가에 맥없이 앉아 있었다. 동생과 합작해 벌인 딱지치기 사업은 완전히 노름으로 망했다. 옷을 갈아입은 메뚜기만 이리저리 날 뛰었다. 이 글을 쓰며 생각하니 나라와 나라사이에 전쟁은 없어야겠지만 전투력은 인구가 아니라 경제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쪽에서는 달러로 “보물! 보물!”하며 들이 대는데 여기에 대응할 나라의 돈이 없으면 나의 딱지 따먹기처럼 결국은 그 전쟁에서 필패하고 만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어릴 적 추억이 너무 비약되었나? 아무튼 교훈 하나는 건졌다. |
댓글목록 0
李聖鉉님의 댓글
매끄럽고 감미로운 필치의 윤용님이 출판준비위원장이 되어야는데,이환성님의 한턱쏘라는 화살이 무서워(?)말 실수하는바람에--우야튼 부위원장으로서 이환성 위원장을 도와 전보다 훌륭한 작집을 만들기를 기원합니다.
오윤제님의 댓글
딱지 따먹기의 방법도 마을 마다 다른 것인지 우리는 가기 또는 섯다로 했지요. 까바이 치는 것 눈치채지도 못하고 만날 잃기만 했지요.
윤인문(74회)님의 댓글
"딱지 따먹기" 우리에겐 별다른 얘기도 아닌데 용혁후배가 글로 풀어내면 아련한 옛추억을 상기시키며 감동을 일으키니 대단한 후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좋은 만남, 살맛나는 세상 만들기" 제5 문집이 기대가 됩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성현형님, 과찬이십니다. 환성형님이 출판위원장이 되신 것은 인사동을 위해서라도
잘된 일이지요. 한턱의 화살이 효과를 보았군요.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노려하렵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윤제형님, 까바이에 많이 잃으셨군요? 형님의 필치에 많을 것을 배우며 어릴 적 추억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 추억을 같이해 주시고 칭찬을 아끼시지 않음에 감사드립니다.
제 5집에 미력이나마 보탬을 보내고자 합니다.
차안수님의 댓글
딱지치기 어떻게 하였는지 가물가물합니다.
윤휘철님의 댓글
우리 어릴때는 접은 딱지치기를 많이했는데 기초체력 훈련에는 딱지치기만한 운동이 없지요. 시인아우님님 항상 건필하시는데 언제 얼굴 한번 봐야지.
윤용혁님의 댓글
네, 맏형님, 언제 뵙지요. 딱지치기로 시간 가는 줄 정말 몰랐었죠. 휘철맏형님, 늘 건강하세요.
윤용혁님의 댓글
안수후배님, 옛일이라 가물가물하지요? 즐거운 시간 되시게.
이환성(70회)님의 댓글
보물엔 용감한 일등병이 쥐약였는데..환쇠 용감한 일병출신!
이환성(70회)님의 댓글
딱지도 어찌보면 딱따구李와..blood family
윤용혁님의 댓글
환성형님도 딱지치기의 대가이셨군요? 간간이 일등병을 숨어 놨어야 하는데
전략부족으로 그만 몽땅 다 잃었어요. 형님의 혈통에 딱자가 붙으면 통하는 바가 크군요.
즐거운 저녁되세요.
崔秉秀(69回)님의 댓글
딱지치기로 시간 가는 줄 정말 몰랐었죠..맞아요..ㅋㅋ... 팔이 아파서 딱지 따먹기를 다른 거로 했었는 데...
윤용혁님의 댓글
병수형님, 오늘 날씨가 화창하군요. 형님을 뵐때마다 이런 화창함을 느낍니다.
형님도 딱지치기를 즐기셨군요? 즐거운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