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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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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
어머니의 사진첩을 보다가 우연히 내 사진을 보았다.
빛바랜 흑백 사진은 송도의 야산을 배경으로 친구와 함께 찍은 것이다.
대학 시절에 찍은 사진인데 그때에 기억은 전혀 없고 사진만 남아 있으니 그래도 그때의 한 순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소매가 긴 옷을 입은 걸 보면 초가을로 접어든 조금은 흐린 날 같기도 하다.
두 명의 아가씨가 있는데 나는 모르는 여인이고 보면 친구를 따라 온 것이 틀림없다.
한 여인은 웃고 있고 한 여인은 얼굴을 한손으로 가리고 있어서 자세한 모습을 알 수 없으나 안경을 낀 것만은 알 수가 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그리 중요할 것이야 없지만 내가 살아온 인생의 한 순간을 나타내 주니 별안간 소중하게 다가온다.
내가 오늘 이 사진을 보지 못했다면 그때의 추억은 떠오르지 않을뿐더러 나의 기억에서 영영 사라졌을 것이다.
한 순간을 포착하여 찍은 역사적인 사진은 아닐 지라도 내가 지나온 한 순간을 찍어 다시 보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
당시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사진만한 것이 없으니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슬플 때와 서러울 때에는 찍지 않는 것이니 즐거울 때나 여행을 하면서 좋은 배경삼아 찍고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사연을 남겨두려 찍는다.
친구와 우정을 남기려 찍고 가정의 화목을 보이려 찍는다.
그러면 그때에 우리는 무슨 즐거운 일이 있었으며 무슨 사연을 남겨두려 찍었는가.
남자가 여자를 만나거나 여자가 남자를 만나면 그 젊은 시절 두근거리는 가슴에 두 눈은 더욱 반짝거렸을 것이고 걸음걸이는 부지런하게 움직였을 것이다.
남자라면 용감하게 보이고 싶은 것이고 여자라면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것이다.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서 한 여인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 여인은 환하게 웃었을 것이다.
나는 굳게 입을 다물고 서서 용감하게 카메라 초점을 바라보았고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한 친구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겸손을 나타냈을 것이고 또 한 친구는 편히 앉아 넉넉함을 보였을 것이다.
한 장의 사진 속에 우리는 무얼 남겨 두려 찍었을까 지갑 속에 넣어둔 사진을 다시 꺼내어 들여다본다.
지금보다 저 험악한 인상을 하고 있는 젊은 날의 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반가운 것은 그것이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거기 있기에 사진은 가치가 있는 것이고 내가 있었기에 어머니도 오늘까지 사진첩에 보관한 것일 게다.
내가 없다면 사진은 벌써 사라졌거나 이 사진 속의 친구나 아가씨들의 사진첩에나 꽂혀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내가 있으므로 비로소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나를 낳아 주셨기에 나의 어머니가 세상의 어느 여인보다 존귀하고 나를 길러 주셨기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여기는 것이다.
나를 가르친 학교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학교로 생각하는 어느 시인은 자신이 다녔으므로 모교가 무조건 좋다는 것인데 머리를 끄떡이며 무언의 동조를 하는 것을 보면 나도 나르시시즘에 단단히 걸린 모양이다.
첫 돌 맞아 찍어둔 얼굴은 똘망하더라만 이렇게 20여년이 흐른 후에 내 모습은 흑인 로마 용병처럼 우락부락한 얼굴로 그날에 서있었다.
그래도 나르시스를 떠올리는 것은 내가 있기에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니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사랑할 수가 없고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니 억지로라도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자기 사랑은 어느덧 낯모르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내가 숨 쉬고 있는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 사진을 찍고 수 십 년이 흐른 오늘에서야 어렴풋이 그런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날에 우리가 송도에서 벌어진 일들을 그들은 정말 소상하게 기억하는지 이 사진 한 장 내밀며 언제인가 물어 보아야겠다.
다시 보는 사진에는 하늘은 넓게 펼쳐 있고 그 하늘 아래 봉재산이 아득하게 병풍이 되어 우리를 둘렀다.
댓글목록 0
윤휘철(69회)님의 댓글
어제 보여준 그사진인가요. 소사 아가씨들 지금은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소사...정감어린 귀절입니다..그사진 이곳에 올려보세요..힘들면 딸님에 부탁..휘철님 건강하시죠?..올만에 꼴뵙니다..ㅋㅋ
오윤제님의 댓글
올려도 될까요? 독사진이라면 몰라도 초상권 침해되었다고 여태까지 번 돈 다 날라가게요?
이환성(70회)님의 댓글
그 女님도 영광으로 받아드릴듯..
윤용혁님의 댓글
귀중한 흑백 사진한장 속에 진한 추억이 묻어 나셨군요.송도의 그날은 추억을 반추하시는
형님에게 아주 소중한 자리매김을 하였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태희(101)님의 댓글
<embed src="http://jk133.x-y.net/link/girl.asf" Width=400 height=330 volume=0 hidden="false" showstatusbar="1" loop="-1" EnableContextMenu="false">*김정호 / 이름 모를 소녀<br><br> 내 젊은 시절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까, 웬수로 남아 있을까..떨립니다. ㅎㅎ
윤인문님의 댓글
오늘 추억의 앨범을 들춰 빛바랜 옛날 사진들을 봐야 겠습니다.
차안수(78회)님의 댓글
예전의 이성과의 사진은 결혼과 함께 사라졌지만 아직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는 로멘스요 다른이가 그렇다면 불륜을 기대하는것이라 어찌 말하지 않을수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