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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초상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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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평안하신지요?
그간에 작품 심사와 출판기념회 참석, 경북 의성으로의 문학기행 등 여러 가지 행사와 직장 일로 바쁘게 지내느라 한동안 그리운 이들의 모습을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꼬리말도 달지 못하고, 오늘 모처럼 글을 올리려니 비밀번호마저 생각이 나지 않아 난감하더군요.......
잃어버린 초상화
진 우 곤
언젠가 내가 아는, 중 3짜리 딸을 둔 S라는 사람이 다음과 같이 내게 고백한 적이 있다. 청년시절 그는 불붙은 신앙심에 주일이면 열 일을 제쳐두고 꼬박꼬박 예배를 보러 교회에 다녔다. 그러다가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의 여자와 사귀게 되었고 결혼까지 하여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요즈음 전도사가 되기 위해 수업을 받고 있다며 그간 겪었던 가정사를 내게 세세히 털어놓았다.
결혼을 하고 나자 모든 생활이 아내의 주도하에 철두철미 교회 중심이었다. 그의 아내는 믿음의 성장을 위해 교회에 붙어살다시피 했다. 몇 년 간은 그런 아내가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아니, 아내의 일거수일투족마다 고결함이 묻어있는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가정사의 주도권이 그녀에게 있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순한 양처럼 아내가 하자는 대로 군말 없이 따랐다.
직장 생활에서도 땡 하면 곧장 집으로 퇴근하기에 급급했다. 아내는 그에게 약간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직장에 몸 담고 있자면 으레 따르기 마련인 직원들과의 회식조차 참석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가 일쑤였다. 즉, 그런 데에 괜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 앞에 나가는 기회를 자주 가지라고 종용하는 게 아닌가.
처음엔 직원들도 그의 아내 때문이라는 것을 알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해 주었다. 하지만 세월이 점차 흐르고 그가 회식이나 야유회 등 부서의 단합을 위한 공식적인 행사에서 매번 빠지는 데다 퇴근할 때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하는 그를 곱게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뿐더러 그의 곁에 다가와 함께 얘기를 나누려 하거나 어울리려 하는 이도 별로 없었다.
그런 눈치를 그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데로 새었다가는 쌍심지를 켜고 그를 맞이할 아내의 모습이 떠오르면 등골이 오싹했다. 이러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여간 무겁지 않았다. 아내 앞에서 은근히 주눅이 들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기도 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신의 처신에 더욱 그랬다.
반면에 그의 아내는 열성적으로 교회의 일에 헌신 봉사 활동을 한 덕택으로 여러 단계의 교회 직분에 오르는 결과를 낳았다. 자연적으로 그녀는 더욱 바빠졌는데 오히려 쾌재를 부르는 게 아닌가. 이러니 그는 집에 가도 낙이 없었다. 아내는 교회로, 그의 딸은 학원에서 늦게 오니 흡사 혼자서 빈집을 지키는 꼴이었다. 그러한 무료함을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며 달래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었다.
이러니 주말에 어디 먼 곳으로 나가 바람을 쐬고 싶어도 그의 아내는 교회 일을 핑계로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했다. 정 가고 싶으면 혼자서 가라며 일체 동행하려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세속적인 일에 시간을 헛되게 쓰지 말라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따라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꼴이라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게 편한 노릇이라는 것을 차츰차츰 알게 되었다. 이렇듯 아내와의 대화는 오로지 신앙과 관련된 일 이외에는 제대로 먹혀 들지 않을 만큼 활기도 없는, 음산한 바람만 슬쩍슬쩍 불어대는 세월이었다. 그렇게 십여 년을 흘려 보낸 셈이라며 쓸쓸하게 웃었다.
그도 어느덧 40대 중반에 들어섰다. 재작년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지금껏 살아온 세월을 더듬어보니 헛되게 산 것처럼 입맛이 사뭇 썼다. 마치 줄에 묶이어 다니는 개처럼 아내가 이끄는 대로 사는 처세술에 길들여져 온 자신이 한심스러웠고, 사내 자식이 오죽 못났으면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열없게 웃음이 나오더라는 게 아닌가. 마흔 살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도 있듯이 이제는 더 이상 조롱 속의 새처럼 아내의 손바닥 안에서 좌지우지되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온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강렬하게 일어나는 바람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고 싶은 의도는 없다. 단지 인간 S로서 자신의 뜻대로 살고 싶었다. 이미 흘러간 물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의 삶마저 아내의 손아귀에 맡기고 싶지 않으며, 나이가 들어서도 종종 그의 가슴을 찌르는 말인 아내의 치마 폭에서 아직 못 벗어나느냐는 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이것이 그날 얻은 결론이었다.
하여 이튿날부터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어떤 회식 장소에도 그는 얼굴을 디밀었다. 잘은 못 마시지만 몇 잔 정도의 술을 마셨다. 의외의 변화에 아내와의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좋은 길을 버리고 타락의 길을 걷느냐고 그의 아내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때마다 그는 아내가 미워졌다. 허구한 날 예배와 신앙심을 들먹이며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아내의 태도가 심히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퇴근 때마다 걸려오게 마련인 아내의 전화에도 벌컥 신경질을 내거나 몇 마디 듣지도 않고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단다. 그럴 때면 집에 돌아가서 한바탕 입씨름을 하기 마련이다. 아무튼 비록 짧다고는 해도 자신의 기분을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하고 자신 있게 표현하며 대응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재미로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아내의 영향력 안에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단다. 그저께만 해도 직원들과 어울려 1차 회식을 갖고, 그것이 미진하여 2차로 갔다. 중간에 그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묻고는 데리러 가겠다는 말에 늦었으니 그냥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했으나 막무가내로 전화를 끊어버렸단다.
그리고 그는 매일 아내로부터 오는 휴대폰 메시지는 일종의 스트레스를 유발케 하는 것이란다. ‘좁은 길로 가라’, ‘범사에 기뻐하라’,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등등 천편일률적으로 신앙에 결부된 것이라 좋은 노래도 자주 들으면 싫증이 나듯이 이제는 그런 말씀이 가슴에 절실히 와 닿지 않는단다. 더군다나 그의 아내가 자신을 타락하고 있는 것으로 넘겨짚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쾌한 감정이 앞서서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얘기 도중에 그의 핸드폰에 ‘편지가 왔어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메시지를 읽고 난 뒤 주저하지 않고 증명이라도 해 주려는 듯,
“이렇다니까요. 매일 이렇게 문자를 보내고 있어요. 하루에 몇 번씩.”
하고 말하며 풀썩 웃었다.
“퇴근 후 술 한 잔 하시죠. 제가 오늘 쏘겠습니다.”
이 말에 나는 별일이 없으면 그러마 하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때 불쑥 ‘잃어버린 초상화’란 말이 떠올랐다. 사실 그가 보낸 세월은 굳은살이 박히듯 오랫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살아온 셈이다. 이제 그는 힘찬 날개 짓으로 드높은 창공을 박차 오르려고 한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꼭꼭 묻어둔 얘기들을 나에게 최초로 하였다며 가슴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가 갈 길은 멀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가 잃어버린 초상화를 찾는 것이 과연 자신의 본분에 맞는 것인지 심사숙고 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단지보’ 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시골에 사는 한 청년이 대도시를 동경한 나머지 격에도 맞지 않는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 자기가 살던 곳의 걸음걸이마저 잊고 엉금엉금 기는 시늉을 하면서 돌아갔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와 같이 자기의 본분을 잊어버린 채 공연히 남의 흉내만 내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엔 얼마간 진통이 따른다. 까닭인즉 스스로 창조하는 게 인생이라면 거기엔 숱한 노력과 인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그만의 문제일까. 나 역시 한때 잃어버린 초상화를 찾으려고 애를 쓴 적이 있었다. 3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어중이떠중이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이 문학이었다. 그것은 언제든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가슴에 품고 살아왔던 것이고, 단 하루를 살아도 내가 나다운 삶을 구가하기 위한 목적이 분명하게 세워지자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 나온 것처럼 숨통이 트이는 게 아닌가.
하여 그 후 직장 생활하는 틈틈이 도서관을 다니는 것이 힘겹기도 하였지만 그때 맛보았던 고달픔은 오히려 어려운 일에 부닥쳐도 두려워하지 않는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또, 가지치기를 하듯 걸러낼 것은 걸러내고 솎아낼 것은 솎아내는 작업을 하고 나자 세상은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날이 새롭다는 말도 마찬가지였고, 하루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눈뜨는 아침마다 몸으로 깨우칠 수 있었으니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내게 안겨 주었다.
진정 내가 원하는 목소리가 실린 작품을 써서 발표하고, 여러 계층의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기만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면 보다 풍요롭고 넉넉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늘 몸으로 깨닫는다. 그리고 내 힘이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힘차게 달려가게 되는 것도 내게는 무한한 기쁨이요 즐거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 하루 무엇을 더 배우고 깨달을 것인가. 이것이 내가 아침마다 눈을 뜨면 던지는 화두인데 내가 나다움을 찾기 위한 일환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마치 멀리 있는 그리운 이를 만나러 가는 듯 가슴이 설렌다. 나고 죽는 것은 엄연한 자연의 이법이라면 오늘 하루를 소중히 생각하는 것밖에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집을 나선다. 잃어버린 초상화를 찾기 위해서. 신선한 아침 공기가 우유빛 같은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나를 맞으니 흐뭇하기 그지없다. 그와 동시에 ‘일이 즐겁다면 인생은 낙원이다’라는 말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이 가슴을 울리며 사뭇 발걸음마저 가볍게 하는 게 아닌가. 이에 나는 결코 ‘한단지보’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으려는 생각에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하늘을 쳐다본다.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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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101)님의 댓글
작품 심사원 ? --> 그런 거창한 타이틀을 갖고 계시면 미리 공고를 하셨어야죠.(혹시 빽 쓸일 있을 지..ㅋㅋ)<br>
출판기념회 ? --> 어떻게 그런 행사를 이쪽 동네엔 알리지도 않고..우리가 물로 보이나요?? ㅋㅋ<br><br>
종교얘기라서 꼬리로 언급하기에도 조심스럽네요,,,,,우곤님 잘못하면 다쳐요..ㅎㅎ
박남호님의 댓글
`잃어버린 초상화` 오늘 이른 새벽에 양동이에 물을 쏟아 쏟아내듯 한없이 내리는 비에 언급하신 30대 후반의 기억을 달리시던 그나이가 제나이인데 저의 부추기는 전환의 매개체이며 뚝심어린 결정체가 어디 저에겐 있기나 한건지 되돌아 봅니다
오윤제님의 댓글
신앙도 부부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촉매가 되어야 하는데 그 이상이라 생각하면 사단은 있게 마련입니다. 기계가 잘 돌라 가게 하는 윤활류의 역활로 끝나야 하는 것 처럼.....
윤용혁님의 댓글
잃어버린 초상화가 던져주는 의미를 곰씹어 봅니다. 위상이 추락해 가는 현대인의 아버지의 모습도 그려지고 너무 지나치게 종교적으로 매달려사는 군상들의 모습도 생각해 봅니다. 가정생활과 신앙안에 조화를 점쳐봅니다.건필하세요.
김태희(101)님의 댓글
김정일한테 세뇌당해 북한 주민들이 변한 것이나<br>
(극히)일부 목사님한테 세뇌당한 신도들이 변하는 것이나 같은 맥락 아닐까요?<br>
신도들의 희생이 큰 교회일수록 외형적으로 많이 번창하더군요.<br>
이런말 하면 다치는데....아이고 요놈의 주둥이!!!
윤인문(74회)님의 댓글
나도 일상생활이 워낙 바쁘다보니 내자신이 잃어버린 초상화가 아닐런지...
이기호 67님의 댓글
진우곤 후배님 글 잘 읽었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차든지 덥든지, 미지근 하면 토하여 내 치겠다고 하셨읍니다. 말씀에 비추어, 스스로 깨닫고, 판단할 일입니다. 부인이 그렇케 한다고 해서, 남편이 천국에 가는것은 절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뜨거운 신앙을 갖고 싶
이기호 67님의 댓글
은데, 미지근 하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합니다. 좋은하루 되십시요, 여기에 오시는 모든 분들!
李淳根님의 댓글
나의 초상화는 잘 그리고 있는지 곰 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