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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본문
미운 오리새끼처럼 시키지도 않은 일만 저지르니 육학년 교실
교단 앞으로 불려나간 애물단지 친구의 종아리는 담임선생님에게
맡겨진 채 회초리 장단에 불이 나고 있다.
오늘 아침 여선생님이 교직원 여자화장실에 들어가신 것을 알고
화장실 하부에 난 구멍으로 들여다 보다 붙들려 호되게 터지고 있다.
또래아이들보다 세 살이나 많아 등치도 크고 주먹도 세 교실을 평정하였으며
턱 주위에는 검은 수염이 듬성듬성 자랐으나 공부는 항상 뒷전이었다.
학기 초 아버지의 직업란에는 땅꾼이라 적었고 어머니는 하늘나라에
계신 것을 자랑이나 하듯 입에 게거품을 물고 다녔다.
그리고 어려서 그 애 아버지가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젖동냥을 해서
키웠다는 사실을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수업 중 아이들의 집중력이 떨어져 주위가 산만해지면 그 친구는
대표로 불려나가 매를 맞았고 한 달에 한 번씩 받아든 일제고사
성적은 늘 꼴찌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용케 나머지공부는 모면했다.
뒤에서 1,2등을 다투는 여자애 코방구리나 남자애 대갈장군의 성적을
간신히 앞섰고 시험을 볼 때 앞에 앉은 애의 등짝을 쿡쿡 찔러 답을
적어내는 비리를 저질렀으나 아무도 이를 선생님에게 고자질할 친구는
없었다.
왜냐면 그 친구에게 해코지 당할까 두려워 모두들 입을 닫고 쉬쉬하였다.
돌팔매질을 잘하여 등하교시 전봇대 전선줄 사기 깨기, 고무줄 놀이하는
여학생들 고무줄 끊기, 서 있는 애 의자 끌어당겨 뒤로 자빠뜨리기,
학교울타리 넘어 밭에 오이서리와 가지서리, 담장의 누런 호박을 칼로
도려내어 인분 채워 넣기, 학교우물에 침 뱉기, 추운 겨울날 옆에 반
조개탄 훔쳐오기 등 현대판 놀부가 따로 없었다.
집이 너무 가난하니 기성회비를 낼 생각은 전혀 없었고 매일 급식으로
나오는 세탁비누처럼 생긴 강냉이 빵이나 맛대가리가 전혀 없는 큼직한
밀가루 빵은 언제나 그 애의 차지였다.
겨울날 연탄난로에 도시락을 올려놓을 때는 그 애가 순번을 정했다.
일번은 밥이 타니 힘없는 애의 것을 밑에 깔고 그 다음이 그 친구
그리고 웬일인지 다음에 내 것을 올려주는 아량을 베풀어 주었는데 아마 지난
번 시험 때 나에게 약간의 도움을 받은 것을 잊지 않고 특혜를 주는 것 같다.
지글지글 밥이 타는 구수한 냄새와 도시락 속의 김치가 익어 찌개가 되어
코를 자극하면 수업에 열을 올리시던 담임선생님은 돌이 친구를 시켜
도시락의 순서를 바꾸어 놓게 하였는데 그날따라 그 뜨거운 도시락을
맨손으로 만지다 “앗 뜨거!” 소리치며 도시락을 떨어뜨려 교실바닥에 엎으니
조심성이 없다고 또 불려나가 매를 맞았다.
난로의 지독스런 열기를 못 참던 수퉁니 두 마리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뒤뚱거리며
한 친구의 스웨터 속으로 숨으려 할 때 돌이 친구는 잽싸게 포획하여 몸통 중앙에
까만 반점을 가진 그놈들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경기를 시켰다.
애들에게 내기를 걸도록 강요도 했고 싫증이 나면 그놈들을 난로에 던져 놓으면
잠시 후 폭발음과 함께 구수한 누린내가 설핏 교실 안에 퍼졌다.
세월이 흘러 졸업 후 십여 년 만에 그 친구를 서울에서 우연히 만났다.
대학생인 나를 무척이나 부러워하며 자기는 중학교진학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서울로 상경하여 고압가스판매상을 한다고 하였다.
무척이나 반가워하기에 대학교정을 구경시켜주고 평상시 내가 먹던 점심으로
라면을 사 주었는데 식사 중 나에게 부탁을 하였다.
너도 잘 아는 초등학교 동창인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서울에서 철재상을 하여 돈이
많은데 그 친구에게 부탁하여 삼백만원만 빌리면 금방 일천 만원을 만들 수 있는
아파트 배관 공사를 내 사촌동생과 따내 이자와 함께 한달 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다방에서 오랜만에 여자 동창을 만나 순진한 나는 돌이 친구의 말을 액면그대로
믿고 부탁하였더니 통 큰 그녀는 의외로 사업의 성공을 빌며 순순히 돈을 빌려
주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부자임을 강조하고 내 뒤를 봐줄 듯 연정을 품고 접근해 왔다.
나는 뭐가 뭔지 몰랐어도 어릴 적 친구가 그저 사업에 성공하여 지난날에 아픔을
멋지게 보상받기를 간절히 원했을 뿐 다른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차용증만은 내가 사인하지 않고 실제 돈을 빌리는 돌이친구에게
배서하게하였다.
그러나 한 달 후 돌려준다는 약속은 번번이 깨졌고 공사를 재개한다는 친구는
한 평반 남짓의 당산동 옥탑 방에서 사촌동생과 잠만 쿨쿨 자고 있었다.
캐물었더니 자기들도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다.
여자동창은 나에게만 빚 독촉을 해왔다.
급기야 강화 사촌형에게도 여자동창은 달려갔고 그 사실이 어머니에게도 알려지니
전화상 어머니의 잔소리와 꾸지람은 연일 계속되었고 나의 스트레스의 도를 넘어
해결이 안 되니 급성 위염까지 겹쳤고 몸은 비실비실 말라갔으며
생전 처음 태어나 병원에서 위 내시경을 하는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그 큰돈을 학생인 신분으로 어떻게 해결한다는 말인가?
정말 마음고생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서울물을 먼저 먹은 돌이친구는 해결사를 샀다.
말은 조폭출신이라는데 아주 잘생겼고 신사 같았으며 누가 물으면 자기가
친형이라고 둘러댔다.
새벽 다섯 시에 사기를 친 연세 지긋한 분의 집을 급습하더니 잠옷 바람의
그 분을 끌고나와 택시에 강제로 태워 성동경찰서 앞 다방으로 끌고 가더니
평소의 신사 같은 행동과 달리 아주 위협적으로 협박을 가해 돈의 일부를
받아냈다.
그 모습은 정말 무서웠다.
공부만 하던 나는 인생살이의 밑바닥을 경험하는 순간이었고 눈감으면 코도
베 간다는 속담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못 배운 친구의 사업성공 만을 오직 꿈꾸던 순진무구함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삼백만원 중 칠십 만원을 받으니 이십 만원은 그 해결사가 가로채고 오십 만원을
여자동창에게 돌려주었다.
나머지는 정말 돌려받기 요원한 채 세월이 흘렀고 중년이 되어 초교졸업
삼십년 만인 동창회에서 다시 옛 친구들을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서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모든 걸 다 잊고 동심으로 돌아가 그저 낄낄거렸다.
옛 말씀에 보를 서는 놈에게는 딸도 주지 말랐는데 이것이 인생살이에
쓰라린 경험이 되어 보증이라면 진저리를 쳤다.
서울 돈이 절대 내 돈이 아님을 돌이친구나 나는 이미 그때 깨달았다.
돌이친구, 잘 살고 있는지 전화나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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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님의 댓글
선배님 글을 읽으니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와 고교때 "우리 앞으로도 보증이나 돈얘기 절대 하지말자"고 약속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무슨일로 그런 약속을 한지는 기억이 안나네요.. 세월이란 아픈 기억까지도 막연한 그리움으로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는것 같습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태훈후배, 나랑 같이 눈썹이 짙은 걸로 보아 후배도 인정이 많고 마음이 곧을 것 같네.
그날 만나서 반가웠네. 잘 생긴 모습이 14년전 내 모습같아 보기 좋았네. ㅎㅎㅎㅎㅎ
잘 지내시게.
이환성(70회0님의 댓글
보증이라면 진저李를..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용혁후배는 일찌감치 어두운 세상살이와 금전으로 인한 고통을 느꼈나 보군요..많이 공감합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환성형님, 진자리 마른자리가 아니시고 보증의 진저리를 일찍 아셨군요?
건필하세요.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 진자 인생의 바닥이 이런 것이구나를 실감했어요. 젊은 나이에 ㅎㅎㅎ
암흑세계의 실상을 아니 늘 조심스럽더군요. 공감하시니 감사합니다.
김태희(101)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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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 = 진저李 => 이하동문<br>
해결사 등장의 조폭영화에서 엑스트라 하셨군요.암튼 별난경험 다 하며 사셨네 ㅎㅎ
오윤제님의 댓글
내 태희님 뒤를 이으려니 할말이 없네요.
윤용혁님의 댓글
김태희님, 해결사하면 우락부락일것 같지만 외모는 곱상합니다. 그러나 실제 행동에 들어가면 무섭드군요.ㅎㅎㅎ 윤제형님도 오셨군요. 비가 많이 내리는날, 행복하세요.
李淳根님의 댓글
희미끼리 하지만 달콤한 강냉이 옥수수죽과 거칠지만 떠끈하고 노오란 옥수수빵의 내음이 진하게 코끝을 스쳐 갑니다. 집집마다 먹을거리가 없어서 오직 점심시간의 먹거리에만 의존하며 아귀다툼하던 옛 꼬마들의 까까머리 모습이 아련 합니다. 그 들은 지금 어드메서 추억을 곰 씹고 있을까?
윤용혁님의 댓글
이순근 선배님, 보기에 정말 먹고 싶을 정도의 노란 옥수수빵, 그애들의 점심을 먹고싶어
턱쳐들고 침을 삼키던 그 시절이 기억납니다. 다들 지금은 어디서 잘들 살고 있겠지요.
즐거운 오후 되세요.
김태희(101)님의 댓글
70만원 중 20만원이 해결사 몫이었으면 미남 해결사님이 많이 세일해 주셨나 봐요 ㅎㅎ<br>
요즘 50;50 도 있나 보던데...<br>
남자 얼굴마담 하나 구해 해결사 사업자 등록해서 연말까지 열심히 벌면 인사동문집5탄은 찬조 없이도...ㅋㅋ 켁!!!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 김태희님, 사업적 수완이 남달라 보입니다. 인사동의 얼굴마담은 누구일까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