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잤어요?
본문
잤어요?
어릴 적 동네 이장님 댁에 한 대씩 있던 까만 자석식 전화기로
외지에 전화를 걸려면 아리따운 목소리의 전화교환수에게
부탁하여 30분이나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겨우 통화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때는 이장님 댁으로 외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스피커를 통해
“아아, 누구 어머니 전화가 왔으니 어서 빨리 오시겨.” 삐이익.
그러면 동네 아주머니는 밭김을 매다 손을 툭툭 털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부리나케 달려가시곤 하였다.
동네 총각들은 우체국에 근무하는 여자교환수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늦은 밤 쓸데없이 전화를 걸어 치근 덕 거렸으나 그래도 그 중에
하나는 운 좋게 눈이 맞아 장가를 드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였다.
집에 있는 다이얼식 전화기는 형이 거의 다 쓰면서 매달 전화요금이
많이 나올 때면 난리를 치며 잠금장치를 걸어 놓고 아무도 못쓰게
하고 자기만 살짝 열어 쓰다 그것도 잠시 자기 자신이 너무 불편하니
며칠만 지나면 언제 그랬듯이 원상태로 돌아오곤 하였다.
세월이 흘러 삐삐가 유행하더니 급기야 무전기만한 시커먼 핸드폰이
나와 자랑이라도 하듯 들고 다니며 큰 소리로 호기를 부리며 위세를
부리던 사람들도 속속 등장하였다.
점점 그 크기가 작아지면서 안테나로 귓구멍을 파는 후배 녀석이
셀 폰을 들고 와 “형은 핸드폰도 없어?” 하며 늘 놀렸다.
약국에만 근무하는 나로서는 구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무빙 폰이
쏟아져 나온 지 십여 년이 흘렀어도 나의 주머니에는 핸드폰이 없었다.
초등학교동창회에 처음 나갔더니 친구들이 “너 아직도 핸드폰이 없니?”
얼마나 사는 것이 구차하면 여태껏 핸드폰하나 장만을 못했냐?”
하며 동정어린 눈길을 보냈다.
문자매세지가 어떻다느니 몇 만 화소짜리니 하며 시끄럽게 떠들어도
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관심도 없었다.
왜냐면 늘 환자들을 보느라 매달려 있는 놈이 그리고 내 앞에 전화기가
그리고 핸드폰예절은 어떤가?
성당 미사 중 정적을 깨고 울려 대는 핸드폰 소리,
출퇴근 길 전철 안에서 혼자인양 소리치며 핸드폰을 받는 소리,
연주회장에서 폰 카메라의 번쩍임과 벨소리,
다른 환자들이 줄지어서 바삐 기다리는데 복약지도를 하려하나 그 환자는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대화를 오래 끌며 낄낄 거릴 때는 그 무례함이
미워 핸드폰자체도 싫었다.
이와 함께
전자파의 유해성을 매스컴을 통해 듣는 나로서는 남들이 다 써도
난 안 쓴다는 특유의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들이 더 불편해 하였다.
급기야 고교 동문모임에서 내가 하도 핸드폰을 안사니까
선배들이 주축 되어 오천 원씩 모금하여 나에게 핸드폰을 사주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이건 아니다 싶어 갈등을 하고 있던 차에 동생도 급한 일로 연락이 안 되어
짜증을 부리고 난리를 치기에 같이 근무하는 여직원을 통해 결국 작년에
인터넷으로 검정색 무슨 연예인 폰을 하나 큰맘 먹고 장만을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난리를 치던 사람들도 막상 내가 핸드폰을 샀다고 알려도
누구하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물론 처음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너무 섭섭했다.
드디어 첫 통화음이 경쾌하게 울렸다.
반가워 달려가 전화를 받았더니 누구핸드폰이 아니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였더니 “죄송합니다.”하고 끊었다.
알고 보니 하필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번호를 내가 쓰게 된 것이다.
매번 문자매세지가 “딩동”하고 날아들기에 받아들면 “동지들이여!
몇 시까지 어디로 모여라. 대의원회에서 전면파업결정, 투쟁만이 살길이다.“
등의 노조근로자가 사용하던 번호였는지 그런류의 편지들만 날아들었다.
얼마 전에는 묘한 내용의 문자매세지가 날라들더니 새벽 4시쯤,
곤히 자는데 요란하게 핸드폰이 울렸다.
깜짝 놀라 전화를 받으니 “잤어요?” 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누구시죠?” 하고 물었더니 “사귀던 사람인데요?” 하는 것이 아닌가?
좀 짜증이 나 길래 “누구한테 하셨어요?” 하고 물으니 누구핸드폰이
아니냐고 물었다.
참 어이가 없었고 새벽에 도대체 전화를 거는 이 여자는 그놈이랑
무슨 관계인지 몰라도 나로서는 정말 황당하였다.
만약에 집사람이 받았다면 혹시 오해를 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잤어요?” 한마디에 잠이 다 날아가 버렸다.
엊그제 그 문제의 검정색 핸드폰을 잃어 버렸다.
운동을 마친 후 레슨 팀끼리 자축을 위한 생맥주 한잔을 마시러
가던 중 분실을 한 것 같다.
전화를 걸어도 전원이 꺼져 있었다.
드디어 오늘 통신사에 전화를 걸어 나에게 익숙지 않던 핸드폰의
실종 아니 사망신고를 겸한 해지신청을 하였다.
핸드폰아, 못난 주인을 용서해라.
그러나 나는 이제부터 문명의 이기로부터 떠난 자유인이다.
나의 족쇄는 풀렸다.
그래도 가게에는 두 대의 전화기가 씽씽하게 살아있으니 당분간
널 잊고 자유롭게 살련다.
댓글목록 0
김태희(101)님의 댓글
<embed src="http://jk13.codns.com/video/mp3new1/Antenna-kraftwerk.wma
" loop=-1 width=70 height=25 enablecontextmenu="0"
>♪ kraftwerk /Antenna <br><br>
오늘도 역쉬 형님 또 등장,,동생의 추억 나들이에 매일같이 불려다니며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시는 형님이 고맙습니다.ㅎㅎ<br>
김태희(101)님의 댓글
그 옛날, 휴대폰. 카폰이 금값여서 부의 상징같던 시절, 뻐기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걸 들고 소리지르며 통화하고<br>겸손한 사람은 누가 들을세라 슴어서 티 안내고 통화를 했죠.<br>
걸고 받는 용도만 쓰는 저는 구식모델 그대로 내삐두고 쓰는데 남들이 측은하게 보더라구요 ㅎㅎ
윤용혁님의 댓글
태희님의 구식모델에 정이 갑니다. 셀폰에 예절을 모르고 환자에게 복약설명을 하려는데 그 환자 핸드폰으로 연신 낄낄거리니 다음 환자들은 줄서서 기다리고 믿더군요. 성당미사중 울려대는 벨소리, 무지인지 무례한인지 궁금하더군요. 김태희님의 쿨한 모습 댓글로 나타나 저 또한 감화되어 돌아갑니다.
이창열(78회)님의 댓글
역시 핸드폰도 선배님을 따라가지 못하나 봐요. 그 옛날 자석식 전화기를 기억하시다니 대단하시네요...
저의 집 전번이 2국에 0279 여쓴데... 아 모든것이 이 세상에 사는 어린이와 젊은이는 알련지요...
결국 저도 나이 먹었나봅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창열후배님, 추억의 단자리국에 0279이군요. 손으로 돌리던 전화기를 후배님이 기억해
주니 더욱 그 마음을 공유합니다. 학교를 2년차로 같이 다닌 후배님들과 동대문 야구장
응원가던 생각이 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석광익님의 댓글
그 여자 누구야? 솔직히 불라우 ㅋㅋㅋㅋ
장재학님의 댓글
애고...이상한 전화에 가끔 땀을 흘렸는데요...ㅋㅋ
안남헌(82회)님의 댓글
前뱅크맨 슈퍼하는 내동기넘도 핸펀이 없어서, 문자연락시마다 별도로 통보를 해야하는 불편함이...본인은 불편함이 없대요!! ㅎㅎㅎ
윤인문(74회)님의 댓글
나도 핸드폰 중독현상이..어쩌다..핸드폰 집에 두고나가면 웬지 불안..용혁후배 옛날 전화 얘기가 정겹네..그땐 전화가 귀했지..백색전화, 청색전화전화가 있었는데 우리집은 백색전화로 집안의 가보로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ㅎㅎ
이시호님의 댓글
저는 영업사원이라 핸드폰 번호가 생명인데,하여간 대단 하십니다. ㅎㅎㅎ
이환성(70회)님의 댓글
내보증금 인문님에게 받아 용혁님 약국구좌에 입금시키게나..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 광익아, 난 순진맨. 시간이 없고 능력도 없어 솔직히 불것도 없다네. 잘 지내지? 친구야. 혹시 친구가 캐나다에서 금발의 미녀라도 소개팅하면 태평양을 헤엄쳐라도 가겠네. 건강하고 행복하게나.
윤용혁님의 댓글
재학후배도 나처럼 곤혹을 치뤘구만. ㅎㅎㅎ 장 동지, 좋은 날 되시게.
남헌후배 다음번에 만나 고향소식도 들으며 소주한잔하게 시간을 내 보겠네.
그간 수고 많았네.
역시 인문형님네는 양도가 가능한 귀한 백색전화를 가지셨었군요.형님 저 약국에
전화기 두대니 언제든 그리 연락 주세요.
윤용혁님의 댓글
환성형님, 권리금이 아니시고 보증금이라 하셨죠? 방이 안 빠져 보증금을 내어 줄 수 없다는군요. 정붙여 사시래요. 글쿠 형님없으시면 인사동 재미없고 넘 쓸쓸하데요.
이참에 보증금없이 월세로 돌리시지요. 오늘 오시겠군요? 형수님과 좋은 시간 되세요.
시호후배, 정말 그렇겠군요. 화이팅!
오윤제님의 댓글
내가 예전에 장만한 아나로그 휴대폰 자랑스럽게 빈 양주병과 함께 진렬해 놓았습니다.
10개월 월부로 산 그것 왜 교환도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 있는지 나원 참 에니콜이라 해서 언제든지 교환해 준다는 걸로 안 나의 실수
윤용혁님의 댓글
윤제형님, 옛정이 뭍어 있어 쉽게 버리시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빈 양주병과 애니콜,
어울림으로 자리함에 아날로그시절이 그립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