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발표작-나부상(裸婦像)의 전설
본문
다음의 작품은 4년 전에 발표했던 것으로서 그 해
여름 휴가 중 하루를 가족과 함께 강화도 전등사로 갔을 때 얻었던
것입니다. 혹시 올해 휴가로 강화도 전등사에 가시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올립니다.
나부상(裸婦像)의 전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진 우 곤
지난 8월 12일 여름휴가 기간 중 당일 코스로 가족들과 함께 강화도에 있는 전등사에 갔었다. 그곳이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만큼 관광의 명소로서 이름값을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전등사의 대웅전(보물 제178호) 추녀 밑 네 귀퉁이를 자세히 쳐다보면 원숭이같이 못생긴 한 여인이 벌거벗은 채 쪼그려 앉아서 무거운 추녀를 떠받들고 있는 모습을 나무로 조각한 ‘나부상(裸婦像)’이라고 일컫는 특이하고 기이한 인형물(人形物)이 있다. 이것이 여타의 사찰과 다른 점이다.
그곳은 내가 20여 년 전에 한번 들렀던 적이 있었으나 그때는 피상적으로만 본 탓으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단지 그 여인의 치부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한 것을 보며 너무했다고 혀를 끌끌 차며 눈살을 찌푸렸었다. 즉, 신성해야 할 불당인 대웅전에 걸맞지 않게 나부상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을 뿐더러 불경스럽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비와 눈, 바람에 시달려서인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그것을 조각한 솜씨가 별로 뛰어난 맛이 없고 조잡하기조차 하여 예술적인 미와도 다소 거리가 먼 감이 있었다. 거기에 꼭 그런 인형물이 있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자못 고개가 갸우뚱거려졌었다.
이런 감상은 내가 다음과 같이 전해지는 구슬프기 짝없는 나부상(裸婦像)의 전설에 대해서 상세히 모르던 때의 일로서 마치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격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여 이번 기회엔 대웅전의 ‘나부상(裸婦像)’을 중점적으로 살피며 나름대로의 의미를 얻어 오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그랬다. 다시 구경하게 된 나부상은 예전에 겉으로만 바라보고 느꼈던 선입견이 양파 껍질이 한 겹 두 겹 벗겨지듯 그 전설로 인해 서서히 무너지는 결과를 낳게 했다. 아니, 장님이 눈을 뜨듯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했던 것이다.
대웅전을 축조할 때의 일이란다. 목수의 우두머리로서 도편수인 동량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목수들을 통솔하여 기둥을 다듬게 하고 석가래 올리는 것을 지휘했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사랑하는 한 여자가 있었다. 다름 아닌 강화 저자에 있는 삼거리 주막의 젊은 주모였다고 한다. 자신이 받은 품삯마저 전부 맡길 정도였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그녀와의 사랑에 깊이 빠졌는지는 이것으로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대웅전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중에 딴 사내와 눈과 배가 맞고 말았다. 게다가 동량이 맡긴 돈마저 몽땅 챙겨서 그 사내와 함께 도망쳐 버렸던 것이다. 이에 동량은 실연의 괴로움에 빠져 허덕이다가 무슨 의도에선지 대웅전 추녀의 용마루 밑 네 귀에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을 나무로 조각하여 받쳐놓았단다.
대체적으로 이런 줄거리를 갖고 있는 나부상의 전설은 어떻게 보면 오늘날에도 흔해빠진 통속적인 사랑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동량을 배반하고 달아난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상세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다고 단순히 조각물의 모습만을 가지고 추녀라고 섣불리 판단하기도 어렵다. 다만 동량을 차버리고 다른 사내를 탐할 정도라면 남정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제법 미색을 갖췄던 게 아닌가 싶다.
따라서 나부상에 새겨진 모습은 그녀가 저지른 짓을 동량이 보기엔 아마도 꼭 원숭이의 짓같이 간사하게 여겨져서 그랬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동량이 그녀에게는 첫사랑이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뿐만 아니라 호박이 넝쿨 채 굴러 떨어지듯 동량에게서 거저 받는 공돈에 욕심이 생겼을 테고, 얼굴값을 한다고 다른 사내와 군것질을 한 것을 보면 그녀의 판단엔 동량이 다른 사내보다 생김새가 좀 못났거나 어수룩하게 비춰졌던 게 아닐까.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사랑을 잃어버린 동량이 애증(愛憎)의 갈림길에서 과연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무슨 의도와 심경으로 대웅전에 나부상을 조각했는가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동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느닷없는 주모의 변심이나 다른 사내와의 사랑의 도피 행각쯤이야 예나 지금이나 흔히 접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닌가.
흡사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처럼 사랑과 돈을 모두 잃어 안팎곱사등이가 돼 버린 도편수인 동량. 생각하면 할수록 자기를 배신한 주모가 얼마나 죽이고 싶도록 밉고 괘씸했을까. 사실 그 지경에 이르면 어느 사내라도 당연히 느끼고 남았을 분노와 실의의 감정이 그의 가슴속을 휘저었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전설은 이것으로 허술하게 끝나지 않는다. 사실 전설이란 때때로 구전되면서 조금씩 변하여 미화되거나 윤색될 가능성이 있기 마련이다. 이는 후세 사람들이 저마다 맛을 돋우기 위해 편리한 대로 추측하거나 살을 붙이려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연이 주는 참담한 아픔과 괴로움에 빠진 동량이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 내가 입수한 관광안내 책자인 ‘호국성지 강화도(1997년, 우진문화사 발행)’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이에 분개한 동량은 자기를 배신한 여인의 나신을 새겨 이 법당의 지붕을 들고 있게 함으로써 영원한 고통과 함께 법당에서 울려 나오는 염불소리를 들으며 깨달음을 얻으라고 했다는 애달픈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설의 맛이나 향기는 바로 이것이야 하고 나로서는 사뭇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동량으로서야 노도 잃고 닻도 잃은 것처럼 마음이 갈가리 찢겨졌을 게다. 하지만 그는 순정을 바친 자신의 사랑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되찾을 가망이 없다고 이내 체념했을 것이고, 이전보다 오히려 더 마음을 도사려먹고 열정을 불태우며 대웅전 공사에 임하지 않았나 싶다.
더 나아가서 그가 나부상을 조각하기로 결심한 것은 단순히 자신을 배신한 주모에 대한 분풀이나 앙갚음, 혹은 저주하는 감정의 표출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그 여인의 어리석은 짓에 대한 연민의 정이 싹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즉, 그녀를 용서하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게 훨씬 더 믿음이 가는 일인 것 같다.
대웅전이 신성해야 한다는 것을 동량이라고 모를 리 있겠는가. 그러나 자신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달리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것에 대해서는 저마다 구구한 해석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심경을 밝혀줄 당사자였던 동량이 죽고 없으니 그저 전설로서나마 길이길이 전하는 것일 게다.
비단 동량의 경우뿐이겠는가. 지금은 가히 여성이 활개를 치고 있는 세상이라 할 정도다. 이는 직업의 세분화로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일어난 현상이 아닐까. 게다가 요원의 불길처럼 남녀 평등이 그 어느 때보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외형적 치장만 봐도 남성이 오히려 여성화 되는 추세가 아닌가 싶다.
뿐만 아니라 일편단심으로 한 남편을 위해 일생을 다 바치는 일부종사(一夫從事)나 남녀를 엄격히 구분하던 남녀칠세부동석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남녀간에 접촉 기회가 빈번함에 따라 저마다 배우자 외에 애인을 하나씩 꿰차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여길 만큼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다. 그리고 남녀간의 불륜이 당연한 것처럼 TV나 영화에서 공공연히 다루고 있는 세태에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으로 말미암아 부부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불화가 심화되어 갈수록 이혼율의 증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그리고 심심찮게 일어나는 남녀간에 치정(癡情)에 의한 살인사건을 접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소름이 끼친다. 남녀간의 정이란 이렇게 살인마저 불사할 정도로 무서운 것인가.
나부상의 전설.
이는 갈수록 점점 문란해지고 붕괴되는 남녀간의 윤리관에 대한 하나의 경종(警鍾)일지도 모른다. 즉, 동량이 나부상을 조각한 것은 남녀간에 건전한 윤리관이 엄존해야 함을 넌지시 알리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었다고 보는 게 그 전설에 대한 올바른 해석의 접근 방법이 아닐까 싶다. 비록 동량이 가고 없을지라도 그가 남긴 애틋한 사랑이 더 향기가 나도록 가꾸려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나부상을 옥에 티로 여기는 근시안적인 자세를 버리고 오히려 그것을 조각한 동량의 숨은 뜻을 깨닫고 옷깃을 여미려는 자세가 훨씬 더 운치가 있을 게다.
구경을 마치고 전등사 남문을 나서니 여름 햇볕이 따갑기 그지없었다. 나는 차에 오른 뒤 운전대를 잡고 덕진진으로 향하는 아내에게 나부상의 전설을 들려 주는 것으로 그의 피곤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려 애썼다. 그러자 아내는 언제 그런 것까지 하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동량이 진지한 자세로 나부상을 조각하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말 듯 눈에 밟혀 오는 게 아닌가.
(2003년 9월)
댓글목록 0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어쩌면 나부상과 요즘 세태 남녀관계는 별다르게 없을진데 주위에 받아들이는 모습은 나부상 그 시절과는 훨씬 달라보이는건 같소..요즈음은 그런 것들이 드라마 주제가 되어 부추기는 세상이 된건 아닌지..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주어 고맙네..친구
윤용혁님의 댓글
제 고향 강화도 전등사의 대웅전에 새겨진 나부상의 전설을 현 세태와 견주어
생각하는 시간이 되게 좋은 글을 주셨군요.진우곤 선배님께서 시사하는 바를 곰씹어 봅니다.현재 일어나는 남녀관에 경종을 울려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김태희(101)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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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101)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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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101)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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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101)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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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참으로 힘겨워 보이지요? 진짜로 못생기기도 했구요.
김태희(101)님의 댓글
전등사가 꽤나 오래전에 축조된 건축물로 아는데 ,<br>
그 옛날에도 변신녀(꽃뱀)에게 순정을 바치다 울은 남성이 있었다니...<br>
남의 피눈물에 저는 왜 웃음이 나올라카는지...몰겠습니다.<br>
아마도 저 못생긴 조각상때문인가..?.변신때린 형벌이 시대를 초월하여 이어지고 있습니다. ㅎㅎㅎ
진우곤님의 댓글
태희 후배, 고맙군. 관련 자료까지 첨부해 주다니.......
박남호님의 댓글
전등사를 오르내리며 무심코 지나쳐 왔었는데 좋은내용 머리에 새깁니다
고희철(74회)님의 댓글
우곤아 김태희(101)님은 인고101회 졸업생의 학부모님일세~~ㅎㅎ
인고를 사랑하는 분 들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고마운분이시지..
공감! 글 잘 읽었네..
태희님 음악, 사진 즐감 했습니다.
오윤제님의 댓글
내 태희님게 백배 사죄한 일 우리 진 작가도 해야 할 것 같군요. 각설하고 남녀상열지사란 삼국 시절이전은 모르겠지만 고려시대 부터 지극히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동량이란 도편수 나만큼 아량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처용을 보면 그 넓은 아량에 목메이는 여인 많을 겁니다.
진우곤님의 댓글
신변방의 초년생 딱지를 떼지 못한 탓에 커다란 결례를 범하고 말았군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데...... 그저 촌닭이 관청에 오른 듯 어리둥절하기만 할 따름. 어느 분이든 속시원히 말씀 좀 해주십시요. 고희철 동기와 오윤제 선배님의 김태희(101)님에 대한 각별한 언급에 대해서 말입니다.
김태희(101)님의 댓글
하하..우곤님!!<br>
전 그저,,아들(101회)과 오라버니(5*회)가 인고인인 사람일뿐입니다.<br>
자주 못 오시는 우곤님을 헷갈리게 해 드려 죄송하구요,,(그러니까 자주 오셔야지요.ㅋ)<br>
희철님과 윤제님이 제게 주신 각별한 애정표현에 시방 실실대고 있는데...아!!!꿋꿋하게 드나들다 보니 오늘같은 날이..ㅎㅎ감사!
????님의 댓글
<image src="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1331102">
진우곤님의 댓글
김태희(101)님 고맙습니다. 의문이 풀리니 가슴이 확 트입니다. 자상함이 은은하게 감도는 모습이 눈에 잡힐 듯합니다. 자주 찾아빕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