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진돌
본문
“친구야 놀자!” 아까부터 친구들이 대문 밖에서 콜록거리며 날
부르는 소리다.
저녁밥을 물 말아 대충 후루룩 마시고 고무신을 바삐 거꾸로 신은 채
동네 한가운데에 나서니 꼬득이, 시갑이, 청개피리, 숭어, 농짝, 개 코라는
별명을 가진 동네 애들이 벌써 모여 편을 짜고 있었다.
도중에 뚜껑이라는 친구도 놀이에 합류했는데 그 애의 이름은 참으로
희한했다.
하필 그 많은 이름 중에 왜 “뚜껑”이란 말인가?
그 집 어머니가 자식을 열 명쯤 낳았는데 그 중에 어떤 아이는
김을 매다 밭에서 난아이도 있었다한다.
그러나 돌을 넘겨 생존한 애들이 거의 없자 누가 그랬는지 이름을 천하게
지으면 오래 산다는 말을 듣고 그 집 할아버지가 그렇게 지었단다.
자연스레 그 친구의 별명은 냄비뚜껑이 되었다.
진돌,
사방이 튀인 저쪽 감나무와 밭 귀퉁이에 대추나무를 중심으로 두 편으로 나눠
몰래 적진을 향해 뛰어 들어가 상대편 진지인 나무를 터치하면 이기는
놀이였다.
여기에는 암묵적인 애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자기진영의 나무에 손을 대고 있다가 누가 먼저 길을 떠났느냐에
따라 술래가 정해져 엄격하게 지켜졌던 것이다.
만약에 그 불문율을 어기면 곧장 싸움으로 번졌고 자주 그러는 아이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다음번 놀이에 끼어주질 않았다.
부스럼을 달고 사는 아이는 몸이 아파 잘 뛰지 못하므로 진지를 철저히
지키게 하고 날쌘 돌이 같은 우리 편 친구들은 상대편에 누가 먼저 진영을
나왔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추적에 들어갔다.
심지어 쫓겨 산속에 숨은 친구도 잡아 낼 정도로 흥미진진한 애들만의
놀이였다.
살금살금 다가가 “깡” 또는 “진돌”하고 적진의 나무를 손으로 터치하는 순간
그 게임은 승리로 끝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노래기라는 친구네 오늘붙인 김장밭을 애들이 붙잡히지 않으려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 밝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자 저만치서 지게작대기를
들고 “야! 이놈들아”하며 쫓아오는 노래기 아버지의 노기에 혼비백산하여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냅다 도망을 쳤다.
그래도 놀이에 미련을 못 버린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들어 떼 숨바꼭질을
하였다.
시골의 변소가 딸린 외양간이나 헛간은 어두컴컴한 밤에 여러 명이
숨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
상대편 아이들은 "박 서방, 에헴“하며 숨을 죽이며 숨은 친구들을
찾아내느라 혈안이 되었다.
막대기로 쿡쿡 찔러 아파도 꾹 참아야 했으며 웃음을 참느라
혀를 깨무는 고통도 견디어야했다.
심지어 막대기를 요리저리 피하다 재래식 변기통에 발이 빠져 울상이
되는 친구도 있었다.
잠을 청하던 헛간의 소도 귀찮은 듯 머리를 흔들며 진저리를 쳤다.
어느 날은 잽싸지 못한 여자 친구들을 청솔가지가 박힌 나무동이로 지질러
미리 숨겨두고 상대편을 “찾으러 간다!”하고 큰 소리로 외친 후 그 여자애들을
골려주려고 남자애들은 그냥 집으로 각자 가버렸다.
그 바람에 나무동이에 눌려 갑갑해 숨도 못 쉬고 들킬까봐 옴짝달싹도 못하던
여자애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한 시간여를 기다리다 나중에야 속은 사실을
깨닫고 다음날 분통을 터트리는 그 애들의 항의에 미안해 사과한 적도 있었다.
그 사납던 여자애들,
자치기를 남자애들이랑 같이하다 막대기를 잘못 내둘러 뒤에서 코치하며 서있던
나의 콧등을 때려 쌍코피를 터트렸던 선머슴 같던 여자 친구는 시집을 가,
아들 딸 낳고 지금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서편에 그믐달은 눈썹을 감추고 서산마루에 걸리던 시절,
애들만의 약속이 잘 지켜졌던 그 시절을 학원이다 컴퓨터다 하며
골목길은 텅텅 비어가고 극도로 개인주의화된
지금의 아이들은 그 진돌이를 혹시나 알까?
놀이를 통해 세상의 법칙을 하나씩 알아가던 그때를 말이다.
댓글목록 0
李聖鉉(70회)님의 댓글
ㅋㅋㅋ 환쇠 xx 여고에 고별사 남기고 떠났네..버지니아택인지 뭔지 두려웠겠지..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 성현형님,
환성형님의 고별사에 눈물이 나와야하는데
입이 자꾸 가로본능이 되어 송구하옵니다.
버지니아택의 영향이 환성형님에게까지 미쳤군요.
우리의 희망 환성형님, 굴하지 마시고 홧팅하세요.
윤인문(74회)님의 댓글
成님은 내가 버지니아텍 얘기해도 흔들릴 분이 아닙니다. XX여고 홈피에 슬쩍 고별사를 띄워놓고 지금까지 여고에서의 成님의 존재가치를 알아보려는 고단수의 수법으로 보입니다..ㅋㅋㅋ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글쓰기 9단의 전법임을 알기에 입가의 가로본능을 세로본능으로 바꾸렵니다. ㅎㅎㅎ 심리분석가이신 인문형님,대단하십니다. 환성형님의 마음에 들어가셨다 나온 듯 눈치를 채셨군요.
장재학님의 댓글
환성 선배님은 관전을 하시는것 같아욤...ㅋ
윤용혁님의 댓글
재학후배, 환성형님의 고별사에 대하여 연구분석하여 글쓰는 모든 이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시게. 환성형님의 글은 금세기가 낳은 신창조의 새로운 문단을 형성하여 "이상"도
감탄하고 있소이다. 재학후배가 환성형님의 문학세계에 가장 근접하여 사조를 따라가니
비평가적 입장에서 부탁하오.휘철형도 감복했소.
윤용혁님의 댓글
우곤선배님, 어릴적 골목길이 아이들로 북적거렸는데 이제는 아니군요. 추억으로 사라져버린 골목길을 되살릴 방법은 없는지요. 건강하게 뛰놀던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박남호(87)님의 댓글
오래간만에 공원길을 걸어봅니다 이길에 몇 안되는 아이들이 그저 부모의 손에 끌려가고 있네요
이길에 아이들의 자치기를 그려봅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오랜만에 공원길을 걸으며 그 길에서 자치기 하던 시절을 그리는 남호후배님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