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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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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싸리재에도 싸리는 없었다.
싸리재 밑에 배다리는 그 때에도 철다리에 요란하게 열차만이 오갈 뿐 배라고는 구경하지도 못했고 참외전거리에서 참외 파는 것 보지 못했다.
예전에는 싸리재에 핀 싸리꽃 아름다웠을 테고 참외전거리에는 개똥참외, 배꼽참외, 은천참외 달콤하게 온 거리를 참외 냄새 가득했을 것이다.
독쟁이에는 글 읽는 소리 끊이지 않게 들려왔을 것이고 장작골에서는 장작 패는 소리 우렁차게 들려왔을 것이다.
사리울과 부수지도 얼마나 정다운 말인가.
미추홀과 함께 내 고향 인천의 정겨운 땅이름들이다.
싸리재에서 싸리꽃을 못 보았다 해서 참외전거리에서 참외 냄새 못 느낀다 해서 서운할 턱이 없고 오히려 그리운 거리로 남아 있는 것은 나와 함께 숨 쉬고 있었던 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함께 쉼 쉬던 것이 이보다 먼저 내게 다가온 이름이 있으니 어린 시절 눈물을 흘리고 넘던 도장재이다.
학동시절 가방 메고 긴 겨울 처음 도장재를 넘을 때의 그 추위.
따듯한 안방이 그리워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열 번 스무 번 일어날 때 마다 어머니가 씌어 주신 벙거지가 바람을 막아 주어 나를 무사히 넘게 하였다.
지금 돌아보면 하찮은 언덕이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눈물의 도장재였다.
나를 건강하게 키우고 이 만큼 자라게 한 것도 물론 도장재이다.
도장재의 덕을 항상 생각하며 늘 감사한다.
6.25라는 민족의 비운 속에서 내가 낳았어야 할 고잔에서 저 멀리 제주도로 가서 태어난 운명이 조금 서글프지만 지금까지 고향이란 말만 듣고 자란 친구들 보다야 행복한 축에 드는 사람이다.
그것은 고향의 추억이 있기에 그러하다.
유년기에 들과 산으로 새잡으러 돌아다니던 시절, 참외 서리하며 주인에게 들킬세라 가슴 설레던 모습, 컴컴한 밤 철사줄에 묶인 포도를 몰래 따면서 퉁퉁 거리는 소리에 놀라 그냥 포도밭을 나와서는 친구가 따온 덜 익은 포도알을 입에 넣고 얼굴 찡그리던 추억, 대보름날 누구네 것 가릴 것 없이 꺼내온 볏단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신나게 불놀이 할 때 “한 놈만 잡자”하면서 나타난 볏단 주인에게 잡힌 친구를 따라 주르르 달려가서 용서를 빌던 추억들은 고스란히 내 가슴에 남아 있어 기쁠 때는 평안과 슬플 때는 위로를 주어 마음을 살찌게 해 주는 것이다.
그때에 잘 닦여진 신작로를 지나가려면 동네 어른들이 나와 계셔 공손히 인사하여야만 하였는데 이 인사야 말로 하기 싫은 것 중에 하나였다.
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아무튼 인사도 고개 숙이는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어쩌다가 볼일이 있어 요즈음 그 신작로 지나가노라면 어릴 적에 인사 받던 어른들은 모두 다 어디 가고 거리는 낯설고 휭 하기만하다.
어쩌다가 청년들이 나에게 인사를 한다.
누구인지도 잘 모르지만 인사를 하니 받아주는 처지가 되어 미안한 마음으로 받는다.
인사 받는 기색이 이상하니 어떤 녀석은 숙기 좋게 아무개 동생입네 아무개 아들입네 하고 소개할 때서야 어렴풋이 어렸을 때를 기억하고서는 반갑게 근황을 물어본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는데 고향이라고 변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신작로로 다니던 버스는 이제 그곳으로 다니길 외면하고 농사지어 양식 공급하던 논과 밭은 어느 틈엔가 그 옛날의 판잣집 모양 다닥다닥 공장이 되어 월세를 받는다.
돈 벌러 온 얼굴 검은 외국 사람들이 내 고향까지 찾아와서 살고 있는 세상에 논밭이 공장으로 변한들 무슨 대수랴마는 우리 마을의 얼굴이 변하여져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게 낯설어 가는 고향을 보면 가슴이 시리다.
썰물 따라 갯벌 나가서 구럭 가득히 조개 잡던 그 기나긴 행렬, 수건 하나 달랑 머리에 두르고 십리 길을 마다하지 않던 어머니들의 발길도 사라졌다.
무더운 여름 물주전자 들고 갱변에 옹기종기 모여 마중하던 친구들도 하다둘 사라져 가는 지금 갱변의 추억을 말해 보았자 듣는 이 없으니 허하기만 하다.
이보다 더 허한 것은 나의 고향 고잔이 고잔이게 한 갯벌이 사라지는 것이다.
광화문이 헐리는 것에 일본인인 야나기 무시오(柳宗悅)도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며 한탄하였다지만 이곳에서 대대로 살아 온 조상들의 뒤를 이은 놈이 조개표 하나 얻고 좋아하는 고향 사람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으니 이것이 나를 자라게 한 고향에 대한 도리인가.
바다는 벌써 송도 앞 바다가 화려한 건물로 변하고 동막을 지나 이제 고잔 앞 바다를 덮치고 있다.
칠월 백중사리에 해일을 만들어 제방을 헐어버리던 그 힘은 어디가고 네가 흙파도에 휩싸이는 처지가 되었느냐.
변해야 산다고 하지만 누가 고향의 모습까지 변하라 하느냐고 항변해 보았자 나의 힘은 미미하기만하다.
도도히 밀려오는 동북아 허브의 꿈은 나도, 고향도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제 고향도 옛 사람만의 언어가 될 듯싶다.
신도시를 만들면 구름처럼 몰려가 그곳에 자식을 낳고 또 신도시를 만들면 그곳으로 이사를 하니 아이들이 낳고 자란 곳에서 정인들 붙일 새가 있을 것인가.
하나뿐인 자식인데 형제의 정은 또 어떻게 느낄 것인가.
한 세대가 지나면 싸리재도 배다리도 사리울도 도장재도 언제 없어진 것인지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댓글목록 0
윤용혁님의 댓글
윤제형님의 고향유정에 저 또한 어릴 적 추억에 사로잡혀 봅니다.
산하는 그대로인데 옛분들은 사리진지 오래가 되었더군요.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거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갑자기 이 시조가 떠 오릅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윤인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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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찾아와도/나훈아
윤인문님의 댓글
고향에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두견화 피는 언덕에 누워
풀피리 맞춰 불던 옛 동무여
흰 구름 종달새에 그려보던 청운의 꿈을
어이 지녀 가느냐 어이 세워 가느냐
이환성(70회)님의 댓글
眞 - 悟 - 允 - 月-腸 - 이桐 - 이丸 - 辛 : 무슨 순서일까...<BR> 善<---->惡///勸 : 권할 권善 : 착할 선懲 : 징계할 징惡 : 악할 악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짓을 징계한다===> ...<BR>우리홈피도 이젠 惡의 축서 善의 축으로.....<BR>그중심에 우곤/윤제/용혁/인문...
윤인문님의 댓글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실버들 향기 가슴에 안고
배 띄워 노래하던 옛 동무여
흘러간 굽이굽이 적셔보던 야릇한 꿈을
어이 지녀 가느냐 어이 세워 가느냐
///기가 막히게 이 노래가사와 윤제형님의 글과 맞아 떨어지는지...ㅎㅎㅎ
조원오님의 댓글
사리울과 부수지를 아시는가?수인선 통학생이 아닌감?온 몸이 떨리네요.
범아가리에서 배다리 학교까지 얼마나 멀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억울해요.이리 가까운 것을..............
사리울,부수지.....피 천득의 인연이 생각나는 이름........
오윤제님의 댓글
원오 선배님 저 고잔이에요. 석바위로 가는 버스를 타서 만나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선배님 말고 민정현 선배님이 계셨던 기억이 나는데 연종이 선배님께 물으니 선배님 구월동에 사신다 들었습니다. 언제 한번 뵙겠습니다.
전재수님의 댓글
도장재,사리울,부수지가 어디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철엔 낙섬염전/주안/공설운동장 스케이트장에선 기차놀이 쥑였지요
신명철님의 댓글
<img src=http://pds39.cafe.daum.net/image/20/cafe/2007/05/31/13/31/465e4f8757c24&.jpg>
공설운동장 스케트장
차안수님의 댓글
부수지는 원인제역 인근인듯합니다.
박남호(87)님의 댓글
변화의틈에 옛적 새들의 울음소리를 그대로 새겨 들으며 추억에 담아볼뿐 시멘트 벽속을 아무리 뒤져도 옛것은 떠오르지 않고 옛소리,그향기,그꿈,그친구들 잘 안떠오른다.
저사진의 흑백이 왠지 그옛날로 돌아가게 하는건 머릿속에 그려진 흑백의 영상이 70년대로 불려들였을것이다
오윤제님의 댓글
사리울은 논현주공 위쪽 도림동 사에 마을이 잇습니다. 그곳을 사리울이라 하였지요.
부스지는 차 후배 말대로 원인재 부근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