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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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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고구마
산토닌을 학교에서 단체로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한 움큼씩 먹고 나니 하늘이 노래졌다.
뱃속의 회충을 구제하고자 반장이 물주전자를 들고
컵을 받아든 우리는 담임선생님의 감독 하에 그
많은 알약을 버리지도 못하고 배부르게 먹어야 했다.
다음날 아침,
며칠 전 아버지께서 읍의 약방에서 사오 신 십이지장충에 먹는
은박지에 알 수 없는 영어로 쓴 물약은 너무 써 아침밥을
굶고 먹으려니 토악질로 하늘이 빙빙 돌았다.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뱃속의 벌레들을 모두 사냥하기위해
어머니의 강권으로 이틀 연속해서 입안에 구충제를 털어 넣고 있었다.
밥을 쫄쫄이 굶고 학교를 가니 아이들이 내 안색이
너무 노랗고 안 좋다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분명 오늘도 어머니께서 내 점심을 위해 가운데 솥에 찐
섞박지 김치와 밥 한 그릇을 담아 놓고 들일을 나가셨을 텐데
점심시간에 그걸 먹으러 갈 기운조차도 없었다.
수돗가에 나가 냉수를 벌컥 들이 마시고 옆 반에 놀러가니
그 반 선생님의 탁자에 찐 고구마 서너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가 그중 한 개를 맛있게 먹어 치웠다.
5교시가 막 시작할 쯤 옆 반의 반장이 날 데리려 왔다.
그 반에 들어서니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다.
키가 크고 날카로운 인상의 선생님 앞에 이끌려 간 나에게
선생님은 물었다.
“너 왜왔어?” 영문을 모르는 나는 “선생님이 불러서 왔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뭐야 마!” 다짜고짜 보기 좋게 어린나의 뺨을
서너 차례 후려치셨다.
순간 나의 얼굴에서는 불이 타 올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으며
하마터면 여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오줌을 지릴 뻔하였다.
“야! 이놈아, 누가 너 보고 고구마를 먹으라고 그랬어? 응?
건방진 자식, 선생님이 불러서 왔다고? 응?“
아! 아까 점심시간에 먹은 찐 고구마가 선생님이 반 학생들의
소지품 검사 시 빼앗아 놓은 것을 그저 허기져
멋모르고 그걸 먹어 치운 사실을 그제 서야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너무 서러워 엉엉 울었다. 선생님이 때린 아픔보다도
옆 반 친구들 앞에서 창피하게 먹는 것으로 인하여 추잡하게
매를 맞았다는 사실과 그것도 회초리가 아닌 큼지막한 손바닥으로
맞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싫고 속상해 울었다.
아침에 그 쓴 약만 안 먹고 제대로 아침과 점심만 먹었더라도
이런 불상사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였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큰소리로 울며 우리 반으로 왔으나 담임선생님은 일체 자초지종을
묻지 않으셨다.
학교가 파하여 집으로 달려오자마자 어머니께 이 사실을 알리며
왜 나에게 억지로 쓴 약을 먹여 이리 되었노라 항의를 하였다.
어머니께서는 조용히 들으시더니 네 아버지가 그 학교에 없으니
그렇고 그 선생님이 아버지랑 교감자리를 다투다 밀려나 너에게
감정적으로 대한 것 같다하시며 중학생인 누나에게 편지지를 가져오라
하시더니 사실에 관한 내용을 적어 봉투에 넣어 나보고 내일아침
학교에 가자마자 그 선생님에게 갖다드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말 싫었다.
어찌됐건 선생님의 물건에 손을 댄 나의 잘못도 큰데 단지 감정적으로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았다는 사실만으로 항의조의 편지를 내손으로 전달한다는
것이 죽어도 싫었다.
며칠을 바지 속주머니에 넣고 있다 어머니 몰래 아궁이에 넣어 불태워 버렸다.
찐 고구마,
쌀이 떨어진 아랫집의 주식,
빨간 껍질을 벗겨내면 속노란 고구마,
잘 찌어 썰어 햇볕에 말리면 저녁이슬을 맞고 쫄깃쫄깃한 그 맛,
먹을거리가 없던 시절 겨울밤에 칼로 벗겨먹던 날 고구마,
검버섯이 핀 부분은 너무 써 칼로 도려내던 볏가마니 속의 고구마,
어린 나는 그걸 “곰지”라 부르며 시집간 사촌누님들에게
이다음에 희망이 곰지사장이 되는 것이라고 늘 말했다는
놀림의 고구마로 어릴 적 별명이 곰지였다는 것이다.
며칠 안 있으면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비록 찐 고구마로 초등학교 육학년 시절 선생님에게 호되게 뺨을
맞았으나 그래도 그 추억속의 선생님이 그리워 아버지께 그 선생님의
근황을 여쭈니 정년퇴직 후 도시의 큰 아들네 댁에서 사시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아주 슬픈 소식을 들었다.
그러니 나의 초등학교 졸업반 시절의 선생님 두 분은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셔서 찾아가 옛일을 되새기며 따듯한 마음을 전할 스승이 없기에
마음 한 편이 무거워진다.
허기져 버릇없이 찐 고구마를 먹은 것을 철들어 사죄할 선생님은
고인이 되셔서 지금 하늘나라에 계실 것이다.
선생님,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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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101)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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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은정 / 소중한 사랑<br>
김태희(101)님의 댓글
작은 벌레잡는 약인 농약을 많이 먹으면 사람이 죽듯이, 큰 벌레 잡는 산토닌도 많이 먹으면 사람이 죽겠지요. 용혁님 살아 계셔서 다행이에요. ㅋㅋ 산토닌은 일종의 독약일텐데 화학성분이 무언지 궁금해요.
이환성(70회)님의 댓글
화학성분이 무언지 궁금해요.===> 고게 우리 전문인데..//세상서 젤루 무서운게 가난/배고픔이랍니다..
김태희(101)님의 댓글
그 약 성분이, 기생충을 굶겨서 배고파 죽게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윗글 회장님두 챙겨주세요..꼴을 굶겨서 배고파 죽게..ㅋㅋㅋ
장재학님의 댓글
회충약, 대변 검사... ㅋ
윤용혁님의 댓글
김태희님, 늘 감사해요.언제나 배려의 마음 아끼시지 않음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환성형님께서 산토닌 화학구조를 올려 주시죠? ㅎㅎㅎ
잘 지내시죠? 설음중 배고픈 설음이 최고라죠.
학이 후배님도 채변검사 많이 해본 세대군요.좋은 시간 되세요.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채변봉투, 기생충약..모두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울때 얘기지요..강화의 속노란 고구마..가을이 되면 항상 강화도에 근무하는 친한 선생님으로부터 박스로 사다먹는데 오늘 용혁후배로부터의 고구마의 아픈 기억을 들으니 가슴이 찡하네요
윤용혁님의 댓글
김태희님의 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화학식 C15H18O3. 백색의 결정성 분말로 무미 ·무취이다. 소(小)아시아 투르키스탄지방 원산인 국화과의 소관목(小灌木)인 시나쑥(Artemisia cina) 및 남부유럽 원산인 쑥의 일종(A.monogyna), 또는 파키스탄 북서부 쿠람지방 원산인 쿠람쑥(A.kuramensis)의 종자 모양을 한 작은 시나
윤용혁님의 댓글
시나꽃(flore cina:일명 산토니카, 통칭 시멘시네)의 유효성분을 추출해낸 것입니다.1830년 독일에서 처음으로 결정추출에 성공하였고, 메르크사(社)에서 산토닌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였으나 현재는 학명에도 쓰입니다. 궁금증이 다소나마 해소되셨기를 빕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께서 강화 농촌경제를 위해 속노란 고구마를 박스로 사다드시니 강화농민을 대표해 감사를 드립니다. 따귀를 맞을 때는 정신이 혼미해 지더군요. 그래도 지난일이라
추억으로 자리매김하였답니다. 형님 바쁘시죠?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김태희(101)님의 댓글
용혁님 감사합니다. 바쁠텐데 뭘 이렇게까지 수고를 ㅎㅎ...<br>지난겨울 강화호박고구마가 생겨 겨우내 구워 먹다가 체중증가로 고생하고 있어요..왜 그리 맛있는거래요?<br>농산물 시장에 파는 강화산은 가짜인지 그 맛이 아니더라구요.<br>그래서 올해는 강화로 고구마 사러 갈까해요.수확철에 가면 길에서도 살수있대요
윤용혁님의 댓글
김태희님, 수확철에 속 노란 강화산 고구마는 길가에서 할머니들이 오손도손 나와
팔아요. 얼마나 맛있던지요. 고구마가 심혈관 질환에도 좋고 섬유질이 풍부해
변비에도 좋습니다. 강화 가실 때 한번 사서 드세요.
언제나 인고 홈피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큣하신 모습 자연스레 오프라인에서 뵙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