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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작-부부싸움(2)
작성자 : 진우곤(74)
작성일 : 2007.02.03 11:46
조회수 : 1,350
본문
그 간에 바쁘게 지내다 보니 자주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희망에 차서 출발했던 올 한 해도 벌써 2월 초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쏘아 놓은 화살과 같은 세월이라더니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절감합니다.
요즈음 사회 일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화앞에
전통적인 가치관의 고수만으로는 적응하기가 꽤나 버겁
기도 합니다. 신세대 가치관과의 융합을 위해 나름대로
이해의 폭을 좁히려 해보지만 몸 따로, 마음 따로인 듯해
어설프기도 하고 풀썩 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마음
은 청춘이라고 내세우기도 뭣해 나도 별수없이 '쉰세대'
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튼 2007년은 심상치 않은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결코 정상적인 흐름이 아닐 것 같습니다. 혼란과 더불어
비겁한 술책들이 한바탕 요란스럽게 판을 어지럽히지 않
을까 하는 우려가 예상됩니다. 또는 팽팽하게 부풀은
풍선이 터질 것만 같은....... 과연 자꾸 깊어가는 수렁
속에서 어떻게 용케 살아나올 수 있을까. 저마다의 능력
과 지혜에 달린 것이겠지만.
부부싸움(2)
진 우 곤
사노라면 한 지붕 밑에서 살을 맞대고 살아도 부부 간에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는 그것을 두고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하고, 누구는 아이들이 싸우면서
커가듯이 때로는 식은 사랑이 한바탕 요란한 부부싸움을 통하여 평소에 맺힌 것을 풀어
더욱 금슬이 좋아지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둘 다 맞다.
하긴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도 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물론 천성적으로 잉꼬와 원앙같이 인생을 금슬 좋게 사는 부부도 있다.
무혈입성(無血入城)처럼 피 흘리지 않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 듯 서로 싸우지 않고 이해와 믿음, 사랑,
그리고 지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서로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듯 아끼며 살아갈 수 있으면 오죽 좋으랴.
하지만 그런 부부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설사 있다 해도 맹물에 자개 돌 삶은 맛처럼
전연 재미가 없고 심심하지 않겠는가.
사실 이따금 일어나는 부부싸움의 발단은 생사를 판가름할 정도로 중차대하지도 않는, 지극히 사소한 문제에 있다.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팽팽한 줄다리기 식의 입씨름은 서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첨예하게 대립한다.
여기서 끝내 이성적인 타협점이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결렬될 때가 문제다.
그 이후는 흡사 내일이면 다시 안 볼 듯이 언성이 높아지며 심한 폭언과 함께 감정 싸움으로 불이 붙게 된다.
그러다가 정도가 지나치면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식으로 사생결단을 내려고 으르렁거리며 물건을 내던지거나
부수고 난리법석을 떨게 된다. 급기야 남편의 손찌검과 폭력이 동반되면 연약한 아내들은 무작정 집밖으로
뛰쳐나오거나 보따리를 싸고 친정으로 달려가기가 십상이다.
내 어릴 때만 해도 부부싸움으로 눈가에 시퍼렇게 멍이 든 아주머니들을 종종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런 아주머니들이 잔디밭에서 바늘 찾기처럼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평화적으로 싸움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손찌검을 하되 표나지 않게 수법을 바꾼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내 아내의 말로는 젊었을 때는 분에 못 이겨 당신 아니면 못 살 것 같으냐고 하며 집을 나섰지만
막상 밖에 나오면 마땅히 갈 데가 없더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친정으로 달려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어느 정도 세상 물정을 아는 나이가 들면 그 짓도 제 얼굴에 침 뱉기처럼
남부끄러워 차마 되풀이할 용기가 선뜻 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하여 가까운 친구를 만나는데 남편과 싸웠다는 기색을 감춘 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남편과 자식들이 그리워 슬그머니 집으로 향하게 된단다.
언젠가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나온 친구와 술 한 잔을 나눈 적이 있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입씨름하다가
집을 나서는 꼴이 되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기분을 달랠 마땅한 데가 없어 염치불구하고 내게 전화를 걸었다는 게 아닌가.
이에 나는 허허, 어지간하면 참지 그랬어 하고 짐짓 싸움도 할 줄 모르는 양 능청을 떨며 그를 달랬다.
헤어지면서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말하며 그의 어깨를 툭 쳐주었다.
이따금 부부싸움 끝에 살인이 발생하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섬뜩하다.
식칼로 찌르거나 방화로 함께 죽는 끔찍한 경우도 있다. 물론 저마다 피치 못할 사정들이야 있겠지만
사람으로서 어찌 짐승만도 못한 추태를 부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저 세상에 가면 어찌 얼굴을 들고 떳떳이 만날 수 있겠는가.
부부싸움은 일종의 사랑의 확인이어야 한다.
마음을 열고 평소에 쏟아놓지 못한 감정들을 들음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수확이 없다.
될 수 있으면 어렵고 힘든 시절을 헤쳐온 것을 회상하며 자신에게서 허물을 찾는다면
심한 부부싸움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가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세상은 능히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부부끼리 얼굴을 붉히며 으르렁거릴 필요가 없다.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이성적인 대처보다 오로지 감정을 앞세워 해결하려고 들면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 즉, 부부의 애정에 금이 가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부부싸움도 일종의 유도 전법이 필요하다.
즉, 상대방이 강하면 내 쪽에서 힘을 빼고, 내가 강하면 상대방에게 타협점을 구하는 자세 말이다.
하지만 인도주의 문학의 대가인 톨스토이도 잦은 부부싸움에 시달려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고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 부부 사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혼율이 날로 증가하는 요즈음의 세상에서 진부한 말이겠지만 서로 늙어 죽을 때까지
함께 살자는 아름다운 약속이 환영 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싶다. 진정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말이다.
물론 사람이기에 부부싸움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적당한 선에서 그만둘 줄 아는
지혜와 슬기가 갖추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이 아니라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손에 손잡고 다정스럽게 걸어가는 모습이 그립기만 하다.
오늘 퇴근 때 아내에게 무슨 선물을 사 가지고 갈까. 때 아닌 즐거운 고민에 빠진다.
예쁜 팬티를 살까, 브래지어를 살까. 젊은이들처럼 꽃바구니를 사갈까.
이런 유치한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마치 그리운 님을 만나러 가는 듯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은 아직도 나는 애처가의 굴레에서 못 벗어나는 사낸가 보다.
그러나 어쩌랴. 이렇게라도 해서 살아야 하는 험한 세상이거늘…….
(2006년 11월)
희망에 차서 출발했던 올 한 해도 벌써 2월 초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쏘아 놓은 화살과 같은 세월이라더니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절감합니다.
요즈음 사회 일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화앞에
전통적인 가치관의 고수만으로는 적응하기가 꽤나 버겁
기도 합니다. 신세대 가치관과의 융합을 위해 나름대로
이해의 폭을 좁히려 해보지만 몸 따로, 마음 따로인 듯해
어설프기도 하고 풀썩 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마음
은 청춘이라고 내세우기도 뭣해 나도 별수없이 '쉰세대'
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튼 2007년은 심상치 않은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결코 정상적인 흐름이 아닐 것 같습니다. 혼란과 더불어
비겁한 술책들이 한바탕 요란스럽게 판을 어지럽히지 않
을까 하는 우려가 예상됩니다. 또는 팽팽하게 부풀은
풍선이 터질 것만 같은....... 과연 자꾸 깊어가는 수렁
속에서 어떻게 용케 살아나올 수 있을까. 저마다의 능력
과 지혜에 달린 것이겠지만.
부부싸움(2)
진 우 곤
사노라면 한 지붕 밑에서 살을 맞대고 살아도 부부 간에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는 그것을 두고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하고, 누구는 아이들이 싸우면서
커가듯이 때로는 식은 사랑이 한바탕 요란한 부부싸움을 통하여 평소에 맺힌 것을 풀어
더욱 금슬이 좋아지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둘 다 맞다.
하긴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도 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물론 천성적으로 잉꼬와 원앙같이 인생을 금슬 좋게 사는 부부도 있다.
무혈입성(無血入城)처럼 피 흘리지 않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 듯 서로 싸우지 않고 이해와 믿음, 사랑,
그리고 지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서로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듯 아끼며 살아갈 수 있으면 오죽 좋으랴.
하지만 그런 부부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설사 있다 해도 맹물에 자개 돌 삶은 맛처럼
전연 재미가 없고 심심하지 않겠는가.
사실 이따금 일어나는 부부싸움의 발단은 생사를 판가름할 정도로 중차대하지도 않는, 지극히 사소한 문제에 있다.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팽팽한 줄다리기 식의 입씨름은 서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첨예하게 대립한다.
여기서 끝내 이성적인 타협점이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결렬될 때가 문제다.
그 이후는 흡사 내일이면 다시 안 볼 듯이 언성이 높아지며 심한 폭언과 함께 감정 싸움으로 불이 붙게 된다.
그러다가 정도가 지나치면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식으로 사생결단을 내려고 으르렁거리며 물건을 내던지거나
부수고 난리법석을 떨게 된다. 급기야 남편의 손찌검과 폭력이 동반되면 연약한 아내들은 무작정 집밖으로
뛰쳐나오거나 보따리를 싸고 친정으로 달려가기가 십상이다.
내 어릴 때만 해도 부부싸움으로 눈가에 시퍼렇게 멍이 든 아주머니들을 종종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런 아주머니들이 잔디밭에서 바늘 찾기처럼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평화적으로 싸움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손찌검을 하되 표나지 않게 수법을 바꾼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내 아내의 말로는 젊었을 때는 분에 못 이겨 당신 아니면 못 살 것 같으냐고 하며 집을 나섰지만
막상 밖에 나오면 마땅히 갈 데가 없더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친정으로 달려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어느 정도 세상 물정을 아는 나이가 들면 그 짓도 제 얼굴에 침 뱉기처럼
남부끄러워 차마 되풀이할 용기가 선뜻 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하여 가까운 친구를 만나는데 남편과 싸웠다는 기색을 감춘 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남편과 자식들이 그리워 슬그머니 집으로 향하게 된단다.
언젠가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나온 친구와 술 한 잔을 나눈 적이 있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입씨름하다가
집을 나서는 꼴이 되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기분을 달랠 마땅한 데가 없어 염치불구하고 내게 전화를 걸었다는 게 아닌가.
이에 나는 허허, 어지간하면 참지 그랬어 하고 짐짓 싸움도 할 줄 모르는 양 능청을 떨며 그를 달랬다.
헤어지면서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말하며 그의 어깨를 툭 쳐주었다.
이따금 부부싸움 끝에 살인이 발생하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섬뜩하다.
식칼로 찌르거나 방화로 함께 죽는 끔찍한 경우도 있다. 물론 저마다 피치 못할 사정들이야 있겠지만
사람으로서 어찌 짐승만도 못한 추태를 부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저 세상에 가면 어찌 얼굴을 들고 떳떳이 만날 수 있겠는가.
부부싸움은 일종의 사랑의 확인이어야 한다.
마음을 열고 평소에 쏟아놓지 못한 감정들을 들음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수확이 없다.
될 수 있으면 어렵고 힘든 시절을 헤쳐온 것을 회상하며 자신에게서 허물을 찾는다면
심한 부부싸움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가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세상은 능히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부부끼리 얼굴을 붉히며 으르렁거릴 필요가 없다.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이성적인 대처보다 오로지 감정을 앞세워 해결하려고 들면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 즉, 부부의 애정에 금이 가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부부싸움도 일종의 유도 전법이 필요하다.
즉, 상대방이 강하면 내 쪽에서 힘을 빼고, 내가 강하면 상대방에게 타협점을 구하는 자세 말이다.
하지만 인도주의 문학의 대가인 톨스토이도 잦은 부부싸움에 시달려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고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 부부 사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혼율이 날로 증가하는 요즈음의 세상에서 진부한 말이겠지만 서로 늙어 죽을 때까지
함께 살자는 아름다운 약속이 환영 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싶다. 진정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말이다.
물론 사람이기에 부부싸움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적당한 선에서 그만둘 줄 아는
지혜와 슬기가 갖추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이 아니라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손에 손잡고 다정스럽게 걸어가는 모습이 그립기만 하다.
오늘 퇴근 때 아내에게 무슨 선물을 사 가지고 갈까. 때 아닌 즐거운 고민에 빠진다.
예쁜 팬티를 살까, 브래지어를 살까. 젊은이들처럼 꽃바구니를 사갈까.
이런 유치한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마치 그리운 님을 만나러 가는 듯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은 아직도 나는 애처가의 굴레에서 못 벗어나는 사낸가 보다.
그러나 어쩌랴. 이렇게라도 해서 살아야 하는 험한 세상이거늘…….
(2006년 11월)
댓글목록 0
윤인문(74회)님의 댓글
그리고보면 우곤이는 훌륭한 애처가일세..부럽네..난 공사다망한 일로 酒님을 열심히 섬기다보니 집사람이 얼굴을 보기 힘들다하네.. 대화 좀 하고 지내자던데..요즘 내가 겁이 덜컥나네 그려..이제는 저녁마다 이사람 저사람 만나 바쁘게 지내는 것도 절제좀 하고, 집에서 대화를 열심히 해야겠네 ㅎㅎㅎ
윤용혁님의 댓글
백년해로를 약속 하였으니 맞춰가며 배려로 열심이 살아가는 것이 부부인것 같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고이 간직하신 애처가 우곤선배님의 모습에서 배울점이 많습니다.
즐거운 주말 부부와 함께 행복한 시간들 되세요.
이동열님의 댓글
<EMBED src=http://canaa.co.kr/music/noraebang/sarangeulwihayeo-kimjonghwan.a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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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약속>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아내가 곰국 끓여놓고 인감 만지작거리면 男들은 꼬리 내린다던데..울마눌은 싸우면 친정 안가고 혼자 극장갔다온답니다
오윤제님의 댓글
사랑을 확인해 보려 시비를 걸어 보지만 확인이 않되네요. 다들 힘이 떨어져 사랑싸움도 귀찮답니다. 너는 나되고 나는 너되어 살아가는 것이 부부의 정이요 사랑이라는 것을 새삼느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