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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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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鳶)
추수가 끝난 시골의 가을 들판은 쓸쓸하기만 하다.
더구나 밭에 있던 김장용 배추마저 사라지니 시골의 푸르던 색깔은 어느덧 회색으로 변하
여 겨울로 넘어 온 시골 풍경은 더욱 허하다.
그 허함이 옷 벗은 허수아비처럼 청승맞아 초라하기가 그지없다.
그 풍성하고 가득하던 풍경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다니 자연이 위대하긴 위대한가 보다.
이런 와중에도 한 가닥 푸른 시골의 모습은 가을에 심은 보리이다.
이제 파랗게 돋아난 보리 싹은 겨울의 음산함을 조금이나마 줄여 주고 있다.
한 겨울 그 추위를 참고 견디어 꽃이 피고 이삭이 되려면 아직 수개월, 그동안 보리는 꼬마들에게
밟히고 눌리는 시련을 한 동안 보내야 할 것이다.
어릴 때 놀이라야, 특히 시골에서는 술래잡기, 진돌이, 구슬치기가 행해지지만 술래잡기와
진돌이는 은폐하고 엄폐할 것들이 사라지면 먼 곳에서도 숨어 있는 술래를 수월히 찾을 수 있고
날씨는 추어서 겨울에는 모두가 그다지 즐겨 하지 않는 놀이이고 구슬치기 또한 한 두 시간 놀다
보면 싫증이 나는 놀이라서 나는 초겨울부터 연날리기에 열을 올렸다.
학교가 파하고 나서는 빨리 집으로 달려와 연 날리는 맛으로 겨울을 보냈다.
마을은 우리 집을 정점으로 하여 남북으로 경사가 지었고 남쪽으로는 탁 트인 벌판이 있으니 연
날리기엔 안성맞춤의 장소이기에 연 날리려는 사람들은 다 우리 집 주위로 몰려와서
연을 날린다.
겨울바람은 대부분 북에서 남으로 불어오는 북서풍이기에 바람 또한 잘 맞는 장소이기도
하다.
바로 앞집에 커다란 미루나무가 있어 가끔은 꼬마들이 나무에 연을 얹히고 울기도 하지만 연
날리기에 이골이 난 나에게는 나무들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들의 말로는 연이 나무에 걸리는 것을 ‘천신’이라 하였는데 나는 천신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장담은 하지만 누가 알랴 지난날의 잊어진 일들을 모조리 들여 내어 내 허풍을 잠재울지
누가 알랴
연을 날리려면 먼저 연과 얼레가 있어야 한다.
얼레야 예전부터 아버지나 형들이 쓰다 물려받아 수 십 년을 사용하여 반들반들한 멋진 것도 있고
물려받을 형들이 없거나 우리 마을로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송판조각에 연줄을 감던지 조금
나은 친구들은 나무 조각을 못으로 밖아 임시방편으로 사용하니 연싸움을 하는 데는 처음부터
상당이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임할 수밖에 없다.
목수가 연장 탓을 하는 것을 가끔 보게 되는데 우리가 연싸움을 하던 시절은 연이나 연줄의 상태가
번연히 불리한 줄 알면서도 계속 싸운 것은 한번 이기겠다는 도전정신이 아니었다면 무슨 배짱으로
응하였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
실이 끊기고 또 끊기어도 계속 싸움에 응하던 마음을 시지프의 신화에서나 찾을까.
굴려 올리면 떨어지는 바위를 올려야하는 숙명, 그것은 바로 약자의 숙명은 아니었던지 지금에서
궁금했던 해답을 찾는다.
연 만들기는 간단한 것 같아도 만들기가 까다로 와서 가게에서 대부분 사서 날렸었다.
마을에는 두 군데에 가게가 있어 연을 팔았었는데 내가 연을 살 때는 두 곳을 왔다 갔다
하며 잘 만들어진 연을 골랐었다. 실 감는 얼레도 중요하지만 연을 멋지게 날리려면 연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어린 시절에도 잘 알고 있었으니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하는 것을 무어라
탓할 것인가.
연을 고를 때 제일 먼저 내가 살핀 것은 머리 살이다. 머리살이 탄력이 있나 손으로 휘어
보며 휜 모양의 대칭이 어느 정도인가를 살핀 후 어깨살을 살피고 아래살을 살펴본 연후 연 전체의
모양을 보고 그 다음 연에 새긴 문양을 본다.
문양은 되도록 위쪽에 그려진 것을 사게 되는데 그것은 각자의 취양이겠으나 무게의 중심을 위로
두는 것이 연날리기에는 유리한 것이기에 같은 조건이라면 위쪽에 그림이 있는 것이 좋다 할 것이다.
고르고 고른 연을 부리나케 집에 돌아 와서는 연에 줄을 매어 헐레벌떡 밖으로 뛰어 나간다.
연을 날릴 때의 중요한 것은 바람이다.
바람은 연을 땅 위로 띠우고 사람은 연을 하늘로 날린다.
잘 만들어진 것은 바람을 타고 곧장 하늘을 신나게 날지만 대부분은 오른쪽으로 기울거나
왼쪽으로 기우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한쪽으로만 빙빙 도는 것도 있으며 빙빙 도는 반경이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는데 이런 연들은 줄을 줄였다 늘였다 하여 조절이 가능하지만 양쪽으로
빙글빙글 도는 연은 조절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조절하더라도 별무신통이다. 애초부터
잘못 만들어진 것이기에 해체하여 연살을 다시 잘 깎아서 다시 만들면 모를까 지금의 상태로는
조절하여 연 날리기가 수월치 않은 것이다.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 느끼는 것인데 연도 꼭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부터 망나니로 놀아나서 마이동풍격인 아이는 양쪽으로 빙빙 도는 연과 같이 조절이
안 되어 포기하는 경우가 되고 나르기는 잘 나르는데 왼쪽으로 기웃 오른쪽으로 기웃
하는 연은 이곳에 붙을까 저곳에 붙을까 위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 같고, 나르기는 나는데
아래가 무거워 실을 당기어 주지 않으면 아래로 내려오는 연은 감당 못할 자리에 앉아있는 격이
되고 공중에 조금만 올려주면 저절로 올라가려는 연이 있는데 바로 이런 연이 사람으로 치면
사람다운 사람이라 하겠다. 이런 연은 연기술을 구사하기라도 할라 치면 스스로 알아서 일을
처리하는 일꾼 같아 탱금(연 연구회에서는 통줄주기라 함)을 주면 이내 방향을 바꾸어 다음 갈
곳으로 머리를 돌린다. 이런 연이 모두라면 좋으련만 고르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쉽지 않으니
기존의 연을 잘 다듬고 조절하여 날리고 있으니 사람들도 가르치고 길들여서 적당한 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던가.
연은 바람이 중요하다 하였으니 바람을 등지고 조금 달려 나가면 연이 공중에 뜨는데 어느
정도 하늘에 떠있으면 제자리에 서서 연 줄을 감았다 풀었다 몇 번 하는 동안 바람을 가슴에 앉은
연이 제법 높게 떠 있을 무렵 나는 연줄을 슬며시 당겨 본다.
나와 연을 연결한 연줄이 얼마나 멀리 내보내도 되는가를 시험해 보는 것이다. 바람이 세다면
한동안 연싸움한 실이 상대들에 의하여 조그만 상처에도 그 자리가 끊어지는 경우가 있어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높이 날리는 재미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바람의 저항을 덜 받기 위해 천천히 연줄을 감으면 연실이 끊어지는 것을 조금 이나마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이 세다면 얼레에 연실을 한 바퀴 감더라도 수 미터 오르는 것은 보통이고 날아가는 참새를
따라잡기는 간단하다.
나는 땅에서 어느 정도 올라온 것인가를 어림짐작하고 적당한 높이에 이르렀다고 생각이 다다르면
연 줄을 가슴으로 당기면서 얼레를 연줄과 평행한 방향으로 돌린다.
팽팽한 연줄은 순식간에 흩으러 지고 연줄이 풀러지면서 연이 뒤로 뉘여 질 때 재빠르게 연실을
얼레에 감으면 연은 곤두 밖 질 치듯 쏜살같이 내려온다.
먹이를 본 독수리의 치 내려오는 것처럼 사정없이 내려와서는 먹이를 순식간에 채 감고 유유히
하늘로 올라가듯 연이 지면에 거의 다 내려와서 땅으로 떨어질 위태한 상황에 접어들 때 별안간
연줄을 풀면 연 머리는 위로 올라오게 되는데 그 순간을 잘 잡아 얼레에 실을 감으면 갑자기 방향을
바꾸게 된다. 그러면 연은 언제 곤두 밖 질 쳤냐고 비웃듯이 유유히 하늘 위로 치 솟고 있다.
이러한 연 날리는 솜씨도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 리 없다.
각자 지니고 있는 장인의 고유기술과 장기들이 평생을 두고 갈고 닦은 것들로서 분명 거기에는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것이니 연날리기가 어린이의 놀이라 치부하더라도 평소에 생각하던 것
이상의 재주가 있어야 한다.
내가 연을 날린 햇수를 짚어 보더라도 족히 오십년 쯤 되지 않았나 싶다.
이유도 없이 연날리기를 좋아하던 코 흘리게 시절 단 한초라도 더 날리려는 마음에 얼레는
마루 끝에 두고 동이 트기가 무섭게 들판으로 달려 나갔다.
들판이라야 대문을 열면 바로 그곳, 이웃아저씨 보리밭에서 연을 날린다.
추우면 둔 턱에 몸을 기대거나 볏짚 쌓아놓은 곳에 기대어 연신 통줄을 주어 하강하는 연을
갑자기 정지시켜 좌측이나 우측으로 움직여서 땅과 수평으로 잽싸게 날아가는 모습은 제비보다
재빠르다.
장애물에 다다를 무렵 급정거하면 연 머리가 위로 향할 때 나는 재 빨리 얼레를 감는다.
연은 눈 깜박할 사이 하늘 높이 다시 떠오른다.
이런 재주는 가오리연은 할 수가 없고 방패연만의 전유물로 되어 있어서 애시부터 나는 우리
마을에서 통연이라고 부르는 방패연을 애용하였다.
해가 중천에 뜰 무렵 연 친구들이 하나 둘 모인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사자가 먹이 감을 찾을 때처럼 연을 낮추어 친구들의 연이 뜨기가 무섭게
그쪽으로 쏜살같이 움직여 한바탕 지나가면 연들은 추풍낙엽이 되어 하늘을 날다가 이내 땅으로
곤두 밖 질을 하며 떨어진다.
정성스레 빻은 고운 유리가루로 실에 단단히 묻혀 놓아서 종이 장은 말할 것도 없고 손가락도
연실에 닿았다 하면 대번에 베이어 피가 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니 연줄 끊어 먹기는 식은 죽 먹기가
아닌가.
옛날 친구들과 공차기하다 어찌어찌하여 이겼을 때의 기쁨이나 지금에 와서 고수와 한판 겨루어
불리한 바둑을 역전시키고 이겼을 때의 희열도 대단하지만 끈 잘린 친구들의 연이 나풀나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는 것을 보며 세상을 다 얻은 양 한껏 뻐기며 만면에 미소를 띠우고 연줄을
의기양양하게 감는 맛이란 실제로 연싸움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르리라. 그리고는 누구 연이
다시 떠오르는가를 살폈다.
끈 떨어진 갓이 아무 쓸모 업듯이 줄 끊어진 연은 하늘을 날 수가 없으니 친구들은 연 날리는 것을
포기하고 나에게 닦아와 힘센 놈은 엄포도 놓고 힘없는 놈은 아양도 떤다.
어린 시절 이런 맛에 열 손가락이 동상에 걸려 말짱한 손 하나 없고 손등은 흙먼지 묻은 것 씻지
않고 고양이 세수하듯 눈곱이나 떼고 손을 닦지 않아 때는 굳어서 반들반들하였고 급기야 손등은
터져 핏기가 보이고 쓰라리건만 연 날리는 시간만은 아픈 줄도 몰랐다. 정오가 되어올 무렵
어머님이 “윤제야! 밥 먹어”하며 부르신다.
그때쯤 되어서는 뛰어 놀아서 시장도 하지만 그 무렵의 시골은 밥 한 덩이 양은솥에 물 잔뜩 넣어
펄펄 끓여 한 끼 때우는 것도 감지덕지 하였으니 내 이름 듣자마자 연줄을 감아 들이고 집에 들어
와서는 끓인 밥 게눈 감추듯이 후딱 먹어 치우고 또다시 연 날리러 달려 나갔다.
겨울은 정월이 지나 대보름을 맞게 된다. 어디에서 불놀이를 준비할까 몇몇은 들판에 나가 준비
할 즈음 나는 연줄에 솜을 꼬기 꼬기 말아 단단히 묵고는 솜에 불을 붙인다.
이제는 한동안 정들었던 연과의 이별의 의식을 치루는 순간이다.
예로부터 내려온 풍습으로 보름이 지나면 연을 날리지 않는 것이기에 연을 하늘 저 멀리 날리는
“액막이 연”을 하고자 연을 하늘로 올린다.
연이 하늘 높이 떠서 잘 보이지 않도록 연줄이 다 풀러져 가고 있다. 이따금 연이 구름 속에
사라졌다가 틈새로 반짝반짝 보이기도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는 수월하지 않으나
직접 날리는 사람은 그래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연을 날린다는 것이다. 이윽고 불붙인
솜이 다 타서 연은 하늘로 날아가고 연실은 땅으로 떨어진다.
우리는 모두 날아가는 연을 바라보면서
너의 슬픔, 나의 슬픔, 우리들의 슬픔, 우리 마을의 슬픔을 연에 실려 멀리 멀리 날린다.
너의 미움, 나의 미움, 우리들의 미움, 우리 마을의 미움을 연에 실어 멀리 멀리 날린다.
너의 게으름, 나의 게으름, 우리들의 시기심을 멀리 멀리 떠내 보낸다.
다시는 너와 나에게 오지 말도록 멀리 멀리 떠내 보낸다.
무병과 마을에 풍년이 들어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떠나가는 연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푸른 하늘에
뜬 연을 바라보며 꼬마들도 형들도 이웃 아저씨도 아주머니도 팽팽하던 연줄이
끊겨 너울너울 날아가는 연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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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성(70회)님의 댓글
연싸움이기려고 부레를갈고 유리를갈고 풀먹이듯 실에 코팅하던 기억납니다..신나게연싸움하다 개천에 얼레를 빠트린기억까지..연야기하니 년(女ㄴ)생각나는 휴일아침입니다.. 아련한 소년시절 그리는 선배님/용혁님..님들은 진정 행복입니다..
오윤제님의 댓글
成님도 연을 날렸던 추억을 가지고군요. 연동아리 만들어 문학산에서 연싸움 하면 멋잇을 텐데
윤인문(74회)님의 댓글
나는 어릴적 송월동 살때 우리집 장독대에서 가오리연를 자주 날렸죠..전기줄에 많이 끊어 먹었었는데..그때가 그립습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高향이 高잔동이면 高순석(70)이도 高잔인데..하늘높이 날라라...높을高..高돌李..ㅋㅋ
최병수(69회)님의 댓글
고잔 토박이 => 고잔이 고향인데, 거기가 고잔은 아니겠지?? 발음에 유의하셈요...ㅋㅋ...요즘 같아서는 연이 황사에 최대의 피해를 본 거 같아요.. 불노리 밤 늦게까지 하면 이불에 오줌싸는 데~~ㅋㅋ~~
신명철님의 댓글
수도국산 하늘에 떠있던 많은 연들이 눈에 삼삼하네요.. <br>
부레를갈고==> 부레는 삶는것 아닙니까? 그 삶은 물로 밀가루 풀을 쒀서 유리 사기 곱게 갈아 섞어서 쭉 늘어서서 한쪽에서 새실패를 잡고 가운데서 그 풀에 실을 담그고 고름 짠다고 했죠 풀묻은것 닥아내고 그리고 얼래에감으면..갬치 매긴다고 했는데..
이환성(70회)님의 댓글
간밤에..부레/얼레/아교/유리/사기/..밀가루야긴 안나왔는데..역시 연(女ㄴ)에는 동열님이 일가견..나는부레를 갈아서 인줄알었는데..이게 접착제역할이라 삶는거랍니다..부레도 민어부레가 ㅋㅋ
오윤제님의 댓글
유리를 붙일 태 부레는 최고의 접착제인데 부레는 귀하고 작업하기가 까탈스러워 우리는 그냥 밥풀로 유리를 입혔지요. 목수가 연장 탓하지만 실력 앞에는 다들 고개 숙이더라고요.
태희님이 다시니 죄송함이 반감됩니다. 내는 항상 내이름 듣고 살아 보지 못했습니다. 윤제를 윤재로 부모님 까지 부르시니 말 .....
신명철(74회)님의 댓글
연싸움할땐 위치 선정 싸움도 대단했죠. 서로 윗자리를 점유할려고 튀긴다고했지요 요리 빼고 조리빼서 위에서 아래로 짓누루고...<br>전요 실에다 돌맹이 메어서 낮게 뜬 연줄에 던져서 연잡아먹다가 동네형들한테 걸려서 ...ㅋㅋ
윤용혁님의 댓글
남포(램프)라는 등의 유리를 곱개 빠 풀에 개어 손을 베어가며 연줄에 입히던 육촌형님
생각이 납니다. 어릴적 저는 방패연은 만들 생각도 얼레는 더더구나 없었지요.
어미니가 쓰시던 실패를 가지고 홍어연을 날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옛 생각을 일깨워 주시니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진호님의 댓글
홍어연 날리던 기억이...홍어 애기나오니까...三합에 이슬이 생각나네...봄비도 부슬 부슬오는데 눅아 번개 함 아처주나 ㅠㅠㅠ...
윤인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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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님의 댓글
어떤 사람이 연날리기 중계를 하면서 하는말이
한 연(년) 이 올라 갑니다. 또 한 년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한년과 두년은 서로 엉키고 있읍니다. 그러나 쌍년은 계속 헹하니
올라 갑니다. 지금도 년은 계속 헹하니 올라 가고 있습니다.
李淳根님의 댓글
부산으로 옴겨진 625참전 영관급이상 외국인묘지가 만석동과 북성동사이의 조그마한 산에 있었습니다. 북성동 아이들은 우리들을 산동네아이들이라 불렀죠. 그 곳은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며 우리들의 전쟁터요, 놀이마당이었으며, 추억의 산실이 었는데..그 곳에서 연을 날리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한전의 기계설
오윤제님의 댓글
우리나라 인간 문화재인 어느 옹이 세계대회에서 1등하여 인터뷰를 하고있다. 앵커:연싸움대회서 우승했는데 어떻게 이기셧습니까? 옹:아 1회전에서 미국연(년)이랑 소련연(년)이랑 붙게 되고 나는 일본연(년)이랑 붙게 됬어 (생방송인데 발음이) 옹:아 일본연이 힘은 없는데 빠르단 말이야 내가 기술을 거니까 도망가는거
오윤제님의 댓글
내가 순식간에 덮쳐서 따먹었지(연을 끊어 먹는 싸움) 그리고 결승전에서 소련연이 미국연 따먹고 올라온겨 아다 소련연 억수게 좋더만 이연이 나를 따먹으려 기를 ㅅ쓰는겨 내가 순식간에 뒤로 돌아서 뒤치기로 그연을 따먹은겨 앵커는 당황하며 인터뷰를 끊으며 마지막 말씀은? 옹: 아따 거시기 머니해도 연은 한국연이
오윤제님의 댓글
최고여 최고
앵커;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