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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진우곤(74)의 74회 송년회 행사 스케치(74회 홈피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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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 인고 74회 송년회 행사 스케치
진 우 곤
모두들 잘 놀고 들어갔는지 모르겠군. 우선 2006년도 인고 74회 송년회 행사를 위해 이상용 회장님 이하 집행부의
준비와 수고에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바쁜 시간을 내어 참석한 20여 명의 동문과 8쌍의 부부 동반으로 애처가
로서의 면모를 과시한 동문들에게도 뜻 깊은 모임이었음을 새삼 느끼는 바다.
아울러 김재겸 동문이 2차를 쏘는 단란주점인 ‘Whiskey Beer Coffee Drink(위스키를 비우고 커피를 마시자는
뜻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 에서 슬그머니 빠져 나온 것에 대해 나의 변명을 짚고 넘어가는 게 순서이겠다.
사실 행사가 최종적으로 끝날 때까지 지켜보기를 원했으나 너무 늦도록 즐거움에 빠지다 보면 집으로 돌아갈
길이 막막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2차에서 파하면 함께 서울로 가는 길에 재경 이철완 회장이 나를 태워준다고 했었다.
그걸 믿고 1차에서 술잔을 주는 대로 마실 수 있는 여유를 가졌고 2차에서도 마음껏 어울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웬걸 함께 놀아주던 이 회장을 찾으니 아무리 기다려도 굴뚝같이 믿었던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난데없이 옆구리가 시려옴을 느꼈다. 가면 간다고 명색이 총무인 내게 말이라도 하고 가던지 혼자 내빼다니(?)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한 듯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었다. 물론 그 나름대로 곡절이
있었을 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며 나는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점차 과천까지 돌아가는 길이 순탄치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 채 여럿이 어울려 노는, 한껏 고조된 분위기와 흥을 깨고 싶지 않아 누구에게도 간다는 말
한 마디 안 하는 예의(?)를 갖추고 고양이 발걸음으로 문밖을 나서고 말았다. 허허, 군자 대로 행이거늘…….
강철 같은 추위가 품 속으로 넘나들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흠뻑 젖었던 것과는 달리 의지할 만한 곳을
잃어버린 듯 허전한 마음 가눌 길 없었다. 밤 9시 50분. 줄잡아 2시간 남짓 소요될 것을 감안하면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들어설 것 같았다. 우선 편리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모임 장소에 오던 대로 고스란히 되짚어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여 택시를 잡아 타고 신연수 역에서 내려 환승역인 부평 역에서 서울로 가는 전철로 갈아탔다.
더운 스팀 탓일까 피곤과 함께 졸음이 쏟아져 내렸다. 따라서 비몽사몽 헤매다가 금정 역으로 가기 위해 구로 역에서
내린다는 게 종점인 용산 역에서 내리고 말았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 4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허허, 결국 택시를 잡아타야겠군 하며 주위를 돌아보니 시 외곽으로 가는 총알 택시가 있었다. 귀한 몸을 맡기자니
떨떠름했으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반포 및 동작대교를 거쳐 사당에 들어서니 그제서야 한시름 놓였다. 그래도
내 집에 간다는 생각에 날 버리고 간 이철완 회장에 대한 원망도 봄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집으로 들어서기 전 아내와 딸애를 위해 패밀리 마트에서 ‘투게더’라는 아이스크림을 샀다. 항상 나는 어떤 모임을
파하고 돌아갈 때는 집에 결코 빈손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내 마음의 즐거움을 더 배가시키기 위해서는 한낱 과자부
스러기일망정 사서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습관은 지천명의 나이에도 변함없이 시행되고 있다.
어린 시절 내 아버지가 그랬듯이 이도 부전자전인가 보다. 하긴 내가 없는 동안 적적했을 그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사실 모임에 참석하기 전 몇 시간을 두고 나는 갈등으로 안절부절이었다. 왜냐하면 며칠 전(11월 29일) 의왕에서
예전에 살던 과천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계속 밤 늦도록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몸살도 날 만한 상황인데다 아침부터
콧물이 질질 흐르고 재채기도 연방 터지는 바람에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불참할까 꽤나 망설였다.
더구나 전철을 타면 2시간 남짓 걸릴 듯해 더욱 마음이 내키지 않는 터였다.
점점 목을 조이듯 다가오는 약속 시간. 눈에 선히 떠오르는 그리운 친구들. 더군다나 재경에서야 명색이 총무라
자주 행사를 주관하고 정기적으로 스케치를 올리는 입장이었지만 인천에서 갖는 인고74회 송년회엔 처음으로 가보는
것이라 또 다른 맛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결국 단안을 내렸다.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아니, 명색이 재경 총무인 내가 빠진다면 예의가 아니다. 벗이 있어 먼 길에서 찾아오니 이 아니 즐거운가 하는 말도
있듯이 불원천리 달려가자. 인천에서도 재경을 위해 각별히 힘쓰며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쪼개 왕림하던 집행부의
놀라운 정성과 성의 있는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목욕재계하고 – 인천에서 갖는 송년회에 처음으로 참석하기 때문에 - 오후 4시 조금 지나 집을 나섰다. 낙엽이
이리저리 흩어지며 날리는 여간 쌀쌀하지 않는 날씨였다. 7반 김태환 동문과 함께 갈 생각으로 전화를 했더니
경상도에 출장 와 있다며 여러 동문들에게 안부 좀 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닌가.
전철로 가자니 환승역이 세 군데(금정역, 구로역, 부평역)나 되어 마치 지그재그로 가는 꼴인데다 기다리고
옮겨 타는 시간이 제법 걸려 고달프기도 했지만 송도 유원지에 있다는 법용사 밑 ‘천지연(天地淵)’이라는 음식점에
도착하니 전 김영주 회장님을 비롯하여 몇몇 동문들이 보였다. 그들과 반가운 악수를 나누며 일단은 약속을 지킨
내 스스로가 흐뭇하기 짝없었다. 시간은 6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동문들이 속속 들이닥쳤다. 김동준, 윤인문, 박상규, 최기보, 김용운……. 한결같이 그리운 얼굴들이었다.
또, 부부가 함께 참석한 알뜰살뜰한 동문도 몇몇 있었다.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 이만한 나이에 뭐 꺼리길 게 있는가.
그들은 나를 자신의 안사람들에게 작가라고 소개해 주었다. 작년 졸업 30주년 때 나를 아는 여사님들은 반가운 시선을
보내며 안부를 물어왔다. 이러고 보니 아내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함께 오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6시 30분이 되자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며 이상용 회장님을 비롯한 20여 명의 동문들이 – 부부동반까지
합치면 인원은 대략 30여 명 남짓 되었다 - 모인 가운데 서무 총무인 이인규 동문의 사회로 2006년도 인고 74회
송년회 밤 행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인고 68회 장학회장님으로부터 동창회의 장학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애로가 많다며 74회에서 적극 도와 달라는 것과 80회 기수들이 매년 개최하는 미추홀기 야구후원회
기금 마련 조성 등등에 대해서 고충을 털어놓으며 협조를 부탁한다는 인사를 했다.
그 이후 음식을 먹거나 술잔을 기울이는 가운데 2006년도 사업 및 행사보고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특히, 이상용 회장님의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으려다 쓴 잔을 마신 뼈아픈 소회(所懷)를 털어놓으며 우리
50대가 갖추어야 할 것에 다섯 가지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첫째가 건강이요, 둘째가 살아있는 처며,
셋째가 재물이요, 넷째가 일이며, 다섯째가 친구라는 것이었다. 일 건, 이 처, 삼 재, 사 사, 오 우 즉,
일명 5구(5俱)인데 듣고 보니 사뭇 공감이 가는 말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이런 다섯 가지의 요소를 다 갖춘다면 천하를 다 준다 해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노라면 이런 필요충분
조건을 다 갖추고 살기가 그리 쉬운 일인 아니다. 뭔가 부족한 것이 한두 가지가 있는 게 인생이다. 그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너도나도 부지런히 세월을 아끼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두루 맛보기도 한다.
나는 그러한 것을 작품으로 발표하기도 하지만 태산을 넘으면 평지를 본다는 것은 그래서 고금의 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식적인 2006년도 정기총회가 20분 정도 걸려 끝났다. 그 이후 오고 가는 술잔 속에 끈끈한 우정을 담그기 시작했다.
나는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우선 이건호 동문으로부터 암으로 투병 중인 이지우 동문의
근황부터 듣고 싶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술을 지나치게 즐기는 바람에 간암을 얻었다는 이지우 동문. 포천에서 요양 중 자제해야 할
사이클 운동을 한답시고 나섰다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직행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서를 밟았다가
뒤늦게야 수술을 받게 되었고, 현재는 눈동자만 움직일 뿐 의식이 제대로 돌아와 있지 않다는 서글픈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3반 동문들이 적극 나서서 십시일반으로 병원비를 마련해 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인문 동문은 나를 자신의 곁에 오라고 하며 굳게 손을 잡았다. 자신도 신변잡기를 동창회 홈페이지 올리지만
내 글을 읽을 때마다 존경스럽기까지 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내게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가능하면
총동창회 홈페이지에도 글을 게재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며 꼭 부탁을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내 글을 퍼서
올리려도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을까 하여 내 의향을 묻고 싶어 망설여지더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대해서 사실 나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인고 74회 동문들의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에 74회 홈페이지에만 외람되이 게재하게 되었노라고 대답해 주었다. 아무튼 생각해보고 결정
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윤인문 동문은 좋은 글을 많이 쓴다. 다소 매끄럽지 않은 표현이 더러 있는 게 흠(?)이지만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을 진실한 마음으로 토로하는 자세를 높이 사고 싶다. 늘 그의 글을 대할 때마다 친근감이
일어나는 것은 내가 문학적으로 지향하는 바와 비슷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진실과 순수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여러 동문들이 내게 고맙다고 했다. 우리가 겪는 삶의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들을 접하면서 많은 것을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어 부럽기 짝없다는 것이다. 남보다 특이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쓰는 내 글이 맛 있다며 계속
써 주기를 바란다고 여기저기서 술잔을 건네는 게 아닌가. 사실 나는 아직도 미흡하고 부족한 게 많다.
바쁜 직장 생활에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기가 어렵다. 따라서 작품을 발표하고 나서 좀더 가다듬을 걸 하는
후회도 종종 느끼곤 한다.
아무튼 우리가 살아온 시절은 그리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샌드위치처럼 어정쩡한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뭔가 확실한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사배공반(事倍功半)처럼 고생만 하고 별 소득이 없는 결과를 초래
하는 게 비일비재하다.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것도 없다. 아니, 어디에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오로지 자신만이 느끼는
것으로 족하게 여길 따름이다. 나는 이러한 우리 세대의 드러내놓고 말 못한 아픔과 상처를 작품을 통하여 발표하는
것에 불과하다. 내 글을 읽는 여러 동문들에게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다소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이따금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는데 좋은 평을 해주니 다행이다.
나는 자리를 옮겨 여사님들에게 2분만 시간을 할애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예전에 발표했던 작품 ‘엉터리 설문
조사’라는 것을 떠올렸던 것이다. 즉, 현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부부 생활의 건전성 여부를 타진해 보고자 함이었다.
‘만일 죽음 등으로 부부의 인연이 끊어졌을 때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만날 용의가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여사님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구미가 당긴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표정 속엔 군침이 도는 지 이건
비밀로 해 달라고까지 하는 게 아닌가. 이에 나는 무기명이니 안심하시라고 대답해 주었다. 혹시 행사 스케치에 실명은
거론하지 않겠지요 하고 거듭 묻는 이도 있었다.
1분 정도 생각할 틈을 주고 대답을 구해 내었다. 다소 주위의 눈치를 보는 듯 소신 없어하는 이도 있었다. 아무튼
구해낸 대답은 설문에 응한 총 8명의 여사님 중 5명이 다시 만날 용의가 있다는 것이요, 두 명은 전혀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으며, 한 분은 서로 남자와 여자가 바꾸어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바꾸어서
태어난다? 즉, 역할을 바꿔 해 보자는 얘긴데 좋은 대답이었다. 이로서 보건대 우리 50대의 부부생활은 아직은 건전하지
않나 하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망외의 소득이었다.
그 이후 나는 부부란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가 같다. 마음에 맞는 친구와는 십 리를 걸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들먹이며 부부론에 열을 올렸다. 지금의 배우자를 사랑하라는 것과 서로 무거운 짐을 함께 질 수
있는 아량을 베풀기를 권하는 무례를 범하고 말았다. 내 자신도 과연 애처가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여기저기서 나를 이끌었다. 주는 술잔을 넙죽넙죽 받아 먹으며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마음은 해맑았다.
무엇이든 꾹꾹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뒤늦게 재경 이철완 회장님이 나타났다. 안사람을 어디 데려다 주고 오느라고 늦었
다는 것이었다.
그와 나는 재경의 송년회 행사에 대해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정기적인 행사의 형태보다는 부부동반으로서
번개팅을 갖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왜냐하면 연말이라 모두 바쁠 터인데 많이 모일 수도 없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이 나는 동문들만 모이기로 하고 그 시기와 장소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협의하자는 쪽으로
입을 모았다.
1차가 진행되면서 노래를 부를 사람들은 신청 곡을 적어내고 순서대로 앞으로 나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먼저 윤인문 동문이 ‘My Way’ 로 멋지게 포문을 열었다. 그 이후 ‘꽃바람 여인’ 등등이 뒤따랐다. 부부가 함께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한껏 흥취를 돋우는 중에 나는 앞서 여사님들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그래도
우리는 건전한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시간은 물같이 흘러 밤 9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집행부는 1차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그냥 놓칠 수 없다며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을 테지만 일단 장소를 옮겨서 맥주로 입가심하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으로 2차를 가자고 이끌었다.
저마다 공감하는 눈치였다.
하여 ‘Whiskey Beer Coffee Drink’에서 맥주를 곁들인 색스폰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홀에 나가 춤을 추기도
하며 탬버린을 흔들며 겨울로 치닫는 추위를 달랬다. 서로 돌아가면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얘기들. 저마다 잘났든
못났든 세월을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모여서 넉넉함을 안을 수 있다는 것, 초로 인생에 접어들었지만 그래도
학창 시절의 우정의 끈을 놓치지 않고 모일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의 어렵고 힘든 세월 앞에 그나마 위안거리가 되는 게
아닐까.
2차를 끝까지 보지 못한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여려 동문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따뜻한 침대 위에 몸을
던지니 피곤할 것 같으면서도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뭔가 소중한 것을 지녔을 때의 기쁨처럼 오늘 보았던 멋진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사다난했던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잠시 숙연해
짐을 어쩌지 못했다.
동문들이여, 올 한 해도 잘 마무리하고, 늘 건강과 아울러 이상용 회장님의 ‘5구’에 힘찬 발걸음이 되기를 빌며.......
----- 참석자 명단 (가나다 순)-----
1. 고희철, 권 문, 김광호, 김동준, 김영주, 김용운, 김욱영, 김재겸, 박귀학, 박만기, 박상규,
부봉하, 서정호, 심상학, 오흥철, 윤영국, 윤인문, 윤희철, 이건호, 이용주, 이인규, 이철완,
임호일, 정관식, 진우곤, 최기보, 최영환, 황석성 (총 28명)
* 혹시 참석자 명단 중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집행부에서 수정해 주기를 바랍니다.
◈ 윤인문 ─ 우곤이! 어제 먹은 술이 덜깼을텐데 그새 장문의 글을 올렸구먼..그래서 내가 우곤이를 존경하는걸세..
아무튼 2006년을 잘 마무리하고 힘찬 도약하는 내년을 기대해봄세
◈ 박만기 ─ 회장 이상용, 2반 정영섭 8반 신유철 세명이 누락되었네요. 결국 31명이 되남요?
댓글목록 0
윤인문님의 댓글
작년 졸업 30주년 기념행사에는 동기들만 114명이 참석했었는데 인고야구백년탑 건립등으로 힘들었는지 올해는 참석인원이 저조했네요..그래도 뜻깊은 행사를 치렀습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역시 수필가라서 수필식으로...감칠맛나는 장문 감사드립니다...정나누기 신변잡기방도 방문해주세요..방장 윤인문(74)
이상동님의 댓글
80회 기수들이 매년 개최하는 미추홀기 야구후원회 기금 마련 조성 등등=> 모교 동창회장기 쟁탈입니당... 인문형님 ㅋㅋㅋ
김태희(101)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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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loyd Cramer / Last Date</MARQUEE> 잡음도 그리움이다 - 파산한 LP판 업주 왈;
김태희(101)님의 댓글
이원규 소설가님,운용혁 시인님,진우곤 수필가님..신변방이 점차 화려해 지겠네요. 그동안 수필가 전용방 달라고 튕기느라 여기 안 오신 듯함.
이기호 67님의 댓글
김태희님! 왜 자꾸 나, 옜날 생각나게 맨들구 그래요? ㅋㅋ 인고 댕길때, 많이 들어본 노래입니다. 감사!
김태희(101)님의 댓글
ㅎㅎ last date 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연주곡순위 상위에 항상 랭크...플로이드 크래머는 제가 좋아했는데 작고했구요. 음,,,마지막 데이트의 그녀때문에 마음 아프신가 봐요. ㅋㅋ
이동열님의 댓글
수필가나 소설가(이원규/65)의 글을 울홈피에서 자주 볼수 있다면 그또한 인고인의 긍지,,,,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 의미있는 송년회가 되셨군요.
8일날 뵐께요. 저만 이뻐해 주세요. 형님!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