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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작 - 시인은 세상을 향해 활을 쏘았다
본문
--- 안녕하십니까. 지난번 2006년도 인고 74회 송년회 때 윤인문 동문과 약속한
바가 있어 외람되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마다 가는 길이 달라도 주어진
세월을 아끼며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냥 놓치지 못하는 게 저의
고질병입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내가 나답게 사는 보람과 긍지를 아침마다 맛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의 혼탁한 세상 흐름은 물과 기름처럼
겉돌기만 합니다. 아무리 위기라고 외쳐도 쇠귀에 경 읽기요, 마이동풍입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무풍선인데도 말입니다. 가치관의 혼란은 어제 오늘의 일
이 아닌 가운데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음산한 바람은 도처에서 불어댑니다. 개가
개답게 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랬던 올해이건만 뭔가 뒤죽박죽인 듯해 종잡을 수
없는 채 보내야 하는 착잡함이 더욱 서민의 가슴을 시리게 합니다. 그래서일까
올 겨울은 흡사 겨울 위에 겨울인 듯 유난히 더 추운 것 같습니다(환경미화원은
점심을 먹으러 마음대로 음식점에 들어가지 못한다는군요. 주인과 손님이 모두
꺼린다나요. 그래서 찬바람 부는 거리에서 도시락을 먹거나 아예 굶기도 한다는
환경미화원들.......양극화, 차별화를 부추기더니 이게 바로 우리네 현주소가
되다니 씁쓸하기 그지없군요.).
다음의 작품은 예전에 발표했던 것으로서 호두속처럼 어수선한 시국과 맞물린
사회적 병리 현상을 나름대로 비판해 본 것인데 얼마나 도움이 될른지 모르겠습
니다.
시인은 세상을 향해 활을 쏘았다
진 우 곤
시인은 오래도록 벼르고 벼르던 일을 하기 위해 산 정상에 올랐다. 그의 손엔
고풍스런 활이 쥐어져 있었고, 어깨엔 열 발의 화살이 들어있는 전동(箭茼)을
매고 있었다. 늘 족쇄와 같은 먹고 사는 일에 전전긍긍하다 보니 마음은 있어도
산꼭대기에 오를 여가가 그에겐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는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스치는 바람결에 내맡겼다. 발 아래 굽어보는
세상은 드넓기만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엔 온통 가을빛이 묻어 있었다. 흡사
여러 가지의 물감을 이리저리 흩뿌린 듯했다.
어느 정도 땀을 식히고 숨을 고른 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활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줄을 몇 번 당겼다, 놓았다 하였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전동
에서 화살 하나를 꺼내고는 그것을 활에 메웠다.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번
지고 있었다.
시인은 훤히 내려다보이는 세상을 향하여 정신을 가다듬었다. 심호흡을 하며
힘차게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그러자 화살은 허공을 가르며 멀리멀리 날아
갔다. 시인은 연거푸 사방팔방으로 활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첫 번째 화살은 진실이 담긴 따뜻한 가슴으로 말하지 않고 뱀의 혓바닥 같은
거짓과 속임으로 사람을 호리는 자들과, 깊디깊은 함정을 파놓고 덫을 놓은 뒤
먹이가 걸려들기를 바라는 음험한 자들을 향해,
두 번째 화살은 신의와 지조, 그리고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두 절의
개처럼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며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자들과, 오로
지 자신의 영달만을 누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며 벼슬 도둑도 서슴지 않는 자
들을 향해,
세 번째 화살은 앞에서는 간도 쓸개도 다 빼내어줄 듯이 온갖 아첨과 간드러
진 웃음으로 아양을 떨며 비위를 맞추려고 한껏 치켜세우지만, 냉큼 뒤로 돌아
서서는 언제 그랬냐 싶게 손가락질하거나 깎아 내리고 심지어 야비하게 등 뒤
에서 비수를 들이대는 면종복배(面從腹背)와 구밀복검(口蜜腹劍)에 길들여진
자들을 향해,
네 번째 화살은 눈앞에 작은 이끗이라도 보일라치면 눈이 벌개가지고 그것을
손아귀에 움켜쥐지 못하면 남에게 뺏길까봐 불알 밑이 근질근질하여 송사리처
럼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오사리잡놈들과,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귀찮고 손해
되거나 불리해질 것 같으면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하고 약빠르게 빠져나가
는 얄미운 자들을 향해,
다섯 번째 화살은 자신은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그저 말로만 한 몫 하
는 얌치 없는 자들과, 남의 공을 제 것인 양 가로채고도 버젓이 자기가 이룬 것
처럼 꾸미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후안 무치한 자들을 향해,
여섯 번째 화살은 소위 학문을 한다 하면서 쥐꼬리만한 권력에 빌붙어 곡학
아세(曲學阿世)하는 – 권력층의 누구와 독대(獨對)한 것을 가지고 무한한 영광
이요, 자랑이라고 공공연히 떠벌리며 뻐기는 – 사이비 학자 나부랭이들과, 졸개
나 다름없는 알량한 지위를 앞세워 젠 체 거들먹거리며 허세를 부리려는 졸장부
들을 향해,
일곱 번째 화살은 한 순간도 양심이 명하는 바대로 살지 않고, 하잘것없고 무가
치한 일에 골몰하여 궁둥이에서 비파소리가 나도록 뛰어다니며 알토란과 금싸라
기 같은 세월을 물처럼 낭비하면서도 여봐란듯이 바쁜 척하는 자들을 향해,
여덟 번째 화살은 제 편 감싸주기에만 혈안이고, 자신과 느낌이나 생각이 다르
면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으로 증오와 파괴를 일삼는 자들과, 멀쩡한 거짓말을
해놓고도 언제 그랬냐 싶게 말 바꾸기에 여념이 없고, 잘못을 저지르고도 순전히
남의 탓으로만 돌리며 뻗대는 변명 일색의 참으로 비겁하고 가증스러운 자들을
향해 쏘았다.
그런데 아홉 번째 화살은 과녁에 명중이 되지 않았다. ‘비굴하게 손이나 비비며
하루에도 열두 번씩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여 연명하려는 겁쟁이들과, 불알 두
쪽만 대그락대그락하는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잔인하게 억누르고 짓밟아서
벼룩의 간을 내듯 이득을 취하고는 그들로 하여금 눈물과 한숨으로 지새우게 하
는 불한당들과, 나누고 베풀기에 인색한 놀부처럼 제 배부르면 그만이지 하고
인정머리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자들을 향해’ 쏜 것이었다. 조준은 정확했다.
그러나 심한 바람의 영향으로 화살은 영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시인은
구태여 그것을 찾으려 나서지 않았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게 세상일이다,
어찌 제 입에만 맞는 떡이 있겠느냐고 하면서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시인은 전동에서 열 번째 화살을 꺼내다가 멈추었다.
마지막인 열 번째 화살만은 왼지 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사랑과 평화’라는 이름의 화살이었다. 그런 심경의 변화는 아홉 번째 화살이
과녁을 빗나감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즉, 그때까지 팽팽했던 긴장감이 다소 느슨
해진 탓도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인은 마지막 화살만은 고이 간직하고 싶은
생각이 앞서서 아예 활조차 순순히 거두고 말았다.
이것은 ‘시인’이라는 이름을 빌려 지금의 하수상한 시국과 요지경과 같은 세태를
꼬집어본 글이다. 비단 열 발의 화살뿐이랴. 역부족이라고 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스무 발, 서른 발 그 이상으로 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세상을 흠잡자면 끝이 없다.
이런 정도로 해두는 것도 대과(大過)가 없을 듯싶다. 모름지기 과유불급(過猶不及)
의 우를 범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밝혔듯이 시인이 마음먹고 쏜 아홉 번째
화살조차 과녁을 빗나가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열 번째 화살은 쏘는 것조차
보류해 두었으니 말이다.
갈수록 세상이 점점 낯설게만 느껴진다. 곳곳마다 기고만장, 교만과 독선, 오기
와 생떼, 아전인수, 자화자찬, 허장성세가 세상을 뒤엎을 기세로 판을 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양두구육, 적반하장, 주객전도, 조삼모사, 자가당착, 좌충우돌이 요란
방정을 떤다. 교언영색, 호가호위(狐假虎威), 편벽과 거짓 등등도 그에 뒤질세라
제 철을 만난 듯 독버섯처럼 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마치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
을 정도로 안개가 짙게 낀 깊디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형국이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불어제치는 음산한 바람. 어디를 향해 발을 떼어놓아야 좋을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러매 까딱 잘못하다가는 천길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다.
눈은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는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은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은 있어도 느끼지 못하는 숨이 턱턱 막히는 세상이다. 저마다 서로 잘났다고
우기며 내 편, 네 편 가르기를 일삼으니 대체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하고, 어디에 귀
를 기울여야 하고, 누구와 함께 얘기를 나누어야 하고, 어디에 가슴을 대어야 하
는가.
‘가정이 맹어호(苛政猛於虎)’에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합창하듯
들려오건만 내 몰라라 하고 팔짱을 낀 채 먼눈 팔거나 아예 눈을 감아 버리고, 귀
조차 쫑긋 세우지 않으니 벌레 씹는 맛이 따로 없다. 참으로 향기라곤 쥐뿔도 없
는 답답한 시절이다. 아니, 콩나물이 썩는 것처럼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구역
질이 나는 세월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고, 여우도 제 꾀에 넘어갈 날이 있다. ‘화무
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도 했다. 기독교 경전인 성경 중 ‘야고보서’ 4장 6절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
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노자’도 교만한 자는 그 이상으로 자신을 높일 수가 없다고 설파했다. 모름지기
현대인이 금과옥조로 삼기에 딱히 좋은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 언제 암향(暗香)이 감돌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시절이 돌아올 수 있을까.
시인이 아껴둔, 마지막으로 남은 ‘사랑과 평화’ 라는 이름의 화살이 힘차게 쏘아
질 날이 말이다. 부질없이 세월만 자꾸 흘러가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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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74회)님의 댓글
수필가 진우곤 드디어 우리 홈피 신변잡기방에 등단하셨군요..이제 우리 신변방이 빛을 발할 것 같습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기대가 됩니다.
김태희(101)님의 댓글
<Embed Src="http://my.dreamwiz.com/dajunghi/mp3/proud.asf" width=70 height=25 loop=-1> ♬ The Proud One(자랑스런 사나이)<br> 우째, 선곡한 음악 제목이 꼭 아부성 같을까..신변방 등단하심을 반깁니다. <br>자주 오셔서 꼬리도 붙여 주시구 같이 뒹굴어요..ㅋㅋ
李聖鉉님의 댓글
인고 人材의 소굴 74群 등장을 환영합니다.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금번 200여페이지의 창작집이 명년에는 400페이지는 만들 수 있을것 같습니다.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진우곤 동문 환영 합니다 양 그리고 질의 향상 발전을 위한 Stem-cell이 되심을 확신 하며 인사동 그리고 동문 전원이 성원을 아끼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이상동님의 댓글
선배님 등단에 축하드립니다... 자주 찿아주시고 존글 마이 올려주세염...
윤용혁님의 댓글
진우곤선배님 등단에 축하드리며 좋은 글 마니 부탁드려요.
74회에 인재들이 많으시군요. 자주 찾아주세요. 선배님.
이환성(70회)님의 댓글
101회 태희님이 고톡록 찾던 진우곤님 등단에 감사드립니다...글도좋지만..정담을 나누는 진우님의 댓글은 모두를 훈훈하게 합니다...
이동열님의 댓글
앞으로 좋은 글과 함께 만날수 있겠죠,,,축하함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인문님...수필가 우곤님의 답방이 있어야 진짜 眞가여...
진우곤(74회)님의 댓글
핍진한 재주밖에 없는 저를 여러 모로 환대해 주어 감사합니다. 자주 들르겠습니다.